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골남9

 

9회 핵심 요약

 

9월 4주차 베스트셀러 차트
만골남 9월 4주차

만골남의 선택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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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골남09

만골남 M씨 #9, 이노우에 타케히코 「슬램덩크」 – 포기하는 순간 시합은 끝나는 거예요

한가위 명절 잘들 쇠고 오셨습니까- 저는 의정부에서 서울 시내에 진입하는 데에만 3시간이 걸리는 대참사를 시작으로 오후 3시에 출발해서 자정 넘겨 목적지에 도착하는 대장정을 겪었습니다. 임산부도 있어서 조심조심 갔다곤 하지만 그야말로 대장정이었죠. 아, 당분간은 운전대만 봐도 신물이 날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차를 안 몰 수는 없을 듯합니다.

명절이면 여성분들이 아직도 훨씬 더 고생하시는데요. 그래도 요즘 들어서 그런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어렸을 적에 대체 왜 명절이면 아빠들이 큰집에 도착하면 냉큼 대자로 뻗었던가-하는 거요. 애들하고 놀아도 주고 그래야지-라고 생각했는데, 한나절을 주차장 같은 길바닥에서 운전하고 나면 거의 반쯤 죽어나는구나 하는 걸 몸소 겪어보니 일면 이해는 가게 되더랍니다. 물론, 부엌 일이 여자만의 것인 양 굴면 안 되겠죠. 남자고 여자고 고생한 부분 서로 다독여줄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시작할 때 들려드린 소리는 고향에서 올라오던 길에 잠시 쉬던 방조제 근처에서 녹음한 겁니다. 갖가지 벌레들이 따로 우는데 그 소리가 마치 음악 같아서 신기했습니다. 아이폰으로 녹음했는데요. 전문 녹음기를 들고 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네요. 제가 느꼈던 신기한 기분 전달됐기를 기대합니다.

그럼 전하는 말씀 들으시고, 베스트셀러 차트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베스트셀러 차트

만골남 9월 4주차

지난주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을 살펴보는 만화 도서 베스트셀러 차트 시간입니다. 이 차트는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의 만화 베스트셀러 50위권을 기준으로 산출한 국내 유일 통합 차트입니다. 9월 넷째 주 순위를 살펴 볼 텐데요.

10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0위는 청춘만화 아오 하 라이드 12권. 사키사카 이오. 9위는 웬일로 순위가 조금 내려온 원피스 78권. 오다 에이이치로. 8위는 배구 만화 하이큐 16권. 후루다테 하루이치. 7위는 화장실 개그와 아저씨 개그의 결정판인 소라치 히데아키의 은혼 59권.

6위는 원펀맨 4권. 신간이 나왔네요. ONE과 무라타 유스케. 5위는 진격의 거인 17권. 4위는 도쿄 구울:RE 2권. 리가 콜론과 RE로 붙어 있는데 읽기가 거시기합니다. 3위는 한다 군 1권, 2위가 바라카몬 11권인데 둘 다 작가가 요시노 사츠키입니다. 한 작가의 다른 작품이 동시에 차트에 오르는 것도 재밌는 상황이네요. 게다가 한다 군이 바라카몬의 스핀오프 작품이니 말이죠.

그리고 대망의 1위는- 슬램덩크 오리지널 박스판 1~5권 세트입니다! 살 사람 다 사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는 고이 접어 나빌레고 냉큼 1등을 해먹고 있습니다. 과연 구관이 명관, 올디스 벗 구디스. 사실 원래 판본에 완전판에 프리미엄판에 이번에 다시 오리지널 박스판까지 나오고 있는 모습을 과연 좋게만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닙니다. 일본이고 한국이고 과거를 끄집어내지 않고서는 팔 게 마땅치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해요. 하지만 그러한 안타까운 기분에도, 슬램덩크라서 그냥 인정하게 됩니다. 이 만화는 그런 만화죠.

그나저나 이번 차트에선 정말 한국 만화가 완전히 전멸이군요. 10위권까지는 모두 일본만화고, 열혈강호 67권이 11위로 내려가 있습니다. 야쿠자 가문 아들네미와 마피아 가문 딸네미의 위장연애담인 니세코이 17권과 미국 만화-지만 BL인 길트 플레져의 배드 컴퍼니가 그 뒤를 잇고 있고요. 한동안 상위에 오른 바 있는 이런 영웅은 싫어 12권이 29위까지 내려가 있고 윤지운 씨의 신작인 무명기의 두 번째 권이 22위. 허영만 선생의 커피 한 잔 할까요? 2권이 18위. 늘 그렇지만 한국 작품들은 조금 더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차트였습니다.

