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호랑이에 대한 새로운 관계 설정_ <호랑이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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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예로부터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물론, 인간이 조심해야 할 야생동물로는 집채만한 크기의 곰이나 사자 혹은 배고픈 멧돼지 등과 같은 부류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 비교했을 때 유독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에 있어서 특별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신성함’ 때문이리라. 즉,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부르며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신성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러한 신성함을 더욱 확고하게 만드는 것에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신화 혹은 전설에 호랑이가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 한몫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삶 속에서 호랑이는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했지만, 한편으로 경계 또한 명확해 보인다. 즉, 해와 달이 될 남매를 쫓아 하늘에 오르고자 할 때도, 혹은 산군이라고 불리며 추앙받을 때도 호랑이는 언제나 인간에게 친밀한 존재라기보다는 피하고 거리감을 두어야 하는 대상이었던 셈이다. 심지어 곶감보다도 덜 무서웠지만 곶감만큼도 친밀해질 수 없었던 존재, 그게 바로 우리에게 각인된 이야기 속의 호랑이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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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산군’은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닌 믿고 의지해야 할 존재로 등장한다.

 

<호랑이 형님>은 호랑이에 대한 이러한 기존 선입관에 대해 반기를 든다. 즉, 호랑이와 인간 사이에 존재했던 기존의 거리감을 무너뜨리고, 호랑이가 능히 인간의 편이 되어 기꺼이 희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아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쩌면 (곰은 인간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인간이 되지 못했던) 단군신화에서부터 시작해 사람들과 멀어져야만 했던 그동안의 기억을 허물고, 인간과 호랑이의 관계를 새로이 설정한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호랑이에 대해 ‘형님’이라는 호칭을 부여함으로써 그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평화로운 마을 까치목골에서 시작된다. 장사를 떠나는 주민들과 마을 곳곳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가난이나 전쟁 같은 험한 시대는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목벽만이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러한 위기감은 숲 속 호랑이들에게 귀신을 씌어 마을을 공격하게 만드는 요괴들의 등장을 통해 곧바로 현실화된다. 때마침 나타난 거구의 호랑이 ‘산군’, 그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는 동네를 뛰어다니던 아이들 가운데 머리카락 색깔이 새하얗던 ‘아랑사’를 지켜야 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어린아이를 지키는 호랑이의 용맹함과 정의로움, 그러한 특징은 호쾌한 ‘액션’이 더해져 한층 극대화된다. 악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모습은 처음부터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치열하다. 호랑이의 몸놀림만큼이나 연출의 움직임은 격렬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독자들의 손과 눈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휘몰아치는 장면들의 연속을 목격하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독자들은 일주일에 한 회씩 그려내는 작가의 내공에 감탄사를 내뱉게 될 수밖에 없다. 동물의 역동성을 담보한 작품으로 이 정도의 속도에, 이 정도의 분량으로 연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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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시작부터 호쾌한 액션이 연출되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인다.

 

물론, 지금까지도 호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는 종종 있어왔다. 잡지만화 시대의 호랑이 만화는 누가 뭐라 해도 ‘안수길’의 이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호랑이 만화가’라고 불렸을 정도로 그는 오로지 호랑이만을 그렸는데, 자연 상태 그대로의 생생함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웹툰 속에 등장한 대표적인 호랑이들은 <TLT>와 <호랭총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작품 속의 호랑이는 직립하여 마치 인간처럼 행동한다. 취업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생존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니, 안수길의 작품이 야생 그대로의 호랑이를 담아냈다면, <TLT>나 <호랭총각>은 야생이 제거되고 인간화된 모습으로 형상화시켰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호랑이 형님>에 이르러 인간과 함께 하는 야생의 호랑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현실 속 호랑이는 ‘멸종’이라는 단어에 쫓기며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생명을 유지하는 신세가 되었으나, <호랑이 형님>이 보여주는 인간과 호랑이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여전히 호랑이가 인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이야기 속에서는 산군이 아랑사를 지켜주듯이, 현실에서는 우리가 호랑이를 지켜줌으로써 그러한 관계설정을 유지해나가야 마땅할 듯싶다.

 

김성훈

편집, 기획 등 만화와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즐겁게 일하고 있으며, 관련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만화 속 백수이야기>, <한국 만화비평의 선구자들>, <한국 만화비평의 쟁점>, <한국만화 미디어믹스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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