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만화가 사회와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런 논리가 아니다. 치열한 삶의 자리를 평면거울로 혹은 볼록거울의 모습으로 비춰주는 만화의 역할 덕분에 우리는 만화를 통해 한 시대의 사회상황이나 그 시대를 살아간 사회구성원들의 의식구조의 한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 만화를 시대의 산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한 시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고 왜 그런 구조양상을 보였으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사회학적 관점에서의 성찰이 한 편의 만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은 서사장르로서 만화가 갖는 미덕이다.

이런 의미에서 임재원의 <짱>은 그 미덕의 정점에 서있는 작품이다. 인천의 고등학교들을 배경으로한 <짱>은 우상고 2학년 현상태를 중심으로 한 고교생들의 혈기 넘치는 액션본능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짜임새 있게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뛰어난 화면연출과 생동감 넘치는 사실적 액션묘사로 독자들을 사로잡아 학원액션만화의 레전드가 된 걸작이다. 1996년 2월부터 <소년챔프>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제호를 바꾼<코믹챔프>에 2014년 7월 632회로 끝낼 때까지, 무려 18년 6개월 동안 연재되었다. 연재하는 동안 <짱>이 막강한 팬덤을 유지하며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당대 고교생들의 삶과 의식구조를 다루면서 많은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우리는 <짱>을 통해서 한편의 만화가 당대의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주인공들의 삶의 궤적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1990년대 중반 인천의 고등학생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냈는지를 20년이 지난 지금 <짱>을 통해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셈이다.

학원액션만화를 표방했지만 <짱>은 연재되는 내내 학원폭력만화라는 또 다른 애칭(?)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던 학교 폭력의 진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교생들의 폭력을 미화하고 조장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짱>은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것은 <짱>이 우선 스토리면에 있어서 우리 사회의 실상과 유리되지 않고 유기적인 상관관계를 갖고 전개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짱>이 보여준 과격하고 어이없는 세계는 그러나, 그것이 작가가 조장한 설득력 없는 세계가 아니라 납득할 수 있는 현실 세계의 또 다른 풍경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짱>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우리가 몰랐던, 혹은 잊고 있었던 그 시절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것이다. 이것은 <짱>의 힘이고 만화의 힘이다.

 

1. <짱>의 탄생 배경과 의미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일기 시작한 정치권의 지형변화는 각종 제도의 규제완화와 더불어 또 다른 규제를 만들어내면서 급기야 1990년대 사회전반의 가치관과 문화적 사고행태에도 거부할 수 없는 변화의 몸짓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더욱이 새로운 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시기적인 중압감까지 작용하여 1990년대 우리 사회는 다양한 문화적 충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고 문화 전반에 걸쳐 자행된 모방과 장르의 혼성이 자연스레 새로운 소비형태와 패턴을 만들어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세기를 살아가기에 어울리는 신인류의 탄생을 갈망하듯 ~족(族)과 ~세대(世代) 같은 여러 유형의 인간군상을 지칭하는 신조어들이 생겨난 것이다.

‘짱’이란 용어 역시 ‘얼짱’ ‘몸짱’과 같은 인터넷 화제성 인물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신조어였는데 그 분야의 최고 지위를 지칭하는 말로 인식되었다. 임재원의 <짱> 역시 이 범주에 해당하는데 구태여 분류하자면 ‘주먹짱’쯤 될 것이다. 그 무렵 각 학교의 힘깨나 쓴다는 주먹대장들이 ‘짱’으로 불리던 시기이기도 했다. <짱>에서도 담임선생님이 현상태에게 조언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린 모두 그를 ‘통’, 아니 요즘 너희들이 흔히 말하는 ‘짱’으로 대했다.”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짱’이 학생들 사이에서 어떤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짱’이 지역에 따라 보편화된 용어는 아니었지만 <짱>이 인기를 얻고 오랫동안 연재가 되면서 학교에서 ‘짱’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주먹대장으로 일반화 객관화기도 했다. 임재원이 학교 폭력을 중심으로 다루게 될 학원액션만화를 구상하면서 제목을 <짱>으로 삼은 것은 어쩌면 시대의 요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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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임재원은 왜 이 시기에 <짱>이란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을까? 임재원이 데뷔할 그 무렵 잡지를 중심으로 연재되던 소년만화는 독자 또래의 학생들이 주인공인 학원만화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밀리언셀러로 등극하며 인기를 끌던 대표적인 작품들이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과 박산하의 <진짜사나이>였다. 1995년 <영캅>으로 데뷔하여 <오리엔탈 특급>을 연재하면서 SF판타지만화에 주력하던 임재원은 작품성향을 주류인 학원액션만화로 바꾸어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지게 된다.

인천에 거주하면서 인천지역 고교생들의 학교폭력 양상을 숱하게 목격하게 되었고 작품의 소재를 다양하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되다보니 학원액션만화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진 것이다. 그렇게 <짱>이 탄생했고, <짱>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1990년대 인천이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었다.