 

#만골남의 선택
슬램덩크 여는 노래 ‘너에게로 가는 길’

자- 이 노래 기억하시는분은 이번 주에 골라온 작품이 뭔지 벌써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 같은 데에서도 배경음악으로 종종 등장하던데요. 네, 오늘 소개할 작품은, 9월 셋째 주 넷째 주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1위를 연이어 차지한 작품이죠. 바로 슬램덩크입니다.

아니 뭐 굳이 이렇게 유명한 만화를 소개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사실 들기도 했는데요. 마침 또 한국 만화 일본 만화 그리고 그 사이에 이 둘에 해당하지 않는 만화를 넣어서 번갈아 소개하고 있던 터에 일본 만화 타이밍이 왔고, 지금 가장 눈에 띄는 게 이거더라고요. 그래놓고 생각해 보니까 말이죠. 이 작품이 처음 등장했던 게 1990년입니다. 국내 소개 기준으로 하면 1992년이고요.

지금 1996년생이 20대에 들어서는 마당이고 보면, 지금 웹툰 독자들에게는 이 만화가 태어나기 전에 나왔던 고전 중 고전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다들 왼손은 거들 뿐-이라든지 영감님 영광의 시대는 언제인가요 전 지금입니다라든지 그래 내 이름은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같은 명대사 명장면은 짤방 같은 걸로 알고는 있는데, 웹툰 독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0~20대 독자들에게 슬램덩크가 자기 세대에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었던 만화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기 나이를 기준으로 생각하다가는 “아니 이런 것도 못 봤단 말야?” 같은 꼰대 소리가 튀어나오기 십상이라는 위기감이 확 들더랍니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이 작품 이야기를 꺼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봤어도 괜찮아요. 그런 분들도 보라면서 이렇게 책도 새로 나오는 마당이니까요.

자. 일단 간단히 소개를 해 볼까요. 슬램덩크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농구 만화입니다. 고등학교 농구부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제 와서는 구시대의 유물인 리젠트 머리를 새빨갛게 물들여놓은 가쿠란 교복 차림의 무대포 소년 강백호입니다. 막 북산고에 입학해 들어온, 여자애들에게 차이기로는 연전연패를 기록 중인 불량 학생 되시겠습니다. 기껏 고백한 여자애가 농구부원을 좋아한다면서 퇴짜를 놓는 마당에 원통한 마음으로 농구부 앞을 기웃거리다가 한 소녀의 질문을 받습니다. “농구, 좋아하세요?” 그 말 한 마디에, 방금 전까지 농구고 뭐고 없던 이 돌깡패 리젠트 소년은 이제껏 해 본 적도 없던 농구라는 스포츠를 접하게 됩니다.

규칙도 모르고 공 한 번 잡아본 적이 없지만 백호는 키가 188로 고교생 치고는 상당히 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농구공을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손도 컸죠. 막무가내고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닌데다 직진밖에 못하는 성미긴 하지만, 반한 여자애에게도 일직선일 만큼 어린애 같은 면모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기 싫어하고, 그런 주제에 또 한편으로는 칭찬에 약하고 인정 받고픈 욕구가 없지 않습니다. 그런 백호에게 농구는 ‘그깟 공 놀이’에서 좋아하게 된 여자애의 눈에 들기 위한 매개가 됩니다. 그리고 백호는 어느덧 농구 그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바스켓맨이 되어갑니다.

