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cast018

 

18회 핵심 요약

 

11월 4주차 베스트셀러 차트
11월 4주차

 

만골남의 선택
펠레 포르셰드의 「우리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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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전문 보기
만골남018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
「우리 부모님」 – 초 고령화 시대, ‘가족’과 ‘사회 구성원’의 의미란?

 

안녕하세요, 만화 골라주는 남자 서찬휘입니다.

지난 주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고를 전한 적이 있는데요. 1주일 사이에 또 다른 분의 부고를 전하게 됐습니다. 일본의 원로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 선생이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11월 30일 아침 7시였는데요. 11월 11일 자택에서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입원했는데, 응급 수술을 해 잠시 회복했으나 이후 상태가 나빠지면서 다발성 장기 부전을 일으켜 사망했다고 하네요. 향년 93세.

선생은 돗토리 현에서 성장해 그 지방에 선생을 기리는 박물관도 있는데요. 돗토리 현은 스스로를 만화의 고장으로 브랜딩하고 있고 한국 만화계와 교류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명탐정 코난 작가인 아오야마 고쇼도 이쪽 출신이라 하고요. 최근엔 만화왕국 돗토리라는 이름으로 서울 명동의 만화 공간인 재미랑과 교류전도 펼치고 있는데, 한창 교류전 중에 그 전시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미즈키 시게루 선생이 돌아가신 셈입니다. 재미랑 측은 전시품 가운데 추모하는 글귀를 배치하기도 했다는군요.

미즈키 시게루 선생은 「게게게의 기타로」 등 요괴 만화로 일본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만, 단지 만화계 원로로서만 존경받아온 건 아닙니다. 선생은 제2차 세계대전에 징병돼 폭격으로 왼팔을 잃었습니다. 종전 후인 1958년 만화가로 데뷔했는데, 일본제국주의의 병사로 전쟁을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전쟁에 비판적인 입장을 작품 속에 담아 내기도 하였습니다. 국내에 정식 번역되진 않았습니다만 「전원 옥쇄하라」와 같은 작품을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과 비참함을 드러내기도 했고요. 에세이 만화집 카랑카랑 에서는 조선인 위안부에 관한 에피소드를 발표하며 제대로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해당 문제를 덮어둔 채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일본 사회 속에서 전쟁을 겪은 징병 당사자의 발언은 큰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선생의 죽음에 관해 일본 만화계에서 내외 인사들의 추모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내일의 죠」의 작가 치바 테츠야 선생의 추모사가 주목할 만합니다. “70년 전 똑같이 전쟁으로 사선을 헤맸던 미즈키 씨, 그 후 만화 주간지의 여명기부터 오늘까지 함께 마감과 싸워 왔던 동지이자 전우였으며 우리 만화가들에게 친절한 형이었던 미즈키 시게루 씨의 부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슬프고 외로운 한 마디입니다. 오랫동안 고생하셨고, 이제 폭격도 마감도 없는 세계에서 제일 좋아하는 팥떡 드시며 푹 쉬세요”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네요.

원로 업계인은 많아도 어른이라 할 만한 사람이 없는 건 어느 바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90세를 넘겨서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현역으로 남아 있었던 미즈키 시게루 선생은 국적을 떠나 존경할 만한 어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 그리고 지난 11월 30일, 강풀 작가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타이밍」의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초대를 받아서 다녀왔는데요. 강풀 작가님 작품 가운데 애니메이션화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 때 제작 중단됐다는 루머가 돌아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는데 무사히 완성돼 대중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12월 10일 개봉 예정이라 이 방송 나갈 때엔 아직 아직 정식 개봉은 아니어서 미리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일단 캐릭터 디자인이 상당히 잘 됐습니다. 공식 포스터의 구도도 좋고요. 전 개인적으로는 장세윤 언니의 조형이 특히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도입부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몰입도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요. 런닝타임 100분 안에 담아내기엔 압축의 미가 살짝 아쉬웠습니다만, 「타이밍」이란 작품을 보셨던 분들이라면 한 번 극장을 찾아 보심도 괜찮을 듯하다고 생각합니다. 웹툰이 2005년작이니까 10년만의 영상화인데, 조금 더 일찍 개봉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랍니다. 어쨌든, 개봉 축하합니다.