<짱>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학교폭력, 학원폭력에 직간접 영향을 미쳤다거나 그런 세계를 미화하여 묘사함으로써 학원폭력을 정당화했다는 우려는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다. 일테면 <짱>과 같은 1990년대 학교폭력을 다루고 있는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의 경우는 부조리한 학교 내에서 조직화되고 계급화된 학원폭력의 양상을 잔혹하리만치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짱>은 이런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짱>에는 계급화된 폭력이나 악의적으로 친구를 괴롭히는 잔혹성을 조명하는 스토리구조는 등장하지 않는다. 탱크 박종현을 괴롭히고 왕따시키는 친구들이나 인근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품갈취를 일삼는 대정고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이것은 탱크의 등장 배경이나 김철수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한 필연적인 묘사의 부분으로 차용되었을 뿐 왕따와 금품갈취 자체에 포커싱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짱>의 세계는 약자를 괴롭히고 착취하는 비열하고 추악한 학원폭력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최고의 주먹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절대적인 수단이라고 믿는 10대의 왜곡된 열정, 혹은 어른은 이해하기 힘든 그들만의 감정으로 움직이는 10대의 ‘의기’에 비중을 두고 있는 편이다.

그것은 조직폭력배들에게 목숨을 잃은 친구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현상태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무모해 보이지만 순수한 10대의 의리와 분노를 표출한 것이며 혹은 자신의 일이 아니더라도 사회악이거나 불의라고 판단되는 일엔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현상태와 전국도의 용기와 의협심을 대변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짱>을 관통하는 핵심 정신이다. 더구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남자의 본능이지만 그걸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게 남자”라고 말하는 현상태를 통해 <짱>이 지향하고 있는 세계관이 무차별적이고 분별없는 폭력의 정당화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화를 통해서 모방하고 학습할 수 있다면 <짱>을 읽은 독자들은 모두 의리 있고 용감한 시민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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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짱>의 영향력은 무수한 아류작들을 낳게 한 것은 물론 학원 폭력과 격투를 소재로 한 영화의 붐까지 주도하여 실제 만화 <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영화 <짱>(1998)을 비롯해 <화산고>(2001) <말죽거리 잔혹사>(2004) 같은 영화들이 제작되는 기류를 조성하기도 했다.

 

2. <짱>의 성공요인
<짱>이 10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인기만화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는 그 시기 독자들이 갖게 되는 남자의 힘에 대한 선망과 동경을 수용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짱>의 주인공들을 통해서 강한 남자를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소년만화에서 강력한 파워로 상대를 제압하는 강한 남자주인공들이 끝없이 등장하는 것은 하나의 패턴이다. 10대 소년만화 독자들이 갖는 욕구를 반영한 결과이다. <짱>은 강력한 파워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주인공 현상태를 통해 강한 남자의 형상화에 성공함으로써 또래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도록 해 준 만화였다.

<짱>에는 현상태뿐만 아니라 각 학교의 짱들, 칠대성왕이나 인천연합, 칠악야차, 사신 같은 주먹집단이 등장하여 자웅을 겨루며 강한 남자의 이미지를 과시한다. 학교와 교복의 이미지를 걷어낸다면 설정 자체는 무림의 숨은 영웅들이 나서서 강호의 고수를 가려내는 무협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런 소재와 설정만으로 <짱>이 성공한 만화가 된 것은 아니다. 이런 소재와 설정이라면 다른 만화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짱>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해서 학교 폭력과 격투 다룬 숱한 학원액션만화들이 속출했고 <짱>과 같은 수준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었지만 결코 <짱>의 위상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짱>이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임재원의 탄탄한 그림 실력을 꼽을 수 있다. <짱> 화면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액션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임재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안춘회 화실에서 탄탄하게 기본기를 익힌 데다가 SF만화를 연재하면서 익힌 화려하고 짜임새 있는 화면 연출력은 수준급의 기량이었다.

