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글쓰기, 주변부 서사의 모색_ 오사 게렌발의 <7층>

 

최근 그래픽노블 현황을 보면 눈에 띄는 지점이 있다. 그래픽노블 작품 중 자신의 삶을 그려낸 ‘자전적 작품’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그래픽노블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만화 역시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그래서 자전적 만화를 한국만화의 새 흐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1). 사실 자전적 만화는, 최근 한국의 흐름과 별개로, 이미 오래전 유럽, 영미권에서 작가주의를 표현하기 위한 장르로 보편화되었다. 미국의 경우, ‘대안 만화(Alternative comics)’를 이끈 ‘아트 슈피겔만’이 1982년에 자전적적 만화 <쥐> 1권을 출간했다. 또한 1990년대 프랑스에서는 ‘다비드 베’를 포함한 독립출판 ‘아소시에시옹’ 작가들이 자전적 만화를 본격적으로 발표한다.

000
아트 슈피겔만의 <쥐>,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

지금 소개할 ‘오사 게렌발’ 작가 역시 자전적 만화의 연장선에 있는 작가다. 하지만 오사 게렌발과 다른 작가들과 구별 짓는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녀는 <7층>, <가족의 초상>,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와 같은 자전적 작품을 지속적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작가의 모습은, 생전 내내 자전적 글쓰기에 전착해온 소설가 ‘박완서’씨를 연상시킨다. ‘박완서’가 글쓰기를 통해 억압된 경험을 대면하고 이를 극복하려 했듯, ‘오사 게렌발’ 역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한층 더 깊이 파헤치면서 새로운 각도와 새로운 버전”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자전적 글쓰기’는 이같이 오사 게렌발이 서사를 창출하기 위해 택한 방법론이다. 그녀는 이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의미 있는 서사로 재구성하고, 더 나아가 실존적인 자기 정체성을 형성한다.

 

 

외면한 이야기, 침묵한 이야기

<7층>은 작가 ‘오사 게렌발’이 직접 경험한 ‘데이트 폭력’을 다룬 만화다. 작가는 남자 친구를 제외한 모든 인간관계가 단절된다. 그녀의 취향과 개성은 남자 친구에게 모두 부정 당한다. 만약 그녀가 남자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순종하지 않을 경우, 그녀는 그 즉시 폭언과 폭력을 당해야만 한다. 이렇게 <7층>은 끔찍한 데이트 폭력의 순간순간을 힘겹지만 차분하게 담아낸다.

데이트폭력2
데이트 폭력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것이 <7층>의 모든 목적이라면 여기까지의 진행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표지의 ‘점점 작아지는 작가’의 모습이 상징하듯, <7층>은 데이트 폭력으로 망가진 여성 내면의 변화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녀는 반복되는 폭력을 통해 내면이 납작하게 쪼그라들고, 이에 폭력에 저항할 힘마저 잃어버린다. 또한 그녀는 남자 친구의 비난을 내면화함으로써,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맞아도 되는 사람’이 된다.

순응1

 

 

여성 발화 공간으로서의 ‘자전적 글쓰기’

‘자전적 글쓰기’로 다시 초점을 맞춰보자. <7층>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경험 나열이 아니다. 작가가 밝혔듯, 그것은 부서진 내면을 재건하는 고된 작업이며, 때때로 실패로 돌아가 다시 산산조각 나는 지난한 과정이다. 즉, 여성의 ‘자전적 글쓰기’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지배담론에 의해 강요되는 주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전략이다. 이것은 타자화된 주체의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다(2). 그래서 <7층>은 흩어진 기억을 조립하는 것을 넘어서, 여성 정체성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남성 중심 사회’의 모순을 필연적으로 드러낸다.

억압 내면화 2

 

…그와 나는 수많은 사항들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았다. 특히 이 한 가지는 유의해야 했다. 동기와 본질이 어떻든 나의 개성이 드러나면 안 된다. 얼마 지나자 나는 더 이상 오사가 아니게 되었다. 블랙 오사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모든 걸 지우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 3시 내가 순결을 잃은 날 이후부터 내 인생 거의 전부를 머릿속에서 지우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내 맘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난 창녀였어…..

…게다가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졌어. 당연히 할 말을 하기는커녕 늘 잠자코 있어야 했지. 주장을 내세워봤자 아무것도 용인되지 않았으니까….

데이트 폭력을 당할 당시의 작가의 생생한 증언이다. 한 여성이 한 남성에게 종속되어, 그 폭력에 순응하는 과정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폭력과 억압이 단순히 데이트 폭력 가해자인 한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남자 친구의 억압 기제 방식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작동되고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여성을 타자화하는 방식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여성은 남성이 허락하는 선에서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최근 한국 남성들이 ‘페미니즘’ 문제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그들이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간에, 그들에게 여성은 주체적 존재가 아니다. 다만 ‘남성 존재에 의존하는 타자’일 뿐이다. 작가는 마지막 장에 친절한 해설을 덧붙인다. 혹시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만으로 도덕적 우월감을 가진 남성들을 위해. 그 장면에서,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남자 친구의 얼굴로 대체되어 있다. 그리고 ‘언젠가 또 어디에선가 계속해서 그를 마주치게 될 것이다’라는 언급으로 끝을 맺는다.

재건 2

‘오사 게렌발’은 자전적 작품 활동은 투쟁이며 자신의 책들은 곧 투쟁의 기록이라 토로한다. 그리고 이 투쟁을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렇다. ‘자전적 이야기’란 ‘과거’와 동시에 ‘현재’를 말하고 있다. ‘과거’를 통해 침묵을 강요당하고, 주체를 박탈당한 여성의 현실을 폭로한다. 그리고 ‘현재’를 통해 여성 정체성을 스스로 모색하는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작가 본인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따스한 위안을 준다. 자전적 작품이 여성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사 게렌발의 연작들이 보여주듯, 자전적인 작품은 여성의 경험을 여성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성 발화 공간이 제한되거나 박탈당한 현실에서, 여성의 자전적 작품은, 그래서 더 많이 쓰여야 한다. 아니, 꼭 자전적인 작품일 필요도 없겠다. 그냥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더 많은 작품이 필요하다.

마지막

 

========================================

(1) 한겨례, 1/18, 23면, <은밀하고 오래된…나의 고백, 나의 만화>
(2) 원철, 디지털 스토리텔링과 자서전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