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골남15

 

15회 핵심 요약

 

11월 1주차 베스트셀러 차트
만골남 11월 1주차

만골남의 선택
에스토 에무의「I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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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001-7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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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골남015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

안녕하세요,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서찬휘입니다. 만골남 M씨도 어느덧 15회차네요. 숫자가 불어나는 게 꼭 사채 이자 같은 기분이 드는 가을날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사채를 쓰거나 신체 포기 각서를 쓴 건 아니지만요. 어쩄든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나 싶을 만큼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결국 감기에 걸렸습니다. 임산부라 약도 없는데! 여러분도 감기 조심하세요. 오래 간다더라고요. 저는 목소리를 써야 하니까 특히 더 신경 쓰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지난 주에는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소개했습니다. 나치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벌인 홀로코스트는 우리에게도 굉장히 잘 알려져 있지만, 흔히 ‘유태인 대학살’로 알려진 그 시기 동안에 나치가 죽인 대상은 유태인만이 아니라 범죄자,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정치범, 동성애자, 집시, 그리고 공산주의자 등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종차별이라는 것조차 진짜로 인종의 우열을 주장하고자 함을 넘어서 치워야 할 대상을 지정하고 이를 통해 독일인들의 내부 결집을 끌어내고자 하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행위였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목적에 민중이 쉬 휘둘릴 때, 이 어처구니 없는 목적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이겠지요. 시간이 지나거나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속이 빤히 보이는 헛소리인데도 배울 만큼 배웠을 사람들이 휘둘리는 까닭이 사람들이 정말로 멍청해서일까는 의문입니다. 이를테면, 사회정의구현이라는 이름으로 삼청교육대에 깡패와 더불어 사회불만세력들이라는 명목으로 아무나 잡아다 패잡고 있던 전두환 때엔 어땠나요. 그 때도 사람들은 지지를 보냈습니다. 사회 정의라고 하니까요.

정말 어느 사람들이 깨어 있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보단, 그저 침묵하는 다수 때문이라고 하기엔, 오히려 똑똑하기 때문에 전략적 선택을 자기 의지로 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그 편이 간편하게 자기에게 이득이 된다고 판단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그 결과, 어느 누군가는 죽음에 가까운 쪽으로 내몰리는 거죠. 사실 더 나빠요. 유태인들을 비롯해 수백만 명이 가스실에서 나자빠져 소각당한 역사는 거대한 학살극으로 기억되지만, 문제는 이미 패퇴하여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된 전범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옆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지지와 동의에 따라 죽음에 가깝게 내몰리고 있는 사람들에 관해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100년도 안 지난 그 시기의 독일에선 그 대상이 유태인이었을 뿐입니다. 엇비슷한 시기 일본인들 손에 들린 일본도에 수많은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의 목은 쉽게도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되는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담이지만 일본군들은 학병으로 끌고 간 조선인들에게 실습이라고 중국인들을 죽이라 명하기도 했다더군요. 끔찍한 일입니다. 여하간 2015년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래도 되는 대상’으로 낙인 찍힌 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누가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의무가, 2015년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손쉽게 사회적 약자라고만 이야기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은 ‘맘에 안 드는 아무나’고요. 그걸 이용하는 정치인들은 그런 차별의식과 분노를 조장합니다.

오오 존경하옵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이 저것들에게 느끼는 심정은 당연합니다! 그렇고 말고요! 어디 노오력도 않는 젊은 것들이 어른 핑계를 대고 있어요 흙자식 쳐다보는 어미 아비 심정은 생각도 않고! 어디 장애인이 우리 애들 노는 데에 끼려고 합니까! 여러분만큼 뛰어난 수준이 있으면 투표도 필요 없는데 뭐하러 저것들에게 표를 줘야 하는지 모르겠지요 그쵸? 동성애자들을 놔두다니 우리에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죠?! 그런 정치인이 나쁜 정치인이지 정치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그걸 또 정치가 원래 그렇다고 말함으로써 사회 조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여지 자체를 사라지게 하죠. 남녀 반반으로 내각을 이룬 캐나다에서 그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왜 반반이냐 하니 “2015년이니까요!”라 했죠. 그렇죠. 2015년인데도 아직도 그 때에서 달라지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에서 뭐 하나 배운 게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겠죠.

