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쉽게 떠날 수 없는 이유_ <토성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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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의 일본 SF 다이어리

ㅡ 이와오카 히사에의 <토성맨션>

 

<토성맨션>은 토성에 있는 우주식민지가 아니다. 토성의 테처럼 지구를 둘러싼 훌라후프 모양의 거대한 인공 구조체이다. 지구 표면에서 35km 상공에 떠 있는 것인데, 사실 ‘우주식민지’라고 하기는 좀 어중간하다. 일단 ‘우주’라고 하면 최소한 지구에서 80~100km는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어정쩡한 위치는 그대로 토성맨션에서의 삶을 은유하는 레토릭처럼 읽힌다. 지구도 아니고 우주도 아닌, 불안정하고 붕 뜬 세계에서 산다는 것. 지구를 떠났지만 여전히 지구처럼 비루한 삶들이 이어지고 있는 곳. 토성맨션은 우주식민지의 삶 역시 ‘인생은 실전’임을 잘 그린 수작이다.

지구 전체가 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아무도 살지 못하는 미래. 주인공 미쓰는 토성맨션에서 나고 자랐다. 토성맨션은 현실의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유한 부의 수준에 따라 상, 중, 하층으로 거주구역이 나뉘어 있고 서로간의 왕래도 별로 없다. 미쓰는 하층민이며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창문닦이를 직업으로 삼게 된다. 그의 아버지도 창문을 닦다가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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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식민지의 창문닦이란 아마 지구의 빌딩 유리닦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일 것이다. 토성맨션에서 3D업종으로 따지면 세 손가락 안에 들지도 모른다. 영하 수십 도의 공간에서 가느다란 생명선 하나에만 매달려 우주식민지의 외벽 창을 닦아야 한다. 거주 구역민의 의뢰를 받아 창문닦이 조합에서 배정해 주는 대로 동료와 팀을 이루어 작업을 한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허공에서 발밑으로 거대한 식민지 구조물, 그리고 그 아래 거대한 지구를 접하며 창을 닦는 생활. 그 누가 우주식민지에서 이런 일상을 꿈꾸겠는가? 그래서일까. 문득 미쓰는 생각한다.

“아버지도 창을 닦다가 실종됐는데, 어쩌면 발아래 펼쳐져 있는 ‘신세계’인 지구로 내려간 것은 아닐까? 나도… 가 볼까?”

청년은 무모하거나 어리석지 않다.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이웃과 동료들 중에 같은 꿈을 꾸는 사람, 그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결말 그 자체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만 이 작품의 고갱이는 결말을 향한 드라마의 전개 과정에 있다.

주인공 미쓰의 선택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생활이 힘들긴 하나 이웃들과 인간적인 친교를 단단히 쌓았고, 창문닦이라는 자신의 직업에도 전문성이 생겼다. 비록 하층민의 삶이지만 크게 아쉬운 것은 없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지구로 내려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버지가 갔을지도 모르는 곳이라서? 아니, 말도 없이 떠날 아버지가 아니기에 사실은 사고사를 당한 것이 틀림없다는 점을 미쓰 스스로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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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쓰는 부유하는 인생이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단단한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는, 도전과 개척이 늘 허용되는 거대한 기회의 공간에서 사는 삶을 그렸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토성맨션은 훌륭한 성장담이기도 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스토리들에서 성장 이야기는 대부분 바깥 우주를 향하는 진취적인 선택으로 매듭지어지기 마련이지만, 토성맨션은 반대로 황폐한 고향 지구로 돌아간다는 결말을 취해서 오히려 더 여운이 깊다. 아직 지구는 넓고 이룰 것은 많다.

 

토성맨션

 

너무나도 쉽게 우주에서의 삶을 전제하는 많은 SF들 사이에서, 토성맨션은 무중력 부유인생의 섬세한 정서를 잘 포착했기에 오히려 돋보인다. 이와오카 히사에의 그림은 그런 서사에 따뜻한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여태까지도 드물었고, 앞으로도 쉽사리 접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다음편

마나베 쇼헤이의 <디 엔드>
마사야 호카조노의 <루카가 있었던 여름>
엔도 히로키의 <에덴>
카시와기 하루코의 <지평선에서 댄스>
마사야 토쿠히로의 <쇼와 불로불사전설 뱀파이어>
야마구치 타카유키의 <만용인력>
오치아이 나오유키의 <철인>
니헤이 츠토무의 <아바라>
사무라 히로아키의 <할시온 런치>
콘 사토시의 <세라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예전에 장르문학 전문잡지 [판타스틱]의 창간 편집장과 SF전문출판사 [오멜라스]의 대표를 맡은 적이 있다. SF전문가 코스프레로 살아가는 오덕이라는 의혹이 있다. 일본 SF만화의 꽤 열렬한 팬이며 그런 배경을 믿고 [critic M]의 편집위원단에 겁 없이 끼어들었다. 초등학생 딸에게 SF만화를 마구 권한 결과 순정만화를 보지 않으려는 부작용이 나타나 당황하는 중이다. 가급적 오래 살고 싶은데 그 이유는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이 과연 어디까지 SF스러워지나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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