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cast019

 

19회 핵심 요약

 

11월 5주차 베스트셀러 차트
11월 5주차
만골남의 선택
윤태호의  「당신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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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골남019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
가족 파멸극에 빗대 그려낸 젊은 극우의 태동

 

 

안녕하세요 만화 골라주는 남자 서찬휘입니다. 이제 12월도 열흘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저희 봄이가 세상에 나올 날도 역시 두 주 남짓 정도 남았네요. 그리고 만골남 M씨라는 이름으로 여러분을 만날 시간도 한 주 남았습니다. 19호 만골남 M씨 시작합니다.

간단하게 근황을 소개하자면, 요즘 제가 운영하는 만화인닷컴(http://manhwain.com)에 제가 아내와 함께 자잘한 생활 만화를 그려 올리고 있습니다. 아내는 헤니히 판다, 제가 알파카 군인데요. 아내가 판다와 알파카, 제가 헤니히 판다 관찰기라는 제목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이틀에서 사흘에 한 회 정도 손 닿는대로 그려서 올리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 종종 놀러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18회 방송에서는 펠레 포르셰드의 「우리 부모님」을 소개했습니다. 초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스웨덴의 노인 복지 실태를 보여주는 만화입니다만, 이제 마찬가지로 곧 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한국 사회에서의 복지 현실에 관해서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헀었죠. 과연 우리는 스웨덴도 저런데 복지를 늘리는 게 말이 되느냐고 이야기할 상황일까, 또 고령화 사회가 단지 노인만의 문제인가에 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초고령화사회와 더불어 찾아오는 게 초 저출산인데, 애 낳기 싫게 만드는 나라가 되어선 안 되잖겠느냐, 노인 문제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문제고 다음 세대의 문제다, 이 작품의 원 제목이 단지 프랑스어판 번역 제목인 우리 부모님(Nos Parents)만이 아니라 스웨덴어 원제로 ‘가족’이자 사람들, 사회에 속한 사람들 전반을 뜻하는 anhöriga인 게 그래서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애청자이신 시라노 님은 이와 관련해 이번 편도 잘 들었다 하시면서 “이번 편은 참 여러가지로 콕콕 찌르는 듯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네요”라고 적어주셨습니다. 남 이야기가 아니라 참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주제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인구 절벽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인구 분포 그래프에서 급격하게 하락을 보이는 구간을 뜻하는데, 한국은 2018년에 다가올 예정이라고 하죠. 평균적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가계 소비가 정점에 이르는 시기가 46세인데, 한국에서 가장 출산이 많았던 1971년에 태어난 이들이 47세가 되는 게 2018년이라고 하네요. 이 때를 기점으로 소비 줄고 노인 인구는 늘고 빚도 늘어서 사회 분위기가 꽤 와장창될 거란 이야기입니다. 2018년이면 제가 마흔이 됩니다. IMF 터지면서 20대에 진입했던 입장에선 그야말로 입에서 욕지기가 랩으로 튀어나오는 상황입니다. 그 전 해인 2017년 말에 대선 있고요. 여러가지로 IMF 때와 겹치는 분위기네요. 그쵸.

이게 젊은 사람들이 애를 낳기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라, 낳아서 기르기 너무나 힘든 환경이라 그렇다는 걸 어른들이 별로 인정을 안 해 주시죠. 나 젊었을 때엔 얼굴도 안 보고 만나서 몇이고 낳아서 잘 길렀다고-가 레퍼토리들인데, 지금 그러다간 일가족 자살밖엔 길이 없다는 사실은 그다지 인정 안 해요. 노력한다고 집을 자기 힘만으로 전세라도 얻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닌 마당에 애는 자동으로 길러지냐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제가 사는 지역의 출산지원금은 셋째부터 나온다는데요. 나라에선 그나마도 없애려 들고 있더군요. 기저귀나 분유 지원 없어지고 어린이집 교육비는 끊고 무상급식도 없애라고 그러고도 학교 등록금은 계속 올리려고 하고 청년 지원금은 내줄 수 없다고 하는 마당이죠. 그러면서 나온다는 말이 저출산 대책이라고 내놓는 게 학제를 줄여서 애들을 일찍 졸업시켜서 취직을 일찍 시키면 애도 많이 낳을 것이다… 인간이 무슨 씨숫소 씨암소입니까?