임재원의 연출력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싸움신이다. 마치 감독의 지시에 따라 짜여진 동선대로 액션신을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짱>의 등장인물도 그렇게 빈틈없이 싸운다. 물 흐르듯 액션신이 그만큼 자연스럽다. 동선을 정해놓고 싸움하는 인물들을 그리로 몰고 가는 임재원의 빈틈없는 연출은 회를 거듭할수록, 현상태의 싸움 실력만큼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화려하고 극적인 액션신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임재원이 왕년에 싸움 좀 해본 친구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 정도로 싸움장면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박건하가 이끄는 광진고와 김대섭이 속한 민주연합의 승부에 한병용까지 가세해서 일전을 펼치는 49권의 화도진공원 화면연출은 싸움신에 관한 한 한국만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더욱이 대사 한마디 없이 ‘파파팟’ ‘부웅’ ‘파앙’ ‘퍼억’ ‘부웅’ ‘추웃’ ‘퍽’ ‘하아하아’ ‘후우웁’ ‘콰차착’ ‘콰앙’ ‘파삭’ 같은 다양하고도 기상천외한 효과음만으로 이어지는 박건하와 김대섭의 승부신이 20여 페이지를 끌고 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어지는 8페이지 동안은 황동명의 시선으로 아예 효과음마저도 배제한 채 싸움신을 전개시키면서 처절하고 절박하고 숨 막히는 집단 패싸움의 진수를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보여준다. 이 싸움신의 압권은 싸움의 후반부 땅과 하늘의 대조를 보여주는 장면 연출이다. 땅에서는 화도진공원에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싸움판의 혼란이 있지만 이어지는 하늘은 무심한 구름만 떠 있을 뿐 땅에서 벌어지는 싸움판의 처절한 잔해들을 굽어보고 있는 듯하다. 이 감동은 연재 12년째를 맞은 임재원의 데생력과 연출력이 절정에 이르러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반증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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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이 독자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었던 또 다른 그림 요소로 등장인물들의 스마트한 외모를 꼽을 수 있다. 거친 액션과 폭력이 난무하는 공간에서 활동하는 소년만화의 등장인물들이지만 현상태를 비롯한 우범진, 김인섭, 이종수, 현영 등은 강력한 남성성보다는 멋진 남자의 이미지가 강조되어 있는 캐릭터들이다. 아무래도 당시 얼짱, 몸짱으로 대변되던 당시의 외모지상주의 열풍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임재원은 당시 고교생들이 선호하던 헤어스타일이나 복장, 액세서리로 단장한 늘씬하고 패셔너블한 주인공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그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액션만화의 새로운 캐릭터라이징에 성공했다.

남자 등장인물뿐 아니라 지현이나 혜진, 수경의 외모나 스타일 역시 미인형으로 남자독자들의 호응을 얻기에 충분한 캐릭터였다. 주먹질보다는 연애사건에 더 어울릴 것 같은 로맨스 가이들이지만 정작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싸움에 임해서는 비호처럼 움직이는 이들의 액션을 보면 역시 학원액션만화의 주인공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며 이어가는 스토리의 재미도 분명 성공요인의 하나이지만 전반부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소멸되지 않고 후반부에 당위성을 갖고 다시 등장하는 패턴도 눈여겨 볼만하다. 특정 에피소드에만 소용되는 일회성 캐릭터가 아니라 민문식, 최정원, 한병용처럼 다른 전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연관성을 갖고 적절한 역할로 등장한다. 유지현 역시 전반부와 후반부 초반에 등장했다가 잊혀진 인물이 되나 싶었지만 대미에서 검사가 되어 나타난 것도 그렇다. 사랑의 작대기처럼 얽힌 유기적이고 탄탄한 스토리라인의 꼼꼼한 전개가 <짱>이 극적 긴장감과 재미를 잃지 않고 롱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3. <짱>의 스토리라인
<짱>은 현상태의 2학년 시절 스토리를 다룬 전반부와 3학년이 된 현상태의 스토리를 다룬 후반부로 편의상 구분할 수 있다. 전반부에서는 현상태가 모든 사건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사 노릇을 하려고 애쓰는 분위기인데 비해 후반부의 현상태는 3학년이 되어 입시를 의식한 듯 가능한 후배들의 충돌이나 사건발생을 저지하는 소극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짱>은 역시 오래 연재한 만화답게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다양한 에피소드로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로 숨 쉴 틈 없이 읽히는 강점이 있다.

전반부는 정학 맞고 유급된 전국도가 현상태와 같은 학년으로 복학하면서 우상고를 장악하기 위해 의형제인 나충기를 불러들이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현상태가 나충기를 간단히 제압하면서 결말이 난다. 이어서 우범진과 민문식의 칠대성왕이 등장하면서 <짱>의 본격적인 충돌 에피소드가 시작된다. 칠대성왕을 부활시키려는 민문식, 차원호와 칠대성왕에서 탈퇴하려는 우범진. 그런 우범진을 ‘다시 태어나려는 친구를 그냥 방관만 할 수 없는’현상태가 돕는다. 민문식을 제압하고 상태는 범진과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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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김대섭의 등장으로 <짱>의 이야기 구조는 본격적인 갈등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광진고의 짱인 형 김인섭과의 갈등 때문에 김대섭이 광진고를 공격하면서 우상고와 광진고의 대립이 시작된다. 학교 대 학교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이면엔 인섭, 대섭 형제의 갈등이라는 불씨가 있다. 이 과정에서 김인섭을 누르고 광진고의 짱이 되려는 송치상의 계략에 상태가 농락당하기도 하지만 결국 상태가 김인섭을 누르고 형제간의 갈등도 봉합된다.

