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Q의 신나는 병원놀이_표지a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

이런 작품을 논하자면 항상 아쉬움이 동반된다. 한 번 반짝하고 떴다가 그 뒤로 다시 소식이 없는 경우. 분명히 그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인데 더 이상 그런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대개는 작품 활동은 꾸준히 해도 후속작들이 실망스런 경우가 많지만, <닥터Q의 신나는 병원놀이> 같은 경우는 작가 자체가 만화판에서 실종되어 버렸다. 작가의 근황이나 그 뒤 작품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을 뒤져도 너무나 깨끗하게 공백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닥터Q의 신나는 병원놀이>는 2001년도에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받았다. 처음에 만화포털 ‘코믹스투데이’에 연재되었으며 그 뒤 세주문화에서 세 권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온라인에만 연재되고 단행본에는 수록되지 않은 에피소드가 몇 있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된 지 오래지만 온라인에서는 아직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닥터Q의 병원 ‘놀이’

제목에 주목하자. 병원 ‘놀이’이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있으나 이 작품에서 의료 행위와 관계있는 것은 사실상 의사와 간호사, 환자뿐이다. 만화에는 어떠한 의료용 장비도 나오지 않고, 치료하는 방법도 순수한 만화적 상상력과 개그뿐이다.

기본 플롯은 ‘엄살’이라는 환자가 각종 증상으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이야기이다. 엄살은 소심하고 유약한 30대 초반의 총각으로서 늘 상황에 끌려 다니기 일쑤인 변변찮은 친구다. 입는 옷도 늘 똑같고 외모도 특별할 게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데, 나중에 드러나기로는 의외의 배경을 지녔다.

안과에서 시작한 치료는 대장항문과, 내과, 피부과를 거쳐 응급실, 산부인과, 정신과까지 여러 분야를 망라한다. 엄살은 매번 같은 병원에 가지만 그때마다 병원 건물은 각각 다른 전문의원의 간판을 달고 있으며, 의사와 간호사는 동일 인물이다. 엄살은 이들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점점 깨달으면서도 소심한 성격 탓에 저항하지 못하고 늘 그들에게 ‘당한다’.

이 작품의 핵심은 ‘엄살’씨가 의료행위라는 명분으로 당하는 수난들이다. ‘엽기’라는 코드와 결합된 병원개그라면 대충 상상이 되지만, 이 작품은 그 짐작의 범위를 가볍게 넘어선다. ‘임산부나 노약자 주의, 특히 식사 중엔 절대 보지 말 것’이라는 경고 문구를 넘어서는 수위이다. (작가는 ‘나와 독자가 함께 하는 SM PLAY’라고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도달한 일정 경지가 단지 그런 엽기성에만 기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닥터Q의 신나는 병원놀이>는 엽기라는 포장재를 걷어보면 괜찮은 작품들이 지니는 덕목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먼저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제목에 나오는 ‘닥터Q’는 사실 주인공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단지 모든 일을 기획하고 주도하는 역할이 전제된 마스터마인드같은 존재다. 작품 안에서 그에 대한 개인사적인 이야기나 속 깊은 심경의 독백 같은 건 없다. 어찌 보면 가장 평면적인 성격에 머무르는 캐릭터이다.

오히려 진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은 간호사 ‘양간’이다. 작품 안에서 존재감이나 비중이 가장 돋보이며 그만큼 카리스마나 아우라도 압도적이다. 외전 격으로 양간이 간호사가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드라마가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나오는데, 오히려 본편인 병원 장면들보다 더 스토리텔링에 역동성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이 작품에 깊이와 매력을 더한 결정적인 요소로 보인다.

간호사 ‘양간’의 과거와 얽힌 인물로 별도의 ‘조연열전’ 주인공으로까지 등장하는 ‘빡새’도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고교 졸업 후 바로 MIT에 유학 갈 정도로 수재였지만 어릴 때부터 흠모하던 한 여인(양간은 아니다)을 위해 애쓰다가 결국은 조폭의 중간보스가 되는 사나이. 그가 보여주는 언밸런스는 이 작품에서 가장 통쾌한 만화적 반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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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가학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엄살’과 인사만으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내뿜는 ‘양간호사’ 그리고 늘 수상한 ‘닥터Q’

반면 환자인 ‘엄살’은 닥터Q와 함께 평면적인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운 캐릭터이다. 이 둘은 그저 ‘의사’와 ‘환자’라는 설정을 위해 마지못해 탄생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닥터Q가 벌이는 엽기 행각에서는 어떤 설득력이나 맥락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고 (현실의 부조리 그 자체의 현신?), 시종일관 당하기만 하는 환자 ‘엄살’의 모습도 무슨 레토릭을 품었는지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다. (현대인들은 과학의 권위에 반론은커녕 감히 의심할 생각조차 못한다?) 참고로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붙였다.

