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혁 단편선> 일반 독자와 SF 독자 사이의 벽

by -
1 2296

 

이번에 이야기하려는 웹툰은 네이버에 연재중인 <오민혁 단편선>, 그중에서도 ‘달리와 살바도르’ 편을 중심으로 삼았다. 이번 리뷰는 그동안 써 온 글과는 조금 다른 입장인 SF작가이자 독자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썼다. 그래서 조금은 편향적이고, 독단적이며, 정리가 덜 되어 보이는 데다가 무례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미리 알리고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나 자신이 SF독자가 된 것은 다른 국내 SF팬들 보다 역사가 깊지 않다. 스스로가 과학소설/사변소설 작가라고 자칭하고는 있지만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굳이 그 입장에서 ‘달리와 살바도르’를 이야기하려는 이유는 아래에 인용하는 댓글 때문이다. (내용은 그대로이나, 세세한 문장은 개인정보를 위해 수정을 가했다. 강조도 내가 했다.)

‘오민혁은 진짜 괴물 그 자체다. 대한민국에 이런 인재가 등장한 사실이 너무 놀랍다. 굳이 만화라는 매체가 필요 없이 소설단편선 쪽으로 갔었다고 해도 성공했을 것이 분명하다. 스토리 구성에서 비롯한 몰입도도 탄탄하다. 이 작가는 진짜… 대단하다….’

‘마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을 보는 것만 같다.’

‘아이디어가 대단하다. 마치 영화를 본 것만 같다.’

나는 이 댓글을 보고 ‘버튼이 눌려 몸을 비비 꼬았다.’ 내 독후감은 댓글과는 전혀 달랐다. 연출과 구성이 뛰어나다는 점은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인정했다. 호흡이나 완급도 좋았고, 내용을 연출하는 그림도 잘 어울리고 좋았다. 다만 다들 놀랐던 점은 “이 아이디어가 신선하다고?” 라는 물음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만 국내의 몇 안되는 (농담 삼아 500명 정도 된다는) SF팬들 중 내가 아는 분들의 반응도 나와 비슷했다.

 

전혀 신선하지 않은 아이디어다!
……적어도 SF팬에게는….

 

이미 필립 K. 딕의 단편에서 수도 없이 보았던 아이디어다. 자신의 정체성이 확실한 지 아닌지 의심하는 로봇. 뒷부분의 반전. 뒤틀린 자아와 세계인식 등등……. 왕년의 필립. K. 딕이 각성제나 환각제에 취해 쏟아냈던 수많은 단편과 중편에서 몇 번이고 반복했던 테마. 몇 번이고 걸작선에 실렸고, 단편집이 나왔고, 심지어 할리우드에서 몇 번이고 영화화되었다. 대부분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임포스터>, <페이첵>, <블레이드 러너>…… 필립 K. 딕 정도면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덕분에 많이 알려졌을 거라고, 국내 SF팬 중 하나인 나는 생각했다. 실제로 “또 필립 딕이냐? 지겹다!” 라는 팬도 있을 정도니까.

 

사람들은 ‘이 신선한 아이디어’에 극찬했다.
게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니?!

 

많은 과학소설/사변소설 애호가들이 (<개미>를 제외한) 대부분의 프랑스 스킨헤드 아저씨가 기존의 SF소설에서 아이디어를 ‘슬쩍’해 왔는지를 투덜거려 왔던가. 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건 마니아 사이의 이야기이고, 아직 SF가 확실히 자리 잡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인식이라고. 우리나라는 영미권이나 일본과 같이 SF가 독자적으로 발달해서, 이미 몇 번이고 진화를 거듭해 온 나라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말만 해도 ‘우주적 오페라’ 같은 식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단 말인가. 과장을 조금 보태 초역(超訳)하자면 ‘우주 막장드라마’다. 원래 비누(소프)회사가 돈을 대서 만들던 통속극인 ‘소프 오페라’가 서부를 배경으로 빤한 통속극인 ‘호스 오페라’로 바뀌고, 서부를 우주로 바꾸기만 한 통속극 ‘스페이스 오페라’가 탄생한 게 배경이니까. 이 길고 긴 세월을 거쳐 스페이스 오페라가 전성기를 맞은 게 1930~40년대다. 그뿐만인가? 필립 아저씨가 수상쩍은 단편을 한창 쓰던 시절이 1960~70년대다.