이 사건 후 김인섭이 인천연합을 탈퇴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인천연합에서는 대정고를 이끌고 이종수가 나선다. 김인섭의 자리를 노리는 송치상을 앞세운 이종수는 이후 모든 갈등과 불화의 중심에 서게 될 만큼 미스터리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로 표현된다. 인천연합의 일원이었으나 인천연합을 와해시키려는 이종수의 야욕으로 우범진은 인천연합에게 습격당하고 범진의 복수를 위해 현상태와 전국도, 칠대성왕이 나서면서 인천연합과 전면전에 돌입한다. 이 과정에서 이번엔 이종수가 인천연합을 배신하면서 싸움의 상대가 바뀌고 뒤섞이는 혼란을 겪으며 이들의 갈등이 소강상태에 빠진다.

이 자리를 대신한 것이 탱크 박종현의 에피소드이다. 앞서 전개된 갈등구조들과 다소 괴리감은 있지만 탱크의 등장은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한 학생이 자신을 괴롭히고 나아가 약자를 괴롭히는 무리들을 응징한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어서 당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던 학교에서의 ‘왕따’의 실상을 조명했다는 의미가 있다. 스토리 자체는 큰 반향을 얻어내지 못하고 서둘러 마무리된 아쉬움이 있지만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만화였던 만큼 <짱>이 당연히 다루었어야 할 주제의식이었다.

서울에서 경인공고로 전학 온 황동성, 황동명 형제가 인천을 장악하기 위해 도발하는 과정에서 우상고 학생들이 피해를 당하자 현상태는 인천의 평화를 위해 인천연합에 가입하게 되고 칠악야차를 사주해서 인천연합을 와해시키려는 이종수의 테러가 다시 시작된다. 칠악야차의 일원인 김민규는 어머니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상태와 얽히게 되고 칠악야차와 관계가 틀어진 이종수는 다시 사신패에게 청부테러를 맡긴다.

칠악야차가 이종수에게 당하는 과정에서 김민규는 우범진의 도움을 받게 되고 범진이 선용파에게 잡혀가자 범진을 구하기 위해 이종수의 명령을 따라 인천연합을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종수의 대정고와 사신, 현상태의 인천연합, 김민규는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된다.

이종수는 우범진을 꺾기 위해 어머니 구여사의 도움으로 범진의 아버지 우대혁과 라이벌 관계에 있던 선용파를 이용한다. 우대혁이 구속되자 우범진의 주변엔 선용파의 위협이 거세지고 혼자 힘으로 이 국면을 돌파하려했던 우범진은 결국 선용파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범진의 죽음으로 실의와 분노를 경험한 상태는 선용파를 상대로 복수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결국 우대혁이 아들의 복수를 대신한다. 범진의 죽음으로 칠대성왕과 광진고, 대정고, 인천연합, 칠악야차의 모든 갈등은 조정국면에 들어가고 현상태는 인천연합의 강제해체를 선언하면서 잠정적인 전반부의 엔딩을 맞는다.

<짱>의 잠정적 후반부는 부산으로 전학 갔던 지현이 상태를 찾아와서 재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현을 의연하게 대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3학년이 된 현상태는 대학입시를 위해 활동을 자중하는 모습이 보여준다. 2학년 김대섭, 1학년 손학교가 민주연합이니, 찬바람이니 하는 조직에 가담하거나 결성해서 상태의 골치를 아프게 하지만 전반부에 비해선 파이터들의 움직임이 미약하고 극적 긴장감도 그만큼 줄어들어 있다. 김철수의 등장 전까지는 현상태보다 김대섭 중심으로 에피소드가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현상태가 경찰이 되겠단 결심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학원도 다니고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은 아들을 공부에 전념케 하기 위한 상태 어머니의 치매연기 덕분이었다.

후반부의 절정은 김철수의 등장이다. 전반부에 이종수의 악행이 갈등의 근원이었다면 후반부의 그 역할은 김철수가 맡고 있다. 이종수가 떠난 대정고로 전학 온 김철수는 엄청난 파워로 단숨에 대정고를 장악하고 최고 강자로 부상한다. 증오의 주먹을 키워온 김철수에게 대항할 상대는 없었다. 민주연합을 이끌며 형 황동성이 못 이룬 인천제패의 야망을 불태우던 황동명의 온갖 작전도 김철수 앞에선 소용없는 일이고 급기야 황동성마저 김철수에게 무참히 패배한다.