‘끊임없이 괴롭히는 자와 괴롭힘을 당하는 자, 그 속에다 나는 강자와 약자의 권력 구조라든가, 점점 자극에 둔감해져 가는 현대인의 모습, 매번 배신당하면서도 또다시 기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현대 사회의 구조적 잔혹함 같은 거창한 것들을 슬쩍 넣어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는 있었으나 뭐 그러한 것들은 모두 무시하시고….’

다만 캐릭터 설정에서 ‘양간과 빡새 vs. 닥터Q와 엄살’이라는 대비를 처음부터 의도한 거라면 납득이 될 법도 하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강렬한 성격이면 아마 감상의 피로감이 깊었을 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닥터Q와 엄살이 긴장 풀고 편하게 소화할 수 있는 ‘쉬운 조연’ 역할에 충실한 것은 틀림없다.

 

병맛의 시초, ‘엽기 코드’ 

이 작품의 또 다른 미덕으로는 엽기 개그 코드가 전복적 상상력과 결합되었다는 점에 있다. 사실 ‘엽기’라는 코드에는 전복성이 기본적으로 내재되기 마련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작품은 꽤 과감하다. 기계적이고 말초적인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전통 내지는 주류 가치관으로 굳어진 관념들을 가차 없이 뒤집는다.

일단 닥터Q가 벌이는 의료 행위들이 그렇다. 아마 의료계 종사자들이 이 만화를 본다면 대부분 불쾌할 것이다. 병원이라는 공간과 현대 의학이라는 거대한 업적을 매우 저급한 방법으로 희화화했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삶도 반전이 심하다. 양간은 어릴 때부터 소원이었던 간호사를 할 수 없게 되자 조폭 보스가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간호사로 일하게 된 닥터Q의 병원은 정상적인 곳이 아니다. 이 점을 양간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묵묵히 닥터Q의 의술을 돕는다. 매우 비정상이라는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양간은 그토록 간호사에 집착할까? (의사와 환자, 그리고 닥터Q의 엽기 행각을 고분고분 따르는 이들을 “미쳤다.” 라고 인식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양간이다.)

빡새 역시 엽기적 반전의 삶을 사는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여인이 있는데 그녀는 외모가 매우 보잘것없다. 그러다가 그녀가 성형수술로 미인이 되어 나타나자 다른 구애남들을 물리치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해서 우락부락한 근육맨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그런 외모 때문에 여인에게서 차이고 조폭이 되고 만다. (여기서 양간과 만나게 된다. 양간은 간호사의꿈을 이룰 수 없게 되자 실의에 빠졌다가 조폭에게 납치되지만 순식간에 두목을 꺾고 그 자리에 오르며, 빡새는 그때부터 양간을 ‘형님’으로 모시는 충직한 수하가 된다.)

빡새는 조폭을 그만둔 뒤 몸을 숨기기 위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한다. 그러다가 노벨상을 받는 대단한 업적을 쌓았지만 그저 다 귀찮을 뿐이다. 빡새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형님’을 다시 만나는 것 뿐.

한편 이 작품은 스토리 줄기들 자체도 전복의 연속이지만 장면 장면에 깨알같이 나오는 신랄한 유머들 또한 일품이다. 이것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처음에 작품이 이륙한 뒤 안정적으로 순항하는 양력을 넉넉히 제공하고 있다. 뱀처럼 보이지만 뱀이 아닌 그 무엇의 정체라거나, 그것과 함께 ‘어린 왕자’ 대사 놀이를 하는 장면 등은 백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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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인줄 알았던 친구(?)의 정체는 다름아닌 회충이었다

작화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딘가에서 신정원 작가가 본인을 순정만화계로 분류한 듯한 말을 해서 놀랐다. 이 작품의 그림은 명랑이나 순정체보다는 극화체에 가까운데, 그래서 오히려 엽기 개그 코드와 묘하게 시너지 효과가 난다. 그림이 완숙한 경지는 아니지만 각 캐릭터들의 성격을 드러내는 데에 크게 아쉬움은 없다. 특히 ‘양간’의 시종일관 쿨한 표정은 분명 캐릭터 성격과 최선의 궁합이다.