우리나라의 고령화 사회와 저출산 사회의 대책이란 게 이런 상황입니다. 그나마의 안전망도 없는 상황에서 소수의 젊은 세대들에게 자신의 부양을 떠맡겨야 할 노인 세대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 욕하고 조롱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 부모님」이 보여주는, 그리고 지난 회차에서 소개했던 「토쿄 바빌론」 중 한 에피소드의 장면들이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행복한 풍경으로 다가올 것 같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저건 차라리 행복한 걸 거예요. 노인이 자식세대에게 짐덩이로 여겨지는 저 상황이 차라리 행복할 겁니다. 제 아내는 말합니다. 저희 자식에게는 이 나라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거라고.

정책이 세대를 아울러 살게 하지 못하고 있다면 결국은 남은 사람들의 각자도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노인 여러분, 최소한 젊은 세대들 함부로 욕하지 마세요. 젊은 사람들 살기 힘들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를 보고 그걸 욕하는 데에 집중해주세요. 바로 그들이 여러분 목숨줄을 쥐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하고, 전하는 말씀 들으시고 지난 주 베스트셀러 차트 들으시겠습니다.

만화 골라주는 남자 만골남 M씨는 만화 비평 전문 웹진 크리틱엠에서 제작합니다.

c r i t i c m .com, 크리틱 엠.

 

지난 주 베스트셀러

11월 5주차

11월 다섯째 주차 베스트셀러 차트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차트는 알라딘, YES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의 만화 부문 50위권 순위를 취합해 제작한 국내 유일 국내 최초의 통합 만화 베스트셀러 차트입니다. 10위권을 살펴 보겠습니다.

지난주에 10위권 순위 가운데에서 여덟 권이 원펀맨이었다고 소개했잖아요? 1권부터 8권까지 아주 골고루 해드셨죠. ONE과 무라타 유스케. 이번 주는 여섯 권이 10위 권에 올라왔습니다. 2권하고 3권을 뺀 모든 국내 출간 권수가 10위에 들어온 셈이죠. 10위가 원펀맨 4권, 8위 원펀맨 6권, 6위 원펀맨 5권, 5위 원펀맨 7권, 3위 원펀맨 1권, 1위 원펀맨 8권입니다. 지난 주보다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거 뭐 2013년의 마스다 미리와 비슷한 정도의 흥행이라고 할 만합니다.

네 말씀드리는 순간 이번 10위권에 마스다 미리 작가 작품이 뚝하니 들어와 있습니다. 이름하여 평범한 나의 작가 생활. 마스다 미리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을까에 관한 자전 만화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 못 봤는데, 수짱 시리즈를 즐겁게 보셨던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실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얼마 전에 수짱과 썸 타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를 읽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 작가가 여성의 심리에 공감이 갈 만한 이야기는 잘 그리는데, 남성이 남성 같지는 않다. 남성을 여성처럼 그리고 있다. 아무래도 아무리 남녀는 서로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 자체를 다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존재니까요. 마스다 미리가 그리는 남성은 어색하다, 여성인데 거죽만 남성 같다-라는 말도 덧붙이는군요.

원펀맨은, 전 7~8권을 이번에 사서 봤는데 이 에스컬레이션을 죽어라 끌고 가면서도 이야기할 거리들이 계속 나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큰 축은, 한 방에 웬만한 적을 다 박살내는 사이타마라는 주인공이 그 세계 안에서는 파워 밸런스를 붕괴시키기 딱 알맞은 인물인데 그냥 사기성 치트 캐릭터다 보니까 그 세계 안에서도 그의 능력치를 아무도 안 믿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파워 에스컬레이션이 일어나도 세계가 사이타마의 손에 달리거나 휘둘리거나 하진 않죠. 실제로는 어떻든 어쨌든 세상이 인식하는 바는 그러하다는 거고요. 그래서 히어로와 빌런의 관계에서 일정 부분 인구에 어떻게 회자되는가가 중요한 작품 속 설정 속에서, 사이타마는 아는 사람 극소수만 그 실체를 아는 실력자로서 여기저기에 움직일 여지가 많아집니다. 다만 여기서 또 다른 축이 등장하는데, 이 과정에서 장르 특유의 클리셰들을 대거 뒤집어 써먹고 있다는 점입니다.

