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콘텐츠콘퍼런스(DICON 2015)가 지난 11월 17, 18일 양일간 코엑스에서 열렸다. 디콘에는 지난해부터 세계웹툰포럼이 별도 세션으로 마련돼, 글로벌 무대에 올라선 우리 웹툰을 조망하는 자리를 열고 있다. 세계웹툰포럼의 기조강연자 두 사람의 강연과 두 세션으로 나눠 진행된 국내외 연사들의 발표와 토론, 참여자들의 질의, 응답까지 모두 지면에 옮긴다.
특히 맨 먼저 기조강연자로 나선 링이판 작가는 따로 만나 인터뷰한 기사까지 함께 편집했다.
[편집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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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세계웹툰포럼

경계를 허무는 디지털 만화혁명 : 웹툰 -Focus on Asia

기조강연 1. 링이판(중국 웹툰작가) 중국, 웹툰을 그리다

기조강연 2. 에가미 히데키(YLAB 글로벌 프로듀서) 만화산업의 숨은 축, ‘프로듀서’

세션 1. 한중일, 디지털만화 트렌드
이승한(레진엔터테인먼트 CP) 한일 웹툰 시장의 트렌드 비교
쉬닝(웨이만화 판권합작부 총감) 중국시장 동향 및 현지 애니메이션
정종욱(마일랜드 이사) 중국시장을 공략한 한국 웹툰
야마시타 마사키(아무투수 이사) 일본 e코믹스 시장의 현재와 미래

세션 2. 웹툰 비즈니스 모델의 진화
센 하오(항저우 판판 애니메이션 대표) 중국 웹툰의 유료화 현황 및 판판 웹툰의 성공 노하우
료타 레이 야스에(DeNA, 망가박스 이사) 일본의 만화산업에서 망가박스의 유료화 전략
서현철(레진코믹스 총괄 PD) 레진코믹스의 유료 웹툰 성공 비결

 

 

기조강연 ① 링이판 

중국, 웹툰을 그리다

* 이 기조강연은 링이판 작가가 영어로 발표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버디입니다. 제 필명이 버디이고 제 실명은 링이판입니다. 저는 중국 북경에서 왔습니다. 국제콘텐츠컨퍼런스 2015 기조강연자로 초청 받아 제 생각과 작품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만화작가로 만화를 지난 12년간 그려왔습니다. 12년 중 10년은 전문적인 예술가로 활동해왔습니다. 오늘 말씀드릴 주제는 어떻게 제가 만화작가가 되었는지, 또 중국에서 웹툰 시장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제 인생이야기를 포함해 중국의 만화산업의 시대별 변화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은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그림동화책입니다. 중국 작가의 작품인데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예술적입니다. 제가 정말로 좋아했던 작품입니다.

그러다가 11살 때 처음으로 만화를 만났습니다. 그때 보았던 첫 번째 만화가 바로 <란마 ½> 이라는 작품으로 일본 작가 다카하시 루미코의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형식의 책은 제가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방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쓰고 중국 사람들은 좌에서 우로 쓰기 때문입니다. 또 동화책에서처럼 그림의 틀이 늘 직사각형에 제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한 장에 그려진 여러 말풍선 안에 있는 대화를 연결해서 읽는 순간 만화 내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만화 안에 있는 대화를 읽게 되는 순간 갑자기 만화가 다른 책이 전달해주지 않는 방법으로 스토리를 전달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영화같이 액션과 감정, 또 줄거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전개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단 한 사람이 작업해낸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저에게는 그때도 그랬고 또 지금도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 당시에 제가 만화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모른 채 반드시 커서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11살 때 내렸던 결정으로 인해서 저는 망가, 즉 만화를 더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그림 그리는 테크닉, 또 일본 미술가의 판화 정리기법 등을 열심히 따라서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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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당시에 ‘망가’를 배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독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나고 대학교를 졸업을 했던 2003년, 저는 첫 번째 중국 만화잡지에 시리즈물로 만화를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Delicious Seasoning>, 맛있는 계절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것이 제 첫 번째 만화작품입니다. 중국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줄거리는 위대한 요리사가 되는 것이 꿈인 여대생이 가족을 위해서 파트타임으로 요리를 하면서 또 본인이 만든 요리를 먹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중국만화 잡지에는 이렇다 할 만화 원작이 없었습니다. 만약에 만화가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잘 그린다면 바로 눈에 띄는 것이었죠. 그 중 하나가 정말 운 좋게도 바로 저였습니다. <맛있는 계절>이라는 만화를 그릴 당시에 저는 모바일 게임회사에서 풀타임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이 <맛있는 계절>이라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제 자유시간을 모조리 할애하면서 보냈습니다. 하루에 4시간씩 그리고 주말 내내 그렸습니다. 너무 바빠서 죽을 것 같았지만 행복했습니다. 만화가가 되고자 하는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하지만 1년 뒤, 제 창작활동에 병목현상을 겪으면서 더 이상 뭘 써야 할지, 뭘 그려야 할지 막막해졌습니다. 처음에 재밌었던 것이 더 이상 재미있지 않고 고통스러워졌습니다. 비록 독자들은 여전히 만화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 관심이 오래 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지도 않는 스토리를 들려줄 수밖에 없다면 당연히 독자들도 그 스토리를 싫어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22살이었고 제가 좋아하지 않는 일은 할 수 없다고 결정을 하고 <맛있는 계절> 연재를 중단하고, 이제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중국을 떠나서 외국으로 갔습니다.