김철수의 위세를 등에 업은 대정고는 김철수의 지시로 온갖 악행을 일삼는다. 더 이상 방관만 할 수 없게 된 현상태는 해체했던 인천연합을 다시 결성하고 박건하, 민문식, 차원호, 전국도와 함께 김철수의 대정고와 5대5 매치를 벌이게 된다. 그러나 상태 어머니의 위장 병원입원으로 결투가 연기되고 그 틈을 이용해 황동명의 민주연합과 경인공고가 방심한 대정고를 급습하지만 결과는 역시 김철수를 당해낼 수 없었다. 완패를 인정한 황동명은 좌절한다. 마침내 현상태의 인천연합과 김철수의 대정고가 5대5 매치로 재격돌한다. 현상태는 인천연합의 마지막 선수로 나서서 김철수와 맞붙지만 역부족. 결국 현상태가 짓밟히는 걸 보다 못한 인천연합이 항복 선언을 한다. 그러나 김철수는 쇠파이프로 계속 현상태를 폭행하는데 지켜보던 김대섭이 참다못해 김철수를 공격하고 이어서 손학교가 김대섭을 도와주러 나서지만과 장태진, 권민주, 사자비 등이 합세하면서 5대5 매치는 패싸움으로 번진다.

기절했던 현상태는 혼수상태에서 우범진의 환영을 만나고 깨어나서 다시 김철수와 맞붙는다. 이때 대정고 학생들의 악행을 말리다가 다친 김철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대결 중에도 현상태는 김철수에게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어서 가보라고 말하지만 김철수는 더욱 치열하게 싸운다. 결국 참다못한 현상태가 지친 김철수에게 강한 일격을 날리고 쓰러진 김철수는 병원으로 향한다. 더 이상의 싸움은 없이 무승부로 마무리하게 된다.

그 직후 대정고의 금품갈취와 폭행에 대한 투서가 접수되어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인천 전체에 학교폭력 실태에 대한 집중단속이 벌어진다. 특히 대정고 학생들에 대한 수사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대정고 학생들은 폭력의 실체인 김철수 존재를 함구한 채 최정원이 모든 책임을 지려하자 현상태는 김철수를 찾아가 책임지라고 꾸짖지만 김철수는 병실에 누워있는 아버지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버티며 현상태와 충돌한다. 그러나 결국 김철수는 현상태의 당부대로 대정고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수한다. 현상태는 김철수 아버지의 병문안을 다녀온다. 더 이상의 사건은 없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검찰 수사관이 된 현상태가 등장한다. 경찰대 3수, 9급 시험 3수의 화려한 경력으로 수사관이 되었으니 어머니의 치매연기가 공부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된 것 같지 않다. 잠복 끝에 범인을 잡지만 상관인 고교동창 서태호 검사에게 질책을 받는다. 천수경과 결혼하여 아들이 하나 있고 그럭저럭 행복한 가정을 꾸린 모습이다. 아버지의 편의점을 물려받은 전국도는 가출소녀 수진이와 결혼하여 역시 아들을 두었다. 김대섭의 결혼식장에서 우상고 친구, 후배, 인천연합 멤버들과 만난다. 다들 잘 성장하여 건전한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고 있다. 부산지검과 함께 합동수사를 맡게 되었고, 그곳에서 검사가 된 유지현과 재회한다. 수사 브리핑에서 부산의 신흥조폭 ‘대정파’의 수괴들 사진이 공개되는데… 바로 대정고 출신의 악인 이종수와 김철수… 그들의 모습을 보고 현상태는 놀라는 장면으로 <짱>의 대미가 장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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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의 첫회는 고등학교 2학년인 현상태가 신발가게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사지도 않을 신발 가격을 물어보다가 주인에게 야단맞는 장면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후반부의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는 부분에서도 상태는 다시 그 신발가게에 찾아가 신발 가격을 물어보다가 주인에게 또 야단을 맞는다.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에서도 상태가 신발가게에 들러 역시 신발 가격을 물어보는것으로 10년 세월을 뛰어 넘어 이젠 수사관이 된 자신의 존재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킨다. 이렇듯 신발가게는 현상태의 새로운 등장과 출발을 암시하는 성전이다. 임재원은 현상태를 같은 공간에 배치하여 같은 행위를 반복케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변화하는, 혹은 변화한 현상태의 새로운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단행본 권수 74권, 18년 6개월의 그 오랜 연재기간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첫 회의 기억을 되살려 질풍노도와 우여곡절 격정의 시간을 건너 어느덧 어엿한 성인이 된 현상태와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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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에서 주인공 현상태는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해결사 이미지를 갖고 있다. 어떤 싸움과 갈등도 현상태가 나서면 해결이 된다. 나충기, 민문식, 김인섭, 황동명 등 숱한 강자들과 싸워서 이기는 천부적인 싸움꾼이지만 명분 없는 싸움은 결코 하지 않는다. 송치상의 계략에 말려 상태를 오인한 김인섭과의 싸움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상태는 어떻게든 싸움을 말리려고 애쓴다. 평소 “어떻게 하면 싸워볼까 궁리나 하고 그렇게 주먹을 쓰고 싶어 안달이냐?!”고 말할 정도로 싸움을 삼가는 편이지만 일단 싸우는 게 옳다고 생각한 싸움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최강 인파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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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태는 싸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주먹을 쓰는 데 대한 명분과 논리, 짱의 자격에 대해서도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다. 범진의 복수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선용파의 아지트를 찾아가는 용기와 무모함도 주먹이 강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현상태에게 짱의 면모는 그다지 없는 편이다. 외모도 호리호리한 미남형으로 카리스마 있는 마초가 아니다. 지현과의 관계에서도 후배와 삼각관계에 놓였어도 지현을 떠나보낼 줄도 알고 천수경의 마음을 받아줄 줄도 아는 로맨티스트다.

