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즈 러브, 어디에서 보았니? _한국 BL 웹툰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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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BL+웹툰=?
남성 간의 성애를 여성이 소비하기 쉬운 형태로 제시하는 매체로서, 보이즈 러브는 아마도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성애 로맨스물 못지않게 대중적인 만화 장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BL 만화를 보고 있을까? 만약 여고를 나왔다면 학창 시절에 루비코믹스를 친구들끼리 돌려봤던 일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루비코믹스를 돌려보는 일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와 친구 외에 다른 경로는 없을까? 여고생이 아닌 다른 사람들(성인 여성, 그리고 나이를 불문하고 BL을 즐기는 일부 남성)이 어떻게 BL을 접하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몇 가지 방식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단행본을 구매한다든가 만화방에 수십 권의 BL 만화를 쌓아두고 보는 광경 못지않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은 바로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스캔 파일을 다운로드한 것이든 정식으로 서비스되는 유•무료 BL 웹툰이든 모니터 너머에 비치는 BL 만화를 탐닉하는 것은 매우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불법과 합법 여부를 불문하고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BL 만화는 일본에서 만들어져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다.

이 현상의 원인을 하나로 특정하긴 어렵겠지만 만화 산업의 측면에서 한국 출판 만화 시장의 규모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순정만화잡지를 표방했던 만화 잡지들이 대다수 폐간된 한국에서, 순정 만화와 공생 관계를 맺고 있었던 (예컨대 나예리, 박희정, 이정애, 이시영 등 한국형 BL 만화를 그렸던 작가들의 연재처를 생각해보라) BL 만화는 순정만화와 함께 연재 공간을 잃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적게나마 한국 BL 만화를 보고 있으며 더딘 속도지만 우리가 접하고 있는 한국 BL 만화의 숫자는 늘어가고 있다. 어떻게? 역시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하자면 답은 쉽게 나온다. 출판 만화가 독자들에게서 원치 않게 멀어진 반면, 웹툰은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네 생활에 전례없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 이러한 흐름에 한 축을 보태듯이 BL 만화 역시 웹툰으로 접하기 쉬워지는 추세다. 그렇다면 한국 BL 웹툰이라는 하위 장르가 만들어지고 보이는 방식은 어떤 그림을 그려내고 있을까?

 

아마추어 BL 웹툰과 프로 BL 웹툰
웹툰 자체가 무료로 제공되는 일이 일반적인 한국의 웹툰 시장이지만 의외로 무료 BL 웹툰을 대형포털에서 찾아보기 쉽지는 않다. 특히 필자와 같이 포털과 공식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정식 웹툰을 주로 둘러보는 독자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가장 쉽게 BL 웹툰을 무료로 접하는 경로 역시 대형포털 웹툰 페이지 한구석에 숨어있다. 제작자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업로드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네이버 도전만화와 다음 웹툰리그 페이지에는 적잖은 아마추어 BL 웹툰이 올라와 있다. 이런 작품에 달린 댓글의 숫자가 제법 될뿐더러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이런 아마추어 BL 웹툰을 추천하는 글 역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은 일정 수준 이상 충족돼 있음에도 네이버•다음에서 공식적으로 서비스하는 웹툰이 적은 이유는 BL 자체를 터부시하는 분위기 외에 뚜렷한 답을 찾기는 어려워보인다.

BL 자체를 ‘대형포털에서 서비스 하기에는’ 수준이 떨어지거나 문제가 있는 장르로 보는 시각, 혹은 그런 시각이 팽배해져 있다는 인식 때문에 굳이 피곤해질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양 사의 태도는 최근 공식 연재되고 있는 작품의 라인업만 보더라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일이다. 네이버•다음의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티테일(T-Tale)과 같은 특정 웹툰 서비스에 아마추어 BL 웹툰이 모이기도 하고, 봄툰•피너툰•이코믹스•코미코와 같은 신생 웹툰 서비스 업체 역시 몇몇 BL 웹툰을 공식적으로 서비스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 모두 규모나 파급력, 페이지뷰에 있어서 여전히 양대 포털에 비해 영세한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기묘한 풍경이 나타난다. BL 웹툰을 보고자 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들이 직접 연재처를 기웃거리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만화를 찾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시장의 규모와 무관하게 BL을 향한 욕망은 늘 주변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근래에 이러한 경향에 작은 틈이 생겼다. 레진코믹스의 등장과 함께.

