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만화의 광폭한 꿈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담(膽)크고 순정(純情)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才弄)처럼 귀(貴)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최남선

 

 

1. 우리는 소년 만화가 키웠다
소년은 어떻게 어른 남자가 되는가? 내가 만약 몽골의 유목민이었다면, 아버지와 부족의 친척들이 나를 가르쳤을 것이다. 텐트를 치고 매를 부리고 양을 죽여 고기를 얻는 것까지. 어느 날 진짜 남자가 되었다는 증거로 칼 한 자루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미국 동부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주말마다 아버지와 낚시를 다니며 대화를 나누었겠지. 학교의 클럽이나 보이스카우트 캠프에서도 많은 걸 배웠을 거다. 복싱을 위해 주먹을 단련하는 법, 지도 한 장으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법, 여학생을 에스코트해 댄스 파티에 데려가는 법까지.

나는 1970년대 한국에서 태어났다. 소년의 시절이 너무 아득해서일까? 내게 공부 바깥의 무엇을 가르쳐준 어른 남자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바빴다. 간혹 시간이 나도 “공부 열심히 하고 말썽 피우지 마라.”는 훈계뿐이었다. 형이 있었지만 대학 입시 공부에 바빴다. 동네의 두세 살 위는 부려먹고 놀려먹기만 했다. 여러 번 이사를 하느라 그마저도 유지되기 어려웠다. 학교에는 많은 남자 선생님들이 있었다. 불행히도 수업 이외에 삶의 길을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건, 빨간 비디오를 즐겨 보며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선생님 정도였다.

내 또래는 물론이고 이후의 세대들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점점 전통적인 공동체의 남자 수련법에서 멀어져 갔다. 짐승과 새를 사냥하는 법도, 이웃 부락의 패거리와 싸우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학교라는 입시 훈련소와 집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고 자랐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년들은 학교와 집 사이에서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발견했다. 오락실, 비디오 대여점, PC방, 서점 같은 것들 말이다. 소설 <톰 소여의 모험> <십오소년 표류기>, 오락실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성룡과 홍금보의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배웠다. 어떻게 해야 남자다워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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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만화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씨름을 하다 약골이라고 놀림을 당했다. 어떻게 분풀이를 할까? 몸이 작은 <권법소년 용소야>가 무술을 익혀 야수 같은 적들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했다. 형과 누나가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며 놀렸다. 그 걱정을 어떻게 이겨낼까? <바벨 2세>를 보고선, ‘그래, 나는 사실 초능력 외계인의 후손이야.’라며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 간 소년 만화는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의 소년들을 키워왔다. <가면 라이더>의 “라이더 킥!”, <원피스>의 “고무고무 로켓!”, <짱>의 “하나 된 인천연합!”…. 필살기와 구호는 바뀌었어도, 소년 만화는 우리에게 답답한 현실로부터 달아날 탈출구가 되어 주었다. 만화는 용기의 산실이었다. 몸이 약해도 수련을 통해 극강의 전사로 레벨업 할 수 있고, 적이 아무리 강해도 친구들과 손을 맞잡으면 이길 수 있다. 또한 만화는 우리에게 목적 의식을 주었다. 남자라면 마을과 나라와 인류를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 소년 만화를 보는 순간, 받아쓰기 빵점도 달리기 꼴찌도 지상 최고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분명 소년 만화의 황금시대는 지나갔다. 2천년대의 소년들에겐 출판만화보다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더 큰 마음의 양식이 되었다. 만화 잡지는 생존이 위태해졌고 웹툰으로의 이주도 용의치만은 않다. 그러나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드라마, 영화 등의 영상 콘텐츠 산업에서 출판만화가 만들어낸 세계관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년 만화는 원초적 경험이고, 탁월한 엔터테인먼터이고,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다. 그래서 소년들의 형과 아버지들까지 여차하면 거기로 돌아가려 한다. 힘겨운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직장인, 그런 친구조차 부러운 취업준비생, 갑작스런 감원 통보를 받은 중년의 남자들도 소년 만화 속의 영웅들을 보며 다시 용기를 얻는다.

허나 작금의 소년 만화에 무조건적인 박수를 보내자는 건 아니다. 소년 만화는 소년들을 좁은 길로 이끌고 그들에게 편향된 생각을 품게 만든다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나친 폭력과 남성 우위의 세계관은 일진들의 학원 폭력을 숭배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천편일률의 배틀 공식, 만화적 창의성이 고갈된 무한정의 자기 복제를 통해 소년 만화는 막다른 길에 접어들었다고도 말한다.

이제 진지하게 돌아보자. 과연 소년 만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자라나 만화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상상력의 용광로가 되었나? 그 안에 담긴 중2병의 허세와 소영웅주의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 미래의 소년들에게는 어떤 만화를 보여주어야 할까?

 

2. 소년 만화란 무엇인가?
먼저 구역부터 정리해보자. 어느 놀이터에 가면 소년 만화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 놀이터의 입장 가능 연령은 어떻게 되는가? 소년 만화인 것과 아닌 것은 어떻게 구별해낼까?

소년 만화를 간편하게 정의하자면 이 정도가 될 것이다.

[소년 만화는 소년 독자를 위한 만화다]

여기에서 소년은 누구인가? 법령과 사전마다 기준이 다른데, 넓게 보면 이렇다. 소년은 미성년의 남성으로, 나이로는 만 6,7세에서부터 18,19세까지를 일컫는다. 진학 연령으로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를 포괄한다. 그런데 이들을 독자층으로 하는 만화 전체를 소년 만화로 규정해서는 곤란하다. 너무 넓다.

만화 출판계에서 소년 만화를 규정짓는 구분선은 훨씬 타이트하다. 연령대의 아래위를 잘라내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용의 만화잡지 – 한국의 《팡팡》, 일본의 《코로코로 코믹》, 그리고 여기에 연재되는 <도라에몽> 같은 작품은 유소년 만화다. 1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영점프》 《영챔프》 등은 ‘영 잡지’로 구분한다. 소년 만화 잡지는 유소년과 영 사이,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15세 내외까지를 핵심 타깃으로 삼는 잡지다. 한국에서는 《아이큐 점프》와 《코믹 챔프》, 일본에서는 《주간 소년 점프》, 《주간 소년 매거진》, 《주간 소년 선데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다음처럼 정의할 수 있다.