 

4. <짱>을 통해본 사회 변화상
<짱>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작품의 배경이 된 우리 사회의 변화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18년 넘게 연재되는 동안 현상태는 74권에서 10년 세월을 뛰어넘는 것을 제외하고는 2학년에서 3학년이 되는 고작 2년 동안의 세월을 살았을 뿐이지만 실제로 18년이란 현실 사회의 변화 과정을 작품 속에서 오롯이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현상태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노래방이 1996년 당시엔 최고의 인기 직종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서 PC방이 성행을 이루면서 세태가 노래방에서 PC방으로 바뀌었는데 상태의 아버지가 “요즘 PC방이 잘 나간다.”라고 하면서 노래방을 PC방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이런 세태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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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통신수단의 변화를 목격하는 것도 재미있다. 나충기가 전국도를 호출하여 통화하거나 지현이가 만난 지 100일 된 기념으로 상태에게 삐삐(심지어 삐삐가 아니라 호출기라고 불리우는)를 선물하고 광진고 김인섭과 송치상 등이 삐삐로 연락하면서 의사소통을 하는 모습은 연재 당시인 1996년 무렵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하면서 삐삐는 흔적을 감추고 휴대폰이 최고의 선물이 되는 시기를 거쳐 핸드폰으로 영상 통화를 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면서 18년 세월의 격세지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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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에게 선물받은 ‘호출기’를 자랑하는 현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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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최첨단의 연락수단이었던 ‘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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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삐삐’는 사라지고 휴대폰이 등장하며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간다

천수경의 짧은 교복스커트나 여학생들의 다양한 헤어스타일 묘사 역시 학교의 통제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던 고교생들의 심리상태와 행동양상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특히 바이크를 타고 등장하는 한영, 최정원, 박건하, 황동성, 천수경 등은 모습은 때로 폭주족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짱> 이전의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에서 바이크가 주인공 남궁건의 분신으로 묘사되어 당시 독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당시의 고교생들 사이에서 바이크가 인기가 있었고 실제로 바이크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의 행태가 <짱>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5. <짱>이 조명한 사회문제들
<짱>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여느 액션만화처럼 정파, 사파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다. 주인공인 현상태를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고 해서 모두 악인으로 구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의명분과 정당방위 논리로 무장한 현상태의 상대가 되어 싸울 때는 당연히 명분 없는 싸움을 벌이는 무모한 학생으로 보이지만 싸움이후 전개되는 그들의 주변 환경이나 인간성을 보면 하나같이 인간적으로 보듬어주고 싶은 아이들이지 근본이 나쁜 것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물론 드라마틱한 전개를 위한 설정해 놓은 절대 악인이 아예 없지는 않다. 현상태나 주변 친구들의 꾸준한 만류나 회개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내 반성하는 기색 없이 악행을 멈추지 않다가 마지막 회에서 결국 조직폭력배가 되어 나타나는 이종수와 김철수가 그렇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종수나 김철수가 그런 인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을 보면 역시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지 못하고 성장기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종수는 아버지의 부재상황에서 막강한 재력을 가진 어머니 구여사의 과잉보호와 그릇된 양육으로 안하무인 후안무치의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아이로 성장하였다. 광진고의 송치상을 사주해 우상고를 공격하게 배후에서 사주하고,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우범진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조직원들을 이간질시켜 인천연합을 와해시키기 위해 칠악야차를 돈으로 매수하고 관계가 틀어지자 다시 사신을 동원하여 칠악야차를 치게 하는 등 이종수는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배금주의에 빠져서 고등학생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청부테러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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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부분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설정인가 하는 리얼리티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만화스토리의 개연성을 감안하면 오히려 이런 설정은 이종수의 악행을 구체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캐릭터라이징이다. 이종수가 이런 파행을 일삼게 된 배후엔 역시 가정환경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구여사는 사업상의 이유로 종수에게 정상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줄 수 없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종수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해 왔던 것이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종수가 걷잡을 수 없는 문제아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종수가 <짱> 전반부의 최대 악인이었다면 후반부의 최대 악인으로 묘사되고 있는 인물은 이종수와 같은 대정고의 김철수다. 김철수 역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편부슬하에서 성장해온 인물이다. 어린 시절 철수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맞고 다니는 여리고 약한 아이였다. 사회적 약자로 살아온 철수의 아버지는 나약한 성품의 철수가 자신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철수에게 선량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대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상대를 눕히고 이겨야 한다는 악과 깡을 심어준다. 결과적으로 철수는 그런 아버지의 종용으로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고 세상과 적대하며 사는 비뚤어진 싸움꾼이 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에 비열하게 싸우며 후배들에게 금품갈취를 시켜서 착복하거나 원터치 방식으로 잔인한 싸움을 붙이는등 악행을 일삼는다. 이런 철수에게도 가난으로 어머니를 잃고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속죄양의 모티브는 존재하여 인천연합과 일전을 앞둔 상황에서 상태 어머니의 입원 소식이 전해지자 싸움을 연기해 주는 아량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 속죄양 모티브가 왜곡된 방법으로 표출되어 온갖 악행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철수의 아버지는 걷잡을 수 없는 악인이 된 철수를 보며 후회를 하지만 때늦은 후회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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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싸움판을 벌이는 아이들 가운데 근본적으로 나쁜 아이는 없다. 나쁜 환경이 있을 뿐이다. 아이들은 아직 학생들이기에 이런 환경을 극복하기엔 어리고 나약하다. <짱>에 절대 악인 대신 피카레스크적 악인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고등학생이라는 연령적 신분적 제약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10년 후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꿈나무들에게 어떻게 절대악인의 멍에를 씌울 수 있겠는가 말이다.