외국에서야 SF가 일반 대중에게까지 인지되어 있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 갭이 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당연한 거니까. 일본SF소설의 거장 츠츠이 야스타카가 쓴 <시간을 달리는 소녀>, <파프리카>가 국내에 애니메이션으로 들어왔지만 그게 ‘판타지’인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오죽하면 <엔더의 게임>으로 유명한 사변소설/판타지 작가 오슨 스콧 카드가 쓴 작법서(명저다.) 가 <당신도 해리포터를 쓸 수 있다>가 되는 나라 아니던가?

02

그러나, 아무리 아이디어가 ‘빤’해도, 작품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능숙하게 스토리로 요리했느냐다. 오민혁의 요리솜씨는 어떠한가? 웰메이드. 나는 이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연출은 탄탄하고, 구성도 호흡이 정확하다. 독자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사실 아이디어 자체가 기발하고 참신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요리해서다. SF 팬들은 읽으면서 뻔한 내용, 훤히 보이는 반전이라고 느끼기는 했어도, 그의 스토리텔링 기술 만큼은 하나같이 칭찬한다. 과학소설/사변소설에서도 훌륭한 아이디어만으로 작품을 내놓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스토리텔링의 기초 없이 아이디어만 내놓는 것은 작가로서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이건 장르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은 분야라면 어디든 마찬가지다.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 보겠다. 효과적인 구도 등 다양한 부분을 다룰 수 있겠으나, (예를 들면 디테일에서 SF적인 철저함이 부족해 보이기는 했으나, 주제의식과 관계가 없으니 상관없다.) 가장 독자들에게 영향을 준 ‘반전’, 다시 말해 플롯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우리나라의 영화나 소설에는 안 좋은 버릇이 있는데, ‘반전 집착증’이라고 부를 만한 강박이다. 모든 이야기가 반전을 향해 달려가다가, 반전을 보여주고 뚝 끝나버린다. 단언하건데 플롯은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다. 단편의 플롯은 전체 이야기의 방향성을 전반부에 복선으로 깔고, 복선의 방향으로 진행되다가 주인공의 갈등이나 위기가 전체 이야기의 2/3 혹은 3/5 지점 직전에서 나타나게 된다. 이때 이야기의 방향성이 완전히 결정되고, 주인공은 선택에 기로에 서서 행동하게 된다. 반전은 마지막 결말에서 그동안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방향만 달라져 전혀 다른 의미가 될 때 효과적으로 충격을 준다. (이 지점은 황금비를 이루는 경계인데, 자세한 것은 몇 번이고 이야기해서 미안하지만 졸저 <스토리 트레이닝> 실천편을 참고하길 바란다.) 이렇게 차근차근 쌓아올리지 않고 반전을 보여주는 데 급급해서는 혹은 뜬금없이 그동안 없었던 정보를 주면서 “사실은 XX였습니다!” 한다고 해서는 절대 반전의 충격을 주지 못한다. 의미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01

‘달리와 살바도르’의 경우, ‘<죄와 벌>처럼 규칙을 어겨 자기주장을 하는 로봇이 나오는 흑백영화’, ‘죽은 사람과 똑같이 닮았지만 그 사람은 아닌 동상’, ‘개와 닮았지만 개는 아닌 로봇 개’ 등 반복적으로 모티프를 쌓아올려 주인공 달리가 연인 살바도르의 정체는 똑같이 생긴 로봇이라고 의심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2/3 지점에서 달리는 불을 지르고, 완전히 마음을 굳힌다. 최종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시점에서, 처음부터 깔았던 복선에서 벗어나는 정보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방향성만이 바뀐다. 이때 발생한 의미가 독자에게 충격을 준다. SF적인 용어를 쓴다면 “경이감(sence of wonder)”이다.

……각설하고.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을 받아들이는 온도 차이가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SF 작가이자 팬으로서, 오민혁이 계속해서 SF 장치를 이용한 작품을 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 SF의 저변과 지평선을 넓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으니까. 특히 연출과 플롯 구성의 기초가 탄탄한 만큼, 이걸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할 것이고, SF에는 많은 아이디어가 많이 축적되어 있다. <오민혁 단편선>을 통해 SF의 재미를 느끼기를 바란다. 뒤끝 안 좋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도 소설단편선 중에 <오민혁 단편선>과 비슷한 아이디어를 다룬 작품은 상당히 많다. (거꾸로 그렇게 많은 작품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오민혁이 굳이 SF소설로 올 필요는 없다. 웹툰에서 계속해서 웰메이드 SF를 그려주기를 바랄 뿐이다. 적어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보다는 트리키한 아이디어를 구사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