전하는 말씀 들으시고, 지난주 베스트셀러 차트 들으시겠습니다.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는 만화 비평 전문 웹진 크리틱M에서 제작합니다.

c r i t i c m .com, 크리틱엠.

 

지난 주 만화 베스트셀러
11월 4주차

지난 한 주 어떤 만화가 가장 많이 팔렸는지를 살펴 보는 지난 주 만화 베스트셀러 차트 시간입니다. 이 차트는 YES24,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의 만화 부문 50위권 베스트셀러 차트를 기준으로 산출해낸 국내 만화계 최초, 유일의 통합 만화 베스트셀러 차트입니다.

근데 이번 차트는 굉장히- 좀 심심합니다. 제가 지난 17회 방송에서 “설마 이 기세로 1권부터 8권까지 몽땅 10위권에 쳐들어오는 건 아니겠죠”라고 했는데요. 정확히 그 말 그대로 됐습니다. 1권부터 8권까지 10위권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자. 10위, 원펀맨 2권. 공동 8위. 원펀맨 4권과 3권, 공동 6위에 원펀맨 5권과 6권, 5위에 원펀맨 7권, 3위 원펀맨 1권.1위 원펀맨 8권. 4위에 시이나 카루호의 너에게 닿기를 24권, 2위에 오다 에이이치로의 원피스 79권이 있을 뿐 나머지가 몽땅 원펀맨입니다.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있어서 그 버프인가 싶기도 한데, 트위터에서는 원펀맨에 막 꽂힌 여성분들이 많이 보이고 있기도 하네요.

제일 재밌게 본 반응은 그렇게 먼치킨이면서 일상적인 부분에서는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그 갭이 끌린다-라는 이야기였는데 그럴만도 하겠습니다.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워낙에 주인공이 강하다는 걸 내세우고 있다보니 계속해서 파워 에스컬레이션을 탈 수밖에 없고, 금방 재미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호흡을 잘 끌어가고 있어서 신기한 작품입니다. 벌써 8권까지 왔는데 어찌 되려나요. 당분간은 이 흐름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뭐 더 할 말이 없네요. 지금까지 지난 주 베스트셀러 차트였습니다.

 

만골남의 선택
일단 한 가지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 작품과 일본 작품, 그리고 그 사이에 양쪽에 해당하지 않는 작품을 소개하는 걸로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요. 지난 주 제가 「안녕 안녕, 또 내일」을 소개했잖아요. 일본 만화였는데, 사실 일본 만화 턴이 아니었습니다. 뭔 생각이었을까요. 녹음 다 하고 나서 알아차린 거 있죠. 뭐 순서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만, 어쨌든 이번 시즌 동안 지키려던 일종의 룰을 제 손으로 깬 상황이라 기분이 좀 찝찝합니다. 어쨌든 말해 놨던 게 있다 보니 말씀 전해 둡니다. 깨진 김에 이제 이번 시즌에 남은 두 회차를 그냥 한국 작품 일본 작품 하나씩 하고 마무리 지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멋대로 같지만 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어쨌든 한국 작품도 일본 작품도 아닌 스웨덴 만화입니다. 스웨덴 만화 하니까 오사 게렌발 작가의 「7층」도 스웨덴 만화였는데 이 만화도 같은 출판사인 우리나비에서 낸 작품입니다. 우리말 제목은 「우리 부모님」. 어린이 책 삽화가이자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펠레 포르셰드 씨가 노인 돌봄 도우미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그려낸 노인 복지 이야기입니다. 경험을 살린 다큐멘터리 만화로도 볼 수 있는데요. 스웨덴이란 나라가 겪고 있는 현실을 약간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적나라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자전적이거나 다큐멘터리적인 특성을 지닌 그래픽노블들은 마블이나 디씨 쪽 히어로물처럼 압도적인 그래픽을 지면에 때려박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간결하게 기호화한 그래픽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 묵직할 수록 이러한 기호화는 독자들을 작가의 주제 의식에 깊숙하게 끌어들이는 힘으로 작용하죠. 이 작품도 그러한 시각적인 요소가 어떤 면에서는 지독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유쾌하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을 만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작품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주인공이자 작가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인 펠레를 비롯해, 노인 돌봄 도우미들과 그들이 돌봐야 하는 노인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직업 보안상’ 자전적인 이야기로 만들진 않고 허구에 자신을 끼워넣었다고 하죠. 스웨덴판의 원제는 「가족」이란 뜻을 담은 「De anhöriga(디 안허리야)」 인데,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우리 부모님」이라는 뜻인 「Nos Parents(노 빠헝)」이 됐다는군요. 스웨덴판의 부제가 ‘단편 소설 여덟 편’인데요. 이 말이 가리키는 대로 여덟 편짜리 단편을 만화로 묶은 작품입니다. 각 편은 독립돼 있으면서 인물의 관점이 일부씩 연결 고리를 지니고 있고, 한편으로 시점을 오가면서 시사점을 던지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구성 덕에 단권 구성임에도 읽는 맛이 풍성하게 느껴집니다.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 부모님」이라는 제목에서 갸웃거리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지 자식과 그 부모의 모습만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요하긴 한데, 작품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펠레나 동료인 리자부터가 도우미지 자식은 아닙니다. 작품 속의 ‘자식들’은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아니라 중년들입니다. 그리고 늙고 병들어 이제 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자기 부모를 돌보기 위해 도우미 센터에 도우미 파견을 신청합니다.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 직업적인 매뉴얼대로 움직이고 있는 젊은 도우미들의 서비스를 못마땅해하는가 하면, 자기 멋대로 챙긴답시고 챙기다가 일을 쳐 놓고도 냅다 도우미를 탓하거나, 안 보이는 데에서 엄마 이제 그냥 얼른 죽으면 안 되냐며 하소연을 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 이야기할 때 매번 소개되는 유명한 장면인데, 스웨덴 사회복지 시스템의 장점이 TV에 주절주절 흘러나오는 대목에서 할머니가 타이밍도 기막히게 구토를 합니다. 마치 “야, 뭐라고?”라고 말하는 듯한 타이밍으로 그야말로 토사물을 뿜어내죠. 그런가 하면 어느 딸은 아버지가 죽자 마치 치워냈다는 듯 굴고 있고, 유품도 얼른 버리라고 하는 식으로 굴고 있죠. 앞서 언급한 “엄마 얼른 죽으라”던 남자의 경우는 어머니가 죽자 마치 도우미의 가혹한 처사 때문에 어머니가 자살했다며 분통을 터트리는 멋들어진 자기 합리화를 선보이기도 하죠.

