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로스트> 심리학에 기대어, 심리학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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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들고 북카페로.. 나는 ‘저잣거리형’ 작가!
<닥터 프로스트> 이종범 작가의 최근 인터뷰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취재는 나의 힘. 실제로 작가는 4주치 작업을 할 때 2주일 동안은 밖으로 돌아다니며 취재와 자료 조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취재’와 <닥터 프로스트>. 분명 취재는 <닥터 프로스트>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기존 <닥터 프로스트> 관련 글들이 주로 작품 외적인 측면인 ‘취재’에 초점을 맞추어, 상대적으로 작품 내적인 측면인 ‘서사’에 대한 논의가 소홀했기 때문이다. <닥터 프로스트>에서 다루는 심리학 지식의 정확성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문적 지식을 어떻게 이야기 속에 잘 녹여 내냐 하는 것이다.

최근 <닥터 프로스트> 시즌 3에서는 주인공 과거가 밝혀지고, 적대자와의 갈등이 고조되는 등 이야기 흐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취재’에 가려져 있던 <닥터 프로스트>의 서사를 이 시점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의학만화 관점에서 바라본 <닥터 프로스트>
<닥터 프로스트>는 엄밀히 말하면 의학 만화는 아니다. 주인공 프로스트는 의사가 아닌 심리상담학 교수이며, 배경 공간 또한 병원이 아닌 대학 상담실이다. 하지만 <닥터 프로스트>는 ‘질병이 발생되고 치료되는’ 의학만화의 기본적인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매 에피소드마다 특정 정신질환을 앓는 인물이 등장하고, 주인공 프로스트는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닥터 프로스트>는 주인공과 ‘환자 또는 질병’의 관계 또한 의학만화의 관습을 따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의학만화에서는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갈등이 발생하며 작품 전체에는 긴박감이 흐른다. 질병은 주인공이 싸워야 할 적대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순되게 들릴 수 있지만, 질병은 궁극적으로 주인공의 구원자다. 의사인 주인공은 질병을 치료하면서 자신의 내면의 결핍을 극복하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인간으로 성장한다. 다시 말해, 환자를 치유하는 행위는 동시에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다.

텅빈 방 2텅빈 방 3

그렇다면 <닥터 프로스트>의 경우는 어떨까? 주인공 프로스트(백남봉)는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결핍된 인간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인간을 보다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 공부를 시작한다. 상담 역시 마찬가지다. 프로스트에게 상담은 이론적으로 이해하던 인간을 실제적으로 관찰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상담은 프로스트를 서서히 변화시킨다. 가령 <평강공주의 눈물>에피소드에서 프로스트는 자신에게 없지만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애착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프로스트의 꿈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주인공과 환자의 관계를 또렷이 보여준다. 꿈속에는 공허한 내면을 상징하는 텅 빈 방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방의 벽에는 프로스트가 그동안 상담했던 내담자의 사진이 차례로 걸려 있다. 이것은 그의 텅 빈 내면이 사람들과의 상담을 통해 조금씩 채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내담자를 돕는 행위는, 주인공 자신을 이해하는 행위다.

 

명백해진 목표와 적대자
<닥터 프로스트>는 현재 시즌 3가 진행 중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즌 3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 내용 특히 시즌 2의 내용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시즌 2에서는 천상원 교수의 제자이자 프로스트 형 역할을 수행했던 적대자 ‘문성현’이 등장한다. 그는 프로스트만큼이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졌지만, 심리학 지식을 이용해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는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진 인물이다. 즉, 문성현은 프로스트가 나아가려는 방향과 정반대의 길을 택한 주인공의 부정적 자아실현 캐릭터이다.

오랜 시간 이야기 밑에 잠재해 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문성현’. 그는 본격적인 갈등을 발생시키기에 앞서, 먼저 프로스트의 동료 ‘송선’에게 접근해 그녀의 내담자를 자살하게 만든다. 이후 이 문제는 프로스트가 교수직을 대신 내려놓으면서 진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프로스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사건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천상원 교수의 죽음. 그는 문성현의 음모를 눈치채고 막으려 하지만, 오히려 사고로 위장된 죽임을 당한다.

