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cast014

 

14회 핵심 요약

 

10월 5주차 베스트셀러 차트
10월 5주차

만골남의 선택
아트 슈피겔만의 「쥐」

이벤트 참여(문자)
010-3001-7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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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전문 보기
만골남014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

 

안녕하세요,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서찬휘입니다. 14회차 방송 시작합니다.

지난 11월 3일이 무슨 날이었는지 아시나요? 먼저 일제 강점기 당시 학생 독립 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나선 학생들을 기리는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었습니다. 근데 이날이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만화의 날’이기도 하죠. 올해로 15주년이 됐습니다.

11월 3일이 만화의 날이 된 연유는 어언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도 아주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만, 1996년 당시 정부- 김영삼이 대통령이었습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청소년보호법이라고 하는 법안이 제정되었는데, 당시에 이런저런 사회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그 원인을 만화라고 지목했습니다. 원래 이런 규제 법률이 그러하듯이 법 제정 목적 자체는 굉장히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돼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과 약물 등이 청소년에게 유통되는 것과 청소년이 유해한 업소에 출입하는 것 등을 규제하고, 청소년을 청소년폭력·학대 등 청소년유해행위를 포함한 각종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구제함으로써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제1조)을 목적으로 하는 법입니다. 1996년부터 당시 신한국당 박종웅 의원이 의원 입법활동을 시작해 1997년 3월 7일 제정되었고 1997년 7월 1일 발효되었습니다. 근데 그 적용 대상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이 바로 만화입니다. 뭐 일진회라든지 하는 청소년 폭력이 만화 때문이라는 여론을 만드니 뭐 이거 답이 안 나왔거든요.

만화계는 청소년 유해매체 지정, 유통 금지 및 제한 등의 피해가 목전에 온 데에 항의하기 위해 그해 11월 3일 여의도 광장에서 ‘만화 심의 철폐를 위한 범 만화인 결의대회’를 열었습니다. 이듬해 1997년 7월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되자 그야말로 탄압 사례가 광풍 같이 몰아쳤고, 이에 항의하고자 8월에 열린 제3회 SICAF에서 범 만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창작의 자유 수호와 심의 철폐를 외치며 바로 이 11월 3일을 만화의 날로 정하기로 결의했지요. 이 날은 2001년부터 공식 기념일이 됐습니다. 뭐 이미 오프라인 만화 유통망이 박살나고 난 뒤였습니다만. 당시에 불의한 움직임에 맞서 싸웠다는 증거와도 같은 날입니다. 공교롭게도 일본도 11월 3일이 만화의 날입니다만 우연의 일치입니다. 이쪽은 한국보다 1년 뒤에 제정됐습니다.

만화의 날을 11월 3일로 하는 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한국 근대 만화의 효시를 이도영 선생의 ‘삽화’로 보는데요. 1909년 6월 2일 창간한 대한민보에 실렸죠. 바로 이 날을 만화의 날로 정해야지, 집회일을 만화의 날로 정한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입니다. 이 의견이 아주 허무맹랑한 주장은 아니기 때문에 만화계 전체의 의중을 모아서 결정을 해야 할 사안이겠습니다만, 11월 3일이 이유나 근본이 없는 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한 의미가 분명히 있는 날이니까요-라지만 저 이렇게 주장했다가 매국노 취급 당했던 적도 있습니다. 세상에 재밌는 친구들 참 많죠.

뭐 청소년보호법은 난감하게도 그 당시 그대로 지금도 발효 중이고 웹툰 시대로 바뀐 지금에 이르러서는 웹툰 심의와 출판만화 심의가 중복되고 심의 기관이 달리 있거나 한 식으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문화탄압법이기에 개정하거나 폐지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현실은 이걸로도 모자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과 같이 기준이 모호한 관련 규제 법안만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을 뿐입니다. 만화의 날에 여러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바로 2년 전인 2013년과 올해 2015년에도 계속해서 만화에 시비가 걸렸거든요. 만화계가 예전과 다르게 발빠르게 대응을 하고 있는 편이긴 합니다만 위기감은 여전히 맴돌고 있습니다. 언제 어떤 이유를 들어 사회 문제의 원인을 만화로 몰아세울지 알 수 없고, 기준 법률이 청소년보호법만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위험성으로 다가오고 있고, 그동안 마련돼 왔던 방어 장치들이 여론전 앞에 무너질 가능성도 여전히 있습니다. 이런 거 기우라고 이제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단언하던 사람도 올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레진코믹스를 치려 드는 걸 보면서 말을 바꾸더군요. 언제 뭔 일이 터질 지 알 수 없는 다이나믹 코리아가 이 바닥 되겠습니다.

