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cast010

 

10회 핵심 요약

 

9월 마지막주차 베스트셀러 차트
만골남 9월 5주차

만골남의 선택
보리 출판사의 평화발자국 시리즈 열다섯 번째 책 「빨간약」+「7층」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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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001-7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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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전문 보기

만골남010 만골남 M씨 #10, 「7층」 AS + 「빨간약」 – 불편함을 놔둘 용기, 당신에겐 있나요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
안녕하세요-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서찬휘입니다. 벌써 10월 하고도 둘째 주가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얼마 전부터 아이에게 방을 주기 위해서 집안 전체를 뒤집고 있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베이비페어 가서 유모차도 사고 책장도 옮기고 방도 바꾸고 TV장도 바꾸고 하면서 아빠 엄마가 될 준비를 조금씩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게 참, 이사를 한 달에 걸쳐서 치르는 기분이 들 정도네요. 정말 마냥 정신이 없습니다. 방송에도 조금 영향이 오는 것 같아서 걱정인데 여러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20회까지로 확정된 크리틱엠과의 방송이 오늘 10회차로 반환점을 도는데, 남은 10회분도 즐겁게 들어주시길 바라겠고요. 이후 계획은 이후에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면 좋겠습니다. 참, 팟빵 주목할만한 10월 팟캐스트에 만골남 M씨가 올랐더라고요? 일곱 번째에 실려 있던데 수식어가 세상에나 “격이 다른 리뷰 채널”이더라고요? 고맙습니다. 들어주시는 분들 더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자. 9회차에서 슬램덩크를 다루니까 순위가 확 올라가는 게 보이던데요. 역시 인기작을 중심으로 해야 그래도 듣는 사람이 느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인기작만 다룰 순 없어요- 그래도 계속 많이 들어주시면 좋겠네요.

본 내용 들어가기 앞서서 AS 격으로 지난 시간에 안 했던 이야기 몇 가지 해 보고 넘어가 볼까 합니다. 슬램덩크라고 하니까 오래전 기억이 납니다. 제가 박치는 아닌데 꽤 몸치거든요. 운동 쪽은 달리기나 자전거 같이 단순한 정도나 그럭저럭 하지, 스포츠 쪽은 보는 게 더 낫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가 중학교 때 새벽에 혼자 운동장에 나간 적이 있어요. 농구공을 들고 말이죠. 두 가지 때문이었는데, 하나가 바로 이승환 옹의 덩크슛. 그 땐 키가 작았는데- 지금도 그리 크진 않습니다만, 뭐랄까 노래 가사가 워낙에 애절하잖아요? 덩크슛 한 번 할 수 있다면, 내 평생 단 한 번 만이라도 얼마나 멋질까 하늘을 날듯이~라는데 진짜 딱 그런 기분이었거든요. 덩크슛을 실제로 할 순 없어도 그만큼 높이 뛰어 보고 싶었어요.

……아니 저보다 작으면서 덩크슛 하는 선수가 NBA에는 있긴 한데 제가 그 사람은 아니니까 말이죠. 어쨌든 그런 것도 있고, 그리고 농구를 하면 키가 큰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말이에요. 근데 그와 함께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 만화 슬램덩크였습니다. 그 때엔 국내에 비디오판으로 나왔던 애니메이션도 인기였고. 어쨌든 굉장히 멋있어 보이잖아요. 정대만이 멋있기도 했고! 근데 저 같은 머리나 운동신경으로는 영리한 합동 플레이는 거의 불가능하더라고요. 결국 농구를 그럴싸하게 하기는 어려웠고 키도 루저 꼴로 머물기는 했습니다만 어쨌든 저에게도 새벽 같이 농구공을 들었던 청춘의 한 때가 있긴 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뭐 그렇다고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은 투니버스에서 방영하기도 했던 비디오 버전과 이후에 SBS에서 방영했던 버전이 주제가와 성우가 완전히 달라서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또 쏠쏠했습니다. SBS가 그쯤 해서 만화 왕국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애니메이션을 정말 여럿 틀었는데, 투니버스에서 방영했던 작품들을 경쟁하듯 별도로 우리말 더빙해서 내놓았었죠. 마법소녀 리나라고 나왔던 슬레이어즈가 그렇고, 슬램덩크도 그렇고요. 지난 시간에 잠깐 틀어드렸던 노래가 SBS에서 별도로 제작했던 노래인 ‘너에게로 가는 길’ Part 1인데 박상민 씨가 불렀던 거고, 비디오판 노래는 일본판 노래인 ‘너를 좋아한다고 외치고 싶어’를 우리말로 직역해 불렀습니다. MR을 구할 수 없었는지 반주는 미디로 편곡해 조금 조악합니다만 뭐 그 때엔 대체로 그러했죠. 마법기사 레이어스도 그랬고 말이에요. 어쨌든 추억이 방울방울하네요. 슬램덩크는 책으로 읽는 것도 참 좋은데, 비디오판이든 SBS판이든 우리말 더빙 애니메이션을 IPTV에서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방영권 계약 끝났을 테니까 불가능하겠죠. 정말 대단한 성우분들 잔뜩 기용됐었는데 아쉽습니다. 참고로 전 강수진 성우님이 강백호를 연기한 비디오판을 더 좋아했어요. 예산 때문인지 1인 다역이 너무 많긴 했어도 말이죠.