천상현 교수 1천상현 교수 3천상현 교수 4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천교수의 죽음은 프로스트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다. 그 결과 그동안 막혀있던 감정들이 급격히 터져 나오면서, 프로스트는 거대한 감정의 급류에 휩쓸려 버린다. 이제 시즌 3에서 주인공 앞에 놓인 목표는 명백해졌다. 프로스트는 외부적 목표로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문성현’의 음모를 저지해야 하며, 내면적 목표로 자신의 낯선 감정들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야 한다.

감정변화 1감정변화 2감정변화 3감정변화 4

임시거처로서 ‘정신 병동’
프로스트는 이제 결핍된 상태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본격적인 모험을 떠난다. 서사 이론에 근거한 전형적인 서사 구조다. 하지만 <닥터 프로스트> 시즌 3에서는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 처음 당도한 공간을 ‘정신과 보호 병동’으로 설정함으로써 이 작품만의 고유한 개성을 불어넣는다. 그렇다면 주인공 프로스트는 정신 병동에서 어떤 환자를 치료하며 이야기를 끌어나갈까? 놀랍게도 프로스트가 치료해야 하는 환자는 본인 자신이다. 심리상담학 교수 프로스트가 오히려 정신질환 환자가 되어 정신과 보호 병동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정신병동 4-2정신병동 3정신병동 1

시즌 3에서는 작품 배경을 왜 급격하게 ‘정신 병동’으로 이동시켰을까? 우선 정신병동은 대학 상담실에서 느낄 수 없는 공간 자체의 이질적 분위기와 이 공간에서 파생되는 보다 극적인 사건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사의 측면에서 ‘정신 병동’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이행하는 주인공이 거쳐 가는 ‘임시거처’로서 기능 한다. 이 ‘임시거처’는 통과 의례의 공간으로 주인공이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공간이다. 프로스트 역시 현재 내면이 붕괴된 상태이며, 그가 앞으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낯선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장’을 해야만 한다. 결국 ‘정신 병동’은 급작스러운 변화를 감당하기 위한, 다시 말해 프로스토가 ‘자기 안의 그림자를 직시하기 위한’ 최적의 공간이다.

또한 임시거처로서의 정신 병동은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언급한 ‘고래 태내’ 단계에 대응한다. 이것은 영웅이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이야기로, 이때 영웅은 이전과 전혀 다른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히 고래 태내의 상징은 무의식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주인공의 상황을 뚜렷하게 설명해준다. 심리학 관점에서, 고래가 나타난 상황은 무의식이 의식적 인격을 압도하고 힘을 얻은 상태를 말하는데, 정신 병동에 머물고 있는 프로스토 역시 환각 형태로 나타난 무의식에 압도당한다.환각 1환각 2환각 8

한편 주인공 주위를 떠돌고 있는 ‘환각’은 심리학을 소재로 한 작품다운 흥미로운 표현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무의식 즉 내면의 문제는 추상적으로 표현되거나 아니면 특정 행위를 통해 우회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닥터 프로스트>의 경우는 정신 병동을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환각을 출현시키고, 또한 이 환각을 이용하여 무의식을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는 인물로 형상화한다. 그래서 프로스트의 환각은 그의 유예된 죄의식의 형태로, 자살을 한 첫 번째 내담자 ‘송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형태로 주인공 프로스트에게 말을 걸며, 프로스트 역시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무의식이 자신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고자 한다. 프로스트는 그렇게 환각이라는 무의식을 통역하며 자신의 본질적인 문제에 파고든다.

“심리학 전공 만화가와 심리학계 전문가들이 만든 최초, 최고의 심리학 만화.” <닥터 프로스트> 단행본 뒤표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짧은 한 줄의 문장에, 심리학이라는 용어가 벌써 3번이나 등장한다. 그렇다. <닥터 프로스트>는 심리학을 다룬 전문 소재 만화다. 하지만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지점은, 비록 <닥터 프로스트>가 심리학이라는 전문 지식에 방점이 찍혀 있지만,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이야기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닥터 프로스트>는 연구논문처럼 단순히 하나의 상담 사례를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 밑에 가려진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을 엮어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주인공 프로스토의 여정’을 보여준다. <닥터 프로스트>는, 심리학 논문이 아니다. 심리학 교육만화 역시 아니다.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