단순히 표현의 자유를 넘어, 사회 문제가, 사회 현상이, 단지 어느 누구 때문에, 어느 요인 때문에 발생한다는 발상 자체는 현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너무나 구리고, 천박하고, 졸렬한 겁니다. 그러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사회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많이 불안하고 어렵습니다. 경제도 어렵고 재난과도 같은 상황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때일수록 만화가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하지 않게끔, 계속 경계해야 할 겁니다. 제15회 만화의 날을 맞이해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다지게 됩니다.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런 점 함께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전하는 말씀 들으시고, 지난 주 만화 베스트셀러 차트 들으시겠습니다.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는 만화 비평 전문 웹진 크리틱엠에서 제작합니다. c r i t i c m .com, 크리틱엠.

 

만화 도서 베스트셀러 차트 10 (2015년 10월 5째 주)
10월 5주차

지난 주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는 지난 주 베스트셀러 시간입니다. 이 차트는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의 주간 50위권 만화 차트를 기준으로 산출해 낸 국내 유일 국내 최초 통합 만화 베스트셀러 차트입니다. 10월 다섯째주 차트를 살펴 보시겠습니다. 한국 작품이 10위권에 아예 없는 주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송곳이 안 보인다 했는데, 송곳의 판매 순위가 높은 곳이 YES24 뿐이더라고요. 아예 이쪽으로 완전히 몰린 모양새입니다. 고르게 분포하지 않으면 통합 순위에선 잡히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쨌든 YES24에서는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순위를 역순으로 살펴 볼까요? 10위는 어제 뭐 먹었어? 10권입니다. 요시나가 후미. 여성분들은 믿고 보는 관록의 요시나가 후미 작품이죠. 9위는 새벽의 연화 18권. 쿠사나기 미즈호. 만골남 M씨 3회에서 소개했던 바로 그 작품의 신간입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꼭 한 번 보세요. 18권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좀비 제노 무쌍-쯤 되겠습니다. 8위는 슬램덩크 오리지널 박스판 1~5권 세트. 이노우에 타케히코. 공동 6위는 요시노 사츠키의 한다 군 2권과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 15권.

5위는 은수저 13권. 아라카와 히로무. 진짜 오랜만의 신간인데 이제 점점 클라이막스로 다가가고 있는 인상입니다. 인물들도 이야기도 분위기도 마무리 수순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원래의 적성과는 상관 없이 도망치듯 농업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그 안에서 한 번 실패했다고 완전히 끝이 아닐 수도 있음을 배우며 앞으로 나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인데, 농고 생활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있지만 그래도 결국은 청춘물이구나 싶은 분위기로군요. 사랑 청춘 우정. 모험-이라면 조금 다른 느낌의 모험도 있고. 네. 애니판은 어째 좀 느슨한 느낌이 있던데 만화판은 잘 읽히는 구석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는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네요.

4위와 2위가 원펀맨 6권과 5권. ONE과 무라타 유스케. 3위가 슬램덩크 오리지널 박스판 6~10권 세트. 1위는 원피스 79권. 요즘 순위 소개할 때마다 원펀맨 이야기를 하는데, 참 이거 왜들 재밌다고 그러지 하면서 계속 보게 됩니다만 지난 4권 무렵부터 대중의 눈에 비친 면과 실제 현실의 괴리에 관한 지점을 묘하게 찔러 들어가면서 볼거리가 생긴다는 느낌이었거든요. 5권과 6권은 그런 부분이 조금 더 강화되는 모습입니다. 뭐, 6권에 벌써 우주에서 쳐들어온 강적이 등장하는 마당이니 대체 이 에스컬레이터 노선을 어쩌면 좋냐는 기분이긴 하더랍니다만, 제목부터가 한 방 사나이다 보니까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겠죠. 여전히 저는 좀 갸웃거리긴 하는데, 주인공인 사이타마는 어떤 면에서는 마음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자기가 자기 실력에 충실하다면 알아줄 사람은 알아주게 마련이고 조막만한 위명에 휘둘리는 사람은 무리수를 두게 마련이니까요. 뭔가 묘한 데에서 많은 교훈을 주는 원펀맨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난 주 베스트셀러 차트였습니다.