매우 다양한 클리셰들이 등장하고 이를 또 뒤집어서도 써먹고 있는데, 문제는 이 클리셰 역이용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넘어가는 건 그 자체로 장르의 퇴행성을 반영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장르물로서 갈 데 까지 갈 때 집어들 수 있는 최후의 선택지라는 것이죠. 그래서 원펀맨은, 딱히 B급 정서로 점철된 엔터테인먼트임을 부정하지도 않긴 합니다만 작품 그 자체로 한 장르를 창출해내는 파괴력까지는 만들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이 쩔어주고 연출이 쩔어주고 스토리도 의외로 그럴싸하지만요. 이 또한 제가 너무 과소평가하는 게 아닐지 생각은 듭니다만 지금까지의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난다 작가의 어쿠스틱 라이프 9권이 9위, 시이나 카루호 작가의 너에게 닿기를 24권이 6위로군요. 어쿠스틱 라이프 9권에서는 출산 경험이 그려지는데 저희 부부도 이번달에 애가 나오는지라 괜히 반가운 느낌도 듭니다. 너에게 닿기를은- 음. 좀 많이 끌고 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2위. 원피스 79권.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원피스니까요.

지금까지 지난 주 베스트셀러 차트였습니다.

 

만골남의 선택

19회차에 소개할 작품은 최근에 「미생」 두번째 시즌 연재에 들어간 윤태호 작가의 2008년 작품 「당신은 거기 있었다」입니다. 지금은 없는 만화잡지죠. 씨네21에서 낸 만화잡지 『팝툰』 42호부터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42호가 2008년 11월 15일 발행됐죠. 당시 광고 문구는 “내가 지켜야 했던 건 가족이었고, 내가 버리기로 한 것 또한 가족이다”입니다.

이야기는 호화 아파트에서 가족과 함께 남부럽지 않게 살던 한 중년 남자가 돌연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으로 막을 엽니다. 오른손에 커터칼, 왼손 동맥은 절단된 채 물에 잠긴 시체. 얼핏 보면 자살로 보일 법한 사건이었지만, 점차 수상한 점들이 잇따라 발견됩니다. 자살로 보이게끔 정교하게 설계됐다는 정황이 보이는데, 피의자는 다름 아닌 남자의 가족들입니다. 게다가 수사가 진행될수록 가족들의 치부들이 속속들이 드러납니다.

부인은 여러 남자와 바람을 피웠고, 큰 딸은 사촌오빠와 관계를 하고, 아들은 둘째 딸과 관계를 하는지 아닌지 어쨌든 묘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언론에 보도되고, 사건은 일어날 법한 집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되어갑니다. 아파트 주민들을 비롯해 온 세상이 이 가족 구성원들을 질타하고 손가락질하죠. 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죽은 남자에게 증오에 가까운 심정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의선상에 오른 가족 누구에게서도 범죄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수사 반장은 사건을 파들어갈 수록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끼게 됩니다. 남자의 죽음이 자살도 아니고,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남자를 죽이지 않았는데, 남자는 죽어 있고 그 결과 가족들은 거의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게 목표였다는 듯이 말이죠. 상황 돌아가는 꼴에 위화감을 느낀 반장. 이상함을 감지한 그의 시선 끝에 걸리는 건 누구일까요?

 

…….

 

작품은 이렇게 수사극의 형태를 띠고, 자살을 가장한 타살의 범인을 좇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가족들, 그리고 그런 가족들 앞에 보란 듯이 시체가 돼 있는 남자. 자살이 아니라면 가족들에게 죽었다고 보이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것 같은 구도입니다. 하지만 범행 사실을 확정할 만한 증거를 보여주는 인물은 아무도 없는 가운데, 작품은 이야기 전개 속에 죽은 남자의 실체에 관한 이야기를 끼워넣기 시작합니다.