계속 이야기하다 보니까 성우덕질 한창 하던 소싯적 행적이 다 드러나는 것 같군요. 각설하고, 팟빵 덧글에 올라온 덧글이 있어 소개하겠습니다. 쭈앙오빠d 님께서 적어주셨는데요.

와 이 새벽에 잠도 안자고 계속 듣고있네요.
제가 지금까지 들은 팟캐스트 중에 가장 매력적이고 재밌습니다.
홍보도 잘되는것 같습니다 ㅋㅋ (critic M도 즐겨찾기 했습니다.)
좋은 글들이 많더구요. ㅎㅎ
좋은 콘텐츠 감사합니다. 매주 금요일 기대중

과찬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들어주시고, 관심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다른 말씀보다 잠도 안 자고 계속 들어주셨다는 게 제일 기쁘네요. 어쨌든 졸리진 않았단 이야기죠!

졸리지 않은 방송이라는 말씀에 힘 얻은 기세 그대로, 전하는 말씀 들려드리고 베스트셀러 차트 이어가겠습니다.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는 만화 비평 전문 웹진 크리틱M에서 제작합니다. c r i t i c m .com, 크리틱 엠.

 

만화 도서 베스트셀러 차트 10 (2015년 09월 5째 주)

만골남 9월 5주차

지난 한 주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들을 살펴 보는 지난 주 만화 베스트셀러 차트 시간입니다.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의 50위권 차트를 기준으로 산출한 만화계 유일! 통합 차트입니다.

10위부터 살펴 볼까요. 10위가 배구 만화 하이큐 16권, 후루다테 하루이치. 9위는 환갑 넘긴 대머리 아들이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이야기인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오카노 유이치. 8위는 요시노 사츠키의 한다군 1권. 바라카몬 스핀오프인데 바라카몬과 이번엔 좀 떨어진 자리에 앉았네요. 원작 격인 바라카몬은 3위입니다. 요시노 사츠키. 7위는 원피스 78. 오다 에이이치로. 6위는 도쿄 구울:re 2권, 이시다 스이. 5위는 진격의 거인 17권, 이사야마 하지메. 그나저나 진격의 거인은 지드래곤 여친이 나왔다던 실사판이 그리 좋은 반응은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4위는 청춘 만화 아오 하 라이드 12권. 사키사카 이오. 3위는 앞서도 언급했지만 바라카몬 11위. 요시노 사츠키. 2위 심야식당 15권. 아베 야로. 일단 나오면 상위죠 이 작품도. 서울 상수동에 여기 이름 딴 음식점에 있는데 제목 들으니 한 번 가서 먹긴 해야 할 텐데 싶은데 기회가 영 안 닿네요. 만날 줄 서 있고 말이에요. 어쨌든 심야식당 15권. 정작 국내에서 따로 나온다던 드라마판 이야기는 거의 안 나오고 있네요. 심야식당이 사회 전면이 아닌 뒷면에 서 있는 이들까지도 무뚝뚝하지만 따스하게 포용하는 작품이기에, 바로 그 다양함을 포용하는 작품이기에 가치가 있음을 망각했다는 점에서 한국판 드라마는 첫단추부터 대차게 잘못 꿴 셈이겠죠. 어쨌든 한국판 드라마가 망하든 말든 원작은 계속 잘 나옵니다.

그리고 대망의 1위는 원펀맨 4권. ONE과 무라타 유스케. 그리고 보니 전 4권은 아직 안 봤군요. 그래도 신간 나오면 꽤 인기를 끌고 있긴 한데 어디까지 갈지 궁금합니다. 4권 표지는 뭔가 강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장식하고 있네요.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차트였습니다.

 

“만골남의 선택”
네 이번주 만골남의 선택은, 바로 들어가기 전에 앞서 2회차 소개작이었던 오사 게렌발 작가의 「7층」에 관해 AS를 한 번 더 하고, 그리고 나서 이번 소개 작품인 「빨간약」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갑자기 웬 AS냐면, 좀 생각해 볼만한 거리들이 요즘 좀 보여서 말이에요.

앞 방송을 안 들으신 분도 계실 테니까 7층에 관해서 아주 간단히만 소개하자면, 2015년 부천만화대상 해외만화상을 수상한 스웨덴 만화가 오사 게렌발의 작품입니다. 100쪽이 안 되는 양장본인데, 내용은 굉장히 묵직합니다. 그도 그럴 게 데이트 폭력을 비롯해 여성 혐오, 인권 침해를 겪은 당사자가 그린 자전적 만화이자, 이러한 혐오와 폭력이 작동하는 원리에 관해 고발하는 만화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존감과 개성을 모두 잃고 움츠려 든 채 쏟아지는 폭언과 깎아내리기에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져 가는 과정을 정말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이름이 닐인데요. 그 닐이 진짜 개 사이코 같긴 한데 문제는 이런 사람을 피해가기가 쉽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기가 우위에 있다 생각하는 대상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면 미친듯이 분노하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데, 여자는 여기에 적응하고 견뎌내려다 그만 문제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고 여기게 되고 마는 겁니다. 자존감이 끝도 없이 내리 깎이는 건데, 자존감이 뭔가요. 자기 자아를 존중하는 마음이고 자기에게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감정입니다. 자존감이 높으면 세상에서 어떤 일을 겪어도 심적으로 쉬 꺾이지 않고 극복도 빠르지만 자존감이 낮으면 세상이, 남이 자신을 보는 시선에 질질 끌려다니게 됩니다.