 

만골남의 선택
한국과 일본 말고 다른 국가의 만화를 소개하는 턴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유명한 작품이긴 하지만 또 소개할 때마다 새로운 작품이기도 하죠. 아트 슈피겔만의 「쥐」입니다.

요즘 우리가 무슨 역사를 말하기 민망한 시기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제2차 세계대전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 때 대표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인물들이 뭘 했는지는 대체로들 알고 계실 겁니다. 1차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그 규모나 참혹함이나, 인간의 밑바닥이 아주 끝까지 드러난 사건이죠.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게 끝난지 100년도 채 안 지난 시점의 일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그 전쟁 끝에서야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기도 했으니 어디 딴 나라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건 이따 좀 이야기해 보기로 하고- 어쨌든 이 시기를 다뤄낸 작품은 여럿이 있죠. 다큐멘터리 채널에서는 사골처럼 소재로 쓰이는 게 제2차 세계대전과 히틀러고, 영화로는 그 유명한 「쉰들러 리스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만화, 「쥐」도 그 시기를 다룬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쥐」는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태인 대학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폴란드 유태인 블라덱 슈피겔만의 이야기들을 담아낸 만화입니다. 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인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회고를 바탕으로 이 만화를 그려냈습니다. 모두 해서 두 권으로 이뤄진 이 만화는 1권에서 블라덱이 청년기를 거쳐 가스실과 시체 소각로로 악명 높던 아우슈비츠의 문 앞에 끌려가기까지의 과정을, 2권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참혹한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블라덱이 징집당했다 전쟁포로가 됐던 게 1939년, 강제 이주령으로 가족들과 함께 스타라 소스노비에츠 지구로 이주한 게 1942년, 유태인 격리 거주지역으로 내몰린 게 1943년, 아우슈비츠로 잡혀 들어간 시기가 1944년입니다. 전쟁이 1945년에 끝났는데, 정말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며 종막을 향해 달리던 시기의 비극이었던 셈이죠. 참고로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도 1942년 은신하기 시작했다가 1944년 발각되어 아우슈비츠로 끌려갔습니다. 그 시기 살해당한 유태인들이 600만 명 정도인데,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란 소련의 스탈린 말마따나 이 정도 숫자가 되면 이 비극이 말 그대로 개개인 단위의 비극이 아니라 시체 숫자 몇 정도로 인식될 것만 같아져서 무서워지죠.

이 작품의 특징이 있다면 아버지가 겪은 어처구니 없을만큼 잔혹한 과거를 아들이 구술채록을 통해 기록하는 일종의 자서전 만화이자 기록 만화면서도 한편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가 겪은 역사에 더할나위 없이 냉철한 시선을 유지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만한 역사의 참상을 헤치고 살아남은 ‘대학살 생존자’의 이야기라면 자칫 무용담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특히나 아버지 블라덱은 600만 명이나 죽었고 그 이상의 사람들이 인종 청소라는 명목으로 끌려 들어갔던 시기를 살아서 헤쳐나온 많지 않은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땐 이랬고 저 땐 저랬다는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내고 그걸 어느 정도 과장해서 그려도, 연민이 우러나오게 그려도 이를 확인해 줄 사람은 마땅치 찮을 겁니다. 하지만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를 영웅화하는 기회로 쓰기 위해 이 만화를 그린 게 아니었습니다.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 블라덱과 어머니 야나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로서 귀환했습니다. 전쟁 와중에 앞서 낳았던 자식을 잃기도 했죠. 둘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아들을 낳았고,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수용소 생활이 남긴 상흔은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도 또 다른 고통을 만들어냈습니다. 작품 속에도 나오지만 블라덱 슈피겔만은 그 지옥도 속에서 늘 살아 돌아오기 위한 최선을 다했습니다. 블라덱은 식료품과 물건, 돈을 아끼고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할 법한 물건들을 어느 하나 버려두지 않으며 선택은 기민하고 처세술도 훌륭했습니다. 심지어 이후 며칠 후에 해당할 상대의 반응까지 계산에 넣은 행동을 하곤 했는데, 늘 필요한 때 블라덱에게 큰 도움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읽다보면 탄복할 수밖에 없을 만큼 생존 능력이 좋죠. 운까지 덧붙어 블라덱은 대체로 틀리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그 결과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삶 속에서도 블라덱 슈피겔만의 생활 태도는 항상 전시상태다시피 했습니다. 물자를 아끼는 모습은 평화 시기에는 초절정 구두쇠라 불릴만한 것이었고, 사소한 물건이나 양식에 관해서까지 사사건건 자기가 살아온 방식을 요구하며 간섭과 강압으로 다가왔습니다. 결국 어머니 야나는 1968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아들인 아트 슈피겔만은 그야말로 정신 이상을 느낄 만큼 괴로움에 시달렸습니다. 아트 슈피겔만이 만화를 선택한 이유도 알고 보면 아버지에게 간섭받을 여지 자체가 없는 분야기 때문이었죠. 혼인 또한 프랑스인과 했습니다. 세계로 흩어져서도 동족간 유대가 유난한 유태인들의 습성과는 다른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셈이었습니다.