이외에도 여러 장면들이 있는데- 다 차치하고서라도, 이 작품은 노인 케어 센터의 도우미들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병든 노인들의 비참한 모습이나 자식들의 싸가지를 고발하는 작품도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않은 딸의 덤덤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과 대비되는, 오히려 노인들의 일상과 더불어서 어쩌면 마지막까지 함께 할 가능성이 큰 – 실제로도 마지막을 함께 하기도 하는 도우미의 표정들을 비추는 대목에서 ‘무엇이 가족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선지 이 작품의 제목은 「가족」이 좀 더 어울리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실제로 스웨덴어로 anhöriga가 ‘가족’으로 번역되지만 스웨덴어-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people이라고 나옵니다. people은 ‘사람’이란 뜻도 있지만 ‘국민’이란 뜻도 있습니다. 사실은 중립적인 표현인 ‘인민’이란 표현으로 써야 좀 더 정확하겠지만 저걸 북쪽이 쓴다고 거의 금지어처럼 해 놓은 마당이니 대충 국민이라고 퉁쳐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연관어라 할 수 있는, 뒤에 a 한 글자만 빠진 anhörig는 영어로 relative, 다시 말해 관계, 관련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작품은 서로 알게 모르게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사는 사회 구성원들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이러한 면면을 단지 ‘자식 세대들이 부모에게 매정하다’라든지 ‘싸가지 없다’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게 – 아니 작품 속에 나오는 어느 중년 아저씨는 진짜 인성이 개차반이긴 한데 말이죠. 차치하고, 어쨌든 스웨덴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나라도 대가족으로 이뤄진 가부장 시대가 아니고 평균 수명은 과거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해 있습니다. 사람들은 늙어가는데 그 자식 세대 수는 확확 줄어들어갑니다. 다시 말해서 젊은 세대들도 부모를 돌아가실 때까지 사는 건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겁니다. 맞벌이 없이 집안이 안 굴러가는 마당에 애도 직접 키우는 게 거의 불가능한 거랑 맞먹는 상황이죠. 이 판국에 전업주부는 애 맡기는 거 줄이라고 정책이 나오고 있다는 모양이던데 애를 낳으란 건지 말란 건지 싶어집니다.