 

[소년 만화는 ‘소년 만화 잡지’에 연재된 만화다]

또한 소년 만화는 소녀 만화/순정 만화가 아니다. 동아시아의 만화 미디어는 연령층만이 아니라 남녀의 성까지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소년지를 읽는 여성 독자가 없지는 않지만, 소년 만화는 분명히 남자를 대상으로 한다. 연령적인 편향성과 더불어 성적인 편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허나 이런 외적인 구분만으로 소년 만화의 실체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이것으로는 오늘날 많은 독자들이 ‘소년 만화’라고 할 때 떠올리는 어떤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머리가 삐죽한 소년들이 무국적의 의상을 입고 나와 소리 높여 필살기의 명칭을 외치며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 주인공은 끊임없이 새로운 적을 만나고, 그들과의 대결 뒤에 성장하고 아이템을 얻지만, 영원히 종착점에는 도달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우리가 미국 만화라고 하면 슈퍼맨, 배트맨 같은 슈퍼 히어로를 떠올리듯이, 소년 만화라고 하면 떠올리는 특정의 요소들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소년 만화는 그것을 소년 만화답게 만드는 어떤 규칙을 지키는 만화다]

오늘날의 소년 만화는 ‘메타 장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 안에는 스포츠, 무술, 추리, SF, 판타지 등 다양한 소재의 장르들이 날실로 존재하는데, 여기에 소년 만화의 규칙과 이념이라는 씨실이 횡단하며 직조를 완성한다.

3-21우리가 소년 만화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있다. 소년 만화는 소년만을 위한 만화가 아니다. 소년 만화는 메이저 중의 메이저 만화로, 만화 시장 전체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일본의 《주간 소년 점프》가 280만부 내외, 《주간 소년 매거진》이 135만부 내외, 《주간 소년 선데이》가 50만부 내외가 팔린다. 다른 연령대의 만화잡지인 《빅코믹 오리지널》 《영 매거진》 《영점프》 가 각각 60만부 전후다. 한국에서는 유소년과 성인 만화 잡지는 거의 사라졌다. 《아이큐 점프》와 《코믹 챔프》라는 소년지가 출판만화시장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소년 주간지는 15세 이상의 구독자가 30%를 넘는다. 그러니 마지막 명제를 기억하자.

소년 만화는 동아시아 만화 시장을 압도하는 최강의 세력이다.

 

3. 소년 만화 잡지와 일본 소년 만화
1908년 최남선은 잡지 《소년》의 창간호 권두에 격정적인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실었다. 이때의 소년은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의 아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년은 케케묵은 과거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희망, 미래의 상징이었다. 20세기 초반 ‘소년’이라는 말은 일본, 조선 등 동아시아 미디어 곳곳에서 등장했다. 그 말의 울림은 근대라는 기차가 내뿜는 기적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 시기 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매체들이 창간되었고, <보물섬> <피터팬> <십오소년 표류기> 등 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서구의 모험 소설들이 대거 소개되었다.

식민지인 조선은 물론, 제국인 일본도 세계 공황과 전쟁의 분위기 속에서 ‘소년’에 대한 갈망은 유예시킬 수밖에 없었다. 미래를 열어가야 할 소년들은 병사가 되어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일본은 정신적 좌절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시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반작용으로 ‘소년’을 찾는 문화적 열기가 다시 거세게 타올랐다. 《소년》 《소년 클럽》 《소녀 북》 등의 소년소녀 대상 월간지의 복간, 창간이 러시를 이루었다. 당시 소년지는 소년탐정단 시리즈 등의 읽을거리가 대부분이었고, 만화는 잡지당 한 작품 정도에 페이지도 많지 않았다. 대신 저질 종이의 조잡한 단행본인 아카혼(赤本)에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담은 모험 만화들이 등장하면서 소년소녀들의 인기를 모았다. 오사카의 의대생이었던 데즈카 오사무는 <신보물섬>(1947년)을 필두로 <로스트월드>(1948년) <메트로폴리스>(1949년) <다가올 세계>(1951년) 등의 SF 3부작을 연이어 히트시켰다.

1949년 고단샤의 잡지 《소년 클럽》의 인기 편집장이었던 가토 겐이치가 퇴직 후 만화 전문 잡지인 《만화 소년》을 창간했다. 이때 데즈카가 도쿄로 왔고, 장편 단행본으로 예정했던 <정글 대제>가 《만화 소년》 1950년 11월호부터 연재된다. 이 작품은 곧바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만화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를 바꾸게 한다. 이제 만화는 아이들의 오락물임과 동시에 진지하고 치밀한 스토리, 매력적인 캐릭터, 선명한 주제의식을 전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 만화 잡지들의 구애가 쏟아졌고, 데즈카는 1951년 《소년》에 <아톰 대사>를, 1953년 《소녀 클럽》에 <리본의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짧은 시간에 데즈카의 초기 3대 걸작이 탄생했고, 그것은 현대 일본 만화의 원형이 된다. 그 한가운데 ‘소년’이 있었다.

데즈카의 초기 만화들은 패전 이후 실의에 젖어 있던 일본의 소년들에게 미래를 개척할 꿈을 전해주었다. 고아나 다름없는 소년들이 주인공이 되어 놀라운 초능력과 마법으로 온갖 환상의 세계에서 모험을 즐긴다. 구태의연한 욕심으로 더럽혀진 어른들의 세상은 우정과 휴머니즘으로 뭉친 소년들에 의해 치료된다. 데즈카의 만화는 소년의 오락물에 그치지 않았다. 그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 또 다른 꿈을 펼쳤고, 결국 데즈카의 스타일이 오늘날까지의 동아시아 만화를 규정하게 만들었다. 소년 만화가 만화의 왕도로 자리 잡은 데 있어, 데즈카의 초기 소년물이 너무 뛰어났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소년 잡지의 지면에서도 만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다. 월간 만화 잡지의 창간 붐도 일어났다. 데즈카에 영향을 받은 젊은 만화가들이 창작열을 불태우고 다양한 장르로 가지를 뻗어나갔다. 요코야마 미스테루의 <철인 28호>(1956년), 구와타 지로의 <월광가면>(1958년) 등 SF, 히어로 만화가 특히 인기를 모으며 수십 년 간 이어갈 소년 만화의 핵을 형성했다.