전후 미국의 젊은이로 성장한 아들과 아우슈비츠의 지옥도를 경험한 아버지 사이에는 경험적 문화적 차이가 지나치게 컸습니다. 전 우리나라 독자라면 다른 나라 독자보다는 이 차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나라도 바로 그 시기가 식민지 시기와 전쟁통이었으니까요. 지금 7~80세쯤 되어 식민지 시기와 전쟁과 피난 등을 몸으로 겪은 노인분들에게, 생존과 가족이라는 개념은 평화로운 시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자식뻘들에게 ‘전쟁 때는 어땠다’라는 말이 똑같은 무게와 정당성으로 다가오지만은 않을 수 있겠죠. 아트 슈피겔만은 이제 미국으로 건너가 베트남전 즈음한 히피 문화 전성기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만, 그런 자식이 아버지 입장에서는 ‘살기 위해 필요한 건 아무 것도 못하는’ 듯해 늘 걱정스럽고 불안한, 책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뭐 동시기 미국과 한국을 똑같이 볼 수는 없는게,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지난 이후 한국전쟁을 통해 나라 전체가 완전히 박살났단 말이죠. 그래서 전후 세대들의 성장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사실상 한국의 60대는 전후 사회에서 앞 세대에게는 복종을, 사회에서는 몸바쳐 사회 재건에 앞장서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60대쯤 되는 사람들이 젊은이들더러 전쟁을 아느냐고 그러는 건 굉장히 꼴같잖은 이야기긴 해도, 어쨌든 전후 사회를 버텨낸 세대인 것까진 맞죠.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과 겪은 갈등은 한국으로 치면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들보다는 그 다음 세대인 지금 60대들과 2~30대들과의 갈등과 비슷하다고 할 만합니다. 우리 땐 그랬고, 그 땐 아무것도 없었고, 그래도 이 정도 일궜고 생존 방식은 이러했는데, 너네는 지금 노오오력이 부족해. 아니 지금 그거 해서 먹고 살 순 있겠냐? 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게 아니잖아 그거?

근데 2~30대에게는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세상 자체가 그 때가 아닌 거거든요. 그 삶의 경험이 대단하고 위대한 것과 젊은 세대가 현 시점에서 겪어야 할 경험치는 다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경험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어른들은 인정할 수 없는 법이죠. 정말 전쟁을 겪으신 세대분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전후 사회를 겪으신 세대분들이 지금 우리 2~30대를 바라보는 게 그러합니다. 하물며 홀로코스트라는 지옥도를 겪은 사람은 어땠을까요. 그냥 전쟁도 억울한데, 인종 청소를 당했단 말이죠. 전쟁에 정도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거야 우스운데,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은 인류사에서 정말 미증유의 사건으로 치부하고 싶을 만큼 거대한 사건이죠. 한 인종을 절멸하겠다고 수용소를 지어 쓸어담고 가스실에 처 넣어 죽이는데, 그걸 또 많이들 찬성했고, 인간이 그걸 기꺼이 실행했단 말이에요.