각설하고, 스웨덴은 이러한 노인 케어를 복지 정책으로 커버하고 있는데, 그 복지 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스웨덴도 사실 지난 번 「7층」 때 이야기했듯 진보 정치가 집권하면서 그렇게 바뀐 거였고 그나마도 지금 복지 예산이 줄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사회 제도가 노인들을 가정 단위가 아닌 사회적으로 케어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비용은 줄고 복지사들이 시간 내에 커버해야 할 노인 수는 늘고 비용은 그에 맞지 않게 책정되고, 그 가운데에서 자식들은 이제 힘 떨어져 혼자서 거동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돌보는 데에 따른 여러 문제들의 책임을 복지사에게 떠넘기고 맘 편해 하고 싶어합니다.

재밌게도 이러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작품이라고 감상 덧글들에 ‘스웨덴도 이런데 우리나라에서 복지 늘리자는 게 가당키냐 하냐 이 빨갱이들아’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자들이 넘실대고 있더랍니다만, 이 문제는 복지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초 고령화로 접어들고 있는 사회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복지로 커버하고 있지만 정치적인 이해 관계로 말미암아 예산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일들이 고개를 들고 있고 그 일면을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죠. 작품이 사회 복지사, 노인 케어 도우미들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노인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초 고령화 사회의 노인 문제 자체입니다. 스웨덴조차 저러니 우리는 복지 하지 말자-로 이 작품을 읽는 건 그런 점에서 굉장한 오독이거니와 굉장한 폭력에 가깝습니다. 왜냐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30대를 전후한 세대가 곧 겪어야 할 노인 문제란 복지라는 사회 안전망조차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얻어맞아야 할 최악의 지옥도란 말이죠.

한국도 초고령사회에 저출산으로 목하 내달리고 있습니다. 애 낳을래야 낳기도 어렵습니다. 단순히 난임 때문이 아니라, 낳아서 기를 엄두가 안 난단 말이에요. 저희 부부가 곧 애 낳아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딴 상황에서 애 낳는 사람들은 정말로 칭찬과 감사를 받아야 합니다. 근데 지하철 타면 노인들이 임산부들에게 시비 걸면서 너네 좋아서 애 낳아놓고 왜 국가더러 이거 저거 해달라고 하냐 너네 때문에 우리 담배값 올랐잖아- 같은 소리나 해 자빠졌단 말입니다? 난임 때문에 임신 성공도 전에 몇 백 단위 돈이 깨져 나가도 네 몸이 병신이라 그런데 왜 국가에게 뭘 해달라고 하냐면서 시비가 걸린단 말입니다? 이런 소리 들어가면서 임산부들이 애를 낳겠다고 하고 있단 말입니다. 낳기 싫겠죠, 그쵸? 근데 평균 수명이 올라가면서 노인층이 엄청 두터워진단 말입니다. 어르신들이 안 돌아가셔요.

그러니까 얼른 돌아가시라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예전과는 상황 자체가 완전히 다르단 말입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노인층 60대에 돌아가시면 호상이라 했어요. 저희 할아버지는 60대 초반에 암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말년에 어머니가 수발 다 들었는데, 그래도 아주 일찍 돌아가셨다고 하진 않았다고요. 할머니가 50대에 돌아가셨나 하실 텐데요 아마, 저희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 할머니 연세 초월한 게 까마득해요. 이미 한 집안에 애가 한 명 아니면 두 명이고, 그 애들은 자라도 혼인을 하는 게 손해라 하거나 애 낳을 엄두가 안 나거나 하나 낳는 게 고작이에요. 제 주변엔 혼인 안 했거나 했어도 애 안 낳겠다 선언한 사람도 태반이고 사실혼 관계로 나이를 먹어 애 없이 갱년기에 접어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른들이야 “애는 낳으면 알아서 자라” “우리 땐 몇 씩 낳아서 다 길렀어”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그랬다간 빚더미로 일가족 자살이란 뉴스의 주인공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럼 몇 되지도 않는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사회적으로 부양해야 해요. 이게 고령화 사회입니다. 저희 때까지야 부모 세대들이 혼인하면 애 낳는 거지가 당연했다 치지만, 지금 제 연령대는 안 그렇습니다. 저희 자식 세대들은, 낳을 마당에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꽤나 막막한 현실 앞에 서야 할 겁니다.

