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의 전쟁> 관계 맺기, 철학하기 그리고…

by -
0 372

 

<앨런의 전쟁>은 노인 ‘앨런 잉그럼 코프’의 삶을 담아낸 작품이다. 우선 그의 인생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은 2차 세계대전의 참전 경험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삶이 작품이 될 만큼 특별하지 않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며, 실제로도 이후 그의 삶은 극적이지 않다. 그는 시골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평범한 노인일 뿐이다.

하지만 서른 살의 작가 ‘에마뉘엘 기베르’는 예순아홉 살의 노인 ‘앨런 코프’의 삶에서 특별함을 발견한다. 앨런이 경험한 전쟁 이야기에는 작가가 이전에 접해왔던 전쟁 이야기와는 다른 매혹적인 무언가가 있다. 작가는 곧 그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고, 앨런 역시 흔쾌히 이에 동의한다. 이후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정원을 가꾸고, 영화를 보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 그리고 마침내, 나이를 초월한 두 사람의 우정은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어느 노인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는 결실을 맺게 된다.

 

앨런의 삶의 여정, 전쟁 그리고 이 후 삶
<앨런의 전쟁>의 독특한 점은 전쟁 사용법이다. 앨런의 이야기에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보여 주는 삶의 부조리나 인간의 광기가 명확히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그가 치열한 전선에 위치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전쟁의 부정적 기억을 퇴색시켜서일지 모른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앨런의 전쟁>이 보여주는 전쟁의 풍경은 고요하며 정적이다. 그는 포탑에 앉아 바라보는 프랑스 경치를 사랑한다. 또한 야간 교전 중, 수많은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에 어떤 숭고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의 모습은 마치 머나먼 이국을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자의 모습을 닮아 있다.

 

풍경 1

 

작품을 지배하는 관조적 정조는 이후 주인공 앨런의 삶을 규정하며, 이 작품의 주제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우선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간 앨런의 삶을 들여다보자. 앨런은 성직자가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침례교 목사가 되려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드랜즈 대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곧 종교가 ‘존재와 영혼을 바라보는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 생각을 가지게 된다. 또한 동시에 자신이 진정으로 머물기를 원하는 곳은 ‘미국’이 아닌 ‘유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미국의 대지와 사람들은 사랑하지만, 존재의 깊이를 망각한 미국의 사고방식을 더 이상 좋아할 수 없다. 그렇게 그는 유럽으로 향하는 여객선에 몸을 던진다.

다시금 유럽으로 돌아온 앨런.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앨런은 마침내 유럽에서 삶의 의미를 깨달았을까? 그에 대한 대답은, 안타깝게도 당장은 ‘아니요’다. 그의 생활은 녹록지 않고, 그래서 그의 대부분의 삶은 처음 그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퇴직을 앞둔 시점에서 앨런은 인식론적 전회를 경험한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이 후 퇴직하기까지 18개월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매일같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본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대면하고, 또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고민 1

 

 

관계를 통한 내면의 성장

“삶의 모든 부분은 저마다 중요성과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가 인생이라는 그림을 그릴 때야 비로소 떠올릴 수 있죠. 그걸 당신도 느낄 수 있겠지요?”

이 책 마지막 페이지의 앨런의 끝맺음 말이다. 이것은 ‘맺음말’로서뿐만 아니라 <앨런의 전쟁>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우선 주제적 측면에서, 앨런의 생각은 ‘도덕적 완전주의’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내면의 성장과 관련 있는 서사구조를 가지며, 또한 더 나은 자아를 추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

 

사랃들 3

 

다음으로 이 작품의 주제를 재현하는 방식을 암시한다. 앨런은 “삶의 모든 부분은 저마다 중요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삶의 각 부분들’은 앨런이 겪게 되는 경험을 의미하는데, 특히 이것은 앨런이 전쟁 기간 동안 관계를 맺은 사람들로 형상화된다. 즉, 이야기 전반에 걸쳐 촘촘히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단순히 무작위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주제와 연계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인연은 더 나은 자아를 추구하는 앨런의 내면을 형성하며, 이것은 이후 그의 여정을 가늠케 만든다.

특히 독일에서 만난 ‘게르하르트 뮌히’는 앨런에게 있어 가장 특별한 인물이다. 그는 예술, 문학에 조예가 깊은 독일인 피아니스트로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가장 고귀한 형태의 우정인 ‘완전한 우정’을 맺는 사람이다. 그들은 서로 동등하며, ‘상대방을 위해서’ 친구의 성장을 바란다. 그래서 앨런과 게르하르트는 비록 각기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다른 공간에 위치하지만, 상대방의 성장을 위해 많은 편지를 주고받는다. 앨런은 ‘게르하르트’를 회상하며 작가에게 이렇게 말한다.

 

게르하르트 1

“작은 트럭에서 태동한 내 존재에 대한 인식의 싹은 게르하르트와 재회를 통해 굳건히 자라났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진정한 내가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쉰다섯이라는 나이에!”

나무 1

 

주인공 앨런의 삶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젊은 시절 앨런에게 엄청난 감명을 준 ‘세쿼이아 숲의 나무’의 이미지가 선명히 떠오른다. 나무 몸통이 성장하듯, 앨런 내면도 성장하며, 나뭇 가지가 나무 몸통에서 뻗어 나가 듯, 앨런 인연 역시 그의 삶에서 확장된다. 특히 이러한 은유는 작품 말미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에게 더욱더 큰 울림을 준다. 잎사귀와 줄기를 하나씩 떨어트리며 덩그러니 나무 몸통만 남은 노목(老木)처럼, 앨런 역시 지인들을 차례로 떠나보내며 그렇게 홀로 서 있다. 하지만 노목이 푸름을 유지하듯, 노인 앨런 역시 존재의 탐구에 대한 진지한 태도는 내려놓지 않는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이렇게 우리 가슴에 묵직이 들어선다.

 

마지막 장면

 

==========================================

  1. 마크 웨이드 외,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