2015년이잖아요. 나랑 좀 다르거나 좀 불편한 이야기를 하거나, 맘에 안 드는 게 있다고 그걸 보면 나 말고 우매하기 이를 데 없는 애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까 세상에 나와선 안 된다는 이야기-같은 건 좀 구리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근데 그래도 된다고 끄덕이고 정치가 그걸 이용하면요. 또 한 쪽에서는 치워도 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홀로코스트는 그렇게 일어났습니다. 이건 승자는 없고 패자밖에 없는 싸움입니다. 「쥐」 이야기를 보세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돌아온 귀환자이면서도 작가의 아버지인 블라덱 슈피겔만은 흑인을 유태인과 비교할 수도 없다며 히틀러가 한 소리와 다르지 않은 말을 쏟아냅니다. 결국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는 유태인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누구일 수도 있었던 겁니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피해자는 내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아니 뭐 이미 어느 한 구석에서는 피해를 입고 있잖아요. 노오력이 부족해서 네가 흙수저인데 어쩔건데 너 따위가-라든지, 비정규직 주제에 무슨 노조야 잘리면 잘리는 대로 살아야지 억울하면 어쩔 건데-라든지.

나보다 못한, 그래서 나라도 차별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야 편해지는 기저 의식이 2015년을 2015년 답지 않게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뭐 어쩔 수 있느냐 하면, 그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고밖에 말을 못하겠네요. 예전에 정신과 의사 노다 마사아키가 지은 「전쟁과 인간」이란 책을 본 적이 있는데요. 이 책은 전쟁 당시 중국에서 중국인들을 도륙하고 다니다 전쟁에서 진 후 포로가 됐다가 일본으로 돌아온 당시의 젊은 군인들을 인터뷰한 책입니다.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전쟁이란 미명 하에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패전을 맞이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대목은, 전범으로 처형당한 일본 군인들 상당수에게서 보이는 심리 상태란 ‘죄의식’이란 걸 천황제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제거함으로써 자기가 내보인 공격성을 부인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군인으로서는 당연한 일이고 중국인들을 괴롭힌 것은 아니며 다만 전쟁에 졌으니 평화를 위해 내가 희생하노라-라는 거죠. 누군가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필연적입니다. 자기 행위의 정당화에는 자기 개인보다는 큰 단위를 지닌 무언가가 등 뒤를 받치고 있다는 인정과 안정감이 필요하거든요. 내가 이러는 건 당연해, 괜찮아, 사회가 인정하잖아. 자 봐 저것들한테 이렇게 하는 건 당연하잖아? 쟤들은 뭐뭐뭐니까. 나라가 하라고 하는 것에 반대되는 입장이잖아? 그럼 죽여도 되는 거잖아?