제 아내가 지주 하는 말인데,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라서 자존감이 낮으면 그 낮은 만큼을 보충하기 위한 무언가를 하게 되죠. 오히려 과도하게 밝은 표정 높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서 자기 속내를 감추거나, 남에게 받는 평가를 좋게 하려다가 인정 투쟁에 빠지거나. 근데 그나마 반작용이나 나오면 다행인데 그나마도 못하고 아예 모든 걸 자기 책임으로 돌리며 공격 대상을 자기에게로 돌리는 게 최악입니다. 「7층」의 오사는 그 최악의 최악에 해당하는 바닥까지 내려갔다 스스로를 다잡고 올라온 인물입니다. 그 원인이 오사 본인에게 있지 않다는 데에, 자기가 나쁘거나 천박한 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자기를 다잡는 데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저 나 같은 사람도 좋아한다 말해줬다는 데에 기뻐서 마음을 주고 만 결과가 너무 참혹했던 겁니다.

그런 걸 보면, 이 문제는 단지 닐 같은 쓰레기를 만났다는 데에서만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작품의 말미에도 나오지만 우리가 스쳐지나가는 숱한 풍경 속에는 수많은 닐 같은 녀석들이 널려 있습니다. 아이유가 장기하랑 연애한다니까 이제 생으로 3단 고음 듣겠다며 낄낄대는 걸 농담이라고 지껄이는 녀석들이 널려 있는 거죠. 단체 채팅방에서 같은 학교 여자애들 실명 거론하면서 강간모의하는 애들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매우 작은 지점에서의 차별과 폭력에조차 그다지 죄의식 느낄 일조차 아닌 이들이 모이고 모여 동반상승효과를 낸 결과물들입니다. 그런 사람을 선택하고, 사랑하니까 맞춰준다고 하면서 점차적으로 자기가 문제니까 얘가 이런 거겠지 하고 무너져가는 게 오사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습니다. 관건은 닐 같은 놈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문제는 그런 이들에게 걸려드는 전제 조건이 ‘나 같은 애를’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자존감 자체가 애초에 높지 않은 게 화근인 셈인데, 그게 또 개인의 문제라 할 수는 없다는 게 함정입니다. 사회가 여성들에게 사회 주체로서 개인으로서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존중하게끔 하질 않는데 개인이 그걸 높이 품기란 어렵지 않겠습니까.

제가 오늘 7층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는 까닭이 뭐냐면 바로 이 대목에서 소개해 보고 싶은 기사가 하나 있어서입니다. 마침 7층이 스웨덴 작가의 만화인데, 바로 그 스웨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요. 10월 4일자로 경향신문에 소개된 세계 최고의 통계석학 한스 로슬링 카롤린스카 의학원 교수와의 인터뷰인데요. 2012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으로 뽑혔다네, BBC가 이 사람의 강연을 테드 강의 TOP 10으로 선정됐다네 하는 인물입니다. 경향신문이 제목으로 뽑은 문구부터가 의미심장합니다. “페미니즘이 한국을 구할 것, 변화는 순식간에 온다”입니다. 페미니즘을 무슨 여성 우월주의나 남성 공격용 이데올로기로 인식하고 있는 저기 닐 같은 남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재난 경보 같은 발언일 텐데요. 한국 저출산 극복에 관한 이야기가 주인데, 저 7층의 무대인 스웨덴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중요한 대목은 스웨덴 하면 굉장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며 복지가 잘 된 나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원래 그랬던 게 아니었다고 하는 점입니다. 저는 7층 처음에 일단 죽 읽었을 때 “아니 스웨덴이잖아? 근데 왜 이런 개차반같은 녀석이 다 있지?”라 했는데요. 한스 교수의 말에 따르면 스웨덴은 1970년 중반만 해도 남편이 아내 출산을 지켜보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다고 하고, 동성애가 낯설었으며, 한국에 최근 맘충이니 된장녀니 하는 여성혐오 발언들이 많아지는 것에 관해서도 스웨덴도 똑같았다고, 다만 50년 전에 그랬다고 일갈합니다.

아 진짜 이 기사를 그냥 다 줄줄 읽고 싶은데,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면 남자도 살기 좋아진다. 남성의 어깨에 있는 짐을 일부 내려놓으면 남성도 편해진다. 페미니즘이 발달할수록 남녀의 기대수명차이가 줄어드는 현상을 주목해라. 최종 목표는 출산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질을 개선해 더 나은 사회에서 다 같이 살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라는 발언은 정말 엉뚱한 박탈감에 시달리는 못난 남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네요. 한스 교수는 그런 거 헛소리라고,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도 말합니다. 인구정책이 아닌 양성평등과 관련한 변화에서 비로소 출산률이 반전됐다는 이야기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대목이네요.