앞서 말했듯 이 남자는 가족들에게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60살에 세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매우 가부장적이고 술버릇이 과하게 안 좋았습니다. 겉에서만 보면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인물들 중 하나가 꼰대 아빠 하나 죽인 정도의 사건 같습니다. 그렇게 수사가 종결되면 그만일 것 같죠. 하지만 작품은 이 남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유’를 조금씩 흘립니다. 이 남자는, 물론 그냥도 실로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꼰대기는 합니다만- 회사 돈을 유용하고, 외도를 하고 있었으며, 외도하던 여자에게 사기를 당해 회사돈 수억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에 앞서서는 외도하는 모습을 아들에게 들켰고, 혼자 자위하던 아내를 더럽다며 성적으로, 물리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형에게도 막 대함으로써 그 아들에게 – 나중에 첫째딸과 부적절한 관계가 되는 ‘사촌오빠’ 말이죠. 형의 아들에게 격렬한 증오를 샀고요. 룸살롱에선 술버릇때문에 여종업원들이 다 기겁해 할 만큼의 진상이었다고 하죠. 인간말종으로서는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구석을 자랑하는 인물입니다.

남자는 극단적으로 가부장입니다. 다시 말해 가족 질서의 유지를 중요시하고, 그 권력 중심에 자신이 서 있어야 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자기 행위의 모든 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 관점이 극대화했을 때, 자기가 어떤 짓을 해 왔는지는 아무 상관 없이 자기 제어에 반기를 드는 그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죄악이 됩니다. 남자는 자기의 학대에 견디지 못하고 외도를 하고 만 부인의 뒤를 캐고, 아들 딸들의 일탈을 보며 분노를 느낍니다. 남자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지금의 평화와 부를 이루기 위해 아버지들이 어떤 희생을 경험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먹은 술과 놀았던 여자들, 뒤로 주고 받았던 모든 돈들은 그 과정 중의 불가피한 사고들이다. 그 때문에 나를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 정당하지 않다. 나에게 대항해 도발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너희는 이대로 살 자격이 없어!”

…….
어른들 좋은 술 곱게 드시고 늘어놓으시는 흔해빠진 레퍼토리의 총집합쯤 됩니다만, 문제는 남자가 자기가 벌여놓은 일의 대가로 궁지에 몰릴대로 몰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잘못이 자기 것이라고는 절대로 여길 수 없는 그에게 상황은 그야말로 왜 나만 갖고 그래-쯤 되어 보입니다. 근데 시작할 때 이 남자는 분명 ‘자살 같은 살인을 당한 채 발견된 남자’였단 말이죠. 작품은 이 지점에서 중요한 인물을 한 명 더 등장시킵니다. 죽은 남자가 마지막 분노의 대상으로 여긴 가족이 이대로는 살 수 없을 만큼 망가지게 만들면서, 남자 자신은 죽음으로 도피할 수 있게끔 도운 이 살인극의 디자이너죠. 작품의 키포인트는 바로 이 사람이 누구냐, 그리고 왜 이 사건을 디자인했느냐가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권 분량이다보니 이 지점까지 이야기하는 데 상당히 많은 부분을 언급하게 됩니다만 말이죠. 그래도 제일 중요한 부분은 직접 보시길 권하고요.

자. 작품은 짧은 분량 안에서 가장의 몰락과 함께 끝없이 파멸해가는 가족을 그려냅니다. 큰 틀에선 수사극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만, 작품은 가족들에게 시종일관 포커스를 맞춥니다. 가장의 사망 이후 가족들은 그야말로 극심한 조리돌림을 당합니다. 언론 보도가 결정타인데요. 문제는 언론이 냄새를 맡고 덤벼드는 건 소스가 있기 때문이죠. 사회적인 매장을 당하기 좋게 만들어진 소스. 많이들 착각하는데, 언론의 속성은 있는 걸 떠드는 겁니다. 주는 자료를 받아 적기밖에 못하는 걸 넘어서 받아적기도 못하는 주제들이 많기도 하고 심지어 이 바닥에도 그런 주제들이 좀 있어서 난감하긴 한데요, 작품은 이 지점에서 독자에게 세 가지를 묻습니다. 첫째는 이 가족들은 범죄자인가? 아니죠. 작품에서도 나오지만 한국은 법정증거주의를 따르는 국가입니다. 증거가 인정되어 범죄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이상, 개인의 일탈 수준의 행위를 법으로 처벌할 순 없습니다. 둘째. 범죄는 아니라도, 알려졌을 때 좋을 게 없는 일을 한 경우 이들은 사회적으로 매장해야 하는가? 반장도 말합니다. 일정 부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건 매장하는 게 옳아서가 아니라, 알려지면 겪어야 할 홍역 같은 겁니다. 선출직 공무원이 아닌 이상 그걸 도덕적으로 사과하고 다녀야 할 이유도 없고요.