나치 독일에겐 그게 유태인이었고 동성애자였고 집시였을 뿐입니다. 일본인에겐 조선인과 중국인이었을 뿐이고, 이승만 이후 한국의 독재자들에겐 그게 아무에게나 붙이면 그만인 ‘빨갱이’였을 뿐입니다. 똑같은 논리는 대중문화판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만화가 그동안 가장 많이 탄압받았던 까닭. 저건 ‘음란 만화’고 ‘폭력 만화’여서 여러분 애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죠. 이런 사진을 찍어 올리다니 이런 소아성애자 같으니! 이런 노래를 듣다니 소아성애를 옹호하는구나 넌! 실제 음란성, 실제 폭력성, 실제 소아성애가 어떤 걸 가리키는지는 상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뭔가, 이게 뭘 의미하는가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정상이고 비정상을 단죄하는 입장에 설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한 거니까요. 언제라고 비정상이나 국민도 아닌 입장으로 몰릴 수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요. 더 난감한 건 사회 문제에 관심 많다고 이야기하곤 하던 사람조차도 어느 구석에선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를 몰아세우곤 한다는 데에 있지요. 자기는 정상이어야 하니까요. 사방 천지가 이런 종류의 인정 투쟁 같습니다. 그리고 그걸 엔터테인먼트화하는 사람들도 늘어갑니다. 일베 아이들을 보세요. 훌륭한 서북청년단, 정치깡패로 성장해 가고 있죠. 사람 패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패는 겁니다. 박정희가 정치깡패들 길거리에서 조리돌림시키고 사형시키고 전두환이 삼청교육대를 세워봐야 한쪽에서 용팔이 사건은 터졌죠.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딱히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송곳에서도 대사 나오잖아요.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 그렇습니다. 그 옛날 중국땅에 쳐들어간 일본애들도, 아우슈비츠에서 유태인과 집시, 동성애자들을 가스실에 밀어넣던 독일인도 그랬습니다. 죄의식이 사라지니까 상대를 웃으며 기꺼이 죽일 수 있었죠.

언젠가 광주에 갔을 때, 지금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는 군부대 시설을 들른 적이 있습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내국인을 학살하려 든 군인들 때문에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죠. 끌려들어온 사람들을 가두었던 곳, 끌고 나왔던 곳 하며 그 당시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보존돼 있었는데요. 문득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끌려들어와 처박혔던 시민들의 눈에 보인 풍경도 실제로는, 실제로는 이렇게 총천연색이었을 텐데. 사진에서처럼 잿빛은 아니었을 텐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들어오던 이들도 그러했겠죠. 눈 앞의 풍경에 색이 있었을 겁니다. 다만 눈앞에 떨어진 현실이 잿빛이었을 겁니다. 전 사람들이 어느 누군가의 시간을 흑백 사진으로 박제된 것 같은 잿빛 현실로 만드는 데 쉬 동의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쉽게 편해지려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군가는 쉽게 죽어갑니다.

앞서 언급한 「전쟁과 인간」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홀로코스트를 겪은 가족은 2~3세대에게도 감정장애가 생긴다고 합니다. 「쥐」의 주인공 격인 슈피겔만 가의 사람들을 보세요. 노다 마사아키 씨에 따르면 홀로코스트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은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을 고갈시키며 살고, 이런 관계에서 자란 2세대도 어른이 된 후 정서장애나 억울증에 걸리는 자가 많다고 하고 3세대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쥐」의 작가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은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왔으면서도 일생을 격리구역과 수용소에서와 마찬가지 생활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결과 아들을 들들 볶고 가정을 망가뜨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함께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왔던 어머니는 아들이 스무살 되던 해 느닷없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쥐」에서 다른 부부의 죽음을 다룬 대사에도 나오지만, 이러려고 살아 남았던 것인 양 말입니다. 아들은 그러한 결과를 초래했거나 영향을 지대하게 끼친 아버지를 이해하고자 「쥐」라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해를 할 수 있다손치더라도 그 비극의 대물림 현상 자체가 어디 사라진 것은 아닐 겁니다. 학살이란, 그렇게 큰 상처를 대대로 남깁니다.

하지만, 생목숨이 진짜로 마구, 그리고 많이 죽어 나가지 않을 뿐 학살과도 마찬가지로 죽여야 할 대상, 때려도 될 대상을 탐색하는 데 집중하는 이들이 사회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 분위기가 만든 냉소와 절망이 반가운 정치인들이 많은 지금 또한 – 그러한 대학살이 만들어내는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저는 그 점이 몹시 걱정스럽습니다. 「쥐」는 대학살이 만들어낸 비극의 회고이자 그 비극이 낳은 비극이 무엇인가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 만화입니다. 마치 전시 같은 현실을 겪는 중인 우리 사회에, 이 작품이 보여주는 면면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우리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세대도 이미 극심하게 후속 피해를 입고 있지만, 우리 뒷세대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질 따름입니다. 인간이 인간이길 포기해선 안 되겠습니다.