1959년 고단샤의 《주간 소년 매거진》과 쇼가쿠칸의 《주간 소년 선데이》가 창간되면서 만화 주간지의 시대가 열렸다. 주간으로의 전환은 만화 잡지가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전환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간 단위는 소년들의 생활을 완전히 장악한다. TV 애니메이션의 방영과 맞물려 만화를 읽지 않으면 소년들은 친구를 사귈 수 없게 된다. 연재 만화의 분량도 빠르게 축적되어 단행본을 통한 상업적 회수의 기간도 짧아진다. 만화가들도 주간 연재를 맞추기 위해 어시스턴트, 프로덕션 체제로 나아가 묘사의 질이 높아진다. 인기 만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경쟁도 격화된다.

3-102차 대전 직후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세대를 단카이 세대라고 한다. 데즈카의 만화를 보며 소년기를 거쳤고, 전쟁 후의 경제적 빈곤을 이겨나가는 성장의 기쁨 혹은 상대적 좌절을 맛본 세대다. 이들이 십대 후반으로 성장하면서 세상이 데즈카의 만화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은 빈부격차로 시름하고, 청년들은 도시의 뒷골목에서 술잔을 기울여야 했다. 만화계 내에도 이런 현실적 감수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타츠미 요시히루 등이 주도한 ‘극화’는 이렇게 태어났다. (최근 영화 <도쿄 표류 일기>로 재발견되고 있다) 리얼한 심리 묘사, 반복되는 먹 선을 통한 액션과 긴장감의 표현, 도덕적으로 모호한 세계관은 청년들만이 아니라 소년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메이저 소년 잡지 《매거진》은 1960년대 중반부터 극화 노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1968년 등장한 치바 데츠야의 <허리케인 조>, 가와사키 노보루의 <거인의 별>은 승부를 위해 목숨을 거는 열혈 소년 극화 시대를 열었다.

이때 또 하나의 태풍이 몰아쳤다. 1968년 고단샤에 못지않은 메이저 출판사인 슈에이샤가 《주간 소년 점프》를 창간하게 된 것이다. 초기의 《점프》는 큰 난제를 풀어야 했다. 인기 만화가들은 이미 《매거진》과 《선데이》에 묶여 있었다. 《점프》는 복합적 전략을 구사한다. 한편으로는 여학생 치마 들추기 열풍을 만들어낸 나가이 고의 <파렴치 학원>, 불량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모토미야 히로시의 <사내대장부 골목대장> 등을 통해 윤리적으로 위험한 만화들을 게재했다. 또한 실력파의 신인 작가를 발굴해내는 데 총력전을 벌였다. 초기에는 과감한 지원을 하고, 대신 장기 계약을 통해 자기 작가로 묶었다. 여기에 앙케트 제도를 실시해, 독자 투표에 의거한 철저한 인기지상주의의 노선을 택했다. 편집자가 심하게는 “앙케트 2위 이하의 작품은 모두 종료 후보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서바이벌 경쟁을 부추겼고, 만화가들은 어떻게든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벌였다. 나가이 고의 <마징가 Z>(1972년)가 거대로봇물을 히트시켜 TV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의 상업화 라인을 만들었고, 부가 판권을 통한 거액의 수익은 만화가들의 살인적인 경쟁을 지탱했다.

《점프》에 자극받은 《매거진》과 《선데이》의 분투를 통해 점입가경의 소년 만화 전쟁이 이어졌다. 《선데이》에서는 나가이 고의 영향을 받은 이시카와 겐이 변신 로봇물 <게타로보>(1974년)를 히트시켰다. 우메즈 가즈오는 <표류교실>(1974년)로 재난 만화의 신기원을 열었다. 1973년 이후 《점프》에 발행부수를 추월당한 《매거진》에서는 <낚시광 산페이>(1973년) 등의 취미 영역으로 소재를 넓히고, 그라비아 아이돌 사진 등 만화 외적인 콘텐츠를 강화하기도 했다. 불량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양키 만화나 격투 배틀 만화 등 남성 취향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사랑과 진실(愛と誠)>(1973년)에서부터 <상남2인조>(1994년), <GTO> (1997년) 등으로 이어진다.

06h2-21980년대 들어 열혈 극화의 열기는 사그라든다.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추구하는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단카이 세대도 <시마과장> 같은 안정적인 직장인의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만화계도 다양화를 추구한다. 《점프》는 도리야마 아키라의 <닥터 슬럼프>(1980년) <드래곤볼>(1984년)을 통해 귀여운 그림체, 모험적인 상상력, 배틀 액션의 세계로 넘어간다. <북두의 권>(1983년) <죠죠의 기묘한 모험>(1987년) 등은 좀 더 높은 연령의 취향을 받아들여, 세기말적인 상황에서 격투를 통해 살아남는 사나이의 세계를 구조화시켜나갔다. <캣츠아이> <시티헌터>(1985년) 같은 에로 코드가 강한 프로페셔널 만화들도 등장한다. 《선데이》는 러브 코미디의 요소를 받아들이며 여성 독자까지 포괄할 수 있는 작품들을 등용한다.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1981년), <H2> (1992년)가 대표적이다. <시끌별 녀석들>(1978년) <란마 1/2>(1987년)의 다카하시 루미코 역시 《선데이》를 중심으로 러브 코미디와 판타지적인 요소가 섞인 대소동 코미디를 이어갔고, 남녀 모두에게 사랑받는 소년 만화들을 만들어냈다.

