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cast017

 

17회 핵심 요약

 

11월 3주차 베스트셀러 차트
11월 3주차

만골남의 선택
시기사와 카야의 「안녕 안녕, 또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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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골남017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
안녕하세요, 만화 골라주는 남자 서찬휘입니다. 지난 한 주도 실로 버라이어티했습니다.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전직 대통령이었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모든 이슈가 그쪽으로 쏠렸죠.

정치 시사 팟캐스트도 아니고 만화 뉴스 팟캐스트도 아니니 고인에 관한 평가를 이 자리에서 줄줄 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전 다 떠나서 이 분 임기 때 발효되어 오프라인 만화 시장을 초토화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청소년보호법 때문에도 만화인으로서 그리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공과가 갈리고, 만화계를 넘어 평가할 만한 부분이 없지 않은 인물이기도 했던 분이었죠. 현 시점에서, 역사 면에서 공과 과를 논할 수 있을 마지막 대통령이 이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접고 떠났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 지난 회차에서는 「달이 내린 산기슭」 을 소개했는데요. 시라노 님께서 다음과 같은 감상을 남겨주셨습니다.

“16회 달이 내린 산기슭 편까지 잘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학산 출판 1권을 구매한사람으로써 당시에 학산의 횡포에 부들부들 떨었죠. 웹툰버전으로 나온걸 사야하려나 흐음. 다음 방송도 기대하겠습니다”

웹툰 버전도 1권까지밖에 내 주질 않았어요. 이런 점에서만 보자면 학산문화사 좀 너무해요. 완결권까지 좀 내 주면 좋겠습니다. 뭐 비슷한 사례가 있기는 하죠. 「굿모닝 티쳐」 애장판을 5권까지밖에 내 주지 않은 대원씨아이 말이죠. 시장 상황이라든지 등을 감안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최소한 아무런 전조도 예고도 없이 퇴출시키다시피 한다거나 애장판을 내다가 그만둔다거나 하면 책 사는 사람만 바보가 되거든요. 모든 작품을 다 끌어안고 갈 수만은 없다고 인정을 한다 하더라도, 이런 경우까지 납득하라고 하면 뭐, 만화책 사지 말란 이야기로 읽어도 할 말은 없겠죠.

저는 「달이 내린 산기슭」 잡지 퇴출 이후로 학산문화사 잡지를 사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출판사 잡지도 손을 안 대기 시작했고요. 제가 직전까지 매월 6~7종을 구독해 보던 사람인데 딱 끊기더라고요. 맥이 풀린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퇴출해 놓고서는 권리도 안 놓아주었다가 문제가 시끄럽게 제기되니까 그제야 다음 웹툰란에 연재 연결이 됐는데 출판사 로고는 또 꼭 박아놓고, 웹툰판 단행본은 1권 내 주고, 완결권은 또 안 내주고. 왠지 괘씸해서 안 해주려다가 시끄러우니까 마지못해 해 줬다는 인상이잖아요. 내부 사정이야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바깥에선 알 일이 없죠, 아무 전조도 해명도 없었으니까. 그저 하고 싶은 말은, 사장님! 출판 좀 대국적으로 해 주면 좋겠습니다!

자. 각설하고, 전하는 말씀 들으시고 베스트셀러 차트 들으시겠습니다.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는 만화 비평 전문 웹진 크리틱 엠에서 제작합니다.

c r i t i c m .com, 크리틱엠.

 

지난 주 베스트셀러 차트
11월 3주차

지난 한 주 어떤 만화책이 가장 많이 팔렸는지를 살펴 보는 지난 주 만화 베스트셀러 차트 시간입니다. 이 차트는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의 만화 분야 50위권 베스트셀러 차트를 분석해 제작한 국내 유일 국내 최초의 통합 만화 베스트셀러 차트입니다. 11월 셋째 주 살펴보겠습니다.

자. 원펀맨의 기세가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공동 9위가 원펀맨 3권, 8위가 원펀맨 4권, 6위가 원펀맨 5권, 3위가 원펀맨 1권, 2위가 원펀맨 6권입니다. 2권만 빼고 쭉이군요. ONE과 무라타 유스케. 원펀맨은 지금 7권과 8권도 나왔는데, 이건 또 순위에 언제 오를지 궁금하군요. 설마 이 기세로 1권부터 8권까지 몽땅 10위권에 쳐들어오는 건 아니겠죠. 원 참 대단합니다.

