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자들의 일상툰을 그리고 싶다”

중국 웹툰작가 Buddy(링이판) 독점 인터뷰 

 

중국 만화가를 만났다. 무려 웹툰작가이다. 국내에서 Buddy란 필명으로 알려진 작가, 링이판이다.

지난 11월 18일 DICON 2015 중 세계웹툰포럼에서는 중국작가를 초청한 기조강연이 있었다. 강연은 “중국, 웹툰을 그리다”를 주제로 링이판 작가가 맡았다. 링이판 작가에 대해서 국내에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작가가 국내의 포털사 웹툰 코너에서 웹툰을 그릴 것으로 짐작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눈썰미 좋은 만화팬이라면, Buddy라는 필명으로 다음 웹툰과 카카오페이지 웹툰에서 동시 연재하는 작가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형적인 망가(일본 만화)풍의 익숙한 그림이지만 어딘지 낯선 화풍과 이야기 전개가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그렇더라도 작가들이 본명 대신 필명을 쓰는 시대라 이 작가가 중국 작가라는 걸 안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세계웹툰포럼의 첫 포문을 연 기조강연의 연사로 무대에 선 Buddy 작가는 작고 여려 보이는 체구지만 놀랄 만큼이나 힘 있고 또렷한 목소리와 유창한 영어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발표했는데, 영어 구사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또 강연 중에 사용한 프레젠테이션도 잘 만들어졌고, 그녀의 발표와 너무나 짜임새 있게 맞아들어 청중들을 기분 좋게 했다.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발표 말미에 남편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프레젠테이션의 스페셜리스트라고 밝혔다.

이국의 작가가 우리 만화의 ‘발명’이라는 웹툰, 그 한복판까지 ‘잠입’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와 따로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인지 작가는 포럼 이후 며칠 더 한국에 머물렀고, 작가한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일부러 만들어서 인터뷰 시간을 배정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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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서울을 방문해 맞은 토요일 정오께에 남편과 함께 인터뷰 장소로 나왔다. 강연은 준비된 글을 읽어 내려갔지만, 그녀의 영어는 수준급이란 것을 인터뷰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뷰는 통역 없이 영어로만 했다.

 

우선 한국에 오신 걸 다시 한 번 환영한다. 한국에 처음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이었겠으나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고맙다. 한국에 처음 온 것이 맞다. 한국은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 길거리도 사람들도 예쁘고 색감이 좋다. 전체적인 도시설계가 조화롭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패션 센스가 전반적으로 좋은 것 같다. 여자들은 영화배우 같고 키가 매우 큰 남자들도 많아서 놀랐다. 너무 좋은 얘기만 해서 인위적인 대답 같지만 (웃음) 이제 한국에 온 지 4일째다.

한 나라에 대한 소감을 말하기에는 짧은 시간인 듯하다.

그렇다.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시간을 갖고 더 오래 있으면서 이 나라를 경험해보고 싶다.

꼭 그래주길 바란다. 일단 DICON 2015에 기조강연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매우 재미있는 강연이었다. 당연히 중국어로 강연을 하리라 짐작했는데 영어로 해서 놀랐다. 굳이 영어로 강연한 이유가 있는가?

강연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이 있었다. 내가 듣기로 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적정 수준의 영어교육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영어로 강연하되 최대한 천천히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모두가 내가 말을 할 때 무슨 말을 하는지 직접 이해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통역이 있으나 가끔 의미전달에 오류가 있기도 하다. 언어 하나만의 전달보다도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와 발표자의 제스처, 눈빛 거기에 언어가 더해져야 의미가 충분히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통역사가 필요 없어서 다행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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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강연의 얘기로 돌아가자. 프레젠테이션으로 사용한 키노트 디자인이 매우 인상 깊었다. 발표의 말미에 남편이 직접 디자인을 했다고 들었다.

남편은 프레젠테이션의 스페셜리스트이다. 슬라이드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었다. 말은 얼마나 천천히 해야 하는지,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지, 심지어 슬라이드를 넘기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남편과 이 강연 외에 같이 공동작업을 한 적이 있는가?

사실 남편은 발표 자료나 포스터 등의 시각디자인을 전문으로 한다. 그 외에는 내가 만화작업을 할 때 캐릭터들의 심리에 대한 피드백을 성인 남성의 시선에서 풀어준다. 나와 나의 편집자는 둘 다 여성이라 한쪽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는데 남편의 피드백이 밸런스를 잘 잡아준다. 그리고 외부에 강연 나갈 때 의상의 코디도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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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강연에서) 창작자로서, 예술가로서 겸손하게 자신을 비우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목이 있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많은 작가들이 창작의 고통을 겪으며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자신만의 창작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

물론 나도 창작의 과정에서 그런 좌절을 수도 없이 겪는다. 그러나 프로로서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방법밖에 없을 때도 있다. 생계를 위해서 (웃음). 하지만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이 온다면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것도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강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22살 때, <Delicious Seasoning>이라는 작품을 연재하고 있었다. 그때 스스로의 한계를 너무나 절감하고 좌절했었다. 결국 연재를 중단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면서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고 성장한 것이 작가로서 큰 힘이 되었다. 진심으로 즐거운 일이 아니라면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남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내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강연에서 밝힌 대로 영국에서 공부를 하며 책을 냈고, 중국에서 연재하며 이제는 한국에서도 연재하고 있다. 굉장히 글로벌한 이력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작품 활동에 굉장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미국도 다녀왔다. 시애틀과 L.A.에서 몇 달 동안 체류하면서 멕시코도 방문했었다. 확실히 인생에 드라마틱한 경험이 있다면 바로 창작에 활용할 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삶을 살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다양한 삶을 경험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한 삶 자체가 나의 작품의 영감이 된다. 미국이나 멕시코에서는 길을 걷다가 노숙자들과 대화하기도 했다.