무대가 되는 곳은 북산고입니다. 원래는 쇼호쿠니까 사실은 ‘상북’이라 읽어야 하는데 옛날에 처음 국내에 소개됐을 당시엔 책이 국내 실정에 맞춘다고 좌우 반전돼서 좌철이었고 그 때 이름도 북산이라고 바뀌었더랬죠. 뭐 따지자면 캐릭터들 이름 자체가 다 한국식이 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북산고 농구부는, 1년 전에는 그리 강한 팀은 아니었지만 3학년이 되어 주장을 맡은 채치수를 중심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죠. 주장인 채치수는 강백호가 반한 채소연의 오빠죠. 그런 곳에, 신라중학교에서 농구로 날리던 서태웅이 입학해 들어왔습니다. 쿨한 마이페이스로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소연이도 그 팬 중 하나죠. 그런 연유로 말미암아 강백호는 서태웅에게 멋대로 라이벌 의식을 품고 있습니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주전으로는 채치수 원맨팀이라 해도 좋을 법했던 북산고 농구부가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합니다. 좋은 의미의 시끌벅적이면 좋을 텐데, 문제는 모인 인물들이 채치수와 농구부 안방마님격인 권준호를 빼면 몽땅 사고뭉치들이란 게 문제죠. 주인공인 강백호는 농구의 ㄴ도 모르는 풋내기인데 신체 조건만은 농구선수인 단순무식파, 서태웅은 농구는 잘 하고 미남인데 협조 따윈 기대할 수 없는 마이페이스 승부 귀신. 근데 여기에, 중학MVP 출신이었지만 방황의 늪에 빠져 비뚤어지고 말았던 정대만과, 그런 정대만과 싸움이 붙었던 바 있는 악바리 단신 송태섭이 숱한 우여곡절 끝에 돌아오게 됩니다. 팀워크가 생명인 스포츠인 농구에서, 이렇게 팀워크라곤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던 인물들이 과연 채치수가 늘 목놓아 부르짖는 “전국제패”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요?

사실 슬램덩크의 스토리는 이게 거의 다입니다. 슬램덩크는 이렇게 보이 밋 걸 스토리에서 시작해 농구의 세계에 발을 들인 풋내기가 진지한 바스켓맨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성장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강백호의 성장 드라마임과 동시에 북산고 농구부의 일원들이 한 팀이 되어가는 팀의 성장 드라마기도 합니다. 미리 정리하자면 문제아에다 개성만 강하던 인물들이 한 팀으로 뭉쳐 강팀과 싸워 이겨 나가는 과정을 그린 만화죠.

작품 소개에서도 언급했지만, 북산고는 그리 강한 팀이 아니었습니다. 채치수가 주장이 됐다고는 하나 다른 일원들이 주전이라 할 수 있을 만한 실력들을 지니지는 못하고 있죠. 그런데 서태웅이 들어왔고, 강백호가 끼어들었고, 주먹다짐의 당사자인 정대만과 송태섭이 돌아왔습니다. 강백호를 빼면 다들 농구로는 한가닥 하는 인물들입니다만, 서태웅부터 시작해서 도무지 한 팀으로서는 융합되기 어려운 개성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농구 말고도 문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강백호는 머리가 애초에 깡통이니 그렇다 치지만 서태웅까지도 공부와는 담 쌓은 나머지 시험 성적 낙제로 출전을 못할 위기에 처하는 식으로 채치수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런 문제아 군단인데, 심지어 선수로서 결함도 많습니다. 신체 조건과 감각이 워낙에 동물적이고 뛰어나다고 해도 강백호는 초보자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배우기도 빨리 배우고 의외로 자기가 부족한 점을 메우려 드는 자세가 있기는 하지만 시합에서는 일정 부분 이상 리스크가 되기도 합니다. 송태섭은 기본적으로 키가 작습니다. 그에 맞는 공격 방식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핸디캡이 있죠. 정대만은 어떤가요. 중학교 이후로 전혀 운동을 하지 않은 덕에 감각은 있어도 체력이 금방 고갈됩니다. 서태웅은 게임 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는 에이스지만 지나치게 마이페이스고 패스를 잘 안 하죠. 이런 놈들 끌고 강팀들 상대해야 하는 주장 입장도 참 난감할 겁니다.