공동 9위에 오른 건 슬램덩크 오리지널 박스판 1~5권 세트입니다. 이노우에 타케히코. 7위에는 오랜만에, 진짜 오랜만에 밤을 걷는 선비가 10위권 순위에 올라왔습니다. 13권. 조주희, 한승희 콤비. 드라마가 참 모양새 빠지게 나오고 끝나는 바람에 별로 버프는 못 받았습니다만 신간 내용을 본 독자들의 반응은 매우 애절합니다. 요즘 같이 긴 호흡 서사 만화 만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권 단위 절단신공을 선보이는 건 국내 출판만화에 몇 안 남은 스타 만화로서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깡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습니다.

믹스 7권이 5위입니다. 아다치 미츠루. 아오 하 라이드 13권, 완결권이 4위고요. 사키사카 이오. 그리고 원펀맨 1권과 6권을 지나 1위는 원피스 79권. 오다 에이이치로입니다.

지금까지 지난 주 베스트셀러 차트였습니다.

 

만골남의 선택
이번에 골라 온 만화는- 네, 일본 만화 턴이죠? 일본 만화 한 권 들고 왔습니다. 네, 긴장하지 마세요. 한 권으로 쌈빡하게 끝나는 작품입니다. 안 길어요. 시기사와 카야의 「안녕 안녕, 또 내일」입니다.

시기사와 카야 작가는 저는 「렌」이라는 라이트노벨의 일러스트로 처음 알게 됐습니다. 뭐랄까 사연 많은 눈을 지니고 애처로우면서도 어딘지 또 안아주고 싶은 소녀 캐릭터를 잘 표현해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두 번째로 만난 작품이- 네, 정말 아무런 정보 없이 표지만 보고 덥썩 집어들었던 「팜므 파탈」이었죠. 이 작가가 그 작가일 거라고는 생각을 전혀 안 했고 정말 말 그대로 표지에 낚여서 샀어요. 그게 말이죠. 아무 것도 안 입은 안경 낀 단발 여성이 뭔가 살짝 젖은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면서 엎드려 있단 말이죠. 상체만이지만. 게다가 도넛을 입에 물고서요.

아니 뭐지 이거- 구도만으로는 침대 위에서 안 뜯은 콘돔 물고 이쪽 쳐다보고 있는 모습 같잖아-라는 게 솔직한 첫 인상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엄청 강렬했어요. 캐릭터와 흰색 배경만 있는 표지지만 그것만으로 너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나중에 보니 이 작가 작품 표지 상당수가 그런 느낌이긴 하더라지만- 어쨌든 뭐 사내새끼가 그럼 그렇지 하셔도 할 말 없습니다. 일단 집어들고 와서 읽었습니다. 그리고 뭐 대차게- 낚였죠. 몹시 심각하고 색기넘쳐 보이던 표지였는데 내용은 그야말로 대하 캠퍼스 커플 다각관계 로맨스 파탄 재조립기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여주인공이 팜므파탈인가? 부제가 운명의 여자인데 얼마나 남의 운명을 휘어잡을 만한 여자 캐릭터인 거야?라고만 생각했던 저를 꽤나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이 여자의 어디가 팜므파탈이야? 얼빵하잖아? 엉뚱하잖아? 덜렁거리는데다가 ‘유혹’ 같은 거랑은 전혀 상관 없는데? 음. 근데 진짜, 여성 동지 여러분. 제가 좀 많이 무식했습니다. 저를 매우 치십시오! 덕분에 팜므파탈이라는 개념에 관해서 공부를 할 기회를 얻었는데, 제가 팜므파탈이라는 개념 자체를 지나치게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더라고요.

그러니까, 아 역시 사내새끼란-이라고 하셔도 할 말은 없는데, 팜므파탈이란 게 제 뇌리에선 이런 거였어요. 남성을 육체적 매력으로 유혹해서, 파멸로 이끌어내고야 마는 그런 여성. 특정 목적을 지니고 몸을 이용해 남성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여성. 마타하리 같은 스파이나- 조금 예전으로 가자면 기생간첩 김소산 같은 만화가 나온 것도 이런 인식을 이용한 거겠죠. 근데 이게 페미니스트들에게 여성의 사회진출에 입지가 좁아진 남성들이 사회적인 여성의 역할을 한정하기 위한 저의가 깔린 인물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사실은, 최근까지도 잘 몰랐습니다. 공부가 부족했습니다.