이건 예의고 나발이고 그냥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고착화하는 거죠. 우리보다 앞서 그 현실에 맞닥뜨린 스웨덴은 진짜 그걸 제도로 커버하려고 하고나 있는 거고 그래서 저 정도나 나오는 겁니다. 한국은 지금도 이미 그렇지만 10~20년 뒤에 독거노인 고독사 이슈가 아주 그냥 만연할 게 뻔합니다. 애들 싸가지 문제가 아니에요. 물리적으로 그리 되어가는데, 그걸 어떻게 사회적으로 커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인 겁니다. 스웨덴은 스웨덴의 방식으로 해야 하겠다고, 그 내면적인 문제를 이렇게 만화로 드러낸 작품이 나오기도 하는 건데요. 이 작품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저 스웨덴도 저런데 복지하면 나라가 망한다” 소리를 지껄이시는 얼간이 여러분을 사회적으로 몹시 살기 괴롭게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 스웨덴도 저런데, 한국은 이대로만 가면 그냥 끝장입니다. 이 정부도 알긴 압니다. 근데 애 낳지 말라고 정책을 짜고 있는데다 자꾸 노인 세대로 하여금 젊은 세대들을 증오하게끔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러다 진짜 망합니다. 근데 노인네들은 가스통을 들고 젊은 것들은 벌써부터 전체주의 파시즘 놀이에 빠져서 약자 혐오나 하고 있고.

노인 문제는 국가 문제입니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문제고요. 그 노인 문제는 뒤집어 말해 다음 세대의 문제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원 제목이 「anhöriga」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문제고, 구성원 문제고, 모두가 연결돼 있는 문제라서 이런 제목이 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 제목은 「가족」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이자 「사회 구성원」으로도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결국 우리 문제입니다. 스웨덴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도 이제 곧 겪게 될 일이죠. 그나마의 방어막도 제공받지 못한 채로 얻어맞을 지옥도입니다. 가부장, 대가족은 이미 없습니다. 핵가족이란 말조차 무색할 만큼 젊은 인구가 줄어들 겁니다. 저를 포함한 앞 세대들은 이후 이 나라에 설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겁니다. 최소한 미안함과 염치가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에게 손벌리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도 그들도 사회 구성원이라는 합의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결국 늙어 노인이 되어갈 테니까요. 남 이야기가 아니고, 그렇기에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 하다못해 차악이라도 선택하려 들어야 하는 겁니다. 사회 안에서 사회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서요.

이제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인데- 이 작품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의 죽음입니다. 전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 마지막 1년 내내 새벽 당번을 했습니다. 제가 밤을 새서 일하는 편이었기 때문인데요. 말년에 할아버지는, 전립선암이었는데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로 갈수록 퇴화하여 누군가가 수발하지 않고서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천천히 죽어갔습니다. 임종을 지켰는데요. 병든 노인의 임종은 무슨 촛불이 꺼지기전 가장 환하게- 어쩌구 같은 말은 그냥 뻥이다 싶을 만큼 모래 한 줌이 손 사이를 빠져나가는 듯하더군요. 이 작품이 죽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암전’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점은 독특했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감상은 그야말로 흩어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숨이 멎은 몸은 이윽고 차게 식고, 빳빳하게 굳어갑니다. 으레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손으로 느껴지는 그 감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덧없었습니다. 할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정말 그 때 느낀 감상은 이랬어요. “이런 모습으로 죽고 싶지 않다”

노인 문제에 관해선 많은 이야기가 오가야 하겠습니다만, 최소한 제 감상은 늙는 일을 막을 순 없어도- 그리고 뜻대로 될 리도 없겠습니다만. 건강 관리도 열심히 하고, 앞 세대분들이야 어떻든 저는 최소한 자기기 세상을 떠날 때 필요한 재원은 스스로 마련해놓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야기를 돌리자면, 노인 문제는 뒷 세대의 문제기도 하지만, 또 다른 차원에선 죽음의 문제기도 합니다. 웰빙만큼이나 중요한 게 웰다잉이라고 하는데, 저는 할아버지 일을 겪고 오랜 시간 그런 생각을 해 왔어요. 어떻게 해야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내 기록 외에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 있을까. 저 개인적으로는 퇴직 없는 직업을 유지한다는 것과 더불어, 장기 기증과 시신 기증을 통해 장례비용도 들이지 않고 아예 무덤도 만들지 않겠다는 식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땅은 산 사람의 것이어야겠고 저는 유명하지도 않을 거니까요.