《점프》의 성장 궤도는 일본 소년 만화의 성장 궤도라고 할 수 있다. 창간호가 10만부를 조금 넘었는데, 1971년에 1백만부, 1980년에 3백만부, 1991년에 6백만부, 최전성기인 1994~95년에 653만부에까지 이르렀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유유백서>가 황금기 3대 작품으로 빛을 발했다. 이후 판매부수가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1990년대 후반 <원피스> <헌터X헌터> <나루토> 등으로 부흥기를 맞이했고, 2천년대에는 <블리치>(2001년),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2004년) 등으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d03-y05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출판만화 시장이 침체되어 가는데, 《점프》는 점점 모험적인 시도보다는 한번 인기를 얻은 작품의 연재를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구도를 만들어간다. 기본적으로 판타지 세계관 속에서 배틀을 이어가는 형식의 만화들인데, 초기에는 색다른 설정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에는 계속 새로운 적들을 반성 없이 등장시키며 자기 복제의 틀에 갇힌다. <유희왕>(1996년) 이후 카드 게임이나 다른 종류의 상품을 전제한 작품들도 다수 나오고 있고, 전체적으로 게임적 세계관이 소년 만화 전반을 뒤덮고 있다. 소년 만화는 어떤 강한 틀을 스스로의 몸에 끼어 넣은 게 사실이다. 최상급의 만화들은 그럼에도 풍성한 재미를 준다. 그러나 그 시스템을 모방하는 데 급급한 작품들에서는 점점 새로운 생명력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슬램덩크>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때 갑작스레 연재를 종결했던 것은 예언적인 행동이기도 했다.

 

4. 한국 소년 만화의 흐름
일본의 소년들이 한국전쟁 특수를 기반으로 한 고도성장의 과실을 즐기고 있던 때, 한국의 소년들은 경제적 문화적 빈곤에 시달려야 했다. 생존의 최소선을 얻기 위해 애쓰던 1960년대의 보릿고개에서도 약간의 만화들은 소년 소녀들의 삶을 위로했다. 그러나 진정한 만화 세대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일본과 유사하게 한국에서도 읽을거리 중심인 어린이 잡지가 먼저 붐을 이뤘다.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 중앙》의 3대 잡지가 경쟁 관계 속에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애썼다. 만화의 인기는 절대적이어서 점차 분량이 늘어났고, 길창덕의 <꺼벙이>, 박수동의 <번데기 야구단>, 윤승운의 <맹꽁이 서당> 등의 명랑만화 황금기가 펼쳐졌다.

명랑만화는 단정한 선의 카툰체에 3~5등신 정도의 비율로 그려진 개그만화라고 할 수 있는데, 군사 독재 시절의 엄혹한 문화적 간섭으로 인해 일탈의 범위가 크지 않았다. 착하고 밝은 어린이의 엉뚱한 소동과 모험 정도를 다루었고, 애국/효도/반공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에피소드들이 빈번히 등장했다. 아이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이지만, 동시에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양으로서의 성격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소년 만화로서 가지는 일탈의 자유도가 낮았고, 현재의 관점에서는 유소년 만화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소년 만화라는 관점에서 이 시대에 가장 주목해야 할 만화가는 이상무다. 캐릭터의 등신대 비율이나 스토리의 굴곡 등이 명랑만화들보다 높은 연령층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었다. <비둘기 합창> <울지 않는 소년> <아홉 개의 빨간 모자> 등은 소년 만화의 세계를 분명히 했고, 《여학생》 잡지에 연재된 학원 만화 <노미호와 주리혜>는 썸과 툭탁거림이 오가는 러브 코미디 적인 요소도 있었다. 1970년대에 “엄희자는 여자만 울리지만 이상무는 남자와 여자 모두를 울린다.”는 말이 있었다. 남녀 독자 모두에게 어필하는 순정 소년 만화라는 관점에서 1980년대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와 비교해 볼 만하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일본 스포츠 극화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소년 스포츠 만화들이 쏟아진다. 이상무의 <우정의 마운드>, 허영만의 <태양을 향해 달려라>, 이우정의 <야구왕> 등은 열혈 근성 만화의 속성과 더불어 상당히 감상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인기 높았던 고교 야구를 무대로 한 경우도 많았는데, 현실의 스포츠와 상상의 만화를 교차로 즐길 수 있었기에 더욱 큰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1982년 프로야구 시대가 열리며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등 스포츠 만화들이 인기를 모았다. 성인 스포츠 극화는 소년 스포츠 만화보다 훨씬 어둡고 극단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고, 소년 만화들에서도 마구와 필살기가 점점 초능력에 가까운 수준으로 나아갔다.

bomul1982(10)s1982년 언론통폐합의 어수선한 정국에서 《보물섬》이 창간되었다. 압도적인 부피에 오직 만화만을 싣는 전문 잡지가 태어난 것이다. 독자층은 전 시대의 어린이 잡지를 끌어안은 셈이라 소년소녀가 함께 보는 걸 상정했다. 그리고 실력파 만화가들을 집대성한 형태라 매우 다양한 취향의 만화가 공존했다. 육영재단이라는 발간 주체의 성격도 그렇고, 군사 정권 시대였기에 건전한 교양의 분위기가 강했다. 게재 작품들은 소년 만화라는 세대적 성적 특성이 그다지 발현되지 않은 상태였다. <달려라 하니> 정도를 열혈 스포츠 만화로 볼 수 있지만, 소녀가 주인공이고 일상성과 신파성이 강했다.

1980년대는 경제 호황과 군사정권의 우민화 책략인 3S(스포츠, 스크린, 섹스) 정책으로 인해, 도덕의 혁대가 풀리고 개인의 욕망이 분출해 나오던 때였다. 프로야구로 대표되는 프로 스포츠의 개막은 성공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담아내는 장치였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허영만의 <무당거미> 등의 성인 극화가 이러한 욕망을 수용했고, 당시의 소년들에게도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만화의 성장 궤도로 보자면 유소년에서 청소년기를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되어버린 격이었다. 이두호의 <바람소리> <머털도사님> 이현세의 <떠돌이 까치> 등이 소년들에 초점을 맞췄고 TV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중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착한 만화들이었다.