근데, 이야기 속에서 또 주목해 볼만한 부분이 바로 가부장제 이야기입니다. 한국이 유교문화권이라서 변화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기자의 말에 한스 교수는 분명하게 “유교 문제가 아니다. 가부장제 문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스웨덴도 똑같았다고 하더군요. 한스 교수의 증조 할머니는 출산 직후에 몸이 안 좋아서 증조 할아버지에게 식수 좀 떠오라고 부탁했더니 물을 떠 와서 집 마루에 부었대요. 당시엔 스웨덴에서 물은 여자가 뜨는 걸로 돼 있었다고 하네요.

바꿔 이야기하면, 그래도 스웨덴이 지금 저 정도로 출산률이 반전된, 다시 말해 애를 낳는 비율이 높아진, 또 다시 말해 애를 낳을 만하다고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리고 또 다시 말해서 아이를 낳거나 두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는 상대가 있는 비율이 높은 나라가 된 건 50년이 채 안 됐다는 겁니다. 사람들을 바꾼 게 뭐겠습니까. 사회 기조를 바꾸는 건 정치입니다. 그 시기 정당이 바뀌었고 끊임없이 정책적으로 유도를 하여 세대가 갈리고 갈린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고, 그나마도 채 따라가지 못한 자들이 저 닐 같은 짓을 하고 다니는 거죠. 뿌리박힌 인식과 습성이 어디 가지는 않습니다. 보고 자라는 것도 있고요. 하지만 그러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게 정치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어느 정치인이 한 말이 맘에 들더군요. 정치의 장점이 뭐냐고 묻는 학생들 질문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라고 답했다죠.

사실 그게 정치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여성 문제를 비롯해 양성 평등 문제,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과 증오 금지 문제는 다분히 정치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페미니즘이 어떤 면에선 사회 이슈이자 정치 이슈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여기에 있겠고, 그래서 투표를 잘 해야죠. 어느 쪽을 찍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야 할 건 아니겠지만 최소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거나 위 아래가 있다거나 그렇게 해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한테 행정이랑 입법을 맡겨놓으면 그 차별이랑 폭력을 우리가 당하는 거죠. 자. 세상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느냐는 결국 세상에 있는 ‘나와 다른 누구’를 어떻게 대하느냐하고 직결됩니다.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그리고 이제 또 사회 뒤편에- 아까 왜 심야식당 원작이 왜 그리 높은 평가를 받는지 이야기했죠. 사회 앞면이 아닌 뒷면에 엄연히 자리하고 있는 다양한 이들을 향해 포용하는 시선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한국 사회의 현실은, 딱 심야식당 한국판 드라마가 잘 보여줍니다. 약자를 화면에서 배제한 심야식당이 한국의 상황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게 쿨한 세태고, 그 세태의 가장 첫 머리에 대상으로 놓여 있는 게 여성입니다. 스웨덴이 50년이 지나 그래도 많이 나아졌음에도 닐 같은 친구가 있다면, 한국은 아직도 스웨덴 50년 전 꼴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인 셈이죠. 정치가 이 문제에 손을 대지 않으면 맘충 된장녀 보슬아치 같은 조롱에 사회 구성원들이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바람의 검심」에서도 나오는 대사긴 한데 사람은 17살 이상만 넘어가면 본성 안 바뀝니다. 근데 재밌게도 법으로 제어하는 건 가능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꼴은 단지 남자 여자의 성대결이 아니에요. 명백한 정치 문제고요. 또 가부장 이야기 나왔듯 권력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익숙해지면 지배당하는 쪽은 자존감이 없어야 서로 편한 구도가 됩니다.

지금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꼴페미라네, 남자가 역차별 당하고 있다네도 넘어서 여성혐오만큼이나 남성혐오가 창궐하고 있으니 둘 다 막아야 한다네 하는 물타기에 열을 올리는 것도 권력을 뺏기고 있다고 여기는 데에서 오는 공포에 지나지 않아요. 세상에 등신총량법칙은 있게 마련이니 어느 쪽이든 등신 같은 소리는 나오게 마련인데, 그걸 차치하고 본다면 남성이 여성에게, 사회 전반이 약자에게 대하는 태도란 건 폭력과 폭압, 그 이상 이하도 아니거든요. 그리고 등신총량법칙에 따른 소거법을 차치한다손 치더라도 최근 여성혐오 이슈가 불거지는 가장 큰 까닭은 그동안 바꿔야 한다 이게 문제다 외쳐온 소리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씨알이 하나도 안 먹힌 결과물입니다. 어떻게 해도 사람 소리로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반응은 분노가 될 수밖에 없는데 세상에 그 반응을 보면서 무슨 폭도 취급을 하고 있어요. 등신총량법칙을 적용해 놓고 봐도 그 사실은 남습니다. 우리나라가 왜 숱한 촛불집회를 두고도 시위충이네 폭도들이네 선동충이네 욕했네 시민들에게 불편 끼쳤네……