한번은 친구와 런던의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아마 새벽 두시쯤으로 기억이 된다. 친구가 담배를 사기 위해 나가는 길에 같이 나갔다. 새벽 두시에 여자 혼자 담배를 사러 나간다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가는 길에 열 명 남짓 되는 십대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에워쌌고 함께 술을 마시러 가자며 말을 걸었다. 근처 PUB에 같이 가자며. 물론 좋은 의도가 아닌 것 같았다.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최대한 침착하게 가장 덩치가 작은 남자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가만히 팔을 잡으며 “정말 미안한데 오늘 밤은 바쁘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그때 만나자.”라고 진심을 담아 말했고 의외로 그들은 알았다며 우리를 보내주었다.

그때 느낀 것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한다면 그들 안에 있는 선함이 반응할 것이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그 본심에 있는 선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런던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 중에 하나일 뿐이지만 그 모든 경험들이 창작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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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딩: 그녀는 나의 웬수>에 대해서 묻고 싶다. Buddy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데,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단호) 없다. (웃음) 그저 고등학생 때 영어를 배우면서 이 단어가 ‘친근한 사람’, ‘친구’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어감이 좋아서 필명을 결정할 때 망설임 없이 Buddy를 선택했다. 그것도 대학시절 데뷔하기도 전에 미래를 대비해서 미리 정해둔 것이었다. 심지어 그때 당시 사인도 미리 만들어 연습하곤 했다 (웃음).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정한 건 아니다. Buddy라는 필명이 친근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중성적이라 작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이 좋았다. 독자들에게 성별이 먼저 밝혀진다면 그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내 작품을 볼까봐 두려웠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저 나라는 작가의 작품과 세계관을 즐겨주기를 원했다.

어떻게 보면 그 작전이 성공한 듯싶다. 웹툰의 댓글들을 보면 작가가 당연히 한국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독자들이 많았다.

국적마저 속일 수 있을지는 나도 상상하지 못했다. 독자들이 나를 한국인으로 생각해줄 정도로 나의 작품이 통했다는 의미 같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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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중인 <가딩: 그녀는 나의 웬수>. 이번 강연을 위해 특별히 엽서를 제작하여 가디고 왔다고 한다

 

<가딩>의 두 여 주인공(수호령과 남자 주인공의 여자친구)중 어느 캐릭터에게 더 마음이 가는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왜냐면 수호령 여자아이는 마치 내 딸 같고, 여자친구 캐릭터는 나 자신과도 같기 때문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일정 부분 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구 하나 마음이 더 가거나 덜 가는 캐릭터는 없다. 다양한 모습이지만 모두 내가 사랑하고 인정해야 하는 나의 분신들과 마찬가지이다.

 

남편과 함께 인터뷰에 응한 Buddy (링이판)작가, 미소가 정말 해맑다

 

중국에서도 댓글 시스템이 있겠지만 한국에 연재되는 작품의 댓글들에 대한 모니터링이 가능한가?

가끔 편집자들이 댓글창을 찍어서 보내준다. 그러나 전부 한글이다 (웃음). 그리고 그 중 일부분을 번역해준다. 예를 들어 독자들이 내 작품을 좋아한다, 남자 주인공이 멋있다, 아니면 남자 주인공이 여자 수호령에게 너무 못되게 굴어서 싫다 등의 간략한 내용들만 알 수 있다. 중국 독자들의 반응과 거의 비슷하다.

현재 준비 중인 다른 작품도 있는가?

딱히 다른 연재작품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 지금으로써는 <가딩>만으로 벅차다. 하지만 <가딩> 완결 후 굉장히 긴 장편을 계획하고 있다. 그 전에 생활툰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마스다 미리같이 4컷 만화 스타일로.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직 남편과 결혼식은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일정이 잡혀 12월에 가족들과 뉴질랜드로 가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이미 식을 올릴 교회도 정해뒀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들을 살려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할 수 있는 생활툰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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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마지막 질문이다. 많은 한국의 독자들이 <가딩: 그녀는 나의 웬수>를 즐겨 보고 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우선 한국에 방문한 것도 처음이고 한국인 친구도 없어서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겪어보면서 한국 사람들도 중국 사람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체감한 바로는 전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확실히 한국 독자들이 만화에 있어서 취향은 더 고급인 것 같다. 이 부분은 중국어로는 절대 번역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웃음).

한국의 20대 30대들이 아직도 만화를 즐기며 특히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관한 만화(일상툰)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다른 사람의 삶이나 직업, 인간관계에 대한 실제 이야기들 말이다. 중국에서는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큰 수요가 없다. 중국 독자들이 선호하는 장르는 판타지적인, 현실에서 벗어난 특별한 이야기들이다. 매우 아쉬운 일이다.

나도 30대 여성으로서 이제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그린다. 지난 10년간 만화가로서 해온 작업이지만 판타지에서 벗어나 실제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그리기를 원한다. 물론 필요에 의해 판타지적인 요소가 들어간다. 하지만 판타지가 주는 아니다. 한국 독자들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는 것은 매우 대단한 일이며 나 역시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전하기 위해 열심히 작업할 것이다.

가끔 나의 초창기 작품부터 봐온 독자들에게서 메일이 온다. 10년 전 나의 데뷔작 <맛있는 계절>을 보며 자란 소녀가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그 자녀들과 함께 나의 만화를 본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곁에 있지 않아도 사람들의 인생의 성장과정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창작자들의 특권이라 생각된다. 나의 작품으로 인생의 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만큼이나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더욱 더 작품 활동에 매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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