소년들은 《보물섬》이나 TV 애니메이션 이상으로 자신을 자극할 쾌락, 그러면서도 자기 세대의 수준과 취향을 반영할 만화를 원했다. 원래는 만화 산업의 중심이어야 할 소년 만화의 영역이 진공 상태로 존재했던 것이다. 거기에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 같은 일본만화의 해적판이 들어왔다. 학교 앞에서 저가의 소형 책자로 나온 만화는 소년들에게 금단의 쾌락을 제공해주었다. <용소야> 시리즈가 대표적인데(원작은 마에카와 다케시의 <쿵후보이 친미>(1983년)로 후에 정식 번역 단행본이 나왔다) 이소룡, 성룡 등의 홍콩 무술 영화의 인기와 조응하며 강력한 서브컬처를 형성했다. <드래곤볼>은 여기에 판타지적인 요소와 계단식 성장과정을 더해, 맨주먹의 작은 소년이 우주 최고의 전사가 되어가는 욕망의 고속도로를 펼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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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문화사에서 《주간 아이큐 점프》를 창간하면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소년만화 잡지의 시대가 열린다. 소년들은 음침한 대본소나 학교 앞 문방구의 해적판 서가가 아니라, 깔끔한 잡지와 단행본을 직접 사서 만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이큐 점프》는 <아마게돈>의 이현세, <O심이>의 배금택 등 기성작가의 작품들로 진용을 갖추면서 <진짜 사나이>의 박산하, <까꿍> <마이러브>의 이충호 등 젊은 감각의 작가들을 기용하며 소년 만화 시장을 개척했다. 여기에 김성모의 <마계대전>, 손태규의 <십이지전사>, 박성우의 <천랑열전> <팔용신전설>, 김수용의 <힙합> 등이 한국 소년만화의 틀을 짰다. <드래곤볼> <란마 1/2> <캡틴 츠바사> 등의 일본만화들도 정식 라이선스로 게재되며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게 사실이다.

만화 시장의 수준을 끌어올릴 경쟁지의 시스템도 곧 갖추어졌다. 1991년 대원문화사에서 《주간 소년 챔프》를 창간했다. 서영웅의 <굿모닝 티처>, 양경일의 <소마신화전기>, 전세훈의 <슈팅> 등이 이 잡지를 통해 소년들을 매료시켰다. 소주완, 지상월의 무협 액션 만화 <협객 붉은매>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형민우의 판타지 호러 만화 <프리스트>는 북미에서 팬을 모아 미국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임재원의 <짱>은 한국형 학원 액션 만화의 틀을 만들며 18년 동안의 초장기 연재를 이어가기도 했다.d06-y04

1990년대 한국 만화는 대본소 시장을 벗어나 잡지와 단행본 체제를 갖추어갔다. 소년 만화라는 가장 확실한 시장이 만들어졌고, 양대 잡지가 경쟁하며 새로운 만화들을 탄생시킬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공모전 출신인 이명진이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신진 작가들의 꿈도 커졌다. 허나 일본 소년 만화와 비교하자면 몇 가지 중요한 난점이 있었다.

먼저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 모두 일본 만화의 번역 작품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 물론 <드래곤볼>을 보기 위해 《아이큐 점프》를 사고, <슬램덩크>를 보기 위해 《소년 챔프》를 샀다가 다른 작품으로 관심을 넓혀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고도로 성장해 있는 일본 만화에 독자들의 눈높이가 맞춰지면서, 상대적으로 국내 만화의 완성도에 실망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4È£(ºÒ»çÀÚ)Ç¥ÁöÀÏ·¯다음으로 일본 만화 잡지는 《점프》 《매거진》 《선데이》의 색깔이 아주 분명하다. 점프가 확실한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면, 매거진은 불량배 만화 같은 경파(硬派), 선데이는 러브 코미디로 여성도 수용하는 연파(軟派) 경향으로 구분되는 식이다. 이런 구도가 유소년-소년-영-청년 잡지의 체계까지 이어져 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점프 계열을 보느냐, 매거진 계열을 보느냐, 혹은 마이너 잡지들을 보느냐에 따라 인생관이 달라진다고 할 정도다. 1970년대 한국 어린이 잡지인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중앙》에서도 이러한 취향의 구분이 보인다. 그러나 국내의 소년 주간지는 이런 분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일본 《점프》 연재작이 《아이큐 점프》에도 《소년 챔프》에도 실렸다. 독자들 역시 해당 시기의 인기작에 따라 잡지를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작품의 다양성과 장르의 분화를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했다.

물론 이는 시장 형성 초기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본다. 만약 잡지와 단행본 시장이 충분히 팽창하고 한두 편의 번역작품에 사활을 거는 상황이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자기 영역과 취향을 분명히 하는 잡지들이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1990년대 중후반에 만화 산업에 쏟아진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우수한 편집 인력들도 대거 영입되어, 일본 만화의 장점을 수용하면서도 개성적인 만화들을 만들어가려는 열망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청소년 보호법, IMF 구제금융, 스캔 만화 복제, PC방과 게임 열풍 등을 통해 만화 시장이 급속히 축소되고 말았다. 소년 만화의 황금기를 바라보던 기대감도 유예해야만 했다.

소년 만화들은 대체로 긴 호흡의 스토리에 독립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웹툰이라는 짧고 빠른 자극을 원하는 플랫폼에 쉽게 적응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토리 만화의 진용들이 웹에 자리를 잡고 있고, 소년 만화 역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손제호, 이광수의 판타지 배틀 <노블레스>, 박용제의 격투 배틀 <갓 오브 하이스쿨>, 그리고 두뇌 싸움을 중요한 요소로 집어넣고 있는 케이지콘의 <블랙 베히모스> 등이 소년 만화의 왕자가 되기 위해 다투고 있다. 정통파 소년 판타지 배틀이지만 로맨스와 게임 코드까지 갖춘 SIU의 <신의 탑>은 해외 10개국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5. 소년 만화의 핵심 이데올로기
소년 만화는 소년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 재미는 매력적인 캐릭터, 필살기, 격투 장면을 통해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소년들이 감정이입하는 주인공들이 추구하고 결실을 맺는 어떤 이념이 있다. 소년 만화가 주장하는 가치관은 소년이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하게 하는 또 다른 종류의 희열을 준다.

흔히들 소년 만화의 가치관을 이야기하며 《점프》가 주장하는 세 가지 편집 키워드를 이야기한다. 우정, 노력, 숭리. 이것은 점프의 전신인 월간지 《소년 북》의 편집방침에서 이어온 것인데, 원래는 초등학교 4, 5학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다.

1. 자신의 가슴을 가장 따뜻하게 만드는 말은?

2.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말은?

3. 자신에게 가장 기쁨을 주는 말은?