1년 동안 만화를 그렸던 덕에 어느 정도 돈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공허했습니다. 머리가 텅 빈 것 같았고 또 시급하게 제 머리를 채워 넣지 않으면 죽을 정도로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영국 버밍험으로 떠났습니다. 영국에서 바로 오늘 보여드릴 두 번째 스토리인 <Cactus>(선인장)를 창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교수들은 일본만화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학생들에게 일본만화를 따라 하라고 권유하지도 않았고 기존의 스타일을 답습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버밍험으로 온 사람들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공부했고 그것이 바로 제가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만화 영향을 없애려고 새로운 그림기법과 스타일을 시도해봤습니다. 여기 보이시죠?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다가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스토리를 창작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제 인생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것이죠. 스스로를 돌보면서 혼자 살다 보니까 지나치게 많은 여유와 공간이 생겨서 제 영혼을 둘러볼 여력이 충분히 생겼습니다. 외국인으로서 영국 생활 적응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중국 독자들이 저에게 보여주었던 지지와 열성적인 응원 때문에 고독한 해외생활이 더욱 더 힘들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아무도 저를 아무도 몰랐고요, 다른 학생들과 저를 비교해본다면 저는 너무나도 미숙하고 부족함투성이였죠. 사람들이 저를 알아봐주었으면 했고 또 친구를 만들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교수들의 영국식 영어발음을 재대로 이해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졌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저는 <선인장> 스토리를 썼습니다.

숲속에서 자라는 선인장은 주변의 나무들과 자신이 얼마나 다른지를 깨닫습니다. 다르다는 사실은 너무나 싫어서 숲속에 있는 다른 나무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계속 꿈을 꾸었죠. 자기 몸에서 줄기와 잎사귀가 나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었더니 숲이 완전히 사막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숲에 있었던 수많은 나무들이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은 바로 선인장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인장 몸에서 큰 꽃이 피었습니다. 사막에 있는 유일한 꽃이었죠.

이 책이 맥밀란(McMillan) 아동책 시상식에서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이 상을 받기 위해 저는 런던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선인장 주인공처럼 저도 꽃 피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석사학위를 받고 나서 다시 북경으로 돌아갔습니다. 공허함은 여전했습니다. 영국에서 1년 간 살았던 제 경험은 대학교 캠퍼스 안에서 학생으로서의 경험이 전부였으니까요. 전문창작자로서, 실제 전문가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번에는 런던에서 3개월 체류할 목적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예산의 반만 가지고 갔습니다. 무슨 의미냐면, 만약 제가 15일이 지나도 예술가로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남은 돈은 귀국 비행기표 값뿐인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15일 이후에는 귀국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니면 최대한 50일 동안 구직활동을 하면서 항공료마저 다 써버리는 것입니다. 너무 끔찍하게 들리나요? 네, 끔찍한 계획이죠. 하지만 당시에 저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생각 없이 저는 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죠.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하고 지하철로 30kg 되는 가방을 질질 끌며 갔습니다.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또 호텔 예약도 안한 상태였죠. 기차 안에서 지도를 보면서 역을 골랐습니다. 도시 중심지처럼 보이는 역을 골라서 내려 길가에 있는 호스텔에 들어가서 숙박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런던에서의 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저는 구직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무명에 프리랜서 만화예술가의 인생이란 쉽지 않았습니다. 10일 동안 아무리 돌아다녀도 구직은 실패했습니다. 너무 걱정이 되어서 밤에는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이 미친 짓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 때문에요.

저는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선인장>이 떠올랐죠. 제 자신에게 “<선인장>처럼 버텨라!” 라고, “참아라!”라고 타일렀습니다. 11일째 되는 날, 런던에서 만화 엑스포가 열려서 기회를 잡으러 갔습니다. 유명 출판사 편집자의 강연을 듣고 나서 저는 그분께 제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습니다. 1분만이라도 시간을 내서 제 작품을 봐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긴장이 되었고 관중들은 모두가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포럼에 참여하신) 마치 이런 모습으로요. 출판편집자는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자세히 제 작품을 보더니 “너무 훌륭하다. 함께 일하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뒤에 몇 개 작품을 영국에서 출판해 주었습니다.