이게 전혀 다른 이야기 같나요? 다 연결돼 있습니다!그 숱한 왜곡의 작동방식이 여기에서 등장합니다. 착한 시위 같은 거 세상에 없어요. 착한 분노 같은 거 세상에 없어요. 당한 만큼 반작용 나오는 것을 봤으면 당했다 여기는 게 무엇이었는가를 점검해야 하는데 가만히 있으래요. 이게 얼마나 웃긴지 아십니까. 딴에는 진보라고 하던 사람도 여성이나 약자 이슈 앞에서는 데이트 폭력 일으키고 여자들 원래 어떻네 저떻네 하고 있어요. 권력 앞에서 맞서 싸우던 사람도 자기에게 주어진 알량한 성기 권력은 지켜야 할 보루고 이걸 무너뜨려야 공평하다는 주장에는 저기 폭도가 있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이 어느 사안에 관해 반응하는 건 그 사람의 세계관에 기인하고요. 세계관은 다른 사안에도 적용됩니다. 한 때 진보입네 하던 사람들의 데이트 폭력 사건이 줄을 이었죠. 딴에는 세상 좋게 만들어야 한다던 사람들이죠. 그래도 자기 가랑이 사이에 놓인 권력은 못 놓는 겁니다. 물론 놓는다손 쳐도 상대의 이야기가 불편할 수야 있죠. 평생 그리 살았고 세상에서 그게 나쁘단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고 다들 여자로 농담 따먹기 하고 살아도 잡혀갈 일도 없었는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그러냐고 불편할 수는 있을 겁니다.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왜 뻑하면 다 남자 잘못이냐고 불만도 생길 수도 있겠죠 백 번 양보해서. 근데- 헌법에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 불편함을 감내해야 민주 시민인 까닭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불편해도 놔 둘 수 있어야 그나마 접점을 찾을 기회라도 생기죠. 근데 그게 참 두려운 겁니다. 그래서 욕 열심히 합니다. 여기 남혐충이 있어요! 남혐하는 애들 일베랑 똑같아요! 저들이 지금 이 시점에 이만큼 분노한 이유에 관해 생각해 보라고 하면 그래도 방식이 폭력적이에요! 내 주위 여자들 다 그래요! 페미니스트들 다 그래요!

아니 퍽이나 폭력적이겠습니다. 얼마 전 저에게 이 이슈로 분노한 사람은 여성들이 남성을 혐오하고 있고 이제 증오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서 막아야 한다고 소리를 치던데, 이 분은 증오범죄가 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더군요. 성별이나 인종 같이 태어날 때 선택의 여지가 없이 주어진 것이나 약하다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범죄 대상이 되는 게 증오범죄입니다. 혐오발화도 매한가지고요. 그건 여성이 남성에게 하는 게 아니고,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보다 약한 자를 설정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해요. 지난 2회차에서, 지하철에서 남자인 절 보면서 지나쳐서 자고 있던 젊은 여자를 해코지하던 할머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늙은 여성이 젊은 여성을 공격하는 모양새였죠. 이건 그래서 남녀 문제가 아니고 그냥 약자 차별, 약자 조롱, 약자 증오 문제에요. 그 사람에겐 그렇게 해도 반항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여성들도 자기보다 약자인 대상에게는 비슷한 짓을 저지르기도 하는 거고요.

다시 말하지만 남녀 문제 아닙니다.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의 문제고, 약자를 대상으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여긴 결과물입니다. 남성에게 여성은 아주 오랜 시간 그래도 되는 대상이라고 사회적으로 통념화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여성들의 분노 방식은, 남자를 약자로 봐서 그러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더 이상 어찌할 바가 없어서 터져나오는 거고요. 실제로도 남자를 약자로 볼 수가 없죠. 사회적으로 완력으로도 그래요. 단적으로, 성인 여성은 중학생 정도 남자애가 작정하면 물리력으로 이기기 쉽지 않습니다. 반대는, 완력만으로는 맨손으로도 살해할 수 있어요. 그러니 분노의 작동 기제가 완전히 다르죠. 근데, 저 여자들 이제 못 참고 테러할거야, 우리에게 증오 범죄를 할거야 덜덜 떨고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나요?

증오범죄 이야기가 나오니 말인데, 저는 저 발언들이랑 똑같은 이야기를 다른 버전으로 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게이들이 성병을 제조한다면서 마땅히 차별해야 한다는 사람이었는데, 심지어는 게이들을 그냥 놔두면 우리의 항문을 강간할 것이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더라고요. 이거랑 똑같은 미친 소리가 늘 여성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싸워서 질 것 같지 않으니까, 남자는 여자가 어찌할 수 없다라고 하는 확신 때문에요. 이게 나아가면 다른 약자차별로 바로 연결됩니다. 대상만 갈아치우면 되니까요. 참, 단순하고도 무식하죠. 아. 하다하다 안 되니까 이런 이야기도 나오긴 하더랍니다. 여자들이 남자 아이에게 테러할 수 있다! 아이 씨 진짜 에이즈가 공기 전염될 수 있을지 어찌 아냐고 게이들 다 죽여야 한다던 사람이랑 이게 뭐가 달라요.

그래서 저으기 한스 교수님이 한 말을 다시 리바이벌하자면, “그런 거 헛소리다,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입니다. 부끄러운 헛소리 그만하고 우리 다 함께 여성혐오를 비롯한 차별 철폐에 앞장 서 선진 미래 사회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남성 여러분은 가랑이 사이에서 권력을 빼면 결과적으로 서로 편하고 좋아집니다. 스웨덴 보세요. 닐 같은 놈이 여전히 있다곤 해도, 점차 나아져서 출산률이 높아진대잖아요? 물론 당연히 애 낳는 게 필수조건인 건 아닌데, 서로 편해야 애도 낳거나 입양해 키울 마음이라도 생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동성 커플도 있으니 아이 양육조차도 남녀문제만은 아니죠.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출산률은 굉장히 좋은 지표죠. 모두가 서로 편한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디 아파트 이름처럼 너 편한 세상 말고요.