이 질문을 받은 소년들이 각각 우정, 노력, 승리라는 답을 가장 많이 적어냈던 것이다. 《점프》는 아무리 소재와 장르가 다르더라도, 가급적 이 기준에 부합하는 만화를 싣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세 키워드가 소년 만화의 ‘표면’적인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소년 만화에는 이런 주제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 소년들의 거친 쾌락을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소년 만화의 이념과 가치관을 다음과 같은 명제들로 풀어보고자 한다.

1) 소년은 고아다
데즈카 오사무의 초기 3대 걸작 <정글 대제> <철완 아톰> <리본의 기사>의 주인공들은 출생의 고난을 안고 있다. 아톰은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를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조인간인데 자라지 못한다는 이유로 서커스단에 팔린다. 레오는 어머니와 함께 밀렵꾼에게 잡혔다가 탈출해 아프리카에서 홀로 살아간다. 사파이어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왕자 행세를 하며 왕국을 집어삼키려는 세력에 맞서 싸운다. 그들은 거의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로 자라, 어린 나이에 세상의 악과 대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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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라는 장치는 소년 주인공의 고난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이며, 세상과 맞서는 주인공의 외로움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한 부모로 대표되는 어른 세대를 부정하기 위한 수단이다. 전쟁의 고통을 뼈저리게 맛본 데즈카는 전쟁을 일으킨 어른들의 원죄를 씻을 수 없는 무엇으로 본 것 같다. 순진무구한 소년들만이 세계의 악에 맞설 자격이 있다.

고아인 주인공은 이후의 소년 만화에서 꾸준히 발견된다. 이상무의 여러 작품들에서 주인공은 고아이고, 고아원이 주 무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까치의 날개>에서 소년 설까치는 아버지와 누나를 잃고 혼자 살아가야 한다. <허리케인 조>의 조는 고아원 출신이고, <은하철도 999>는 철이가 엄마를 잃는 것으로 시작한다. <원피스> <진격의 거인>의 소년 주인공들 역시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로 운명과 홀로 맞선다. 데즈카 식의 전후 세대 단절론이 아니더라도, ‘고아 의식’은 소년 만화의 핵심 요소로 존재할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부모의 도움 없이 세상과 싸워야 한다. 소년은 이 운명을 받아들일 때 가장 강해진다.

2) 소년은 만능 히어로다
소년의 적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악독한 어른들이다. 소년은 이들에 맞서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테러리스트를 검거하고, 지구를 구해야 한다. 10대 초반의 남자아이들, 신체적으로 급성장하고 호기심이 넘쳐나는 이 시기의 소년들에게는 이러한 공상이 본능적이다. 세계 모든 문명에 존재하는 영웅담은 바로 이 시기의 욕망을 극대화한 것이다.

“순하디 순한 어린 남자아이가 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보면서 세상을 구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겠다고 꿈꾸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 여러분은 사춘기 이전에 두뇌가 발달하고,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는 동시에 남자로서 사회화되는, 이 모든 과정이 융합되는 장면을 목격한 셈이다. 이를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어린 아들과 나란히 앉아 영웅이 나오는 만화책을 같이 읽어보라.”

– 마이클 거리언, <소년의 심리학> 62쪽

소년 만화는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필요성이 만나는 지점을 확실하게 해결한다. 게다가 영웅이 되는 일을 어른이 된 이후로 미뤄두지 않는다. 미국 만화의 슈퍼 히어로는 남자 어른이다. 청소년은 <배트맨>의 로빈처럼 언제 실수를 할지 모르는 미성숙의 조연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동아시아 만화의 히어로는 미성년들이다. 온갖 판타지 배틀물의 주인공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잔혹한 연쇄살인을 해결하는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 탐정 김전일>, 거의 NBA급 실력을 보여주는 <슬램덩크>의 농구 스타들도 모두 소년들이다. 비현실적이지만 이게 소년 만화의 규칙이다.

3) 소년은 이능력으로 변신한다
주인공 소년은 많은 핸디캡을 안고 있다. 사회적 미성년이고 몸도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주인공은 초기에 평균 이하의 존재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만 평범한 소년 독자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떤 계기를 통해 재능을 발견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펼쳐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현실성을 따지자면 근본적인 장애가 너무 많다. 그래서 만화적 장치가 필요하다.

초능력과 마법은 가장 쉬운 장치다. <바벨 2세>는 어느 날 자신이 외계인 초능력자의 후손임을 알게 된다. 뛰어난 지능과 놀라운 신체, 거기에 로뎀, 로프로스, 포세이돈이라는 막강한 부하까지 거느린다. <원피스>의 루피는 고무고무 열매를 먹고 온몸이 고무처럼 질긴 탄력을 얻게 된다. SF 장르로 들어가면 발달된 과학이 그럴싸한 장치들을 더해준다. <사이보그 009>처럼 아예 기계 인간의 몸인 경우도 있고, <철인 28>호처럼 거대 로봇을 조종할 수도 있다. 스포츠 만화에서는 온갖 마구와 필살타법이 난무한다.

<협격 붉은매>, <쿵후보이 친미> 등 격투계 만화라면 다양한 필살기를 갖출 수 있다. ‘경사기도권’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찌르기. 그러나 기공이 체내에서 반사되어 외상보다는 오히려 장기 기관의 파열을 일으키는 권법이다. 자세하고 과학적인 설명을 하는 척하며 허세로 장식된 중2병적 장치들을 녹여 넣는다. <드래곤볼>이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것은 에네르기파, 원기옥 등 무술과 초능력을 결합시킨 장치들을 훌륭하게 개발해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으로 막강한 능력이 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다. 초기의 거대 로봇은 <철인 28호>처럼 외부에서 조종하는 식이었지만, <마징가 Z> 이후에는 소년이 직접 탑승하는 형식으로 바뀐다. 자동차처럼 승차해서 조종하고, 심지어 적의 공격에 고통까지 느낀다.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겉에 걸치는 갑옷이 아니라 자신의 근본까지 변화시키는 ‘신체의 확장 = 변신’이다. <드래곤볼>에서 초사이언인으로 파워업하거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에바가 폭주하는 모습은 소년들 스스로 분노와 희열이 뒤섞인 어떤 체험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4) 소년은 친구와 힘을 모은다

