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cast011

 

11회 핵심 요약

 

10월 2주차 베스트셀러 차트
10월 1,2주차

만골남의 선택
프레데릭 페테르스의 「푸른 알약」

이벤트 참여(문자)
010-3001-7506

팟빵 링크: http://www.podbbang.com/ch/9914

아이튠즈 링크:  https://itunes.apple.com/kr/podcast/manhwagollajuneun-namja-mangolnam/id1033727933?mt=2

 

방송 전문 보기

만골남011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
안녕하세요,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서찬휘입니다. 열한 번째 만골남 M씨, 지난 시간에도 말했지만 이제 반환점을 돌아서 전체를 마무리 지어야 할 시간이 더 가까워져 오는데요. 아무쪼록 잘 마무리지을 수 있도록 많은 성원 바랍니다. 팟빵에서 주목할 만한 10월 팟캐스트에 선정된 이후로 순위가 상당히 높아졌더라고요. 조금 더 분발하겠습니다. 20회 이후의 계획은 아직 잡혀 있지 않습니다. 적극적인 스폰싱이 들어온다면 그 이후 기획이 가능해질 텐데 아직은 쩜쩜쩜이네요. 어쨌든 정해진 분량만큼은 무사히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자 지난 시간에- 여성 혐오, 여성 차별, 여성 인권 이슈와 관련한 작품이죠. 2회차 소개작 「7층」에 관한 애프터 서비스를 진행했는데요. 방송 중에 언급했던 내용 가운데 저에게 “여성들이 남성들을 혐오하고 있고, 이제 곧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증오범죄를 저지를 것이다”라며 “막아야 한다”던 사람이 있었다 했죠. 제가 만골남 M씨의 2회차 방송을 들어보라 했을 때엔 생각과 거리가 너무 멀 것이기 때문에 듣지 않겠다고 분연히 말하긴 했습니다만, 지난 10회차에서 그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소개됐으니 글쎄 어땠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다만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이후 이런 말을 남기긴 했더라고요.

“서찬휘씨는 남자면서 페미니스트인 사람인데, 사실 남자이며 페미니스트인 사람이 생각보다 꽤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저 아저씨가 아니 다른 남자 페미니스트가 간과하는게… 여자 페미니스트들은 남자라면 같은 페미니스트라도 믿지 않는다”

아 네,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데, 저는 이 방송을 들으시는 남성분들께서는 다른 건 둘째치고 이런 식의 무지는 보이지 않으셔서 아무쪼록 평화로운 선진 사회 이룩에 이바지해주시길 강력히 기원합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도 여성이 무조건 남성에게 핍박받고 있다고만 설파하는 종교도 아니고, 약자를 향한 차별과 인권 침해에 반대하는 주의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약자와 강자는, 당연히 물리적으로도 마찬가지지만 일종의 사회적 권력 관계나 인적 비율에 따라 규정되는 부분이 큽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나보다 약한’이라는 게 기준이 되기도 하죠. 매우 빈번하게요. 단적으로 어떤 사람이 여성에 관해 어떤 관점을 보이는가는 곧바로 성 소수자, 장애인, 유색인 외국인 노동자 등을 어떻게 보는가로 바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 관점은 또 곧바로 특정 직업, 특정 지역을 어찌 보는가로도 연결되지요. 핵심은 사람이 어느 사람을 어떻게 보는가-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지점에서 차별을 용인하는 시선을 지니고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행동할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안 해도 저런 사람에겐 이래도 된다-는 최소한 현대 사회에 민주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관점이죠. 페미니즘은 ‘약자’를 넘어서 사람 자체에 관한 관점에 관해 끊임없이 점검할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단지 남성을 적으로 돌리면 페미니스트인 게 아니고요. 지난 시간에도 말했지만 등신총량의 법칙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라서 페미니스트이든 아니든 애먼 입장으로 민폐 끼치는 사람은 일정 비율로 섞여 있게 마련입니다. 바꿔 이야기하면 남성들은 딱히 등신이 아닐 것 같은 사람도 관성적으로 여성들에게 피해를 입혀 왔기 때문에 더 문제고요. 폐를 끼치는 건 등신들 정도까지로 한정시키고, 아닌 사람은 그러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하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사람처럼 “페미니스트’와 ‘여성’을 분리시켜서 “걔네는 네가 아무리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안 믿을 거야” 같은 말을 하는 건 확실한 민폐입니다. 심지어 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말한 적도 없습니다. 애초에 제가 함부로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있다, 여성을 이해한다고 여기고 있다 자만하지 않기 위해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를 SNS에서 달아달라는 제안에 응하지 않았거든요. 그저, 끊임없이 시선을 점검하고 조심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남성으로서 여성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다른 사회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로 연결된다고 했는데, 요즘은 “저놈들을 우리 사회 구성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들이 워낙에 횡행하는 마당이죠. 굉장히 심각하게 우려스러운데, 저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하고 있을까는 정말 훤하게 보이는 겁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런 게 문제라고 말해온 사람들입니다. 여성의 참정권을 예로 들자면, 오랜 시간에 걸쳐 매우 지리멸렬하고 괴롭고 심지어는 과격하기도 한 투쟁을 거쳐서 가까스로 얻어낸 권리입니다. 한국에서는 이제서야 좀 불편한 정도 소리들이 나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앞에다 대고 평화적이고 온건한 방식을 쓰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고 해 봐야 애먼 소리일 뿐이고요. 물론 일면 불편하죠. 불편합니다. 때론 왜 저렇게까지- 싶은 부분이 아주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놔둘 용기조차 없다면 겁먹은 개일 뿐입니다. 남성 여러분. 성기 권력의 수호자 여러분. 겁 먹은 개 꼴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7층」 다시 한 번 추천하는 바고요.