근데 그것도 그건데, 아- 팜므파탈이 흔히 ‘치명적인 여성’이라는 뜻으로 번역이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파탈, 영어로 fatal, 치명적이란 표현이 causing death, 죽음을 초래한다는 차원으로서만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그리고 알고서도, 알면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단 점을 간과했더라고요. 그렇게 놓고 보니까 인물 구도가 이해가 확 됩니다. 이 작품은, 이 여성이 어떤 인물이고 어떤 단점이 있는지, 이미 연인이 있는지 알고서도 끌릴 수밖에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마음 고생을 쌓아가는 남성의 이야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일직선이고…… 그런데 상대는, 예측불허죠. 제가 공돌이라 그런지 상황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fatal error가 반복되는 것 같은 폭풍 전개를 보여주고-

음, 어쨌든 말이죠. 그렇게 보자면 이 작품의 제목이 이런 이유가 이해가 가더군요. 표지는 정말 끝내주는 낚시기는 하지만요. 세 권 완결인데 세 권 다 벗고 나와요. 그것도 나른하게 젖은 눈빛으로 쳐다보고요. 섹스씬, 나오기는 하는데 19금은 아니에요. 야한 이야기, 나오기는 하는데 씬이 강하다기보다는 상황이 강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가가 여성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여성 캐릭터들의 심리 전달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정서적으로도 상황적으로도 아 이거 정말 여성 만화다-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표지 보고 남성들은 많이 낚이고 여성들은 이거 뭐야 여자애 벗기는 종류야 하실 수 있는데, 남성분들에겐 여성들의 심리에 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고 여성들에겐 의외로 공감을 줄 만한 작품이 「팜므파탈」입니다. 한 번 꼭 읽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

이라고 하면 꼭 「팜므파탈」을 소개하려고 하는 것 같잖아!싶죠. 아니 근데 「팜므파탈」 때 워낙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아놓은 느낌을 줬던 작가라서, 「안녕 안녕, 또 내일」이란 작품을 만났을 때엔 나름대로 ‘이번엔 안 속아!’라면서 마음 속 방비를 단단히 하고선 펼쳐들었거든요. 그리고- 또 당했습니다. 이번엔 정 반대로 말이죠. 어느 쪽이냐면, 표지의 분위기가 낚시가 아니라 작품 전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아련하고 안쓰럽고 곧 사라질듯한 슬픈 눈빛을 한 소녀가, 마치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서서는 한쪽 손을 남자와 맞잡고 있죠. 뒤표지에는, 다른 여성 캐릭터…… 주인공의 친구인데요. 이 여성도 눈빛이 슬픕니다. 전작을 떠올리고는 낚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 되레 이게 낚시더군요. 간단히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주인공 소녀 야스나가 이쿠는 난산으로 태어나자마자 의사에게 스무살을 넘기기 어려울 듯하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말 그대로 불치병. 현재로서는 치료약은 없고 수술을 통해 병세를 늦추고 연명할 수는 있어도 완치는 불가능한 그런 병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시한부를 선고받은 소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배려가 약간은 부담스럽고, 스무살 이후의 인생은 없다고 생각해 온 터에, 마침 고교 졸업하는 해가 종말론으로 떠들썩했던 1999년이었던 마당에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건 모두 해 보고 끝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용한 시골 마을 여고에 다니는 고등학생으로서, 병원과 학교를 오가며 보내던 고3의 봄, 소녀는 한 남성을 만납니다. 여고에 부임해 온 생물 선생님, 고바야시 마사츠구를 말이죠.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친구는 부모에게 치료비로 막대한 빚을 떠넘긴 채 자기보다 먼저 떠나갔습니다. 어차피 그런 거 즐겁게나 살자는 마음이지만, 가슴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절망을 어찌하진 못합니다. 빨리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싶은 심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시점에, 어리숙하기 이를 데 없는데다 무언가 이런 한데에 있을 곳이 아니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딱히 허세부릴 줄 모르고 요령도 없는 남자 선생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첫 만남은 그리 좋지 못했죠. 옥상에서 처음으로 담배를 피워보다가 마사츠구에게 걸렸거든요. 하지만 그런 첫 인상과 더불어 이쿠의 몸 상태에 관해 알게 되며 둘은 서로에게 신경 쓰이는 선생과 제자가 됩니다. 이쿠에게 마사츠구는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 요령 없으면서도 필사적으로 자기에게 말을 걸어주는 선생님에 관해 좀 더 알고 싶다고, 좀 더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죠.