그런데 슬램덩크의 재미는 바로 이 주인공인 강백호를 비롯해 북산이라는 팀의 성격에서 시작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산은 1년 전만 해도 채치수 원맨 팀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채치수 하나만 잘 하는 팀이었습니다. 정대만은 빠진 상황이었고, 단짝인 권준호는 주장 역할을 할 만한 재목은 못 됩니다. 근데 새로 들어온 놈들과 돌아온 탕자들이 저 지경입니다. 실력은 있게 됐는데 완벽하지가 않습니다. 완벽은 커녕 어떤 면에선 구멍 투성이에 가깝죠. 대체 가능한 인적 자원 없이 주전들에게 모든 걸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하나라도 빠질 때 버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불완전성에서 드라마가 만들어집니다. 한계가 크고 심지어 명확한 팀이지만, 그 팀을 어떻게 운용해야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데에서 굉장한 긴장감이 만들어집니다. 쓸데없을 만큼 강한 개성과 모자란 피통, 어디로 튈 지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한 비정형성과 편중된 스테이터스. 게임 파티로 치자면 애저녁에 파토가 날 법도 한 팀인데 심지어 이 팀을 그리고 있는 만화의 소재는 농구라는 스포츠거든요. 이기려면 온 힘을 다 해야 하고 조직력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데 매 경기마다 그걸 균일하게 유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번 죽을둥 살둥 덤벼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스포츠는 정해진 룰에 따라 진행되는 일종의 비살상 전쟁입니다. 다시말해 룰의 제약까지 명확하게 걸려 있는 셈이죠. 그럼 그 안에서 어떻게 재미를 줘야 할까요? 끊임없이 강한 자들을 데려오는 에스컬레티어 노선을 탈 것인가, 아니면 스포츠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로 날아갈 것인가- 테니스의 왕자처럼 테니스로 지구를 뽀갤 지경으로 몰고 가든지 말입니다. 그런데 슬램덩크는 그러지 않고 명색이 주인공 팀에다가 제약을 강하게 걸어놓은 겁니다. 도내 토너먼트를 치러야 하는 마당이니 당연히 갈수록 강적들이야 나오지만, 그 적들 이전에 북산 팀 선수들이 뛰어넘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 됩니다. 혼자 잘 한다고 해서 이길 수도 없지만 각자가 명백한 결함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단순히 “강해지고 싶다” “강해져야 한다”가 아니라, “이기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와 있는가” “그것을 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뭘 어찌 해야 할까”가 1차 목표가 됩니다.

농구는 스포츠니까 질 수도 있습니다. 질 수도 있는데, 선수들은 지금 당장 뛰지 못하게 된다 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지금 현재 자기의 한계 안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코트 안의 리더는 그러한 방향을 굳건히 지키는 대들보 노릇을 하는 것. 코트 바깥의 감독은 그러한 선수들이 누가 오든 이길 수 있는, 또는 이길 수 있다고 스스로 여길 수 있게끔 역할을 지어주고 기대를 내비쳐 보이는 것. 그리하여 동기부여를 시켜서 승리를 향해 뛰게끔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슬램덩크는 분명 농구 만화고 농구 경기 묘사가 주입니다만, 사실은 농구라는 스포츠의 룰 안에서 펼쳐지는 경기 안팎의 풍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이 만화는, 농구 선수 출신이었던 작가 다운 세심한 경기 장면 묘사와 연출력으로도 볼만하지만 실은 무엇을 목표로 삼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관한 방법을 인물들의 개성에 담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슬램덩크가 인기를 끌었던 건 그냥 농구를 실감나게 묘사해서도 그림이 완전히 쩔어줘서도 아니고, 실은 읽는 사람에게 무언가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도 주인공 하나가 아닌 북산이란 팀, 그리고 그 팀과 맞붙는 모든 팀의 인물들 상당수에 해당하는 이면의 스토리들을 안배함으로써 매우 피부에 와닿게 현실적으로, 그리고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느 캐릭터 하나 미워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배정해 놓고 있는 게 또 놀라운 점이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작품 속 여러 인물들에게 자기를 대입할 여지를 많이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물들이 자기밖에 몰랐거나, 심지어는 얕보거나 상대의 면모를 파악하지 못했거나 하던 모습에서 점차 ‘나’를 파악하고 자기 위치와 역할을 깨닫게 되죠.