AS는 여기까지 하고요. 전하는 말씀 들으시고 이어서 지난 주 베스트셀러 차트 들으시겠습니다.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는 만화 비평 전문 웹진 크리틱엠에서 제작합니다. c r i t i c m .com, 크리틱엠.

 

만화 도서 베스트셀러 차트 10 (2015년 11월 1째 주)
만골남 11월 1주차

지난 한 주 제일 잘 팔린 만화가 뭔지 살펴보는 지난 주 만화 베스트셀러 차트 시간입니다. 이 차트는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의 만화 분야 50위권 베스트셀러를 기준으로 산출한 국내 최초 국내 유일 통합 차트입니다. 11월 첫째 주 차트 살펴보겠습니다.

원펀맨의 기세가 드셉니다. ONE과 무라타 유스케. 이 작품이 10위권에 네 권을 올렸습니다. 4권이 10위, 1권이 8위, 6권이 3위, 5권이 2위입니다. 이거 예전에 마스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가 차트를 휩쓸 때 생각이 나네요. 이 정도로 인기를 끌 작품이었단 말인가 하면서 놀라고 있습니다. 아 물론 그림도 좋고 내용도 재밌는데 말이에요.

9위가 심야식당 15권입니다. 아베 야로. 7위는 제노 좀비쇼의 위력이 거셌던 새벽의 연화 18권. 쿠사나기 미즈호. 6위는 어제 뭐 먹었어? 10권. 요시나가 후미.

슬램덩크 오리지널 박스판 6~10권 세트가 5위입니다. 이노우에 타케히코. 4위는 은수저 13권. 아라카와 히로무. 청춘극의 마무리 단계인 것 같은데 과연 하치켄과 미카게의 연애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쯤되면 데릴 사위 안 되면 이상할 것 같던데 말입니다. 1위는 뭐 뻔하게도 원피스 79권. 오다 에이이치로.

출판사로 보자면 10위권에 대원씨아이 일곱 종 열한 권, 학산문화사가 두 권 삼양이 한 권. 일본만화를 주로 내는 출판사들입니다. 다른 출판사들의 책들도, 한국 만화도 조금 더 등장해주면 좋을 것 같네요.

10위권에 오르진 못했습니다만 눈길이 가는 책들이 몇 권 있는데, 뽀짜툰 3권이 나왔습니다. 이번에 2016년 다이어리도 나왔다고 하죠. 그리고 제가 민폐 주인공 여자애가 나온다고 뭐라 했던 적 있는 환상게임 완전판도 인터파크에서 일부를 50위권에 올려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지난 주 만화 베스트셀러였습나다.

 

만골남의 선택
오랜만에 조금 가벼운 만화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그동안 계속 좀 무거운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소개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요. 일본 만화 턴인데,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에스토 에무의 「IPPO」입니다.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아내가 산 책들 때문이었습니다. BL을 비롯해 성인 여성용 작품을 주로 그리는 작가인 듯했는데 이름 표기가 굉장히 독특했어요. est em이라고 적었거든요. 에스트 엠? 아니면 에스템? 근데 이걸 일본식으로 에스토 에무-라고 읽더군요. 제목이나 소재들도 조금 독특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붉은 색을 싫어한다」. 「에쿠스」. 「분발해, 켄타우로스」, 「해피 엔드 아파트」…… 뭐라고 할까요. BL 계열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만화 취향 이전에 실제로도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걸 아예 안 좋아하는 입장이다 보니 선뜻 손이 잘 안 갔습니다. 게다가 켄타우로스가 주인공인 작품도 둘이나 있는데 「에쿠스」랑 「분발해 켄타우로스」…… 「분발해 켄타우로스」 의 경우는 이야 켄타우로스가 양복을 입고 있네요. 평범한 직장인이에요. 내용면에서도 전혀 다른 종이 인간 세상에서 공존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 편견과 차별도 상존하는 이야기들…… 뭐 묘하게 또 사회적인 부분을 건드리긴 하더랍니다.

