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길의 아폴론>: 성장통과 재즈

by -
0 932

1966년 사세보와 2000년 영천, 그리고 청소년기의 두 소년

2000년, 중학생 시절 나는 대전에서 경상북도 영천으로 전학 갔다. 모두가 강한 경북 사투리를 쓰는 그 곳 풍습(?)에서 표준어를 쓰는 남자는 낯간지럽고 “사내답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외가가 부산인 나는 부산 사투리에 익숙했고, 텃세를 당하지 않을 생각에 ‘부산말’을 써서 인사했다. 결과는 더 심한 따돌림과 텃세였다. 대전에서 전학 온 내가 하필이면 경남 사투리인 ‘부산말’을 쓴다며, 경북 사투리인 ‘영천말’로 입방아에 올랐던 것이다. 영천은 과거 사람의 왕래가 잦아 소위 뜨내기장사를 하던 곳이라 성정이 거칠고 행동이 조야하다. 아이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낯 두꺼운 나는 ‘부산말’과 ‘영천말’이 어떻게 다르냐고 넉살좋게 물어볼 수 있었다.

<언덕 길의 아폴론> 속 1966년 일본. 니시미 카오루는 카나가와 요코스카에서 나가사키 사세보로 전학 간다(1). 사세보는 항구도시로, 바다와 땅이 만나는 경계라 사람들 성정이 거칠고 질기다. 카오루는 도시출신에 예쁘장하고, 여자들도 많이 쓰는 이름인 ‘카오루’인데다가, 하숙하는 친척은 의사에 부잣집이다. 존재 자체가 눈에 띄는 카오루는 전학 오자마자 강한 나가사키 사투리로 쑥덕공론 입방아에 오르고, 지역에서 소위 ‘방귀 좀 낀다는 친구’들은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안 그래도 불편한 주목 가운데, 카오루는 무서운 소문이 도는 카와부치 센타로의 빈 자리 바로 앞에 앉게 된다. 잦은 이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오는 구토증 때문에 카오루는 옥상으로 향하고, 옥상 바로 앞에서 카오루는 센타로와 처음으로 만난다. 그리고 3학년 선배들과 옥상 열쇠를 두고 싸우는 ‘옥상 위의 전투’를 목격하게 되고, 센타로와 친구가 된다.

언덕길의아폴론05
니시미 카오루와 카와부치 센타로의 첫 만남. 센타로는 잠결에 ‘아름다운 카오루의 얼굴’을 보고 천사라고 착각한다. 거친 ‘농띠’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이며, 자기를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속마음을 한 번에 드러내는 장면

니시미 카오루가 1966년 요코스카에서 사세보로 전학 가서 겪는 경험, 그리고 2000년 내가 영천에서 겪은 경험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 전학, 텃세, 불편한 관심, 심지어는 불려가 폭력에 시달릴 위험에 처하는 것까지….

카오루는 처음 전학 왔을 때부터 자신을 잘 챙겨주어 호감을 갖게 된 무카에 리츠코(2)와 리츠코의 소꿉친구이자 혼혈인 센타로 덕에 언덕길 투성이인 나가사키 사세보에 적응해 간다. 그런 카오루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세보의 ‘농띠’들은 카오루를 붙잡아 괴롭히려고 한다.

언덕길의아폴론06
덩치는 컸지만, 중학교 시절의 나는 <크로우즈>의 주인공 보우야 하루미치 보다는 <언덕 길의 아폴론>에 등장하는 무선통신 좋아하는 모범생 마츠오카 세이지에 더 가까웠다.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전학 간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나는 불량학생, ‘영천말’로는 ’농띠’에 속하는 거친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불려갔다. 이미 중학교 때 키가 180cm에 100kg이 넘는 거구였던 내가, 만화 <크로우즈>의 주인공 ‘보우야 하루미치’처럼 학교의 주먹다짐 권력구조에 도전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물론 싸움보다 만화책을 더 좋아하던 무해한 비만아동 오타쿠 소년인 나는 ‘농띠’ 친구들 손등에 건달이 좋아한다는 일본어 문장인 ‘사이고마데(最後まで, 최후까지 함께한다는 의미)’를 볼펜으로 적어주고 호감을 사는 데 성공했었다.

1960년대라는 시간, 사세보라는 공간, 그리고 청소년기에 자주 전학 다닌 카오루와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변화의 과도기’ 그 문지방 위에 있는 시기이자 공간이었다.

 

과도기라는 문지방을 넘는 쌉싸름한 추억

‘청소년기’에는 ‘성장통’이 따른다. 이 시기는 자기 안의 모순을 초극하는 과정이고, 성장통은 모순이 서로 부딪혀 내는 마찰열이다. 1960년대라는 시간은 전 세계적인 ‘청소년기’였다. <언덕길의 아폴론>의 배경인 1966년은 일본의 ‘전공투 세대’라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가 학생운동을 벌이는 ‘안보투쟁시기’였고, 그 시대상은 학생 운동에 빠지게 되는 멋진 대학생 오빠이자 카오루가 속하게 되는 재즈 세션의 트럼펫 주자, 카츠라기 쥰이치를 통해 묘사된다. 1968년 프랑스에서는 ‘68운동’이, 1960년 우리나라에서는 4.19 혁명과, 1년 뒤 5.16 군사정변이 있었다. 전 세계가 ‘성장통’을 겪는 시기였다. 사세보는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안보투쟁의 한복판에 있는 곳이었고, 바다와 만나 오래전 부터 이문화의 유입이 많았던 항구도시다. 이 시기에 카오루, 센타로, 리츠코, 그리고 센타로가 사랑에 빠지는 후카호리 유리카와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쥰이치를 포함한 많은 청소년이 성장통을 겪는 것이 <언덕길의 아폴론>의 테마라 할 수 있다.