마사츠구의 경우는, 어떠한 이유로 말미암아 시골 학교에 부임해 온 남자입니다. 이 남자에게 이쿠가 다니는 학교에 부임한 건 어떤 이유로 실패와 좌절을 겪고, 쫓기듯, 도망치듯 들어온 자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무 문제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살기를 바랄 뿐이었죠. 하지만 그런 그의 눈에, 제한된 삶 앞에서 그저 좌절하기만 하기보다- 물론 표면적인 부분에서고 안은 많이 괴로워하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려고 하고 있는 소녀가 들어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 따윈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도망치지 않으려 들기 시작한다면 이야기는 또 다르겠지요. 너무나 사소하지만, 그런 소녀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습니다. 뭘 할 수 있을까 좌절하고 자포자기했던 심정에, 무언가 동력이 생긴 것이지요. 이쿠로 말미암아서요.

겉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의 좌절과 괴로움, 자기혐오와도 같은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시한부 소녀는 조금 더 살고 싶어하는 마음을 품었고, 남자는 뭘 어찌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어도 어떻게든 나름대로 해 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속에서 고갈돼 있던 둘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소녀는 시한부고, 여전히 남자는 서투르고 어리바리하지만- 죽음이 예정돼 있던 소녀가 살고 싶어하고, 살아 있되 죽은 듯 조용히 묻혀 있으려던 남자가 비로소 다시금 자기 발로 서려고 합니다. 서로로 말미암아서, 서로가 의미가 되어서, 서로가 삶의 이유가 된 거죠. 그렇게 둘은, 맺어집니다.

-라고만 하면 또 굉장히 해피엔딩 같죠? 근데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이 작품이 참, 재밌는게요. 둘이 맺어지는 건 첫 화에서 이미 결론이 나와 있습니다. 한 권 분량 안에서 과거와 현재 시점을 아주 다채롭게 오가는 통에, 첫 화 둘째 장에 나오는 이쿠의 대사가 그거거든요. 졸업식 장면에서 이 몸도 안 좋은 애가 마사츠구 선생을 쫓아와 붙들어놓고선 외칩니다. “나랑, 결혼해요! 선생님!” 종말론에 따르면 세상이 망할 예정이었던 1999년 7월을 앞둔 1997년 3월 어느날이었죠. 그리고 6월에- 둘은 혼인을 합니다.

물론 그냥 한 게 아니죠. 학교가 다 뒤집혔지 않겠습니까? 둘이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것과는 별개로 혼인이라는 건 또 완전히 무게가 다른 인륜지대사니까요. 작품은 일단 이미 둘이 혼인을 한 채로, 이쿠가 졸업한 이후 예상을 넘어 10년을 더 살고 있는 시점과 과거를 오갑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이쿠가 완쾌되거나 한 게 아닙니다. 이쿠는 하루 하루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더 얻길 바라며 ‘오늘’을 살고 있을 뿐이고, 수술을 거듭하며 연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종말론이 씨알도 안 먹힌 1999년 이후의 망하지 않은 세상이, 말 그대로 “망하지 않아서 좋다”고, “당신을 만나서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고마운 하루”인 거죠. 그래서 이쿠는, 의사의 선고보다 10년을 더 살아냈지만, 결국은 조금씩 무너져가는 몸을 부여잡고서도 ‘내일’을 ‘오늘’로 만들려고 합니다. 또 하루 멀어져가는 게 아니라, 또 하루를 나의 삶으로 만들어내려는 의지인 것이죠.