“이번엔 꼭 좋은 친구들을 사귈 거야. 목표는 100명.” – <멋지다 마사루>

“흐음. 일단은 동지 모으기다. 10명은 있어야겠지?” – <원피스>

천부적인 재능의 소년이 다양한 방식으로 능력치를 업그레이드해도 상대해야 할 적은 막강하다. 소년은 자연스럽게 공통의 목표를 갖춘 또래들을 팀으로 만들어간다. 초기에는 라이벌이었지만 의기 투합하는 경우도 있고, 위기에 빠진 자를 구해내 동료로 삼기도 한다.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원탁의 기사> 등 고전 영웅물의 패턴은 소년 만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작은 체구에 연약한 호모 사피엔스가 거대한 짐승들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팀워크를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원시의 본성이 소년기에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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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만화의 초기에는 단일한 주인공의 지배력이 컸다. 하지만 <사이보그 009>, <독수리 5형제>처럼 다수의 주인공으로 팀을 만들어야 다양한 취향의 독자들을 포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99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해진다. <슬램덩크>는 강백호가 정중앙에 있지만, 서태웅, 정대만, 채치수 같은 팀 동료들은 물론 상대 팀의 적수들까지 서브 주인공의 역할을 한다. 소년 만화가 인간을 바라보는 인식이 넓어졌다고 볼 수도 있고, 대중가요의 아이돌 그룹처럼 안정적인 인기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스포츠 만화의 종목이 팀 경기일 때, 개인의 능력보다는 팀의 단합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강조하는 클리셰와도 통한다. 만화 자체가 장기 연재에 들어가고 많은 캐릭터가 필요할 때 <짱>의 인천연합, <원피스>의 밀짚모자 해적단처럼 주인공 그룹을 만들고 그룹 간 대전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용이한 수법이다.

5) 소년은 싸우고 승리해야 한다
소년 만화의 기본은 싸움이다.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누군가와 다툼이 벌어지는 게 아니다. 싸움의 줄기가 먼저이고, 그 사이사이를 드라마가 채운다. 배틀 만화는 소년 만화의 숙명 같은 것이다. 소년기라고는 하지만 과거에는 이미 이 시기에 부족의 사냥이나 전쟁에 참여했을 나이다. 현대의 소년들에게 이러한 싸움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은 문명화된 스포츠 경기일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 항상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만화 속에서는 언제나 이긴다.

현실에서는 비루한 성적표로 괴로워하고, 골목길에서 삥을 뜯기고, 야구부에서 벤치를 지키며 주눅 들어 있던 소년들은 만화 속의 승리를 달콤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하다. 온갖 핸디캡을 안고 있는 소년이 어떻게 해서 저 거대한 상대를 이길 수 있게 되느냐? 이 과정을 그려내는 실력이 결국 만화의 성패를 좌우한다. 다만 싸움이 반복되면 내성이 생긴다. 약한 자극으로는 싸워도 싸운 것 같지 않고,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점점 상상 바깥의 능력들을 끌어오고, 인간계, 은하계, 신과 악마계로 넘어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소년 만화의 상상력은 우주로 날아가지만, 실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의 무한정의 배틀’이라는 협곡에 갇혀 있는 것인지 모른다.

물론 만화는 지는 방법도 가르쳐준다. 스토리 작가 가지와라 잇키가 여러 만화가들과 협업한 1960~70년대 열혈 만화들 – <거인의 별> <타이거 마스크> <허리케인 조>는 모두 주인공이 파멸하는 것으로 끝난다. 싸움은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어떤 시대적 사명감을 표현한 것이다. 1980년대 이후에는 여기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진다. 아다치 미츠루는 중요한 승부의 장면을 일부러 생략시키면서 독자에게 잠시의 고민을 바란다. 너는 왜 싸운 거니? 이기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니?

6) 소년은 일탈한다
소년 만화 잡지의 무한 경쟁은 작품의 질을 높여왔다. 하지만 동시에 소년들의 말초적 욕망을 극대화하는 결과도 가져왔다. 나가이 고는 이러한 어두운 욕망의 만화를 개척해왔다. <파렴치 학원>에서는 여학생의 치마를 들추는 장난을 사사롭게 행하는 등 도덕적 일탈로 가득한 학교가 나온다. <마징가 Z>는 얼핏 정의감이 넘치는 소년이 로봇을 타고 악과 싸우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명목으로 운전면허도 없는 청소년이 모터바이크를 운전하듯이 거대 로봇을 조종한다. 지구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도심의 빌딩들을 파괴한다.(<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극장판은 이를 꼬집으며, 케로로가 거대화된 이후에도 빌딩을 부수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움직인다.) <데빌맨>에서는 인간과 악마의 중간적 존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악마에 씐 듯한 광폭한 행동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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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만화의 성과 폭력에 대한 관용은 항상 논란거리로 존재했다. 심지어 중성적인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에서도 여주인공의 수영복, 목욕 등 노출 장면이 꾸준히 ‘서비스’로 등장한다. 소년들이 성에 눈 뜨기 시작하는 때에 만화 속에서나마 그러한 욕망을 충족하도록 하는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드래곤볼> 무천 도사와 <이나중 탁구부> 소년들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만화라는 이유로 용서해줄 수 있을까? 편향된 남성 이데올로기 속에서 자라온 소년들이 성평등이라는 가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과도한 폭력의 묘사 역시 많은 고민을 던져준다. <표류교실> <북두의 권>에서의 폭력과 살상의 장면은 파국의 서바이벌 상황에서의 인간성을 묘사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 폭력을 위한 폭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야 소년들이 본다. 한국 소년 만화에서 즐겨 나오는 ‘고교 싸움 짱’ 같은 테마는 일진 그룹의 학원 폭력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반대로 만화 속에서나마 그런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소년기의 폭력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 시기의 소년들이 위험한 신체 활동을 벌이는 게 자연스럽고, 남자 집단 속에서 ‘공격적 돌봄(aggression nurturance)’ 을 받으며 큰다는 건 사실이다.

위반을 통해 쾌락을 얻는다. 우리가 만화 속에서 얻는 가장 큰 즐거움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자극에 자극을 더해간다면, 도덕은 물론 만화적 재미의 관점에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수 있다.