거북이 님이 지난 회를 듣고 덧글을 달아주셨는데요. 그 덧글을 소개하고, 베스트셀러 차트로 넘어가지요.

“항상 재밌게 듣고 있습니다 짧은게 아쉬워서 2화정도 모이면 듣고 있네요”

“7층 AS를 들었습니다. 다른 데에서 여성혐오에 대해 말할 때는 분노에만 차서 그 기조만 유지했습니다. 현재 진행형인 문제니 어찌 시원하게 말을 끝낼 수 없겠죠. 근데 분노를 담아 강하게 말씀하시니 좀 시원하네요. 역차별이네 뭐네 하는 꼴보면 그들과 동성으로서 부끄럽게만 느껴집니다”

저도 낯부끄럽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전하는 말씀 들으시고 지난 주 베스트셀러 차트 소개 받으시겠습니다.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는 만화 전문 비평 웹진 criticM에서 제작합니다. c r i t i c m .com 크리틱엠.

 

만화 도서 베스트셀러 차트 10 (2015년 10월 2째 주)

10월 1,2주차

지난 한 주 많이 팔린 만화책들이 뭔지 살펴 보는 지난주 만화 베스트셀러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소개하는 만화 도서 베스트셀러 차트는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차트 가운데 만화 부문 50위까지를 기준으로 삼아 산출해낸 한국 최초 통합 만화 단행본 판매 차트입니다. 이번엔 10월 둘째 주차 살펴 봅니다. 방송 녹음하는 게 10월 16일인데 시간 참 빨리 간다고밖엔 못하겠네요. 이게 웬 상황인지!

10위부터 살펴 볼까요. 10위는 원펀맨 1권. ONE과 무라타 유스케. 9위는 지 디펜드 44권. 모리모토 슈우. 8위. 네. 다시 진입했습니다. 슬램덩크 오리지널 박스판 1~5권 세트. 이노우에 타케히코. 7위.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오카노 유이치. 6위. 원피스 78권. 이제 좀 내려가나요. 오다 에이이치로.

5위. 아오하라이드 12권. 사키사카 이오. 4위. 바라카몬 11권. 요시노 사츠키. 3위는 진격의 거인 17권. 이사야마 하지메. 2위. 심야식당 15권. 아베 야로. 그리고 1위가 원펀맨 4권입니다. ONE과 무라타 유스케.

일단 원펀맨 1권이 출간한지 거의 석달만에 다시 10위권에 올랐습니다. 한동안 4권이 10위권 터줏대감 노릇을 하더니 1권까지 끌어들여 왔군요. 슬램덩크 오리지널 박스판은 지난주 잠시 10위권 바깥으로 물러났다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31권까지 뽑아내려면 아직 다섯 번 턴 정도는 더 남았을 테니 구입하실 분들은 지갑에 총탄 좀 넉넉히 장전해두셔야겠습니다. 4위에 오른 바라카몬 11권의 스핀오프인 한다군은 10위권 바깥으로 밀려났네요.