아직도 “저 썅 꼴페미년들 때문에 내가 피해를 입고 있다! 저들의 남성혐오는 글렀다!!”고 여긴다면 오사 게렌발의 「7층」 표지에 나온 닐 표정을 잘 보십시오. 또는, 그런 남자 있으면 표지 보여주세요. 이게 네 얼굴이라고요.

자. 잠시 쉬었다가, 길지 않게 이번에 소개할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정작 이 작품 이야기는 짧을 것 같군요. 일단 숨가쁘게 달려왔으니 좀 평화로운 음악 하나 골라서 틀겠습니다.

소년합창단

사실 오늘 소개하려고 한 작품이, 앞서 「7층」 이야기 하면서 늘어놓았던 이야기들과 적잖게 닿아 있습니다. 제목은 「빨간약」입니다. 특히나 남성분들에겐 어떤 의미로는 상당히 친숙할 이름이죠?

이 책은 한 작가 작품이 아니라, 여러 작가분들이 참여한 단편집입니다. 출판사는 보리출판사고, 보리 출판사의 평화발자국 시리즈 열다섯 번째 책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우리네가 겪은 숱한 전쟁과 폭력, 인권 침해, 차별, 자유 억압 같은 소재들을 담은 작품들을 담고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전문 르포 만화의 길을 튼 용산참사 만화 「내가 살던 용산」을 비롯해 용산참사 이후의 철거민들 이야기「떠날 수 없는 사람들」, 삼성 반도체 이야기를 담은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사람 냄새」와 「먼지 없는 방」,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선생의 남영동 고문 기록을 담은 「짐승의 시간」 같은 작품들입니다.

「빨간약」의 작가진에는「내가 살던 용산」을 비롯한 르포 만화들에 주로 참여해 온 작가들이 모여 있습니다. 권용득,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마영신 등 독립 만화와 상업 만화를 넘나들며 활동해 온 작가들이 있고, 여기에 뉴페이스로 한수자 작가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주호민 작가의 아내분이기도 한데 여기서 그게 중요하진 않겠지요.

재밌게도 이 작품은 삼겹살집에서 제작이 결의됐다고 하네요. 서문에 따르면, 시작은 “이 황당한 시대에 대한 짜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술자리에서 뉴스마다 튀어나오는 빨갱이 타령에 질릴대로 질린 만화가들이 “같이 죽자”라면서 불온한 만화를 그려보기로 했다는군요. 김성희 작가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에 나오는 대사대로, 이 전근대와 근대, 포스트모던 세 겹이 동시대에 겹쳐 있는 삼겹살 같은 세상을 잘근잘근 씹어 삼켜 살과 피로 삼고 똥으로 싸버리겠다며 시작한 작업이랍니다. 그렇게 뭉친 여섯 작가는 각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교조, 일베, 남파 간첩, 부정 선거 같은 주제를 만화로 풀어냈습니다. 이거 그리고 잡혀가는 거 아냐?라는 우려는 덤으로 안고 말이죠.

각 단편의 주제를 들으면 알 수 있지만, 작품들은 말 꺼내면 공격 당할까봐 쉬 입밖에 내지 못하게 된 무언가들입니다. 뭘로 공격당하냐면, 빨갱이라고요. 되게 편리한 마법의 단어죠. 빨갱이. 너 종북이야! 아니 함부로 빨갱이라 하면 벌금 무는 판결이 나온 게 언젠데 요즘 또 굉장히 횡행하더라고요, 그것도 고위직에 있는 양반이 말입니다. 말 그대로 북한 찬양 고무하고 북한에 이로운 일 하는 사람이란 이야기인데, 전직 대통령에 현직 야당 당수를 빨갱이로 몰아놓는가 하면 글씨가 종북이라면서 대통령기록관 현판도 바꿔 다는 상황입니다.

재밌게도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입에 올리면 어디선가 나타난 애국자들에게 빨갱이는 북으로 가라는 외침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돼 있습니다. 지금은 딱 그런 시기죠. 사람이 고문당해 죽은 사건을 파헤치는 것부터 시작해 사람이 몇 백이 죽어서 모여서 애도를 해도 빨갱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를 고민하면 빨갱이, 대통령 비판하면 빨갱이…… 작가들은 지금 시국에서 말하면 빨갱이 소리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주제들을 골라다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이 「빨간약」입니다.

제목 빨간약, 부제,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에 관하여. 제목과 부제에서부터 책은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세상에 관해 뭘 알고 있는 걸까요? 제목은 빨간약 파란약 내놓고 세상 돌아가는 걸 볼래 그냥 알려주는대로 살래 묻던 매트릭스에 빗댄 걸 수도 있겠고, 빨갱이 타령에 빗댄 표현일 수도 있겠고, 또 우리가 으레 잘 알던 그 만병통치약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만병통치약의 경우, 진짜 효능이 그래서가 아니라 어디가 어떻게 다쳐도 일단 처바르고 보던 약이라서 만병통치약이죠. 어쩌면 효능 생각 않고 아무데나 바른다는 점에서 빨갱이 타령이랑 굉장히 흡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민간요법의 반열에 오를 만큼 한 때 잘나갔던 치료제라서, 이걸 바르면 뭔가 나을 것만 같은 기분도 듭니다.