그래서 편견은 없어야 하는데, 첫인상 때문에 그랬나 이 작가 작품에 여전히 영 쉽게 손을 못 대고 있던 저에게 아내가 “이건 여보도 볼만할 거야”라면서 추천해 준 작품이 「우동여자」와 「초콜릿 애호가의 이야기」였습니다. 두 작품을 시간을 들여 탐독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 이 작가는 BL을 그리다 다른 쪽도 건드리는 작가로서 특정 장르 독자층에게 어필하는 게 아니구나. 그러고 나서야 알았는데 「분발해 켄타우로스」가 일본의 이 만화가 대단해! 여성 만화 상위권에도 올랐다고 하더랍니다. 저에겐 생각보다 취향 외인 경우가 많아서 그다지 의미 없는 편이긴 한데, 상위권에 올랐다는 게 꽤 의미심장하긴 합니다. 대중성을 어느 정도 획득하고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우동여자」와 「초콜릿 애호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탄복한 점이 있다면 절묘한 줄타기입니다. 오노 나츠메나 요시나가 후미가 생각이 날 듯도 하면서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그림인데, 묘한 데에서 집요함이 느껴지거든요. 뭐라고 할까 이야기보다 꽂히는 소재 자체에 집착하는 지점이 없지 않은가-라는 점에서 풍은 전혀 다른데 모리 카오루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아니 영향을 받았단 이야기가 아니에요. 집요하단 점을 이야기하는 거지. 특히나 「우동 여자」 「초콜릿 애호가의 이야기」는 개중에서 쌍방이 대구를 이루는 듯한 만화였는데요. 먹을 것을 소재로 삼아 사람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먹을 걸 소재로 삼아 인간 관계에서의 섹슈얼리티를 끄집어내는데, 장면 자체가 끝내주게 야하다거나 그러지도 않은데 묘하게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왜일까 생각해 봤는데,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더군요. 탐미. 아 이 작가는 소재나 설정을 들으면 독자가 떠올릴 수 있는 ‘그 무언가의 어느 지점’으로 파고 들면서, 완전히 끝까지 가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사람들 이야기도 섞을 줄 아는구나. 그 사이의 줄타기도 가능한 작가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아니 좀 더 가지 왜 거기서 멈춰!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면 거짓말인데, 그게 대중성을 획득하는 장치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점을 느꼈습니다. 사실 그렇죠. 먹을 것과 섹슈얼리티를 연결한 시점에서 이미 뭔가 굉장히 야합니다.

딴 작품도 마찬가지에요. 켄타우로스가 주인공인 시점에서 이미 야합니다. 켄타우로스가 어떤 녀석들인가요. 신화 속에서 이미 수간을 통해 태어나다시피 했고 육욕과 이성을 겸비한 반인반수로 설정돼 있는데다 헤라클레스에게 자기 피랑 정액을 묻히게 만들어놓고 죽어가기도 하는 그런 녀석들이란 말이죠. 게다가 거시기가 길다는 속설도 유명해서 여자랑 말이랑 엮으면 이미 연상되는 이미지란 게 있단 말이에요. 애마부인이 왜 제목부터 남자들을 헉하게 하는데요. 게다가 이노무 켄타우로스들, 당연한데 기본적으로는 아랫도리에 아무 것도 안 입고 있어요. 심지어 그런 녀석들을 남자나 수컷들과 엮을 수 있다고까지 생각해 보세요. 전방위로 뭔가 취향을 저격하는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

