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맨>_ 프랑스 작가, 망가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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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앙 비베스’는 <폴리나>, <내 눈 안의 너>등을 내놓은 프랑스의 대표 작가다. ‘비베스’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그래픽 노블’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최근 의아스럽게도 <나루토>를 오마주한 <라스트 맨>이라는 작품에 참여했다. 다시 말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그래픽 노블 작가가 일본의 가장 유명한 소년 만화 중 하나인 <나루토>를 참고해 일본식 만화를 만든 것이다.

먼저 <라스트 맨> 책의 겉모습을 보자. 일반적으로 그래픽 노블이 공유하고 있는 두꺼운 하드 커버와 고급 종이에 채색된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일본 만화처럼 얇은 소프트 커버와 흑백톤의 그림이 있다. 그리고 책 크기 또한 그래픽 노블과 달리 한 손에 잡히는 아담한 사이즈다. 책의 물질성으로만 봤을 때 완벽한 일본 만화의 형태를 갖췄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책을 펼쳐 본격적으로 <라스트 맨>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면, 곧 유럽 만화와 일본 만화가 뒤섞인 기묘한 풍경에 직면하게 된다.

 

나루토 표지

 

만화는 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인 역사 속에서 형성된다. ‘표현의 방법’ 역시 항상 그 지역에 따라 규정된다. 이런 점에서 <라스트 맨>이 나루토의 오마주를 자처하고, 일본 만화를 지향한다 해도, 이 작품이 일본 만화를 온전히 재현할 수 없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정 문화가 국경을 넘어섰을 때, 그 문화는 원래 문맥에서 ‘탈각화’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기존 문화와 얽히고, 섞이면서 ‘문화적 혼종성’을 발생시킨다. 결국 <라스트 맨>을 읽는다는 것은 서양 만화가 일본 만화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물론 <라스트 맨> 한 작품의 분석으로 서양 만화와 일본 만화의 혼종성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글에서는 우선적으로 <나루토>와 <라스트 맨>의 비교를 통해, 소박하게나마 각국 만화의 뒤섞임 현상을 드러내 보려 한다.

 

또 다른 형태의 소년 만화
<라스트 맨>의 배경은 왕과 귀족 그리고 성이 존재하는 중세 시대와 ‘오토바이’같은 현대적 소재가 결합된 가상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왕궁에서 후원하는 무술 대회가 열린다. 여덟 살 소년인 주인공 ‘아드리앙’ 역시 이 무술대회에 참가하려 한다. 하지만 ‘아드리앙’은 2인 1조의 대회 규정 때문에 무술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상황에 처한다. 이때 사실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리샤르’가 ‘아드리앙’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 둘은 곧 팀을 이루고, 가까스로 무술 대회에 등록한다.

주인공인 소년. 무술 대회 우승의 꿈.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결. <라스트 맨>의 초반부는 전통적인 소년 만화의 설정을 보인다. 하지만 <라스트 맨>은 이 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소년 만화 설정에서 서서히 이탈해가기 시작한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이야기를 움직이는 ‘인물’의 측면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우선 주인공 소년 ‘아드리앙’의 동료 ‘리샤르’를 보자. 여기서 ‘리샤르’는 소년 만화의 관점에서 매우 이질적이 인물이다. 그는 길고 짙은 구레나룻과 프로 레슬러처럼 우람한 근육을 가지고 있는 사내다. 또한 그는 무술 대회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일 만큼, 전투 기술의 측면에서는 이미 완성된 존재다.

 

리샤르마샤르

 

이야기의 또 다른 중심인물인 주인공의 어머니 ‘마리안’ 역시 소년 만화의 관점에서 낯선 인물이다. ‘마리안’은 늘씬한 몸매에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성이다. 게다가 ‘마리안’은 소년 만화에서 발생하지 않을 사건인 ‘리샤드’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이 둘의 관계는 이후 ‘리샤르’가 말없이 사라졌을 때, ‘마리안’이 ‘리샤르’를 찾으러 그녀의 아들 ‘아드리앙’과 함께 마을을 떠나는 계기, 즉 모험의 계기가 된다. 이 같이 <라스트 맨> 이야기의 중심은 어린 소년 ‘아드리앙’이 아니다. 그는 무술 대회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며, 단지 팀의 구성원으로서 기능할 뿐이다. 또한 모험 역시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머니 ‘마리안’의 애정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전개된 이야기는 서사 이론의 측면에서 보면 매끄럽지 못하다. 주인공을 소년으로 내세웠지만, 그 소년은 아직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모험이란 결여의 회복을 위해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다. ‘리샤르’와 ‘마리안’의 경우 그들의 모험의 목적은 명확하다. 하지만 주인공 ‘아드리앙’의 경우 내면의 결여가 보이지 않으며, 그래서 여행의 목적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까지 어른들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 아이일 뿐이다.