빨갱이란 말이 왜 폭력이냐 하면, 전쟁으로 갈린 이 땅의 역사에서 “너는 우리 편이 아닌 적이다” “이 자는 마땅히 죽여도 되는 자다”라는 낙인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경제력으로든 체제의 민주성으로든 인구 수로든 북한이 우리보다 나은 게 아무 것도 없음이 확연해진 시점이지만, 북한은 어쨌든 전쟁을 치른 당사자로서 우리의 ‘적’입니다. 전쟁이 안 끝난 이상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적의 편이라는 딱지를 선제로 붙이는 건 참으로 편리한 청소 방법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경험적으로 감정적으로 용서가 안 되는 대상의 편을 든다는 딱지죠. 그걸 공고히 하기 위해 역대 정권들은 많은 이들을 빨갱이로 만들고, 그 죄를 물어 끌고 가 고문하고 진짜로 죽여왔습니다. 딱지 붙는 것도 무서운데 그로 말미암아 죽거나 반병신이 돼 돌아오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자연스레, 빨갱이로 몰릴 일을 안 만들고 싶어 조용 조용 자중하게 됩니다. 북한이 전혀 경쟁상대가 못 되는, 그렇다고 당장 쳐서 합칠 수도 없어 달래가며 갈 수밖에 없는 마당에 와서도 유효하다 보니 온갖 곳에 갖다 붙이며 재미를 보는 이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근데 다시 말하는데, 이게 바로 ‘이 자는 죽여도 된다’라는 표시입니다. 촛불집회 때 일베한다는 스님 하나가 내건 게 그거죠.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회 지배계층 맘에 안 들든, 자기 맘에 안 들든이죠.

저는 머리 굵은 이후로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와 늘 부딪쳤는데 특히 정치 문제에 관해서는 학을 뗄 만큼 싸웠습니다. 저희 집이 그 3대 보수 일간지를 매일매일 구독하던 집안이었고 어렸을 땐 그 중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데의 주간지까지 정기 구독한 막강한 집안입니다. 제가 집안을 박차고 나온 것도 밥상머리에서 정치 이야기하다 싸워서였는데 사실, 부모님들이 늘 하던 말이 “너 그러다 끌려가 죽어, 제발 그만해”였습니다. 말하자면, 공포가 각인돼 있는 세대인 셈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현대사는 시작지점부터 빨갱이 소탕을 명목으로 한 살육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승만이 다리 끊고 도망가면서 보도연맹원들 수십만 명을 죽였던 게 왜입니까. 저것들은 빨갱이인데 내 뒤통수 칠지 모르니까 죽이고 가자는 거였죠. 이후 정권들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면 빨갱이를 지목하든 제조하든 해서 죽이거나 때리고 가두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진행돼 헌법이 바뀌었어도, 그러한 오랜 행보가 사람들에게 깊은 공포를 새겨넣었습니다. 빨갱이로 몰리면 진짜로 죽을 수 있다는 사실, 이건 학습되고 학습되고 또 학습되어 지금도 내리 깔려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일베 아이들은 자기들도 죽일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즐거워하고 있죠. 아까 7층 이야기하면서 강하게 미러링을 가하는 여성들더러 일베와 같다고, 이들이 증오 범죄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단 이야기 했죠. 이게 말이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베는 진짜로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표식을 붙이러 다니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에게 빨갱이 사냥은 강하게 각인돼 있는 공포를 활용한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지금은 그리고 ‘종북’이라는 표현으로 다음 라운드를 개시 중이죠.

이 책은 그러한 세태 속에서 빨갱이로 몰리는 선생님들이나 신부님들이 진짜로는 무얼 하고 있는지 이들이 무엇을 해 왔는지를 이야기하는가 하면, 빨갱이 사냥 앞에서 진짜로 북에서 남으로 남파됐던 간첩에게 어떻게 살아왔냐를 묻기도 합니다. 유독 재밌는 에픽소드는 통일을 꿈꾸는 북 출신 통일운동가 할머니들 이야기였는데요. 해맑게 웃으면서 우리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북한과 한국을 바라보고 있는데, 작가는 그들의 모습과 말에서 위화감을 느끼기보다 그들의 시선에서 우리가 아무 의식 없이 젖어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이건 사상에 감화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경험이 된다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조차, 북한을 좋게 본다는 거냐?라며 핏대를 세울 이들이 차고 넘치는 마당이지만 그 속에서도 작가는 이들이 이렇게 이 자리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네가 모르던 세상을 알려주지”같은 고압적 자세가 아니라 “알고 있었던 이야기일 텐데, 그게 사실은 이런 시선으로 보일 수 있어, 지금 저렇게 욕할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가르치려 들기보다 이게 어떤 종류의 시선인지, 이걸 어떻게 봐야 할지를 이야기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방법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작가 개인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 대상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려 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일베 테러를 목적으로 익명으로 만화를 그려 올리고 그걸 소재로 일베 만화를 그린 경우도 있습니다. 마영신 작가의 실험인데 상당히 재밌습니다.