제가 너무 신나하고 있을 때 아주 예쁜 여자분이 관중석에서 저에게 걸어왔습니다. 데모 CD를 제 손에 쥐어주면서 “이것은 제 노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아나였고, 가수였습니다. 아나가 저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본인의 데모 CD에 일러스트레이션 표지를 그려줄 수 있냐고 물어봤죠. 저는 “오~ 당연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일 덕분에 천 파운드를 벌었습니다. 그 돈으로 남은 체류비를 충당하기에 충분했고, 중국으로 돌아갈 항공 티켓까지도 살 수 있었습니다. <선인장> 주인공처럼 용기를 내서 저는 영국에서 살아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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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배웠던 것은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였습니다. 두려움도 좋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은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여러분의 잠재성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버밍험에서 1년, 또 런던에서 3개월을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에 쓸 만한 아주 많은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이 머릿속에 가득 떠올랐습니다. 더 이상 저는 그림 그리는 기법과 스타일만 추구하는 작가가 아니었습니다. 제 최우선 순위는 좋은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망가(만화)는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스토리를 전달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북경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지내면서 새로운 망가 스토리에 전념을 했습니다. 그때 바로 세 번째 스토리인 <Spirit Voice>(영혼의 목소리)를 창작하게 되었습니다. 제 작품 중에 가장 논란 대상이 되는 작품입니다.

2007년 당시 중국에서는 점점 더 많은 만화잡지가 등장했고 또 정말 미친 듯이 잘 팔렸습니다. 점점 더 많은 만화작가와 작가지망생이 생겼습니다. 또 중국원작 만화독자도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직접 그린 만화를 출판하기 위해서는 잡지사에게 보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만약 가장 유명한 잡지에 기고해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본인이 그린 만화책은 수백만부가 팔릴 수 있고 작가도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잡지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 지면서 주목을 받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저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요. 또 일부는 저보다 유명해지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편이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작품에 대해 집중되던 관심이 다른 창작자에게 분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끌려면 내가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에 집착하면 스토리 창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돈과 명예를 목표로 할 때만 중요한 것이죠. 당시 저는 좌절스러운 인간관계를 겪고 있었습니다. 제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너무 어려웠죠. 그러다가 인간 심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심리에 대한 만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출품한 것이 <스피릿 보이스: 영혼의 목소리>입니다.

심리학자인 한 여성이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를 알고 싶어서 10대의 한 환자를 만납니다. 이 환자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 심리학자는 수많은 궁금증이 생깁니다. 스토리 자체가 심오하며 깊이가 있었고 당시에 다른 만화와는 완전히 다른 만화였습니다. <영혼의 목소리>가 잡지에 실릴 때 제 만화만 찾는 열성팬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 스토리를 써 내려가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시나리오 작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책도 읽었고 영화나 TV시리즈도 보고 또 심리학자를 직접 인터뷰를 해보며 점점 더 많이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연구를 하다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잘한다 하더라도 항상 어떤 식이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뭐든지 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스스로 더 잘하려고 또 항상 달라지려고 노력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혼의 목소리>라는 만화에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먼저 줄거리도 다양했고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흑백이 아니라 컬러로 시도해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배운 것을 실험적으로 시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13년 9월, 제가 만화를 연재하던 잡지사가 폐간되었습니다. 당연히 제 만화도 중단되었습니다. 충격이 컸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안도도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목소리>를 연재한다는 것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졌고 힘들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마음이 공허해지면서 다시 재충전 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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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만화를 연재할 다른 잡지사를 바로 찾거나 혹은 새로운 망가 시리즈를 바로 창작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형태의 단편 글을 쓰기를 하고 그래픽노블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두 개가 국제만화상대회에 나가서 동상을 받았습니다. 이 국제만화상은 일본 외무부가 주최하는 상이었습니다. 2012년 그리고 2015년 각각 제가 상을 받았습니다. 다른 일을 하면서 저는 계속 기다렸습니다. 잡지 폐간을 시작으로 책 판매가 줄어들었고 또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죠. 중국에서도 소셜 미디어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2009년이었습니다. 2014년에는 모바일 네트워크가 대세를 이루면서 사용자들이 글보다는 그림에 더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쯤으로 기억하는데요, 작년부터 웹툰이 중요한 마케팅 방법이 되면서 만화작가들은 만화광고를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혹은 만화 웹사이트나 회사 등과 계약도 맺게 되었습니다. 또 만화를 직접 스마트폰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수요가 폭증하면서 인기 있는 온라인 만화는 일주일에 100만 명 이상의 뷰어가 생겼습니다. 일부 만화 예술가들은 만화를 창작하는 기법을 변경하기 시작했습니다. 판화를 세로로 바꿔 그려 작은 핸드폰 화면으로도 보다 더 잘 볼 수 있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세로 스크롤) 이렇게요. (출판형식 페이지)이게 기존의 방법이죠.