 

6. 21세기 소년 만화 – 정의의 상실과 사도의 만화
d03-y01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은 소년 만화를 보고 자라온 뒤 어른이 된 세대가 소년 만화의 꿈에 대해 정면으로 시비를 건다. 주인공들은 어릴 적 슈퍼 히어로 만화를 보며 언젠가 악의 집단이 지구를 파멸시키려 들 때 힘을 합쳐 싸우자고 맹세한다. 모두가 그 꿈을 잃어버린 어른이 되어 있을 때, 그들이 생각했던 세계 멸망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 그런데 이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른 자는 그때의 소년들 중의 하나로 보인다. 소년 만화를 보며 노력, 우정, 승리의 가치를 믿고 자랐지만, 그들이 기대하던 미래는 구차한 악의 덩어리다. 만화 속의 ‘친구’들은 이런 세상은 차라리 파멸되어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주장하는 걸까?

실제의 세계에서 많은 소년들이 문제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같은 반 아이를 괴롭혀 자살하게 만들고, 학교가 마음에 안 든다고 부탄가스를 터뜨리고, 인터넷에 심각한 악플을 올려 고소당하고, 심하게는 IS의 전사가 되기 위해 시리아로 떠난다. 소년기의 무모한 열정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원래는 소년 만화가 이러한 욕망을 적절히 분출시킨 뒤, 그래도 ‘정의’라는 불문율을 지키는 정상의 사회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그러나 만화 속에서도 도덕의 기준은 흔들리고 있다.

<바쿠만>은 《점프》의 세계를 모델로 한, 만화가를 꿈꾸는 소년들의 만화다. 그들은 왕도와 사도의 만화를 구분한다. 왕도란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등 무한 증식의 격투 배틀을 기본 구조로 하고 있는 만화다. 《점프》의 인기 중심이며, 현재의 소년 만화를 규정하는 세계라 할 수 있다. 사도는 이러한 규칙을 위반하는 만화다. <바쿠만>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오바타 타케시의 전작 <데스노트>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만화 역시 특정의 판타지적 구조를 가지고 주인공과 적들이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데스노트를 쥐고 사람들을 죽여나가며 자신의 뜻대로 세계를 재편하려는 주인공은 정의의 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완전한 사도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왕도에서는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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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인기작들에서도 여전히 배틀은 이어진다. 하지만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든 결국 정의의 주인공이 이긴다는 왕도의 패턴은 흔들린다. <암살교실>에서는 이미 달의 70%를 날려버린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파괴하겠다고 협박하며 제안한다. 능력이 되면 나를 죽여라. 그러면서 한 학급의 교사가 된다. 학생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그를 죽이려 한다. 배틀 만화이며, 불량 학생 만화이고, 학원 개그 만화이다. 그런데 이런 정통파의 요소를 뒤섞어 뜻밖의 만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점프》에 투고했다가 거절당한 뒤, 다른 잡지에서 최고의 히트작으로 우뚝 선 <진격의 거인> 역시 세계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가득하다.

한국 내에서는 왕도의 패턴을 익힌 판타지 배틀 만화들이 웹툰 플랫폼에 안착을 시도하고 있다. 어쩌면 사도의 맹공격을 받고 있는 일본 소년 만화에 비해 평안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소년 만화만이 아니라 스토리 만화 전반의 정체성이 심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니, 일단은 각자 도생한 뒤에 새롭게 성을 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짱>의 연재 종결 이후, 학원 액션 만화라는 장르가 여전히 세력을 유지할지도 미지수다.

소년 만화는 손오공 같은 녀석이다. 벼락을 맞고 태어난 돌원숭이가 여의봉을 휘두르며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분다. 만화의 근원적인 힘은 그처럼 무모하게 날뛰는 소년의 잠재력으로부터 나온다. 손오공이 천지를 뒤흔들었듯이 어떤 소년 만화들은 전 세대의 고루한 관성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힘이 어느 때부터 어떤 상투성 속에 갇혀 버렸다. 누군가 그를 붙잡아 오행산에 가둔 게 아니다. 저 혼자 복숭아의 단맛에 취해 세상을 호령했던 기개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선가 삼장법사가 나타날까? 손오공을 깨운 뒤 소년 만화의 활기를 다시 만들어낼 누군가가? 물론 그에게는 머리띠와 주문으로 미치광이 원숭이를 달랠 재주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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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두기
본문에서 잡지는 《 》, 만화 단행본, 영화, 책 등은 < >로 표시했습니다.
만화사적으로 생소할 수 있는 일본만화들은 연재 개시년도를 괄호 안에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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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소년의 심리학 The Purpose of Boys>(2009년) 마이클 거리언, 임진희 옮김, 위고, 2013년

<한국 만화의 역사> 최열, 열화당, 1995년

<한국 만화의 선구자들> 박재동 외, 열화당, 1995년

<한국 만화의 모험가들> 곽대원 외, 열화당, 1996년

<이것이 일본만화다 Dreamland Japan: Writings o Modern Manga > 프레데릭 쇼트, 김정호, 박성식 옮김, 다섯수레, 1999년

<아톰의 철학 手塚治虫がねがったこと> 사이토 지로, 손상익 옮김, 개마고원, 1996년

<만화 원론 漫畵原論> 요모타 이누히코, 김이랑 옮김, 시공사, 2000년

<マンガの時代> 矢口國夫 외, 東京都現代美術館, 1998년

<マンガはなぜ面白いのか ー その表現と文法> 夏目房之介, 日本放送出版協會, 1996년

‘マンガ 二次元の綜合藝術’ <美術手帖 1998年 12月號> 樹村 綠 外, 美術出版社, 1998년

“국민남동생 ‘독고탁’아시죠?”<서울문화 투데이> 2009년 8월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99

이명석

만화를 비롯해 대중문화 여러 영역을 비평하고 있다. 저서로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 [만화 쾌락의 급소찾기] [논다는 것] [어느날 갑자기 살아남아 버렸다] [여행자의 로망백서]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도시수집가] [모든 요일의 카페] 등이 있다. 에 ‘요상한 전파사’ 칼럼을 연재 중이고, KBS 라디오 ‘신성원의 문화공감’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에 고정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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