오늘은 어제 죽어간 자들이 그토록 바랐던 내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에 ‘당신이 허비한’이 더 붙긴 하는데,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이 사족 같은 앞 두 마디를 떼고 떠올리게 되더군요. 근데 이게 ‘그러니까 살아라, 일단 살아라, 닥치고 삶이 소중한 것이다, 살아 있으면 뭐든 된다’ 같은 말로 환원될 메시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이라는 순간을 소중히 해야 하는 까닭이 그렇게 거창하지만은 않습니다. 작품과는 조금 떨어진 이야기긴 한데, 제가 요즘 ‘역사’가 무엇인가-에 관해 생각이 많습니다. 역사가 유명인들의 거대한 흐름으로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저 같이 저널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분야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어느 정도 사관과도 같은 심정으로 임하고 있단 말이에요. 역사는 교과서에 나온 거대 흐름만이 역사가 아니라, 사람 수만큼 분야 수만큼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록 자체의 대단원은 큼지막하게 잡힐지라도, 그 속의 흐름 속에는 개개인의 움직임과 선택들이 분명히 들어가 있단 말이에요. 사소하고 사사로운 결정들이 모이고 모인 게 어느 한 분야의 역사고, 그 모든 분야가 묶이면 또 그 사회의 역사가 됩니다. 역사는 별다른 게 아니라, 모두의 ‘오늘’이 모인 결과물이란 말이에요. 거창한 게 아니라, 모두가 살아낸 ‘오늘’의 결과물이란 말이에요. 개개인의 이름이 다 남지 않을 순 있어도, 개인 없이는 사회도 없단 말이죠.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까닭은 어쨌든 그 사회에서 행복하고 잘 살고 싶어하고 그런 내일을 기대하기 때문이란 말이에요. 그게 안 되면 지옥되는 거고요. 빨리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지옥되는 겁니다.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열심히 오늘을 살아가자고 하는 거고, 독려하는 거고- 그러하죠. 이렇게 보면, 이 작품과 아주 떨어진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소하고 사사롭기까지 한 일말의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또는 살아가고 싶어하기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오늘’입니다. “내일을 오늘로 만든다”는 건, 그래서 이런 세상에서 왜 살아가는가?에 관한 답과도 같습니다. 작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끝난 것 같아도, 끝날 거라고들 해도, 내일은 오늘이 될 것이다. 그 당연한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일면 사소할 뿐이지만 행복하고 싶은 시간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이죠. 가끔은 태어나길 잘 했다고 생각할 때가, 그런 기분이 들게 할 상대가 앞에 나타날 수 있다고요.

작품을 보면서 몇 가지 재미난 부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연출. 「팜므파탈」 때부터 익히 보였던 심리 묘사가 종이 만화 연출을 통해 굉장히 잘 부각됩니다. 특히나 여성 심리가 잘 부각되는 부분이 있어요. 남자분들의 공부가 필요한 대목이죠.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 느낄 수 있는 완급 조절이 만화를 ‘읽는’ 쾌감을 줍니다. 게다가 단권이어서 밀도도 높고 군더더기도 거의 없고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전개 덕에 이야기가 상당히 입체성을 띱니다. 인물들 간의 개연성도 잘 부각되고, 흥미 유발도 잘 되고요. 그야말로 길지 않은 전개 안에서 이야기에 몰입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매우 잘 보여준다고 할까요. 그래서 일단, 읽으면 매우 재밌습니다. 또한 삶에 관한 이야기에, 시한부 소녀에다, 실패하여 도망치다시피 한 남자 이야기라서 무거울 수만도 있는데 개그가 굉장히 적재적소에 배치돼 있어서 지루할 틈을 안 줍니다. 「팜므파탈」과는 또 달리 표지를 배반하는 전개가 수두룩합니다. 개그와 시리어스의 배합 면에서는 정말 훌륭합니다.

둘째로 배경. 작품이 발표된 해가 2011년입니다. 2011년하면 후쿠시마 원자로 폭발을 일으킨 동일본 대지진이 있던 해입니다. 여전히 해결은 안 됐고, 대체 어느 지경까지 망가졌는지 무슨 피해가 더 있을지 드러나지도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지요. 일정부분에서는 오버를 뺀다고 해도, 분명 일본이 거대하면서 규모가 가늠도 안 되는 재앙과 맞닥뜨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재앙 이후를 그리는 작품으로 빠질 법도 합니다만, 이 시기에 나온「안녕 안녕, 또 내일」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도 아니고 Keep Calm and Carry On, 닥치고 하던 일이나 계속해-를 외치는 선전물도 아닙니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이쿠라는 인물과 종말론이 말하는 세계 종말을 앞둔 시기를 통해 ‘그래도 결국 망하지는 않은 망할노무 세상’ 속에서 오늘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을 뿐입니다. 뭐 꼭 당시 상황에 빗대어 그렸다고 단정할 순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시기 면에서 볼 때엔 굉장히 맞닿은 점이 많아 보이고- 그렇게 놓고 보면 더더욱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죠.