연재 초반의 악인 이미지였던 전국도 역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그저 허세가 일상화되어 있을 뿐 근본은 착한 인물이다. 수진을 도와주는 에피소드나 아버지 말에 복종하는 장면들을 보면 순수한 인물이다.

조직폭력의 두목인 아버지에게 복수하려는 반대파에 의해 어머니를 잃고 새엄마와 살아야 했던 우범진은 그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가득하다. 어린 시절 눈앞에서 엄마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충격과 아버지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는 범진은 스스로 가정의 울타리를 포기한 채 불행한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김인섭, 대섭 형제의 경우도 부모가 가정불화로 이혼하여 인섭, 대섭 형제는 한 집에 같이 살지 못하고 헤어진 부모를 따라 각각 다른 가정에서 살아야 했다. 부모 형제와 한집에서 같이 살지 못하는 형제들의 슬픔과 고통은 작은 정신적 충격에도 큰 행동 파장을 낳게 한다.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인섭에 대한 대섭의 분노와 반감은 오해의 골을 키워 엇나가는 행동을 일삼는다.

현상태를 죽자고 따라다니는 천수경 역시 바이크를 타고 다니며 빼어난 미모와 스타일로 남녀 학생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만 마음엔 그늘이 있다. 역시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으나 어머니는 젊은 남자에게 빠져있어 수경의 마음은 불안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 천수경이 폭주족이 되거나 공부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천수경은 성격이 밝고 구김이 없어 지현을 떠나보낸 현상태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짱>이 작품 전체를 통해 가장 심각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사회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학원폭력과 이와 관련한 학교의 부재이다. 이종수처럼 남의 학교를 무단으로 찾아와 교실을 휘젓고 다니거나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패싸움을 하거나 하굣길 학교 앞에서 타 학교 학생들이 금품갈취를 하고 행패를 부릴 때에도 학교는 없다. 이런 사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하는 학교의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런 폭력 앞에 학생들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학생들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된다. 학교가 학생들을 보호해주거나 폭력을 차단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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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고 학생들의 금품갈취 사건의 고발로 경찰이 찾아오자 교장과 교감은 모함이라며 얼버무리기만 할 뿐 진상을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다. 고작 우상고 판원식 선생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교사도 학생들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선생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의 역할을 할 뿐 학생들의 교실에서 어떤 폭력이 난무하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상태의 담임은 “학원 폭력 문제에서 우리 교사들이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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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의 교실은 임재원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세계가 아니다. 현실의 학교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런 학교폭력을 막고 인천 전체를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현상태는 자신이 해체했던 인천연합을 다시 결성하고 애를 쓰지만 결국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조용한 인천은 안 되더라.”고 자조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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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의 ‘왕따’ 문제 역시 사회적 이슈였기에 <짱>에서 탱크 에피소드로 다루어졌다. 서울을 공포로 몰아넣은 탱크의 존재가 인천에까지 전해지는데 사실 탱크로 불리는 박종현은 초등학생으로 오해받을 만큼 작고 왜소한 체구로 싸움꾼의 천부적 조건을 갖춘 인물은 아니다. 작다고 놀림 받고 무시당하면서 왕따가 되자 친구들의 괴롭힘은 더욱 심해진다. 도둑으로 누명을 쓰고 친구들의 음식값을 대신 내기 위해 부모님의 지갑에서 돈까지 훔쳐야 하는 상황이 되지만 학교도 가족도 종현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급기야 우발적인 행동으로 소년원을 갔다 오면서 무서운 싸움꾼로 돌변한다. 외롭고 지친 종현은 곰인형과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도와주겠다는 상태의 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신을 왕따시킨 세상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된 것이다.