마지막으로 셋째. 그렇다면 그 알려지는 과정이 언론을 통해서 작동했을 때, 언론이 문제인가? 전 이 지점에 관해서도 작품에서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일부 언론은 사람들의 반응을 넘어서 사회 인식 자체를 디자인하려 드는 권력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윤태호 작가의 내부자들에 나오는 그런 류 인간들이 없는 게 아니죠. 하지만 언론 그 자체의 기능으로 보자면 언론의 속성은 있는 걸 떠드는 거죠. 여러 각도에서, 각 언론의 관점을 두고 마구 떠드는 겁니다. 언론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다시 말해 같은 관점으로 제공된 자료 대로 나오는 것이 문제죠. 언론이 이걸 못해서 문제인 건 맞습니다. 수익구조가 속도성에서, 어뷰징으로만 나오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저열해지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사실 자료를 손에 쥐어주고 그걸 베끼는 걸로 데스크에서 쪼이는 걸 피하는 게 현실이죠. 그래서 보도자료 베끼기만 늘어놓는 언론과, 그마저도 못하는 언론들이 천지긴 한데- 만화 바닥에도 베끼기 수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죠. 우리 바닥도 남 이야기할 게 아니긴 해요.

각설하고, 영세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기자로서의 관점에 치열하길 바라는 게 무리고 그게 현실임을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오히려 이용하려 들죠. 작품에서도 비치는 바지만, 언론 기자가 아무리 특종에 목말라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는 위에서 쪼는 대로 쪼이며 괴로워합니다. 영세함이 핑계가 될 순 없어도, 현실이 뻔한 상황에서라면 그걸 악용해 의도대로 자료를 던지는 쪽을 경계하고 위험하게 여겨야 합니다. 보도자료전이란 게 진짜 웃겨서요. 영세 언론 이용해 원하는 대로 실어놓고 사람 하나 조지려고 작정하는 인간들이 정말 널려 있거든요. 이 바닥에도 제법 있어요. 그렇다면 이건 기자가 무식해서 취재도 못한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에게 못된 소스를 주는 쪽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죠. 언론사의 영세함과 기자들의 멍청함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비판받아 마땅한데, 요는 그 영세함과 급박함을 너무나 잘 이용하는 자들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기자 책임이 되니까 이 얼마나 손 안 대고 코 푸는 방법입니까.

이 작품에서 가족들은 학대와 폭압에 지쳐 일탈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만, 그게 까발려져서 조리돌림을 당합니다. 조리돌림의 원인은 ‘언론이 떠들어서’가 아니라 정확히는 ‘사건의 디자이너’가, 죽은 남자가 바라는 형태로 사건 흐름을 만들어줬기 때문입니다. 보도 행태가 ‘왜 그리 나오는가’에 관한 비판과, 어떤 보도들이 바깥에 나오게 되는 원인과 과정은 완전히 별개입니다. 그런 거에 휩쓸리는 대중 행태도 문제가 있다면 있겠지만, 건조하게 말하면 언론의 속성은 떠드는 거고 대중의 속성은 휩쓸리는 겁니다. 냄비 운운 해 봐야 세상 어딘들 안 그러나요? 문제는 우리 사회에선 이 과정에서 여론을 ‘디자인’하려는 자의 존재나 그 의도에 관해서는 아예 제쳐놓고 본다는 데에 있습니다. 비슷한 작동 과정을 보여주는 게 이런 게 있죠. 이를테면, 섹스 영상이 돕니다. 리벤지 포르노라고 하죠. 연인일 때 찍었는데 헤어지고 나서 남자놈이 어디 한 번 엿먹어봐라 하고 영상을 뿌리는 겁니다.