저 개인적으로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라는 작품에 눈이 가는데요. 환갑을 넘긴 대머리 아들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만화입니다. 이런 소재가 작품에 등장한다는 건 고령화 문제가 심해지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요 몇 년 사이에 웹툰에 혼인 이야기에 육아 이야기가 등장한 건 웹툰 작가들의 연령대가 그 소재를 다룰 지점까지 왔기 때문인데, 이제 그 다음으로 건드릴 만한 주제가 바로 이 부모 세대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 또는 노인 치매를 비롯한 병이나 세대 갈등, 또는 복지 이슈, 장례 문제이리라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다 보면 자연스레 이 문제가 내 문제가 되는 시기가 오게 마련이거든요. 마침 노인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우리 부모님」이란 스웨덴 만화가 있습니다. 조만간 이 작품도 만골남 M씨에서 소개해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인들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윤태호 작가님의 「로망스」 같은 작품도 있는데요. 고령화 하면 우리나라도 만만찮으니 조만간 조금 더 본격적으로 노인들의 현실이 묻어나는 작품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누가 어떻게 접근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본격적이면서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지난 주 만화 베스트셀러였습니다.

 

만골남의 선택
만골남이 이번에 골라온 만화는- 프레데릭 페테르스의 「푸른 알약」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만골남 M씨에서는 가급적 한국-일본 작품과, 그 사이에 한국과 일본 양쪽에 해당하지 않는 나라의 만화를 소개하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번 작품은 스위스 작품이네요. 2001년 작품이니까 어언 14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에는 2007년에 세미콜론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출간했어요.

작품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주인공 프레데릭은 열아홉 살 때 친구네에서 열린 파티에서 유난히 눈길이 가는 여성을 만납니다. 여성의 이름은 카티. 수영장에 뛰어든 카티는 아랫도리는 수영복이지만 남자애들도 있는 파티에서 흰 티셔츠 안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을 만큼 대담했습니다. 프레데릭은 큰 가슴이 고스란히 비치는 옷차림으로 수영장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카티의 모습을 보며 저런 모습으로도 당당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 여자는 대체 어떤 부류일까-라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프레데릭이 그렇게 첫 눈에 호감을 느꼈던 카티는 금새 다른 남자와 파티에서 사라졌습니다. 이후 일 년에 한 번 정도 우연히 마주치는 정도였던 카티는, 6년여만에 아이 엄마가 되어 다시 만나게 됩니다. 카티는 예의 쾌활함은 잘 보이지 않고 피로에 찌든 얼굴로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말연시 파티 속에서는 혼자 덩그러니, 마치 표류하는 뗏목 위에 앉아 있었죠. 카티는 부부싸움 끝에 이혼을 결심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카티에게 프레데릭은 말을 붙이고, 이윽고 여러 대화 속에서 둘은 점차 가까워집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만남을 반복하며 둘은 서로에게 호감이 생겼고, 다 잘 되는 듯했죠. 하지만 카티는, 프레데릭의 집에서 오봇하게 식사를 하던 어느날 마냥 좋을 것만 같았던 분위기 속에 한 가지 고백을 던집니다.

“프레드, 난 에이즈 환자에요. 양성 보균자죠. 내 아들도요.”

…….

네. 작품 소개를 들으시면서 눈치를 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이 작품 「푸른 알약」은 작가인 프레데릭 페테르스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작품 속 주인공인 ‘프레데릭’, 애칭 프레드는 작가 자신이고, 카티와 그 아들도 실제 인물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나는 에이즈 환자라는 고백을 해 왔다’가 굉장히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기도 하죠.

에이즈라는 병은 어쨌든 현재로서는 완치가 불가능한 병입니다. 바이러스 진행을 억제하는 약으로 조절할 수 있을 뿐이죠. 작품의 제목인 「푸른 알약」은 바로 이렇게 에이즈 보균자들이 늘 먹어야만 하는 약을 말합니다. 이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자 평생 짊어져야 할 고통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라고도 하죠.

물론 에이즈는 예전에 비해선 ‘걸리면 얼마 안 가 죽는다’ 정도까진 아니게 됐는데, 그럼에도 어쨌든 에이즈는 굉장히 큰 압박입니다. 완치되지 않는 병을 몸안에 지니고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이 병은, 전염 요인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잇는 게 섹스입니다. 네. 이 사실은 에이즈 보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받아야 할 시선이 어떤 종류의 것일지 알 수 있게 해 주죠. 환자에겐 그게 치사율만큼이나 더 공포스러운 것일 수 있습니다. ‘아랫도리 잘못 놀리고 다닌 대가’ ‘아무하고나 섹스한 대가’ ‘사창가에 다녔을 것’ ‘동성애자겠구나’ 등등. 그리고 여성이라면,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여전히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딱지가 붙을 때 돌아올 시선이 남성보다 더 악랄합니다. 물론 섹스를 통해 전염되는 경우가 많고 상당한 경우가 보균이 확인되지 않은 상대와의 섹스가 원인일 수 있지만 문란한 섹스인지 아닌지를 알 방법은 없는 이상 아무에게나 어머 문란한 놈, 문란한 년 이래선 안 되는 거죠. 근데 어디 그런가요?