셋째로, 일본어. 일본 작품이니 일본어로 쓰인 건 당연합니다만, 작품 제목을 비롯해 한국어로 번역될 때 그 뉘앙스가 오롯이 그대로 전달되지만은 않는 부분들이 몇 있습니다. 이쿠의 이름은 기를 육(育)을 쓰는데 기르다 외에 성장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 부분이 전혀 제시되질 않아서, 대사 가운데에 부모님이 한 없이 바라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하는 부분의 어감이 전혀 전달이 안 되더라고요. 마키의 이름도 일만 만(万)에 기쁠 희(喜)를 써서 기쁜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고 할머니가 지어주셨다고 하는데 정작 한자가 소개가 안 되어놔서. 역주 좀 달아주지 싶었죠. 어쨌거나 제목은, 이건 누가 해도 마찬가지로 정말 어려웠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역시 그 말이 지니고 있는 어감 자체가 살질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긴 합니다. 원제가 「さよなら さよなら, また あした」인데, 사요나라는 헤어질 때 쓰는 인사기는 합니다만 이별할 때, 또는 당분간 못 볼 때에 쓰는 인사말이라는 어감을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ここでさようならしましょう(여기서 작별이다)나 いよいよ今日で独身生活ともさようならだ(드디어 오늘로 독신생활도 안녕이다) 같이 말이죠. 하지만 이게 인사다 보니, ‘안녕’이라고밖에 번역이 안 되잖아요. 우리말에서 안녕이라고만 하면 어느 종류 안녕인지는 발음하지 않고서는 파악이 안 되다 보니 말이죠. 당연하다 하겠지만 제목에부터 이쿠를 연상할 수 있을 법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내일 또 보자는 また あした가 붙었죠. 그래서 제목을 보면 뭔가 감정이 복잡해진다고 할까요. 뭐, 이 대사는 작품 속에서도 중요하게 등장하긴 합니다만. 또, 내일 보자!라고요.

마지막으로, 인물들이 나름대로 강인한 각오를 품고 있습니다. 자기 혐오와 절망 속에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이쿠는 물론이지만, 그런 이쿠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 마사츠구 또한 보통은 아닙니다. 이쿠에게 감화되고,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됐다고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실패하고 도망쳤지만, 자기보다도 나이 어린 아이에게 존경한다는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건 이 사람의 근본이 꼰대는 아니라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인간됨됨이라는 면으로도 마사츠구는 이쿠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강한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이쿠의 프로포즈를 받고서, 바로는 아닙니다만 받아들일 각오를 다질 수 있었죠. 그게 자포자기가 아니니까요. 특히, 이쿠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마사츠구보다는 먼저 떠날 것이 거의 분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평생 함께 할 배우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건, 그만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친구인 마키도 그러합니다. 불쌍한 애니까 돌봐주라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가 친구가 되기로 마음 먹은 이후, 마키는 이쿠를 몇 안 되는소중한 친구로서 여깁니다. 처음 볼 때부터, 언젠가 갑자기 이 애를 위해 상복을 입게 될 날이 올거라고 각오를 하면서. 그 각오. 이쿠를 둘러싼 이들은, 그렇게 작지만 단호한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그저 불쌍하게, 안타깝게 바라보지 않고 자기 인생의 한 켠에 이쿠를 기꺼이 둡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나에게 그래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그 사람이 나의 반려요 동료요- 붕우, 참 벗이겠지요. 수가 많지 않아도, 그런 인생이면 나름대로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 오늘은 이렇게 「안녕 안녕 또 내일」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세상은 꽤나 지옥 같고 당분간 헤어나올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만, 그걸 고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거나 그걸 위해 일해야 할 사람들을 채찍질하는 것과는 별개로, 역사 속에서 절대로 아무 의미 없을 리 없는 개개인의 오늘에 조금 더 힘을 줘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무너져가는 몸을 부여잡고서도 이렇게 행복한데 죽을 수야 없지 않겠냐며 웃는 이쿠의 모습에서 여러가지를 배우게 되네요.

저도 혼자 살 때엔 외로워서 지금 콱 죽어도 가족 빼고 울어줄 사람 있을까 같은 생각을 했는데, 아내가 있고 이제 애가 태어날 입장이 되고 보니 이대로 죽을 순 없지-라는 생각이, 신기하게도 확 들더라고요. 이게 남편이고 애아빠로서의 책임감만은 아닙니다. 저 자신이 지금이 행복하고, 또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게, 작품이 말하는 내일을 오늘로 만든다는 것과 닮아 있지 않을까. 저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행복해야 가족도 제 주변도 행복하겠고요.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이번 주 순서 여기서 모두 마칩니다. 모두 만골만골한 한 주 보내십시오. 서찬휘였습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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