슬램덩크가 연재되던 시기 작품이 연재되던 일본의 소년 점프에서 대표작으로 꼽을 만화는 역시 드래곤볼과 유유백서였습니다. 슬램덩크는 이들 작품과는 달리 초인도 외계인도 유령도 초능력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스포츠물이라고 무턱대고 유전자 단위에서의, 혈통 단위에서의 재능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놈의 노오오력을 하면 다 된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의 중요한 키워드를 ‘인정’으로 꼽고 싶은데요. 저는 이 말이 슬램덩크를 설명하는 데에 가장 핵심적인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인정’이라 함은, 남이 하는 인정과 자기가 하는 인정이 있습니다. 백호를 비롯해, 상당부분 비뚤어졌던 인물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건 여러 가지 면에서는 인정받기 위한 면이 있습니다. 바꿔 말해 알아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무작정 인정 투쟁-으로까지 흐르면 굉장히 추하게 망가지는 경우가 많지만, 많은 부분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통해서 사회 안에서 자기 위치를 확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능력을 내보이고 잘 해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죠. 또한, 남이 하고 있는 것이 그러한 최선의 과정 속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도 자기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양쪽 과정을 통해서 자존감이 서게 됩니다. 자존감이 없으면, 남을 괴롭히거나 남의 것을 무너뜨려서 자기 키만큼으로 남을 낮춰놓아야 안심이 되거나-아니면 끝없이 질투하게 되지요. 현실에서는 이런 사람이 자기 것도 없이 자리를 얻어서 여럿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백호를 비롯해 슬램덩크의 인물들에게 농구는 그러한 결핍분을 채워주는 강한 매개체로 등장하고, 상당수가 경기의 승패와는 상관 없이 자기 내면에서는 해법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각기 다른 스타일과 개성에 따라서 자기 나름의 방식을 찾아가는 모습인데요. 사실 거기에 정답은 없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박살나고 실패할지도 알 수 없고. 자기 실수로 말미암은 실패에 분해서 울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렇기에 성장이고, 그렇기에 또 소년기의 성장이죠.

한창 작품이 연재되던 시기, 버블 경기가 박살나기 시작하던 시기의 일본에서 이러한 메시지가 어떤 역할을 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박살 났었고 지금도 끝없이 박살나고 있는 통에 이상한 파시즘이 창궐 중인 우리나라에서도 이 메시지는 상당히 유효합니다. 그래서 슬램덩크가 단순히 스포츠 만화를 넘어선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겠고, 지금에 와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읽힐 수 있는 이유기도 하겠습니다. 시대를 타지 않으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작품이기에 이 작품은 사골로 우려먹혀도 크게 언짢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원래 판본하고 완전판을 전권 갖고 있는 입장에서는 이번에 또 사야 하는가 할 때 망설여지긴 합니다만 말이죠. 놓을 자리도 없어요. 책은 정말 유지비가 많이 들어요. 여차하면 집을 바꿔야 하잖습니까.

정리하자면, 슬램덩크는 스포츠물로서의 재미와 품질을 아주 기본으로 잘 갖추고 있으면서, 그건 아주 정말 기본으로서 매우 충실하고 높은 품질로 보여주면서, 개인과 팀으로서의 성장 드라마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키워드는 ‘인정’이고, 이를 통한 자존감의 획득이라는 점이 매우 다양하고 치밀하게 짜여진 인물 구성 속에서 설득력 있게 전달되고 있다고 했죠. 이 작품이 세대를 가리지 않고 지금에 와서도 회자되고 읽히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면을 통해 시대를 넘는 대표작의 위치를 얻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시대에 얽매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고민하는 지점들을 정답이 아닌 도출 방법을 말해줌으로써 많은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도 볼거리라지만, 연출력도 호흡도 도무지 책을 손에 쥐고 놓을 수 없게 한다지만, 사실은 그걸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인가가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얻고 있는 것이겠죠. 몇 권째를 집어들든, 그 뒷권까지를 모조리 독파하게 하는 힘은 거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슬램덩크는 1억 2천만 부를 팔아치웠다지만, 드래곤볼에 비해서는 판매 부수가 적다고 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드래곤볼이나 유유백서보다도 높게 칠 수 있다고 보는 게 바로 엔딩 때문입니다. 뭐 비하인드 스토리가 없진 않다고는 하더랍니다만, 북산고는 에스컬레이터를 미친듯이 탄 나머지 산으로 가기 전에 적당한 때 매우 현실적으로(?) 도전을 마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이 작품은 적절한 아쉬움과 안 망가진 인물들로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습니다. 전국제패하고 채치수 은퇴한 다음에 다음 학년이 또 이끌고 다른 고등학교들과 싸운다……로 가려면 갈 수 있었을 거예요. 심지어 다른데도 아니고 그 점프 만화잖아요. 그럼에도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된 게, 강백호나 서태웅을 비롯한 캐릭터들이 영원히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것도, 엔딩이 아니었으면 꽤 빛이 바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는 하지만요.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슬램덩크를 또 정주행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아 정말 무서운 만화에요. 저만 당할 수 없으니까 여러분도 얼른 읽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는 저희 딸아이에게 이 책 보여줄 날이 기대되는군요. 아빠가 학생 때 봤던 만화야,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모두 만골만골한 한 주 보내십시오. 서찬휘였습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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