언덕길의아폴론 03
전공투 세대의 안보투쟁 시위 장면

각각의 인물도 각자가 품은 성장기의 모순을 이겨내려고 노력한다. 센타로는 혼혈이자, 양자로 입양되어 살았고, 싸움질이나 하며 돌아다니는 ‘농띠’다. 동시에 독실한 크리스천이고 섬세한 마음 씀씀이를 보인다. 카오루는 전학생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친척 집에서 다른 가족과 겉도는 존재지만(3) 재즈를 만나 조금씩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을 배우고, 리츠코를 좋아하면서 사랑이라는 성장통을 겪어나간다. 쥰이치는 학생운동에 빠진다. 여기에 유리카까지 5각 관계에 이르는 사랑의 엇갈림이 이어진다.

언덕길의아폴론 04
재즈는 <언덕 길의 아폴론>의 중요한 테마인 ‘자기 모순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청소년기’를 상징하는 소재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음악이 미군부대에서 영향을 받은 재즈인 데는 상징성이 크다. 재즈 또한 혼혈로 새롭게 탄생해, 성장통을 겪으며 발전한 음악이다. 재즈의 뿌리에는 ‘크레올’이 있다. 미국 남부 지역에는 노동력이 필요한 목화 농장의 주인인 백인 지주가 많았다. 이들 중 프랑스계 백인은 다른 백인들과 달리, 흑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흑백 혼혈 자식인 ‘크레올(creol)’을 자식으로 인정하고 유럽식 교육을 시켰다. 크레올은 아버지에게서는 유럽 대륙의 화성학을, 어머니에게서는 아프리카 대륙 고유의 리듬을 배웠다. 화성학과 리듬의 모순. 여기서 재즈가 탄생했다.

언덕길의아폴론08
1923년 시카코의 유명한 재즈 밴드 <킹 올리버의 크리올 재즈 밴드>. 거의 모든 멤버가 뉴올리언스 출신이었고, 제2코넷은 젊은 루이 암스트롱이 맡았으며, 클라리넷과 드럼은 ‘도즈 브라더스’ 자니와 베이비가 맡았다.

재즈는 <언덕길의 아폴론>의 테마를 상징하는 중요한 소재다. 리츠코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음반가게 지하 세션장에서 카오루의 클래식 피아노와 활력 넘치는 센타로의 드럼 합주가 울려퍼짐은 그야말로 재즈의 탄생 그 자체다. 처음에는 재즈가 “시끄럽고 요란하다”고 느낀 카오루는 점차 음악 속에서 모두와 함께 스윙하는 순간, ’망아’를 경험하고 다른 이와 하나가 되는 ‘모순의 초극’을 경험한다.

카오루와 센타로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이 재즈와 사랑이라는 모순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해 나간다(4). 무언가가 다른 무언가로 변하는 문턱. 청소년기는 문턱을 넘는 과정이다. 청소년기는 전학생 같다. 전학생은 다른 학교에서 와 아직 인정받지 못했지만 같은 교실에 있어야 한다. 피하기만 하면 영원히 적응하지 못한다. 언덕길을 오르기는 힘들지만, 다 올랐을 때의 성취감이 큰 것처럼 적극적으로 다가갈 때, 변화가 찾아온다. <언덕길의 아폴론>은 맨 처음, 전학 간 학교에 가기 위해 억지로 언덕을 오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마지막은 같은 언덕에서 대구를 이루며 끝난다. 별 다른 구석이 있는 장면은 아니지만, 어떤 장면인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

(1) 카나가와는 도쿄와 인접한 곳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인천 정도의 위치다. 반면 나가사키는 혼슈와는 떨어져 도쿄 근방과는 문화나 관습이 완전히 다르다. 나가사키는 ‘카스테라’의 발상지가 될 정도로 과거부터 네덜란드 등 외국 문화의 유입이 많아 일본 중에서도 상당히 이국적인 지역이고, 그 중에서도 사세보는 요코스카와 마찬가지로 미군부대 주둔지로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무라카미 류도 소설 에서 1969년 사세보를 무대로 삼아 미국 문화와 일상 속 일본 사이에 놓인 청춘을 그렸다.

(2) “무카에”는 일어로 환영한다는 의미가 있다.

(3) 카오루와 센타로가 서로 좋아하는 여성이 생기기 전, 서로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는 것도 아직 완전히 정체화되지 않은 모순된 감정의 움직임을 짐작케한다.

(4) 나는 카오루와 달리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무거운 역기를 들어 올리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카오루의 재즈와 사랑, 그리고 나의 웨이트 트레이닝은 그 한계가 타인이냐 나 자신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내 맘대로 통제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전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