신정원 작가는 <닥터Q의 신나는 병원놀이>로 신인의 입지를 다진 뒤, 2002년에 새로 창간된 성인만화잡지 ‘웁스’에 <2029 니플하임>을 연재했다. 개그코드를 쏙 뺀 SF스릴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잡지가 불과 몇 호만에 폐간되면서 작품도 중단이 되었다. ‘웁스’ 마지막 호에 실린 연재분을 보면 작가의 황망한 심경이 그대로 투영된 것 같아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사실 ‘웁스’에서는 창간호부터 신정원 작가를 신예 기대주로 내세우며 매체와 함께 성장하는 시나리오를 꿈꾸었던 것처럼 보인다. 독자 사인회도 열고 인터뷰도 실었다. 함부로 예단할 일은 아니지만, 아마 ‘웁스’라는 매체의 운명이 작가 개인에게도 상당한 좌절감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닥터Q의 신나는 병원놀이>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전설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21세기의 작품이다. 21세기가 되고서 이미 15년이 지나긴 했지만 이렇게 묻혀버린 채 화석 취급을 받기엔 너무 아쉽다. 이 작품이 지닌 독특한 감성과 코드의 맥이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서 더 확장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2001년 전후 이 작품이 발표될 당시는 ‘엽기’ 코드가 한창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닥터Q의 신나는 병원놀이>는 엽기에서 병맛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스펙트럼의 어디쯤엔가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엽기 쪽으로 많이 치우쳐있지만, 한편으로는 당시에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던 ‘병맛’이라는 코드의 맹아를 품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여기서 하나의 테마가 떠오른다. ‘병맛 탄생 이전의 병맛’이라는, 새로운 감성사적 계보학을 수립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15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신정원 작가의 신작이 나온다면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감상할 것이다. <닥터Q의 신나는 병원놀이>가 보여줬던 잠재력과 그에 따른 기대감이 지금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앞서 밝혔듯이 인터넷에서도 근황을 통 알 길이 없기에 작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그에게 거는 기대를 완전히 묻어버릴 수 없는 것은, 작가가 <닥터Q의 신나는 병원놀이>에 그 스스로 남겼던 말 때문이다.

“만화는 아주 만만하게 보였다. 야트막한 동네뒷산처럼.
무엇보다 나는 그 산을 오르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엔 온갖 새로운 스토리들이 가득 차 있었고 그림도 별거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그 산을 오르기로 했다.

나는 너무 멀리서 산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산 밑에 가서 서니 그 크기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설 수도 없었다.
나는 이미 전 재산을 털어 장비도 다 마련했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도 마친 후였다.

높다는 것은 잊어버리자.
그저 산을 오를 즐거움만 생각하자.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한 발짝 한 발짝 산을 오르고 있다.
얼마만큼 온 걸까, 얼마나 남았을까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산을 끝내 정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또 어떤가.
내게 산은 이겨내야 할 상대가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소중한 존재인 것을…

나는 만화를 사랑한다.”

사실 위 내용은 만화가들이 흔히 남기는 ‘작가의 말’의 전형성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작가의 말’을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신정원 작가 한 사람에게만 다시 보여주고 싶다. 사랑한다면 돌아오시라.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예전에 장르문학 전문잡지 [판타스틱]의 창간 편집장과 SF전문출판사 [오멜라스]의 대표를 맡은 적이 있다. SF전문가 코스프레로 살아가는 오덕이라는 의혹이 있다. 일본 SF만화의 꽤 열렬한 팬이며 그런 배경을 믿고 [critic M]의 편집위원단에 겁 없이 끼어들었다. 초등학생 딸에게 SF만화를 마구 권한 결과 순정만화를 보지 않으려는 부작용이 나타나 당황하는 중이다. 가급적 오래 살고 싶은데 그 이유는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이 과연 어디까지 SF스러워지나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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