섹스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에이즈라고 하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잘못된 지식이나 오해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완치가 불가능한 무서운 병이면서도 이만큼 많이들 무지한 병도 드물 듯하죠. 실제로 성적 접촉이나 상처에 환자의 체액이 묻는다거나 하는 정도가 아니면 공기 전염, 가벼운 키스, 같은 목욕탕 이용 정도로 감염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염 위험성이 있다는 둥 하며 호들갑을 떠는 경우도 많죠. 그렇기에 에이즈 환자임을 고백한 카티가, 방금 전까지 당신이 좋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으면서도 황급히 자리를 뜨려 한 걸겁니다. 카티는 프레데릭에게 이렇게 말하죠. “이제 난 가봐야겠어요, 당신도 그걸 원할 테고”

많은 경우, 내가 에이즈 환자다 하면 돌아올 반응이란 건 충격에 어쩔 줄 몰라하다가 대충 얼버무리고 도망가거나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돌아서거나 등의 행동을 할 겁니다. 아, 더러운 걸 봤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화낸다는 선택지도 있군요. 나쁜 놈 확정이겠지만요. 카티는 그 모든 걸 각오하고 말했고, 상대인 프레데릭에게 온 약간의 충격을 확인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상처가 될 말을 던진 겁니다. 나 이래. 자, 너 이제 내가 가길 원하지? 욕이 안 나온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라며 마음을 다자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프레데릭은, 대부분이 선택하지 않을 그 선택지 쪽으로 과감히 들어섭니다. 일말의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까지 끌어안고서 말입니다.

이 작품 「푸른 알약」은 이렇게, 현재로서는 어쨌든 ‘불치병’에 가까운 에이즈를 끌어안은 채 ‘그래도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두 연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이즈 환자인 연인과 함께 에이즈에 맞서 싸우는 투병기일까요? 아니면 에이즈 환자의 현실에 관한 고발 만화일까요? 「푸른 알약」에 주목할 만한 이유는, 그렇게 거대한 현실 그 자체에 완전히 매몰되기보다 완전히, 아주 지극히, 너무나 지극히 평범한 둘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작품은 매력적인 소녀-라기엔 처음 만났을 때도 카티가 스물한 살이었으니까 소녀는 아니지만, 어쨌든 눈에 확 들어올만큼 매력을 느꼈던 두 살 연상 여성과 6년 만에 재회를 하고, 그 마음 그대로 호감을 이어가 연인이 되고 싶어했고, 연인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과정 그대로를 담고 있습니다. 다만 둘 사이에 에이즈가 있을 뿐입니다. 최소한 그 둘 사이에는요.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반드시 섹스할 때 콘돔을 껴야 한다는 점을 비롯해 반드시 감내해야 할 것들이 생긴 것이죠. 단순히 섹스 뿐 아니라 억제하고 있을 뿐 병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는 신체적 고통과 상시적인 두려움, 자기 혐오와 죄책감까지, 그리고 남이 던질 온갖 편견에 이르기까지. 연인이 겪어야 할 모든 걸 함께 안고 가야 하는 겁니다. 작품은 이 두 남녀가 겪는 모든 과정을 그럴싸한 비극 같은 걸로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으로 에이즈란 불치병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서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거대한 제약이 있음으로 해서, 그 모든 불편함과 두려움과 공포를 끌어안고서도 함께 하고 싶고 끝없이 서로를 갈구하고 싶은 감정이 바로 사랑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사랑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이즈가 불치병이다 보니, 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한층 더 강렬한 장치로 만들어줍니다. 그렇다고 사랑 찬가, 사랑의 힘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어요!에서 머무르지도 않습니다. 과정에서 겪는 사건 사고는 그야말로 매우 버라이어티합니다. 이 연인이 에이즈로 말미암아 설정된, 주어진 한계 안에서 자유-라고 하니까 마치 박흥용 선생님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도 생각나긴 하는데요. 나중에 그 작품도 한 번 읽어보세요 꼭. 여하간 이 둘이 그 한계 속에서 자유로이 사랑을 나눌 수 있게끔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만 해도 살 떨립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죠. 섹스하다가 콘돔이 터져요. 난리가 나죠. 당연히 부랴부랴 병원에 갑니다. 하지만 의사라고 하는 인물들에 관해 어째서인지 불신의 벽이 높았던 프레데릭을 탄복시킬만큼 남을 안심시키는 데 재주가 있던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여러 정황을 살펴준 후 당신이 지금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은 문 밖에서 코뿔소와 마주칠 확률과 같다고 말해주죠. 만약 양성이어도 초기라면 바이러스를 8할은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면서 “그렇다면 이제 에이즈의 세계에 입문하신 걸 환영한다”고까지 말해주죠. 다행히도 프레데릭에겐 이상이 없습니다.