 

네. 각설하고. 그렇게 장면이나 스토리 자체 이전에 대중들 속에 파편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미지들을 엄청 잘 활용하는 작가 같습니다. 인물 둘이서 죽어라 섹스씬을 펼친다 해서 야한 게 아니라 이런 게 더 야합니다. 근데 작품들은 그럴싸하게 또 있을 법한 인물들 이야기를 그리고 있단 말이죠. 그게 메인인 것 같은데 뇌리에서 뭔가가 떠나질 않아요. 한 가지 먹을 것에 집착하는 남자, 또는 한 가지 먹을 걸로 여자를 투영하는 남자. 켄타우로스…… 아니 다 수컷이네요. 근데 그도 그럴 게, 이 작가, 수위를 넘지 않아서라기보다도, 남자는 엄청 색한데 여자는 벗은 몸이 나오는 장면에서도 안 야하단 게 포인트입니다. 아. 이 작가의 탐미는 남성 캐릭터를 상대로 하고 있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이 되죠. 하지만 생각보다 맘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아. 이 작가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남들에게도 거부감 크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선도 설정도 야한데, 안 야한 척 하면서 하고픈 이야기는 다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려고 작정하면 하기도 하지만 말이지-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작가가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사람들 이야기를 끄집어낸 작품이 「IPPO」입니다. 자. 길게 돌아와 오늘 소개작입니다. 저도 아내에게 이 작품이 어떻냐고 추천을 받았습니다. 늘 뭘 끄집어낼까 고민할 때 아내가 던져주는 힌트가 도움이 됩니다. 자. IPPO는 일본어로 한 걸음이라는 뜻입니다. 한자로는 일보죠. 저는 이 제목을 처음에 보고 권투만화인 「더 파이팅」이 생각났는데, 그럴만도 한 게 「더 파이팅」의 원래 제목이 「하지메 노 잇포(はじめの一歩)」거든요. 시작하는 한 걸음이란 뜻이기도 하고, 주인공인 마쿠노우치 잇포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투니버스에선 애니메이션 방영할 때 주인공이 전일보라는 이름으로 나왔죠. 이렇게 잇포 하면 생각나는 게 권투 만화였던 판이라 어라 이 작품은 뭘까 했는데, 말 그대로 사람의 ‘한 걸음’을 내딛게 해 주는 동반자, 신발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정확히는, 수제 맞춤 구두를 만드는 앳된 청년 장인의 이야기였습니다. 전혀 다르잖아-라면서 보게 되더군요.

스토리 라인은 사실 굉장히 단촐합니다. 토쿄의 수제 구두 공방 IPPO의 사장인 이치죠 아유무는 이제 막 스물둘인 젊은이입니다. 부모가 이혼하자, 부인과 사별 후 일본에서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간 할아버지에게 몸을 의탁했고요. 유명한 구두 장인 가문 제를리니의 일원이었고 그 자신도 유명한 장인이었던 할아버지는 아유무의 요청에 따라 구두 제작법을 가르쳤고, 12살때부터 구두 제작을 배운 아유무는 감각과 실력을 겸비한 젊은 장인이 되었습니다. 17살 때 장인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아유무는 22살에 일본으로 들어와, 자기 이름 한자 셋 중 앞과 뒤 한 글자씩을 따 한 일, 걸음 보를 섞어 가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일본어는 한자를 여러 개로 읽을 수 있는데, 이치죠의 이치가 한 일(一)이고 아유무가 걸음 보(步). 합치면 일보. 이걸 일본어로 하면 잇포. 그래서 IPPO입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무 어려 보이는 젊은이가 이 큰 돈에 어울리는 전면 주문제작품을 잘 만들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제작을 맡기지만, 아유무는 그러한 걱정들을 조금씩 기대로 바꾸어가며, 평판을 얻어가기 시작합니다. 다만 나이가 좀 더 들어보이는 방법에 관해 고민하는 모습은 귀엽기도 하죠. 야 열 살 만 더 먹어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싶긴 합니다.