사실 작가들의 논조가 일면 수긍이 안 되는 구석들이 있습니다. 이건 분명 사안을 다루는 기획자나 작가와 저의 정치적 견해차가 일정 부분 분명히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일면 이 작품 속의 비판이 아픈 부분이 많습니다. 만약 일베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이 책을 본다면 납득 안 가는 궤변으로만 점철됐냐면서 예의 빨갱이 노래를 부를지도 모릅니다. 책의 짜임새가 아주아주아주 훌륭하지만도 않습니다. 서로 다른 작가들의 단편들을 엮은데다 형식과 주제를 완전히 통일해 진행했던 지난 책들과는 다소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책의 주제에 완전히 반대를 하고 있든, 심정적으로 동조는 하는데 빨갱이 소리 듣기가 거북하든 한국 사회의 주 흐름에서 부당하게 배척당하거나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그래서 순응하고 있는 이들이 듣고 있노라면 몹시 불편할 수 있는 화두들을 면전에 들이댑니다.

사실 참 별것 아닌데 어릴 때 봤던 똘이장군의 교훈까지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면서 뭔가 불온하게 느껴집니다. 부모님의 경고까지 귓가를 맴돌기도 합니다. 지금같은 시대니까 더 걱정되시겠죠. 너 그러다 끌려간다. 끌고 가는 게 나쁜 거예요-가 맞는 말일 텐데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론이니 현실에선 끌려가면 그걸로 인생 끝이 맞죠. 실제로 숱한 열사들이 열사칭호 듣고 싶어서 죽은 건 아니건만, 빨갱이로 찍히다 못해 끌려갈 걸 걱정하는 시대라는 게 정말 억울한데, 농으로 안 느껴지는 이런 감상을 꾹 누르고 책이 독자들에게 묻고 있는 바를 묻는다면- 저는 “이 불편함을 놔둘 용기가 과연 당신에겐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의 주인공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신념대로 세상을 살아가거나, 싸워 온 이들, 또는 사회정의에 반한다 여긴 대상에 관해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입니다. 그런 선생님들에게, 신부님들에게, 개표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빨갱이’ 다시 말해 죽이고 배제해야 할 이들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지나치게 편리한 정치술입니다. 또한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다 잡혀 옥살이를 한 이들의 발언은 지금껏 알고 있던 우리의 상식으로나 실질적인 북한의 현실로나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소리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라면 시대의 아픔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아픔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면 그 아픔이 자기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말을 건네는 늙은 비전향 장기수의 말이 틀어막아야 할 빨갱이의 술책씩이나 될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와서 북한이 한국에 할 수 있는 게 벼랑 끝 협박전술밖에 없다는 걸 뻔히 잘 알면서도 쉽게 적을 만들어 목적을 달성하려는 이들에게는 이게 아주아주 겁나는 일로 느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증오범죄를 일으킬 것이니 막아야 한다는 말 만큼이나 어이 없는 일이긴 한데, 그럼에도 놓지를 못하고 있잖아요. 적이 있어야 하니까요. 무서운 거죠. 적이 없어지는 순간 자신들이 적이 될 테니까. 그래서 적을 만들어야 하는데, 백 번 양보해서 남파해 온, 본인들은 아니라곤 하지만 어쨌든 북한에서 남파한 인사들까진 그렇다 쳐도 선생님들이랑 신부님들에게까지 빨갱이 취급을 한다는 건 시민을 뜻대로 제어하는 데에 방해 요소를 만드는 이들을 향한 테러입니다. 그리고 제어 안 되는 시민은, 그 자체로 공포기도 하죠.

전 이 사안을 보면서 오랜 분을 참지 못하고 일어난 여성들 앞에 선 남성들의 공포에 질린 낯빛을 쳐다볼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낍니다. 차라리 세계관과 논조의 차이 문제라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면 될 텐데, 없애야 할 적을 만들어서 자기 위치를 유지하려고 하는 건 아까도 말했지만 자존감 없는 사람들이 쉬 저지르는 짓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없애야 하잖아, 그렇잖아 하면서 자꾸 동의를 구해요.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을 죽여 마땅한 자들로 만들지 않을 정도의 용기가 우리에겐, 또 이 사회엔 없는 걸까요. 이 책이 묻는 질문이 이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겁먹은 개가 짖는다고 하죠. 우리 모두가 겁 먹은 개가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자 오늘은 이렇게 「7층」 애프터서비스와 「빨간약」까지 해서 두 작품 이야기를 연이어서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명백하게 정치적인 이야기를 정치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다르게 표현하려고 애를 써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언제부터 정치적이라는 말이 이다지도 욕설 같이 느껴졌을까요. 사실은 사람이 셋만 모여도 생기는 게 정치인데, 그걸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에 우리네 인생이 이렇게나 영향을 받는데. 어느 순간 어느 누군가들이 원하는 대로 제어당하고 있진 않았나, 그 사이에 망가뜨리지 말았어야 할 사회 구성원간의 존중을 망가뜨리고 말지 않았는가…… 그리고 너무나 간편하게 남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는가. 두 작품 통해서 반성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나 궁금하군요.

이번 주 이야기 여기서 마칩니다. 11회차에서 뵙겠습니다. 모두 만골만골한 한 주 보내십시오. 서찬휘였습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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