의사는 아직 징후가 크지 않은 카티에게 본격적인 치료를 권하기도 합니다. 프레데릭은 “카티는 건강하다. 지금 치료를 시작하면 섹스는 불가능하다는 얘기와 다름없다”라고 하는데, 의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마치 격랑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 홀로, 그리고 이젠 같이 뗏목에 올라 있는 듯하던 프레데릭과 카티는 재앙 같은 한계 안에서 함께 하는 법과 무엇보다도 사람이 살고 보는 게 우선이라는 가치를 탑재하고 나면서 심적인 안정을 찾아갑니다. 그것을 지표로 삼아가기 시작한 것이죠. 남녀 관계란 그저 육체만을 갈구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둘의 선택은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에게 관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이 대목에서 작품은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비록 평생 콘돔을 써야 하고, 초조해하고 고통스러워해야 하는 나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모두를 짊어진 채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끔찍한 병과 자기 자신들의 고민과 걱정을 극복해가며 살아갑니다. 맞서기보다 끌어안은 채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눈물을 억지로 끌어내지도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재앙 같은 현실과 맞닥뜨리고 그 앞에서 허둥대고 절망하면서도 함께 살아가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일상성이 이 작품이 지닌 강점입니다. 주제에 경도되어 목소리 높여 에이즈 차별 반대 같은 소리를 외쳤다면 오히려 이입이 쉽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그 잔잔하고 담담한 일상성이 오히려 큰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힘을 보여주네요.

에이즈 환자임을 밝힌 이와 연인이 되겠다고 하는 건, 현실에서 대부분은 선택하지 않을 선택지일 가능성이 높고 사실 그걸 뭐라 하긴 어려울겁니다. 심지어 카티는 애딸린 엄마기도 하니까요. 단순히 이 사람은 이렇게 선택했으니 숭고하고, 현실은 다 그렇지 못해. 그렇게 받아들일 건 아닐 겁니다. 다만 프레데릭은 그 속에서 애먼 편견과 차별의식을 드러내며 도망치진 않았습니다. 두려움이 없지 않음에도 카티와 그 아들을 끌어안고, 책임감 있게, 꾸준히 거리를 좁히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죠. 이 작품이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저는 언젠가 봤던 「필라델피아」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1993년 영화인데, 에이즈에 걸린 게이 변호사가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하자 회사와 법정투쟁을 벌여 승리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동성애도 에이즈도 별도로 다뤄도 한도 없는 주제긴 하겠습니다만, 양쪽 모두 폭력적인 편견이 상존하는 주제기도 합니다. 「푸른 알약」과는 또 다르게 에이즈 환자로서 세상의 한 일면에 부딪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톰 행크스의 열연이 돋보이니 한 번 찾아 보심도 좋을 것 같아요. 방법과 방향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이죠.

「푸른 알약」은 제가 갖고 있는 책이 2007년판인데, 2014년에 증보판이 나왔습니다. 증보판은 아직 못 사 봤는데 표지가 좀 달라졌습니다. 둘 다 좀 더 나이를 먹었고 조금 더 편안해 보이는 표정이에요. 출판사 자료에 따르면 작가가 2001년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둘이 다졌던 각오, 그 사이에 다 자란 아들과 새로 태어난 둘 사이의 딸아이의 인터뷰가 만화로 실려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딸아이는 에이즈 보균자가 아니래요. 그 소식을 들으면서 괜히 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먼나라에 있는 사람들에게지만 그저 축하하고 싶네요.

그럼 오늘 순서 여기서 모두 마칩니다. 모두 만골만골한 한 주 보내십시오. 서찬휘였습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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