작품은 아유무를 메인으로 하여 구두 공방 IPPO에 찾아오는 가지각색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건 아유무가 할아버지 병환 소식을 듣고 이탈리아로 뛰어갔다가 원래 있던 공방에 붙들려 지내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로 전개됩니다. 그러니까, 아유무는 호스트고, 사실 작품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건 손님들인 셈입니다. 구두를 경조사 외에는 거의 신지 않는 뚜벅이파인 제 입장에서 저만을 위한 수제 맞춤 구두를 몇 백만 원이나 들여서 만드는 건 아마 앞으로도 그다지 없을 이벤트긴 합니다만, 작품을 보면서 살짝 놀란 게 있습니다. 서양식 복식이 주가 된 현대 사회에서 구두라는 물건은 최소한의 격식을 갖춰야 할 때엔 어쨌든 필요한 물건입니다. 어떤 좋은 운동화도 몇 달이면 허름하게 만들 만큼 운동화 뚜벅이파인 저조차도 의전용 구두는 두 켤레 정도 지니고 있을 정도니까요.

근데 이건 프리랜서니까 그렇다 치고, 사회인들 상당수에게는 구두가 기본일 겁니다. 그렇게 기본 장비에 가까운 물건이지만, 기성품에 내맡기기엔 신체적인 조건 차이도 제각기입니다. 그리고 어딜 나가기 위해 기본으로 장착해야 하는 물품이니만큼 옷과 더불어서 가장 자기에게 잘 맞아야 하기도 하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구두를 신고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게 자기 자신이라는 점 또한 잊어선 안 될 사실입니다. 주체는 물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 그리고 그 마음가짐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좋은 구두에 관한 정의가 바로 이러한 부분을 말해줍니다. 좋은 구두는- 아름다워야 한다. 걷기 편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한 걸음을 향해 내딛을 수 있어야 한다. 작품 속 가게 IPPO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바로 이 걸음을 내딛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 세상에서 자기만을 위한 자기 구두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만을 위한’이 아니라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걸 만들기 위함이라고만 하면 마치 사치 같을 수도 있는데, 세상에는 자기만을 위한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건 단지 돈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자기 발로 세상을 딛고 나아가는 데 필요한 무언가가 있기도 한 법이죠.

자기 방식대로, 자기 의지대로, 자기가 관철하고 싶어하는 삶의 방향대로. 손과는 또 다르게, 발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는 그러한 겁니다.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울퉁불퉁한 발이 그토록 화제가 됐던 것도 사실은 그런 의미겠지요. 그래서 한 걸음이라는 표현이 그만큼 묵직한 의지가 느껴지는 표현이고요. 작품은 바로 그 지점에서 아유무를 통해, 아유무가 만들어낸 수제 구두를 통해, 그 구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자기 걸음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그려냅니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나이를 먹어 이제 아버지의 유품이 된 구두 앞에 선 남자도, 자기 의지란 게 없어 애먹는 탤런트도, 사고로 다리를 잃고 의족을 단 채 디자이너로서의 인생을 시작한 언니도, 그렇게 자기 한 걸음을 걷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단지 아유무의 재능과 젊음으로 이 과정을 클리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손님 각각의 사연과 그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걸음걸이에 일일이 대응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 보입니다. 젠 체 하지도, 나이가 어리다는 데에 좀 더 괜찮아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구두에 관한 철학도 분명하죠.