<라스트 맨>은 소년 만화에서 벗어나 있다. 하지만 <라스트 맨>이 반드시 소년 만화의 전형을 따를 필요는 없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라스트 맨>의 소년 만화에 대한 해석이다. 주인공 ‘아드리앙’은 이 후 이야기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속 소년이 그렇듯, 그는 제한된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결국 성장할 것이다. 격투대회의 첫 번째 승리 경험처럼. 이 같은 소년의 성장은 일본 소년 만화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차이는 기존 일본만화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소년 만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유럽만화가 그려낸 액션 장면
앞의 논의에서 ‘소년 만화’ 즉 내용적인 측면에서 <라스트 맨>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일본 만화의 ‘작화’ 즉 표현적인 측면에서 <라스트 맨>을 살펴보겠다. 유럽 만화 ‘그래픽 노블’과 일본 만화 ‘망가’의 표현 양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즉, 프랑스 작가가 재현하는 일본식 만화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스트 맨>의 제작자 역시 이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보다 일본적인 만화를 만들기 위해 일본인 ‘히토미’를 초청한다. 그녀는 <라스트맨> 제작자에게 일본 만화 연출을 가르쳐주고, 특히 그림 콘티 작업에 참여해 많은 도움을 준다. 그 결과 <라스트맨>은 일본 만화에 가까운 유럽 만화가 된다.

 

히토미
일본에서 초청되어 온 ‘히토미’

 

<라스트 맨>에는 분명히 일본 만화 스타일 드러난다. 하지만 일본 만화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는 여전히 유럽 만화 관습이 완강히 버티고 있다. <라스트 맨>에서는 기본적으로 균등한 크기의 칸 배열이 지배적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선의 사용, 칸 분할 연출 등은 여전히 유럽 만화 표현이 강하게 배어있다.

 

그림 1

 

<라스트 맨>의 이미지를 보자. 이 장면에서는 일본 만화의 특성 중 하나인 ‘칸 분할’이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라스트 맨>은 일본 만화와 동일한 연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재현되는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라스트 맨>은 ‘시간을 잘라내어 이어붙이기’ 방식이 일본 만화에 비해 정교하지 못하다. 각 장면들은 부드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뚝뚝 끊긴다. 작가는 일본 만화의 칸 분할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련의 연속된 움직임들을 어떻게 분할하고 배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익숙지 않다.

다음으로 <라스트 맨>의 클로즈업 방식이다. 클로즈업은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인물의 감정이나 내면을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나루토>의 ‘시즈네’의 표정을 보자. 그녀의 클로즈업된 표정에서는 ‘오로치마루’에 대한 적의와 증오가 분명하게 표출된다. 반면 <라스트 맨>에서 주인공과 주인공 어머니의 클로즈업은 기적 같은 승리에 대한 ‘놀람’과 ‘기쁨’의 감정이 생생히 재현되지 못하고 있다.

 

시즈네

그림 2

 

두 만화의 클로즈업 장면의 차이는 극명하다. 이 차이의 원인은 우선 클로즈업 장면 크기에 기인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라스트 맨>의 ‘인물 표정 연출’과 ‘클로즈업 장면의 위치’가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기에는 섬세하지 못하다. <나루토>의 경우 그림자와 함께 ‘시즈네’의 눈을 과장되게 표현했으며, 또한 클로즈업 장면이 시퀀스를 ‘확 휘어잡는’ 내용이 필요한 페이지 상단에 위치해 있다.