얼굴 노출되고 목소리 나오고 하니까 그야말로 인격 말살에 가까운데, 우리나라에선 신기하게 얼굴과 목소리가 나온 여자가 욕을 먹어요. 여자가 한 건 그 연애가 어떤 성격이었든간에 그냥 말 그대로 연애질을 했을 뿐인데, 남자놈의 복수심에 관해선 어디론가 사라져 있고요, 처벌 받아야 하는 것에 관해서도 미온적입니다. 왜? 포르노는 우리 다 같이 에브리바디 어디선가 어둠의 경로로 같이 보는 거니까. 다들 구멍동서 된 심정으로, 우린 다 같이 남자니까 여자를 찬 덴 이유가 있을 거야. 이딴 식이죠. 나쁜 건 남자거든요. 근데 욕은 여자가 먹어요. 작품에서 나쁜 건 디자이너고, 죽은 가장입니다. 개인사로 뭘 했든 말든 가족들의 일은 까발려질 이유가 없는 거였단 말이죠. 근데 그걸 깐다는 건 말 그대로 너도 죽어보란 이야기거든요. 법으로가 아니라, 여론으로요. 아까 죽은 남자가 뭐라 했던가요. “너희는 이대로 살 자격이 없어!” 자기 잘못의 결과를 남에게 투영해, 그 남을 죽어서까지 괴롭히는 최악의 인간형을 보는 것도 괴롭습니다만, 더 큰 짜증스러움은 그걸 이용해 “이런 놈들은 쓰레기니 청소해야해”라며 발벗고 나서고 있는 디자이너를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체는 작품에서 확인하시면 되겠는데, 어쨌든 이 젊은 살인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가 그렇죠.
쥐고 있던 걸 뺏으면 웁니다.
다시 주면 웃죠.
아이와 같습니다. 그것들은.
단 그들은 아이와 다르게 착각하는 게 있죠.
원래 자기 손에 뭔가 있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의 빈 손을 억울해 하며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죠.
세상의 1% 덕에 내 빈 손 위로
몇만 원이라도 오른다는 걸 믿지 않습니다.
알고도 모른 척하죠.

누구 덕에 누리고 사는 줄 모르는 겁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사람인 겁니다”

죽은 남자의 가부장적 질서를 긍정할 뿐더러 그 남자 입장에서의 ‘가정파탄 주범’들을 아주 마땅히 치워내야 할 쓰레기로 규정하는 살인 디자이너. 그에게 죽은 남자의 행위는, 죽은 남자의 강변처럼 ‘할 수 있는 것, 누구나 그 정도는 집안 건사하려면 하는 것’이고 가족들은 고마운 줄도 모르는 것들인 셈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섰습니다. 남자가 원하는대로 해 줬습니다. 그 결과가 이처럼, 참혹합니다.

이 작품을 수사물 얼개로 읽으려고 하면 분량면에서나 얼개 면에서나 아주 만족스럽진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은 장르물로서의 덕목에 충실하기보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작동 원리를 꼬집고 있다고 읽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살인극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여론전, 그 밑에 깔린 단죄심리와 더불어 사적 복수를 행동에 옮기는 데에 동원되는 힘의 장치들에 이르기까지 작품이 가리키는 지점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풍자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짜 무서운 것, 진짜 나쁜 게 뭔지에 관한 이야기도 던지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전율스러운 건 살인 디자이너의 인식 구조인데요. 아까 언급했던 그것들을 잘 되씹어 보십시오. 가부장 질서를 긍정하며 그에 순응하고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빈 손을 억울해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누구 덕에 누리고 사는 줄 모른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못했으니 쓰레기고 치워야 한다. 세상에 그런 인간들이 있어선 안 된다. 걔들 나쁜 놈이다. 그래도 된다.

