곡신(谷神)은 죽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를 낳는다. –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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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너머 계곡에는 마녀가 산다
이번 리뷰는 인용이 조금 많다. 조금 ‘센’인용으로 시작하겠다.

“종교는 다 뻥이야. 우린 그냥 더럽고 다리 없는 물고기에 다리가 난 거고. 신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머저리 때문에 있는 거야.”
“신은 당연히 있지”
“증거 있어?”
“등신아! 그럼 넌 어디서 태어났냐?”
“뭔 헛소리야? 울 엄마 XX에서지”
“…좋아, 그럼 네 엄마는 어디서 태어났는데?”
“울 엄마 엄마 XX에서. 할머니는 자기 엄마 XX에서. 그렇게 XX를 거슬러 올라가면 맨 처음엔 다리 없는 단세포 물고기가 있는 거지.”
“그럼 그 다리없는 단세포는 어디서 왔어?”
“지 엄마 XX에서. 모든 만물은 다 자기 엄마 XX에서 나오는 거야.”
“그럼 그 XX는 어디서 온 거야?”
“우주에 있는 거대한 하나의 XX에서 나왔겠지.”
“맞아, 그게 바로 신이야!”
“!?….아마도… 그럴지도….”

루이 C. K.가 주연한 시트콤 <럭키 루이>의 한 장면이다. 천박하고 노골적이라 느낄지는 모르나, 2500여 년 전 중국의 노자도 똑같은 말을 <도덕경> 6장에 남겼다.

6장: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之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골짜기의 신, 곡신(谷神)은 근원의 신비한 암컷, 현빈(玄牝)이다. 신비한 암컷의 문은 우주의 뿌리다. 여기서 만물이 아무 조작 없이도 끊임없이 태어난다.)

나는 이 둘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영감의 근거를 도올 김용옥에게 빌려왔다. 그는 곡신이란 우주의 갈라진 음으로, 만물을 낳는 여성 원리이며, 로고스의 뿌리가 되는 카오스라고 지적한다. (나 자신은 이러한 시각이 남성이 여성-모성을 신격화 한 일종의 판타지라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나, 이 글에서는 자세한 논의를 생략한다.) 위대한 어머니가 사는 언어 너머의 직관의 세계는 카오스라 로고스(언어)로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느껴서 바로 알고(직관) 이를 행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렇게 행하는 사람을 이가라시 다이스케는 <마녀>라고 정의한다. <마녀>는 곡신이 사는 세계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만남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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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의 계곡은 우뇌에 있고, 볼펜은 이를 그린다
TED 2008 강연에서 뇌 연구자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 박사는 본인이 좌뇌 뇌졸중으로 경험한 우뇌의 감각을 이야기했다. 그는 말한다.

“우반구는 모두 현재의 순간에 대한 것뿐이며 모든 것이 ‘바로 여기, 바로 지금’에 대한 것입니다. 우반구는 그림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몸의 움직임을 통해 운동감각적으로 알아냅니다. (중략) 내 팔을 내려다보며, 내가 더 이상 내 몸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었어요. 내 팔의 원자들과 분자들이 벽의 원자들과 분자들에 섞여 버렸거든요. 내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에너지뿐이었어요. 에너지.”

이가라시의 작화는 이 세계를 그려낸다. 그는 <마녀>를 볼펜만 사용해서 그렸다. 볼펜으로 그은 선은 미세한 진동으로 떨려 불규칙하다. 작품 속 마녀들은 좌절된 현실과 욕망의 틈 사이로 이미지를 낳는다. 이미지는 볼펜의 불분명하고 애매모호한 선으로 재현된다. 그림의 경계가 애매해진다. 치밀하고 아름다운 다양한 감각이 폭발하고, 이름으로 구분된 이미지가 서로 뒤섞여, 작화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된다. 세밀하고 섬세하나, 격렬하고 힘차게 흐른다.aksu2

 

생식의 돌을 집어삼킨 입
<마녀>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입의 묘사다. 섬세하고 세밀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한 입의 익스트림 클로스 업 장면에서, 입은 항상 무언가를 먹고 있다. 일종의 페티시즘을 느끼게 할 정도다. 그러나 입은 집어삼켜 소화하는 모성 원리의 문이자, 언어를 낳는 문이기도 하다. 이가라시는 무작정 모성 원리를 찬양하지 않으며, 언어를 무조건 부정하지 않는다.

외계에서 온 물질 ‘페트라 게니틸락스(PETRA GENITALIX, 생식의 돌)’로 인해 무생물이 살아나 혼란스러워지는 에피소드 속에서, 이가라시는 남성 원리(=언어)로 구축한 종교조직이나 남성적 탐욕을 비판한다. 그들의 언어는 체험이 없어 공허하다. 마녀는 체험을 통해 언어의 한계를 알기에 자유로이 구사한다. 마녀는 폭주하는 모성 원리인 ‘생식의 돌’을 자기 뱃속에 담아 제어한다. 모성원리의 혼돈은 이미지라는 외피를 입힐 때 비로소 전달이 가능해지며, 때로는 ‘체험을 수반한’ 언어가 이미지를 대신 할 수 있다고, 이가라시는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 눈에 보이는 만물과 천지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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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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