세로방향은 모바일 방법입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았죠. 이제 나도 바꿔야 된다. 세상이 모두 바뀌고 있으니까. 다시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네 번째 스토리 <가딩: 그녀는 나의 웬수>라는 것을 창작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초에 웹사이트나 잡지사에서 많은 초청이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딩: 그녀는 나의 웬수>라는 만화의 새 연재처로 웨이만화사를 선택했습니다. 내용은 24세된 남자 이야기로 여자 수호령이 14살 때부터 따라다녔습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남학생을 그 수호령이 보호해 줍니다. 이 둘은 절친 중에 절친이죠. 그러나 유령은 자라지 않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수호령은 이 남성이 다른 여자와 관계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를 보호한다고 말은 했지만 남자는 더 이상 이 유령을 견디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름다운 여성이 남자에게 나타납니다. 아름답지만 비밀이 아주 많은 여성입니다.

제가 수많은 잡지사나 수많은 미디어 중에서 웨이만화사를 선택했던 이유는 제 만화가 인터넷에서 사용자들에게 어떤 호응이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웨이만화사는 중국에서 가장 큰 소셜네트워크 플랫폼 웨이보(Weibo)에 기반을 둔 회사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젊은 편집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실험을 하나 하고 싶었습니다. <스피릿 보이스: 영혼의 목소리> 창작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제 스토리 전개를 해보고 싶었고 편집자들과 함께 의견을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제 편집자인 글루미와 다른 사람들 모두 저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고 정말 협업이 잘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엔 이견도 많았고 독자들의 의견으로 충돌도 많이 있었습니다. 편집자들은 사람들의 댓글에 대한 걱정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댓글에 “주인공이 너무 잔인하다. 너무 못됐다. 왜냐하면 수호령에게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야.” 이런 말을 하면서 주인공을 좀 더 친절하고 착하게 만들어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스토리 전개상 주인공이 못된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따분해지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런 댓글들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등장인물을 사랑하거나 혹은 증오하기 때문에 스토리에 푹 빠져서 읽기 때문에 저는 좋다고 얘기했었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바꾸지 않고 제 의견을 고수했습니다. 결국은 편집장들이 포기하고 제 결정을 존중해주셨습니다.

<가딩: 그녀는 나의 웬수>를 시작하고 나서 많은 편집자들이 저에게 만화작성기법을 다듬고 훨씬 논리적이고 목적의식이 있고 절제된 기법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1년 만에 <가딩>은 1억 명 이상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그 외에 수많은 긍정적인 댓글들이 올라왔습니다. 또 다른 만화잡지인 ‘만화회’ 등에서 가장 인기 있는 1등 만화로 연재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첫 시리즈부터 최신 시리즈까지 1등의 자리를 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영화, TV 회사까지도 이제는 제 만화를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몇 달 전에 웨이만화가 “<가딩: 그녀는 나의 웬수>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한국독자들에게도 읽도록 하겠다. 한국 만화 웹사이트에도 연재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여러분도 읽어보시면 마음에 들 겁니다. 한국의 웹툰과 만화는 중국에 아주 잘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제가 몇 개밖에 안 읽었지만요. 제가 정말 감명 깊게 본 작품이 있습니다. 제목은 중국번역으로 <I love you>라는 만화입니다. 스토리가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도 한국 작가들이 더욱 멋진 스토리를 창작하고, 또 저는 한국 작가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서 중국만화산업 안에서 일을 하면서 제 인생을 돌아보니 저는 어느새 자질 있는 창작가가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급변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재능과 테크닉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매 순간 새로운 것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가끔 마음을 비우고 허영심과 자만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겸허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또 다시 마음을 채워서 좀 더 나은 스토리 창작활동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여기 몇 가지 슬라이드 이미지가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가져온 것인데요, 혹시라도 저작권 문제가 있다면 메일로 연락을 해서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발표한 모든 슬라이드는 프레젠테이션 전문가가 해주셨는데요, 바로 이쪽에 앉아 있는 제 남편입니다. 프레젠테이션 스페셜리스트이자 디자이너입니다. 혹시라도 슬라이드에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저의 남편인 레이먼드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는 화면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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