 

레진코믹스 들여다보기
레진코믹스는 포털웹툰의 장점인 접근성과 시장성을 갖추고 있으며, 수익성을 보장하는 BL 웹툰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인기 작품을 광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출판 만화를 웹으로 서비스하는 형태가 아닌, 웹툰의 관례적인 세로 스크롤 형식을 고려해 그려진 BL 웹툰으로는 〈멈춰진 시간 속에서〉, 〈Go Bananas〉, 〈Violet〉, 〈씹어 삼키다〉, 〈극야〉, 〈도시야월기담〉, 〈메르헨〉, 〈소라의 눈〉, 〈은퇴한 히어로〉, 〈모멘텀〉, 〈핑크 토미〉, 〈30일의 당신에게〉, 〈구룡특급〉, 〈따라바람〉, 〈이해불능〉, 〈권태〉, 〈거짓말 같은 이야기〉등이 있다. 이외에도 〈쓰리 먼스〉, 〈건널목에서 만나요〉, 〈에브리 유 에브리 미〉 등 페이지 친화적으로 제작된 웹툰과, 일본에서 출판된 만화를 스캔해 웹으로 서비스하는 만화의 숫자를 합하면 레진에서 볼 수 있는 BL 만화의 숫자는 300여 작품에 달한다.

또한 레진은 다른 서비스 업체에서 연재됐던 BL 웹툰을 함께 서비스 한다. 학산문화사나 이코믹스 등에서 연재됐던 작품들(〈달콤한 남자〉, 〈연우〉 등), 예전에 출판되거나 서비스됐지만 더 이상 독자를 찾아가기 어려운 작품들(〈당신의 손을 잡아도 될까요〉, 〈피와 불의 노래〉), 불미스러운 일로 얼룩졌지만 도전적으로 앤솔로지 제작을 시도했던 오프닛의 〈블룸(BLoom) 〉 등이 이에 해당한다.

레진코믹스는 단순히 BL 웹툰을 그리는 프로작가를 양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경로에서 주목받았던 작품을 선정하여 배치하는 작업을 겸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BL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있다.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공급 채널을,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시각 자체가 매우 낙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 움직임은 되려 관점에 따라서 매우 미미한 떨림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레진에서 접할 수 있는 BL 만화의 숫자는 300여 작에 달하지만 그 중 250여 작 이상은 일본 단행본을 리퍼블리시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모아놓은 한국 BL 웹툰이 일본의 BL 단행본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느냐가 이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지에 대한 중요한 판별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 하필 한국의 BL 웹툰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그 움직임에 가장 끝에 서 있는 레진코믹스에서 우리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가?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가능성인가?

 