가족들과 좀 더 상의해야겠지만, 제 개인적인 의중은 그렇습니다. 뭐 아직은 고민이지만요. 근데 그와 더불어서 드는 생각은, 우리에겐 아직도 요원하긴 하지만 복지와 더불어서 챙겨야 할 것이 죽음에 관한 인식입니다.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이 무슨 혐오 시설 최우선순위에 들 지경인 나라이니 말 다 했지만, 죽음을 그저 공포로만 인식하는 이상 어쨌든 죽음으로 가는 여정일 삶 자체도 공포에 물들어 저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스웨덴은 이 작품에서처럼 복지 제도나 있지, 한국은 호스피스 개념도 희박합니다. 혼인식도 붕어빵 찍어내듯 치르지만 죽는 과정도 붕어빵 같아집니다. 작품을 읽다 보면, 스웨덴에서의 문제와 더불어 한국이 갈 길이 이렇게나 더 멀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고 말아서 서글퍼집니다. 호스피스로도 이 지경이니 안락사나 조력자살 문제가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까지는 얼마나 더 먼 시간이 걸릴까요. 근데 그거 아십니까. 서울 사시는 분들은 의외로 잘 모르시던데, 지방 소도시들에는 노인 요양 병원이란 타이틀을 단 병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서울 바깥은 이미 그렇게, 착실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젊은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는, 젊은이들이 없는 지방 도시들의 죽음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그래서 진짜로 여러 의미로 국가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한국의 상황에 맞는 노인 문제의 현실을 이만큼 만화로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 나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없진 않은데, 지금 세대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로 말이죠. 작가들의 연령대에 따라서 혼인과 출산, 육아까지는 왔으니까 이제 그 다음 소재로 나와줄 때가 되지 않았으려나-싶긴 합니다.

 

오늘은 펠레 포르셰드의 「우리 부모님」, 원제 「가족」을 소개했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저는 굉장히 강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어디선가 읽었는데-하고 기억을 뒤져보니, 일본 작품인 CLAMP의「토쿄 바빌론」이 떠오르더군요. 1993년 발매된 작품인데, 당시 일본의 거품경제기 직후 시대상을 바빌론이란 욕망의 상징에 빗대 그린 명작이죠. 이 작품의 5권의 첫 에피소드인 「OLD」 편이 바로 이 이슈를 다룹니다.

“인간은 언제까지나 젊게 살 수만은 없다, 언젠간 모두 죽고 만다”라는 독백으로 시작하는 「OLD」 편은 어렵사리 낳아 혼인까지 시킨 딸에게 얹혀 사는 전 동물원 사육사 할아버지가 등장하는데요. 빚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 딸네에게 할아버지는 ‘짐’입니다. 손주들은 엄마가 할아버지 죽으면 방을 따로 준댔다면서 언제 죽을 거냐고 해맑게 묻고요. 집안살림 꾸리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딸은 급기야 쓰러지기까지 하고는, 그 겨를에 할아버지에게 매일 밥이나 축내고 돈벌이도 못한다며 악담을 퍼붓는데, 그 말을 듣고도 옛날에 아프면 사 먹였다던 바나나를 사러 나가다가 차에 치어 죽고 맙니다.

이 이야기에서 다루는 노인문제는 집값이 너무 뛰어 넓은 집에서 사는 게 불가능해진 도시에서 집값과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젊은 소시민들이 감당해내기 힘든 부모 부양 문제로 그려져 있지만, 이미 이 시기에도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애초에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을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가족이 되기도 불가능하고 비용은 미친듯 오르는 와중에 경제 활동이 불가능한 노인은 그야말로 ‘짐’이 되는 형국이죠. 이 와중에 노인 세대가 젊은이들에게 노력이 부족하다고 우리 땐 밑바닥에서 일궈냈는데 운운까지 시전하면 딱 우리나라 상황입니다. 노인 문제는 이렇게 단지 어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쉽진 않지만, 사회는 이런 걸 ‘안타까운 일화’로만 남기지 않고 조금이나마 풀어보려 애써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같이 살아야 하니까요.

오늘 방송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모두 만골만골한 한 주 보내세요. 서찬휘였습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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