여러분. 이거 어디서 굉장히 많이 본 이야기 아닙니까? 일베 애들 만날 하는 이야깁니다. 이제 와서 보면 무슨 일베만의 문제겠습니까만, 젊은 백색 테러분자들이 실체를 지니며 남을 괴롭히고 다니기 시작한 지금에 와서 보면 이 작품은 그야말로 이후를 예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게 2008년 작품이니까, 일베로 독립돼 나오기 전의 모습이거든요. 근데 이 시점은 이미 디씨인사이드나 이글루스를 비롯한 인터넷 공간들에서 일베 프로토타입이라 부를 만한 이들의 준동이 힘을 얻어가고 있던 시점입니다. 전체주의, 유사 파시즘이 건네는 안락함과 소속감이란 게 꽤 마약 같은 거라서, 그 안에서 얼굴 없는 모두와 함께 힘을 집행할 수 있기를 원한단 말입니다. ‘남 탓만 한다’ ‘만족하지 못한다’ ‘감사할 줄 모른다’ ‘가장은 그래야 했다’. 우리네 어르신들에게 정말 자주 듣던 이야기기도 하지만, 그에 완벽히 편입된 젊은이들의 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끊지 못한 결과가 2015년 현재입니다. 일베 또는 일베 부류로 대표되는 이들은 이제 학교, 방송, 심지어 사법부에까지 스며드는가 하면 자식이 죽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면전서 조롱하고 입장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한다고 사제 폭탄을 던지기도 합니다. 숨어서 온라인 모독을 하던 단계를 이미 넘어섰죠.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청소하고 싶어 안달난 친구들이, 이제 사람의 목숨을 노리고 있습니다. 작품이 지적하고 풍자했던 젊은이들의 반반동은, 당시엔 우려를 극대화해 그려낸 ‘작품 속 사건’이었고 이제는 일상 속에서 진짜로 일어나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작품이 지적하려고 했던 부분들에 탄복하는 한편으로, 씁쓸함을 금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거기 있었다」는 「이끼」와 「내부자들」「미생」 사이에 공개된 작품입니다. 2008년과 그 이듬해의 사건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고, 일베가 실체화하고 난 이후의 상황들로도 여러가지 시사점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일베 부류, 나아가 서북청년단 등이 자기와 동일시하는 건 넓게는 국가입니다. 작품 속의 디자이너가 계속 말하는 ‘공권력 집행의 당위’ 같은 이야기도 이 자들에겐 일상 같은 표어입니다. 국가에 대적하려 드는 자는 죽여도 된다. 총 쏴라 뭐하냐. 그리고 좁게는, 가정 내 권력입니다. 가부장이죠. 어떤 불합리나 폭력도 용인할 수 있는 권력. 여기에 자기를 동일시하고, 여기에 균열을 일으킨다고 간주한 구성원은 벌합니다. 이 두 가지 동일시는 필연적으로 좁게는 가정 구성원 억압과 그로 말미암은 불화, 넓게는 나라의 파쇼화를 불러 옵니다. 즉, 폭력이죠. 그 폭력의 작동원리와 결과는 물론, 이를 일으키는 자의 표정이 어떠한지에 관해 「당신은 거기 있었다」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 현재 끝갈 데 없이 창궐 중인 우리나라의 젊은 파시스트들이 무엇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를 알고 싶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실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읽고 나시면 2권 마지막에 자리한 작가의 말도 반드시 읽어보세요.

오늘 순서 여기서 모두 마칩니다. 다음주 마지막 방송에서 뵙겠습니다. 모두 만골만골한 한 주 보내십시오. 서찬휘였습니다.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이자 만화정보저널 사이트 '만화인' (http://manhwain.com) 운영자. 글쓰기와 만화를 좋아하던 프로그래머 지망생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만화와 얽힌 글을 쓰면서 만화 정보를 묶어내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다. 자생한 1.5~2세대 한국형 오덕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츄럴 본 프리랜서. 칼럼, 연구, 비평, 강의, 방송, 캘리그라피 등 만화와 관련해서는 오는 의뢰 안 막는 자판기형 용병의 삶을 구가 중이다. 최근엔 열심히 애 아빠로 클래스 체인지 시도 중. 봄이야,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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