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눈물 대신 달려, 이 아가씨야! _호시 요리코의 <아이사와 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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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미소녀 중학생이 있다. 긴 머리에 고운 외모. 어쩌다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흐르면 모두가 탄성을 지를 만큼 아련함이 듬뿍 흐른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그 아이가 흘린 눈물은 그저 살짝 연 수도꼭지에 떨어지는 공허한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통 사람들에게 눈물이란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약점이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구로 여긴다. 그럼으로써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는 떨어지는 눈물로써 보는 사람에게 마음의 파문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무기를 장착한 셈이다.

<아이사와 리쿠>의 눈물은 좀 더 심오한 의미를 갖고 있다. 주인공인 미소녀 여중생 리쿠는 언제 어디서든 자유자재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능력자다. 그러나 리쿠의 눈물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름답게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멈칫하는 사람들뿐이다. 정작 눈물의 주인공은 그런 사람들의 세균이 옮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것 외엔 관심이 없다. 그러나 자신과 세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도구인 눈물은 나중에는 북받치는 울음으로 리쿠를 무장 해제시킨다.

 

새장속의 아이 리쿠, 새장 밖의 세상을 만나다
도쿄에 사는 리쿠의 세상은 무균무해 처리된 곳이다. 친한 친구도 없고 존경할만한 선생님도 없다. 리쿠가 소통하는 사람들은 오직 엄마와 아빠뿐이다. 특히 완벽주의자인 엄마의 손에서 자란 리쿠는 엄마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뻔뻔한 바람둥이인 아빠가 불륜상대를 집에 초대해도 아무렇지 않게 손님 대접을 해내는 엄마. 그 사이에서 리쿠는 엄마가 하고 싶은 말, 엄마가 원하는 것을 감지한다. 엄마의 꼭두각시로 자란 리쿠는 조금씩 말 못할 답답함 끝에 새장 속 새를 있는 힘껏 쥐어짠다. 그 모습을 본 리쿠의 부모님은 리쿠를 간사이(関西) 친척집으로 쫓아내듯 보내버린다. 평소 간사이 사투리를 경멸하던 엄마의 영향으로 리쿠는 대가족의 사투리가 만발하는 친척집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간사이 사람들과 피할 수 없는 생활 속에서 리쿠는 엄마에 대한 분노를 삼키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아이사와 리쿠>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독특한 미소녀 리쿠가 다양한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 변화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리쿠의 이야기가 여느 성장만화와 다른 것은 용서와 화해의 결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리쿠는 억지로 쫓아내듯 친척집으로 보내버린 엄마와 화해하지 않는다. 또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리쿠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간사이 친척 식구들과도 살갑게 녹아들지 않는다. 다만 도쿄에 돌아가도 다른 어딘가로 가야 할 것만 같고 그것도 스스로 고민해서 해결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다. 엄마의 완벽한 보호 없이 친척 어른들의 따뜻한 배려를 벗어나 혼자서 고민하는 삶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작가 호시 요리코는 전작인 <오늘의 네코무라 씨>에서 가정부 고양이 네코무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아이사와 리쿠>에서도 독특한 주인공 리쿠를 통해서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엄마, 그 주변을 떠돌기만 하는 아빠의 피상적인 관계와 시끄럽지만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간사이 친척집의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잔잔한 대화 속에 묻어나는 마음
<아이사와 리쿠>는 단순한 선으로 그린 스케치같은 그림에 드라마틱한 대화나 사건이 거의 없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감동적인 대사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무미건조하고 평범해 보이는 대화 속에서 이 만화의 재미가 있다. 리쿠가 억지로 초대한 아빠의 불륜상대 우치노와 엄마의 대화는 평범한 대화처럼 들리지만 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려는 우치노의 열정과 노력에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는 엄마의 속내가 숨겨졌다. 결국 리쿠를 친척집에 보내고 공부를 한다며 바쁘게 생활하려고 하지만 공허한 엄마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또한 어린 친척 동생인 도키짱이 아프단 말에 철없는 리쿠는 옮는 병이냐고 묻지만 할머니는 애써 말을 돌리며 따뜻하게 배려한다. 자칫 흘려듣기 쉬운 <아이사와 리쿠>의 대화들은 인물의 표정이나 큰 소리로 부각되지 않기 때문에 그 의미를 쉽게 찾기 힘들다. 그러나 예의 바른 말투 속에 숨겨진 비틀린 엄마의 콤플렉스와 서투르지만 따뜻하게 리쿠를 감싸려는 할머니의 마음이 우리가 매일 나누는 평범한 대화 속에서 묻어난다. 이런 점 때문에 일본의 많은 문인들과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이 <아이사와 리쿠>를 지지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사와리쿠

 

<아이사와 리쿠>는 완벽한 그림이나 짜릿한 사건도 없지만 거친 스케치의 여백 사이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펼친다. 책을 덮으면 엄마의 완벽한 세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이려는 리쿠가 눈물보다는 빨리 달리는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다니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씩 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