앞서 언급한 한 걸음 외에도, 구두는 신고 걷기 위한 물건이라는 점이 그러합니다. 어쩌면, 아유무가 주문제작을 위해 손님의 발 사이즈를 재는 기술적인 행위 뒤에 그 손님이 무엇을 하고 있고 그걸 반영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한다-같은 자질구레한 지점들을 파악하는 것에도 그 철학이 고집스럽게 묻어난다 할 수 있겠습니다. 구두는 사람이 신고 걷기 위한 물건이니까, 칼 같은 정교함으로 한 켤레가 쌍으로 완전히 똑같은 게 최우선은 아니라는 점. 사람의 얼굴이 완전 대칭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그러한 면면은 아유무의 꼼꼼한 성격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일에 임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해서 사회인으로서도 많이 배우게 됩니다. 물론, 그 외에는 기본적으로 좀 맹하고 연애는 잘 못하겠구나 하는 점들이 비쳐서 그 갭이 꽤 귀엽긴 하지만 말이죠.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춘 표정과 앳된 표정의 갭도 좋고요.

작품에는 그 외에도 여러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는 듯 떡하니 주인공 옆에 남자를 배치해두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밀당을 시키는 전개라든가, 유난히 많이 얽히는 여성과의 썸은 진도를 어디까지 뺄 수 있을까, 아유무가 이탈리아에서 수제 구두 제작 문화가 전혀 자리잡히지 않은 일본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수제 전문 외에 기성품도 도입하려는 제를리니의 변화 앞에서 여러 생각을 쌓는 아유무라든지. 감성도 감성이지만, 소재 자체에 관한 탐미와 자기 본류에 해당하는 코드를 접합하는 데에서 시작해 어느덧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까지 확장시키는 솜씨는 작가가 지니고 있는 역량과 깊이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크게 다이나믹하진 않습니다. 작가가 어떤 소재를 그려도 절묘한 균형 안에 요소들을 배치해놓고 크게 모나지 않게끔 움직이는 편인지라, 이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형태의 작품이 없는 것도 아니죠. 메인이 되는 주인이 있고 손님들의 속 이야기와 그들의 인생사를 풀어내는 점에서는 아베 야로 작가의 「심야식당」도 있겠고, 우리나에서라면 「오덕후 이야기 – 보통 연애 다들 하고 계십니까」의 한송이 작가가 그린 신작 「김영자 부띠끄에 어서오세요」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류 작품 가운데 하나로서 크게 모나지 않는 작품일 뿐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탐미에만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전개, 그리고 자기 삶과 일에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는 주인공을 배치해놓으면서 맘 편하게 읽어낼 수 있게끔 만드는 것도 분명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 어딘지 야한 선을 구사할 줄 알면서 그 장기를 이번엔 한층 더 절제해내고 있다는 점도 재밌습니다. 그 절제가 완전히 감추어지지 않는 것도 포인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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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PO」는 전문 소재 만화인 듯하면서, 나름대로 고난도 취재가 필요한 작품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걸 부각하기보다 인간의 이야기, 사람들의 삶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전작들을 통해 팬이 됐던 BL 독자층 가운데에는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가면서 BL을 버렸다, 변절자다-라는 이야기도 들려 옵니다. 하지만 에스토 에무에 과문했던 입장에서 봐도 이 작품이 19금씬을 안 그릴 뿐이지 크게 변했다고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남성 캐릭터들에 매력 포인트를 집중하고 있는 점부터 시작해, 탐미의 대상에서 시작하는 전개 방식도 그러합니다. 작가의 시선이 단지 소재 자체에만 매몰되지 않는다는 건 전작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는데, 그게 조금 더 긴 호흡 속에서 확장되어 가고 있는 셈이겠죠. 독자층도 확장되는 셈이겠고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배신이 아니라 작가의 성장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제버릇 남 못 준다고, 씬만 없을 뿐이지 결국 남자들에게 매력 몰아주고 있잖아요. 아유무는 아마 여자랑은 맺어지지 못할 거예요. 아마도. 이러다 맺어지면 그건 그거대로 재밌긴 하겠군요.

오랜만에 차분하게 자기 삶의 방식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을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읽어보시죠. 모두들 만골만골한 한 주 보내십시오. 서찬휘였습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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