인간으로서 인간이길 포기해야 하는 경험을 겪었단 말이죠. 블라덱은 정말 살아남는 데에 집중해 살아 남고야 말았는데, 전쟁이 끝나고 유태인이 아니라 나치가 절멸당했음에도 여전히 블라덱은 그 절멸 수용소 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는 듯한 생활 양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태도는 타협이 불가능한 굳건한 사고로 굳어져 다음 세대인 아들을 괴롭혔습니다. 아내인 야나는 후유증 탓인지 끝내, 갑작스러운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때가 아트 슈피겔만 스무 살 무렵이었다고 하죠. 어쩌면 슈피겔만 가는 여전히 수용소 안에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쥐」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 탄생했습니다.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와 ‘화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니 블라덱이 죽을 때까지 끝내 화해 같은 건 할 수 없었던 듯합니다만, 아버지라고 하는 거대한 경험의 결과를 이해해내기 위한 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나이가 되어서도 살아남기 위해 몸 건강에 신경 쓰면서도, 편집증에 집착을 버리지 못하던 아버지에게서 과거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기록해 나가는 과정은 지난했습니다. 아트 슈피겔만에게 큰 명성을 안겨준 「쥐」 1권이 나오기까지는 8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2권은 6년이 걸려서 총 14년에 달하는 시간이 걸렸죠. 그토록 긴 시간에 걸쳐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의 회고를 단지 명석했던 수용자의 영웅적인 귀환기로 그려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장치들을 채택합니다.

그래픽적으로는 회색조차 보이지 않는 강렬한 흑백 대비를 채용하는가 하면, 제목에서 이미 엿보이고 있지만 유태인들을 쥐로, 나치를 고양이로 묘사함으로써 양측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의인화는 세 가지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먼저 1차원적으로는 쥐와 고양이라고 하는 천적 관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둘째로는 독자들에게 쥐라고 하는 동물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그대로 전이시킨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서구권 독자들에게 쥐란 역사상 굉장히 두려운 병이었던 흑사병의 주 감염원이자 번식력도 강해 바퀴벌레만큼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입니다. 동양권에서도 쥐가 박멸대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12간지의 첫째란 점도 있단 말이에요. 이 쥐에 관한 인식을 역설적으로 채용함으로써 작품은 유태인들의 처지를 이입시킴과 함께 당시 나치 치하의 유럽에서 유태인들이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실제로 나치가 유태인들을 묘사할 때 쥐로 묘사했다고 하고, 그게 이 작품의 묘사에서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도 하죠.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는, 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인물들을 동물로 의인화함으로써 오히려 건조한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쥐와 고양이 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등장하긴 하는데요. 폴란드인은 돼지, 미국인은 개. 프랑스인은 개구리, 소련인은 곰으로 묘사됩니다. 동물로 묘사된 인물들은 어느 한 쪽에 이입할 여지를 주기보다 마치 우화를 보듯 한 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게 만드는 힘을 발휘합니다. 그런가 하면, 오히려 그래픽적으로는 재미나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장치로도 작용하는데요. 자신의 인종을 속이고 접근하려 할 때엔 다른 동물의 가면을 쓴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죠. 열 마디 서술을 붙이기보다 한 장면의 선 한 줄이 훨씬 더 강력한 은유를 만들어내는 만화의 강점이 잘 발휘됩니다.

작품은 블라덱 슈피겔만의 회고를 만화로 옮기는 한편으로, ‘현재’ 아들인 작가 자신과의 갈등과 그 원인에 해당하는 지점을 연결해 놓음으로써 재앙과도 같았던 대학살의 고통이 단지 한 세대의 고통에서만 멈추는 것이 아니고 그 뒤로도 이어짐으로써 또 다른 재앙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말합니다. 더욱이 작품은 아버지 블라덱의 모습을 추호도 미화하지 않는데요. 이를테면 블라덱은 그 자신이 인종차별 정책의 피해자면서도 흑인이 같이 차에 탔다는 이유만으로도 경악하고 몹시도 불쾌해하면서 돈을 빼앗지 않을까 전전긍긍합니다. 오히려 전 이 작품에서 이 대목이 더 충격이었어요. 블라덱은 흑인에 관해서 이렇게 말하거든요.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구나. 검둥이는 유태인과 비교할 수도 없어!”

이건 굉장히 많은 걸 시사합니다. 단지 인간에게 양면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은 차별해도 된다 여기는 대상은 기꺼이 차별하려는 마음이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인간이 그걸 누르고 제어하지 못할 때, 차별은 사회 구성원의 동감을 얻고 정책이 되어 이윽고 재앙이 되죠. 그 시기의 재앙은 그냥 나치가 외계에서 온 미친놈들이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할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의 결정판이었고- 거기서 살아나온 사람조차도 매우 강하게 주장하는 겁니다. “검둥이는 유태인과 비교할 수도 없어!” 히틀러도 그랬습니다. 아리안 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흑인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종족으로 몰아세웠죠. 그리고 그 최대 피해자 유태인이 흑인에게 저러는 겁니다.