<짱>은 학교에서의 ‘왕따’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모한 행위이며 피해자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는가를 탱크 에피소드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에필로그
내가 임재원이란 작가에 대해 처음 얘기를 들은 것은 1995년 가을쯤이다. 그 무렵 나는 <보물섬>에서 픽업해온 박철호 작가의 <파이트볼> 연재 독려를 핑계로 그의 화실이 있는 인천을 자주 방문했다. 거기서 같은 안춘회 화실 출신으로 <아이큐점프>에 <십이지전사>를 연재하던 손태규 작가(임재원이 <짱> 마지막권 작가의 말에 “<짱>을 태어나게 해준 태규형.”이라고 지목한 그 사람이다)와 가까워졌고 그들과 어울리느라 인천 나들이가 잦았다. 이 과정에서 나는 손태규를 <소년챔프>로 영입하고 싶어 욕심을 냈지만 그는 좀처럼 확답을 주지 않더니 헛된 공을 들이고 있는 내가 딱했던지 어느 날인가 좋은 후배를 소개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 후로 몇 번, 임재원이란 신인작가가 인천을 무대로 한 학원액션물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만 했을 뿐 정작 임재원과 <짱>의 실체를 마주한 것은 계절이 바뀌고 난 다음이었다. 임재원이 들고 온 원고를 보는 순간 편집부가 환호했고 당장 연재가 결정되었다.

학원액션만화로 장르 구분을 하고 연재를 시작했지만 연재가 진행되면서 오래잖아 학원폭력만화라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사후심의와 학원폭력에 부정적인 당시의 사회분위기 때문에 <짱>이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로 연재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짱>은 잡지연재만화의 ‘짱’이 되었다. 스물여섯 살에 연재를 시작한 임재원은 마흔 네 살이 되어서야 <짱>을 그리던 펜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연재 매체의 제호가 <소년챔프>에서 <코믹챔프>로 바뀌고 담당기자가 다섯 차례나 교체되는 가운데, <짱> 역시 스토리 작가가 몇 차례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우선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학원액션만화를 그렇게 오랜 시간 끌고 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청소년이라는 연령의 제한이 작품에 끌어들여야 할 에피소드나 표현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표면상으론 학원액션만화, 학원격투만화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학원폭력만화로 인식되기 십상이었다. 더구나 당시 고교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세련된 캐릭터라이징과 격투신의 리얼한 묘사는 <짱>을 단숨에 인기만화로 등극시키며 화제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기에 임재원이 느꼈을 심적 부담감과 압박감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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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이 한참 연재되고 있을 무렵인 1997년 6월 학원폭력사태의 정점인 ‘일진회 사건’이 터졌다. 학교에서 폭력을 일삼던 학생들이 <캠퍼스 블루스>(정식 한국어판은 <비바 블루스>, 일본어판 원제는 <로쿠데나시 블루스>) 라는 일본해적판만화에서 착안하여 ‘일진회’를 구성했으며 일진들이 이 만화 주인공들을 따라했다는 어이없는 주장으로 만화에서 폭력장면의 표현이 도마 위에 오르며 만화에 대한 온갖 탄압과 규제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었다.

당연히 <짱>에도 폭력만화의 혐의가 씌워졌지만 정작 <짱>은 폭력을 미화거나 정당화하지 않았고 현상태나 우범진 등 초기의 등장인물들이 친구와의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급화하지 않는 평등한 관계를 강조하며 싸움을 하면서도 대의명분을 잃지 않는 전개를 보이는 등 현실의 ‘일진회’와는 다른 세계였기에 탄압의 칼날을 피해갈 수 있었다. 이것은 연재 초반에 스토리작가 김태관을 영입하여 에피소드 자체를 단순한 학교폭력의 묘사가 아니라 당위성과 명분 있는 대결로 구성하고 현상태의 캐릭터에 대의명분 있는 ‘짱’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짱>보다 앞서 연재가 끝난 박산하의 <진짜사나이>가 먼저 구축해놓은 학원액션만화의 이미지를 구체화시키고 정형화한 것은 역시 <짱>이다. <진짜사나이>는 이질적인 세계를 살고 있는 두 주인공을 내세워 학교에서의 계층 간의 갈등문제를 다루며 학원액션만화의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되었지만 <짱>만큼 오랫동안 연재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짱>이 인기를 얻고 나자 아류의 ‘짱’이 등장하여 독자들과 업계 사이에서 혼선을 빚는 일도 있었지만 이 일로 인해 임재원이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알고 있기에 더 이상의 언급은 않기로 한다.

한 작품이 위대한 것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나 작품성의 뛰어난 것은 차치하고라도 오랜 시간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 더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짱>이 그런 작품이었고, 여기엔 좋은 작가이기에 성실함과 근면함을 갖춘 임재원의 인간적인 측면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