한국+BL+웹툰=!
웹툰이 출판 만화와 큰 변별점을 가질 수 있는지, 혹은 그것에 딸려오는 긍정적•부정적 효과는 무엇일지 논의하는 것은 또 다른 지면을 요하는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BL이라는 장르를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의 작품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면, 그리고 그 차이를 컷의 배치나 작화와 연관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서사의 전개나 해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면 이는 한국 BL 웹툰의 특수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수성을 살펴보기 위한 방편으로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되고 있는 네 개의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월요일에 연재되고 있는 〈극야〉, 〈씹어 삼키다〉, 열흘 연재 주기 작품으로 얼마 전에 완결된 〈권태〉, 목요일에 연재되고 있는 〈모멘텀〉, 이상 네 작품에서 우리는 크든 작든 일본 단행본 작품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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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소재의 다양성이 있다. 〈극야〉는 SF를 BL과 접목시킴으로써, 동성애 금지를 인간-기계 간 이종결연 금지라는 새로운 금지로 변환하고 있다. 〈씹어 삼키다〉의 경우 학원물과 동인지 색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삼각관계라는 고전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권태〉 역시 삼각관계를 다루지만 사실상 학창 시절부터 직장 생활로 이어지는 동성 커플의 관계의 위기와 회복을 그리고 있다. 단편 모음집인 〈모멘텀〉은 특정하긴 어렵지만 가장 최근에는 SM과 동성애를 섞어 새로운 형태의 욕망의 자취를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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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재들은 모두 서사나 주제의 층위와도 연결된다. 〈극야〉의 경우가 가장 명확한데, 동성애가 허용되더라도 안드로이드와의 사랑이 금지되어 두 개체 간의 사랑이 계속해서 장애물에 부딪히게 장면에서, 우리는 고전적인 야오이 작품에서 봤던 것과 같은 모티프를 만나게 된다. 〈모멘텀〉이 보여주는 기시감은 모티프보다는 SM이라는 소재에서 더욱 큰 공명을 자아낸다. 야오이가 장르로 정형화되기 시작할 때, 그 시작을 알렸던 하기오 모토의 〈토마의 심장〉이나〈잔혹한 신이 지배한다〉를 떠올릴 수 있다면 〈모멘텀〉이 보여주는 기시감을 소재와 연관짓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씹어 삼키다〉는 상대적으로 미묘한 지점에서 특이점을 드러낸다. 학원물이라는 요소 자체는 일본 BL 만화에서도 매우 흔한 소재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요즘 일본 BL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다. 주인공 민재는 폭력에도 불구하고 요한과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며, 학교라는 공간은 감시의 공간이 된다. 민재와 태화—두 주인공의 애정은 좁은 방이나 체육 창고, 옥상과 같은 닫힌 공간에서만 확인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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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닫힌 방이라는 모티프는 〈권태〉에 와서 다시 반복된다. 결국 이것들이 모두 모여 그려내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두 사람의 애정이 항상 금지되거나 제약받는 형태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항상 진지하며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현실 사회의 문제를 가볍든 무겁든, 매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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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한국의 BL 웹툰이 보여주는 새로움이란 완전히 처음 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있었던 모티프와 소재를 반복하며 지나간 흔적과 공명하고 있다. 이미 지나갔던 새로움이라는 이 역설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 방식 중 하나는, ‘지금’, ‘한국’이라는 시공간이 일본이 겪었던 시공간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히 ‘금지’된 관계라는 형태로 숨어들어, 이들 작품의 흐릿하거나 뚜렷한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장르의 공고한 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BL 웹툰은 일본의 BL 만화 시장의 지나온 시간과 공명한다. 이미 일본 만화는 BL이라는 장르가 그 장르 자체로 충분히 정형화된 패턴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많은 작품을 낳았으며, 지금도 수많은 BL 만화가 활발하게 그려지고 팔리고 읽힌다. 즉 일본 만화 시장은 현실을 레퍼런스 삼지 않아도 장르 내에서 확립된 스타일을 통해 충분히 ‘그럴듯한’ 이야기를 그릴 수 있다. 그것이 현실과 얼마나 정합되느냐 아니냐는 불문에 부쳐두고 말이다. 반면에 한국의 BL 웹툰은 장르 자체 내에 충분한 레퍼런스를 확립하지 못했기에, 여전히 현실 사회의 긴장감을 소환하지 않고서는 (혹은 적어도 약간이나마 의존하지 않고서는) 뚜렷하게 지속되는 갈등의 양상을 잡아내고 무대에 올리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BL에서의 코미디가 가능한지 따져본다면 보다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한국에서 〈과장님의 사랑〉과 같이 장르 자체의 규범을 패러디하는 작품을 그릴 수 있는가? 만약 그려낸다 하더라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읽힐 수 있는가? 읽힐 수 있다면 이는 순전히 우리가 함께 읽고 자란 일본 만화로부터 배운 규칙들일 터이다.

 

뒤집어진 현재
한국 BL 웹툰의 시간이 일본과 어긋나 있더라도, 이것이 한국 BL 웹툰 시장이 단순히 뒤쳐져 있으며 일본 시장에서의 흐름을 똑같이 반복할 것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어긋난 시간축, 도착된 현재를 살아가는 작가와 캐릭터, 배경이 그려내는 BL은 여전히 새롭다. 그것은 그것이 전에 없던 왜곡된 시간축 위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금지된 욕망을 좇는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고전적인 작품들을 통해 BL에 투영된 우리의 욕망을, 그러한 작품들을 그리고 읽고 있는 우리의 바람을 되돌아보게 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형 BL이 하나의 장르로 쌓여올려질지 아니면 다소 내부 순환적인 동인 및 성인동 문화에 정착하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이 순간 한국 BL 웹툰이 이전에는 없었던 가능성과 함께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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