아들인 입장에서 이런 발언을 가감없이 내보냈다는 건, 이 만화가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자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단순히 작품이 가해자-피해자 구도가 아니란 점이 명확해지죠. 유태인의 국가인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행동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기도 합니다. 뭐 그렇게까지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도 매한가지죠. 제2차 세계대전 후반, 그러니까 유태인들이 아우슈비츠에 끌려가던 바로 저 전쟁 후반 시기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서 행했던 수탈과 가혹한 살육은 일본이 당시 자국 젊은이들에게서 얼마나 인간성을 제거하고 나섰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만 한국은 그 피해 당사자이면서도 오히려 “조선놈들은 패야 말을 듣는다”라는 국민성을 다음 세대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지역차별부터 시작해 여성이나 성소수자, 장애인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들을 상대로 마땅히 차별해도 될 대상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 「쥐」는 단순히 홀로코스트에 관한 만화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지녀야 할 인간성을 인간이 기꺼이 놓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모습들에 관한 기록으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지닙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전쟁의 기록으로만 봐선 안 됩니다.

전쟁통이기에 일어나는 숱한 비극들도 충분히 괴롭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숱한 인물군상들 속에서, 누군가는 동족도 팔아먹고, 앞잡이도 하고, 인신매매에…… 하지만 그 모든 지옥도 속에서 이 작품이 더 주목하고 있는 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된 만화고, 어쩌면 작가 스스로도 자기를 다잡기 위해 시작한 만화기도 하겠습니다만. 그 기록과 더불어 묻어나오는 ‘인간’에 관한 수많은 질문들을 독자는 작가와 함께 던지고, 이해해보려고 고민하게 되는 데에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자. 오늘은 「쥐」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 봤는데요……. 학살의 역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유태인들만이 아니라 바로 일제강점기 시기의 우리와도 겹쳐 있다는 점은 이야기했지만, 광복 이후로만 봐도 우리나라에도 제주4.3, 보도연맹 사건,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 등 다양한 학살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도 일어난지 100년도 채 안 됐습니다. 쉰들러리스트나 디 액트 오브 킬링, 다운폴 같은 영화를 보며 아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야기하시는 분들은 얼마 되지도 않은 우리 역사 속 학살에도 한 번 눈길을 주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다룬 작품들에도요.

제주4.3을 다룬「지슬」이나 노근리 학살을 다룬 「노근리 이야기」 같은 작품들도 있고, 6월 항쟁을 다룬 만화 「100도씨」에도 보도연맹 사건으로 자기 엄마가 죽은 기억 때문에 트라우마를 입은 여성이 주인공의 엄마로 나옵니다. 80년 5월의 광주는 어떤가요. 그 시기 이후를 소재로 삼은 「26년」이란 만화도 있죠. 학살의 역사는 단순히 한 세대의 비극에서 그치지 않고 어느 지점에선가의 상처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남기고 대물림시키기도 합니다. 「쥐」의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처럼요.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학살 주범들이 그러하듯, 우리나라 또한 그 주범들 가운데 상당수가 살아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직도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러한 비극을 만든 인물들을 포장하려 드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쥐」는 그래서 남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기도 합니다. 단지 유태인이 겪은 홀로코스트가 유태인의 비극이기만 한 게 아니라, 인간은 물론 생명을 숫자로만 여기고 이득을 계산하려 하는 자들이 권력을 쥘 때 자연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 팔레스타인을 두고 벌어지는 전투를 게임 관전하듯 하며 웃고 있는 표정들이나, 팔레스타인이 홀로코스트를 선동했다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영주권 박탈해야 한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 이스라엘 총리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게 그냥 나치가 다 미친 놈들이어서 그랬다고만 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알 수 있죠. 누군가가 누군가를 마땅히 죽여도 될 대상으로 기꺼이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데 딴 데 볼 것 없습니다. 반대되는 이야기하는 것들을 예전처럼 다 죽여야 한다는 선동을 이젠 숨지도 않고 내뱉는 사람들, 이제 우리나라에도 많거든요.

학살의 기억은 누군가에겐 추억일 순 있어도 역사 위에 살아가는 보통의 민중에게는 상처입니다. 근데 다 같이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하자고 한다면, 미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근데 그 앞에다 대고 웃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좀 많습니다. 울고 싶어집니다.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작품은 일본 작품이 되겠네요. 모두 만골만골한 한 주 보내십시오. 서찬휘였습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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