 

01
액션 비교 (1)

 

02
액션 비교 (2)

 

마지막으로, <나루토>와 <라스트 맨>의 액션 장면을 비교해보자. <나루토>의 액션 장면의 경우 속도감과 역동성이 돋보이는 반면, <라스트 맨>의 액션 장면은 마치 정지된 화면이 차례로 나열된 것 같다. <라스트 맨>이 망가식 칸 연출의 불구하고 생동감을 주지 못하는 원인은 속도감을 표현하는 선의 사용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단 이미지에서 나타나듯, 두 작품에서 사용된 선의 차이는 현격하다. <나루토>의 닌자의 움직임에는 속도감을 표현하는 ‘속도선’과, 이동 경로를 단순화 시킨 ‘동작선’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또한 충격받거나 격돌할 때의 느낌을 표현하는 선과 효과음 역시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 <라스트 맨>에서는 앞으로 뛰쳐나가는 장면을 포함해 대부분의 장면이 속도선을 사용하지 않아, 액션 장면이 동적이라기보다 정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타격감에 대한 표현이 부재하며, ‘타악’이라는 효과음 역시 나루토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효과음에 비해 지나치게 단조롭다.

 

유럽 만화와 일본 만화의 혼종성
<라스트 맨>은 일본 만화를 지향한 만화다. 하지만 프랑스 만화가 일본 만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여기서 <라스트 맨>의 ‘낯섦’을 일본 만화의 미숙한 재현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점이라기보다, 유럽 만화와 일본 만화와의 거리, 그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두 만화 간의 섞임 현상, 즉 ‘혼종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모험 2

모험 1
모험을 떠나는 ‘아드리앙’과 ‘마리안’, 그러나 능동적인 쪽은 소년 아드리앙이 아닌 어머니 마리안이다

 

그렇다면 <라스트 맨>의 ‘혼종성’은 어떠한 요소들에 영향을 받았을까? 먼저 서사의 측면을 살펴보자. <라스트 맨>은 주인공 소년 아드리앙 대신 성인 ‘리샤드’와 ‘마리안’이 서사의 중심축을 이룬다. 이것은 만화를 ‘9의 예술’이라는 예칭을 부여한 유럽 만화의 문화적 성향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유럽에서는 1960년대 히피 문화와 베트남 반전운동의 영향으로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이 급진적인 불꽃은 1970년대 ‘성인 만화’의 유행으로 이어졌고, 이 후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만화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이때 성인 만화의 내용과 그림들은 철저히 성인 독자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고, 작품 속 주인공 역시 자연스레 ‘성인’이 다수를 이루게 된다. 결국 이러한 성인 만화에 대한 선호가 <라스트 맨>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아드리앙’은 주인공의 자리를 어른들에게 내주고, <라스트 맨>은 일본 소년 만화와는 또 다른 소년 만화가 되었다.

다음으로 작화 및 칸 연출 등 표현의 측면이다. <라스트 맨>에서는 일본 만화 표현이 작품과 완전히 결합되지 못하고 때로는 대치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 같은 상황은 <라스트 맨>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일본 만화 연출을 가르치는 ‘오쓰카 에이지’ 역시 이 문제에 주목한다. 그는 유럽 독자들이 다른 아시아 독자들이 비해, 일본 만화를 그릴 때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서구 만화와 일본 만화의 칸 해석 방식의 차이’로 지적하면서, “전자의 경우 칸을 ‘액자 안의 그림 한 장’으로 보는 반면, 후자는 칸을 ‘카메라로 잡아낸 영화의 숏’으로 이해한다.”라고 언급한다.

만화 도입은 선형적이고 일반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변증법적인 밀고, 당기는 현상이다. <라스트 맨> 역시 일본식 만화를 그려냈지만, 그 결과물은 유럽 만화도 일본 만화도 아닌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만화의 ‘혼종성은 새로운 만화 형태의 실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특히 ’웹툰‘이라는 매체를 통해, 만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해보는 한국 만화 현실에서 특히 그렇다. 게다가 해외에서 한국 만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문화 간 교류가 증가하는 최근 상황 역시 각국의 만화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새로운 만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든, 아니면 한국 만화가 해외에 진출하든 간에, 이제는 한국 만화를 넘어 세계 만화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해져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