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부재한 전시회를 위한 변명_ 브레흐트 에번스의 <예술 애호가들>

 

벨기에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큰 나라는 아니다. 영토, 인구, 경제 등 많은 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만화’와 관련해서 만큼은 벨기에는 강국이다. 벨기에는 이미 20세기 초중반,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만화 잡지 <스피루>(1938)와 <땡땡>(1946)을 창간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만화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가장 중요한 만화 주인공인 ‘땡땡’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지금 벨기에 만화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예술 애호가들>의 작가 ‘브레흐트 에번스’가 벨기에 출신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벨기에 ‘대중만화’ 계보의 적자는 아니다. 브레흐트 에번스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만화 보다 ‘미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브레흐트 에번스는 <땡땡>의 작가이자 벨기에 대표 작가인 ‘에르제’를 연상시키는 여러 지점이 있다. 그는 2000년대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아이스너 어워드’에서 수상하는 등 ‘에르제’ 뒤를 잇는 벨기에 신예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에르제’가 ‘명료한 선’이라는 만화 양식을 확보한 것처럼, 브레흐트 에번스 역시 ‘수채화’ 작업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미적 양식을 확립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브레흐트 에번스의 <예술 애호가>를 이 지면에, 벨기에 대표 만화 중 하나로 소개하는 것이 무리한 선택은 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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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만화의 대표작, 에르제의 ‘땡땡’

 

만화에 스며드는 수채화 색상들

<예술 애호가들>는 만화 문법이 적용되고 있지만 일러스트의 특성이 도드라진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장면을 나누는 칸이 존재하지 않는다. 말풍선 역시 사라져, 대신 예쁘게 레터링 된 대사가 가상의 말풍선을 구성한다. 일러스트를 연상케 하는 그림은 분명 <예술 애호가들>의 특징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일러스트 자체가 아니라, 그 형태 안에서 작품의 개성을 어떻게 구현하느냐는 것이다. 다시 <예술 애호가들>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자. 다른 만화와 구별되는 뚜렷한 차이가 보인다. 각 그림들은 수채화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또한 수채화의 산뜻하고 투명한 색상은 이 작품에 개성을 부여한다.

<예술 애호가들>의 뚜렷한 개성은 ‘색상’과 ‘수채화’의 사용 방식에 있다. 우선 ‘색상’을 보자. 작가는 각각의 인물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각 인물의 그림과 대사에 고유한 ‘색깔’을 부여한다. 이때 인물들의 색깔은 색채 심리에 기반을 두어 선택되는데, 가령 외향적이며 의욕이 넘치는 ‘크리스토프’의 경우 붉은색을, 내향적이며 예민한 ‘레슬리’는 파란색을, 허풍이 넘치는 경계의 인물인 ‘페테르손’은 초록색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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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만화에서는 다소 낯선 수채화 기법으로 넘어가자. 작가 브레흐트 에번스는 밑그림 없이 투명한 색채로만 그림을 그려 나간다. 이것은 그 자체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제공하지만, 무엇보다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수채화의 투명한 레이어로 구성된 인물과 배경들은 서로 명확한 경계가 없이 뒤섞이며 자유롭게 흐른다. 이 같은 ‘겹쳐 칠하기’ 기법은 이 작품의 배경인 ‘베르폴’을 경계가 명확한 현실의 세계가 아닌, 경계가 모호한 환상의 세계로 변모시킨다. 특히 작품 중간 이야기의 흐름을 멈추고 호흡을 잠시 쉬어가는 장면들은 흰 여백 없이 탁하고 밀도감 높은 색상으로 채색되는 데, 이때 비엔날레는 초현실적인 예술 공간으로 창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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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에서 펼쳐지는 한 여름밤의 꿈

<예술 애호가들>의 이야기는 ‘베르폴’에서 시작된다. 이 작은 마을에서 ‘비엔날레’가 열릴 예정이다. 그리고 이 축제의 현장에 화가 ‘페테르손’이 초대된다. 그는 속물적이며 허영심이 강한 예술가다. 처음 그는 자신의 경력을 빛내 줄 비엔날레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하지만 그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한다. ‘베르폴 비엔날레’는 이름만 미술전이었지, 그냥 작은 동네 축제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를 도와줄 사람들 역시 평범한 동네주민 뿐이다.

이제 소극이 펼쳐질 모든 준비를 마쳤다. 비엔날레의 축제 무대. 허풍쟁이 예술가. 예술에 대한 열정만 가득한 마을 주민. 모두가 예측할 수 있듯, <예술 애호가들>은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좌충우돌 해프닝이 발생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기획자 ‘페테르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는 속으로 이 소박한 미술전과 천진난만한 마을 주민 모두를 경멸하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경력을 위해서라도 이 비엔날레를 무사히 완수시켜야 한다. 그의 실제 모습과 별개로 마을 사람들이 기대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다.

비엔날레 1

허풍쟁이 예술가의 구원

‘엘프’같이 뾰족한 귀를 가진 ‘페테르손’은, 이 정신없고 산만한 비엔날레에서 ‘트릭스터’ 역할을 수행한다. ‘트릭스터’는 다른 세계의 매개자이자, 경직화된 현실감각을 유연하게 만드는 광대 같은 존재다. 그래서 페테르손은 뜻밖의 상황들을 다시 전복하고, 이를 통해 신성한 것으로부터 유래한 힘 등을 전하거나 흉내 낸다. 작품 후반부에 이르면 이러한 그의 역할은 보다 명확해진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전시물 ‘정원의 요정’이 훼손돼, 비엔날레가 열릴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이때 마을 주민들은 뜻밖에도 이해관계가 걸린 ‘페테르손’보다 더 큰 실망감을 보인다. 예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마을 주민들이, 비엔날레 작품에 참여하면서 어느새 예술에 흠뻑 빠져 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페테르손이 오히려 마을 주민을 위로한다. 20년 동안 화초를 키우다 사고로 화초를 모두 잃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고는 이야기를 이렇게 끝맺는다.구원

“그 사이에 그는 줄곧 행복했지, 안 그랬겠어? 우리가 이걸 한 이유도 사실 그거야, 안 그래? 우리를 위해서 아니겠어? 왜냐하면 우리한테 좋으니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니까. 맞아. 마치 숨쉬기처럼.”

주민들은 페테르손에게 구원받는다. 구원이라는 말이 과장되게 들리지만, 그들이 받았을 위안과 실제 작품 속 몇몇 이미지에서는 그렇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은 마을 주민들은 “꿈이 없는 삶이란, 꽃이 없는 정원이랑 똑같지.”라고 말하며 예술적 사유로 끝을 맺는다.

마무리 1

<예술 애호가들>의 원제는 ‘The Making Of’다. 이 작품의 내용을 고려해 of 뒤에 Art를 붙이면 ‘예술을 만드는 과정’ 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여기서 ‘The Making Of’ 를 ‘만들기’보다 ‘만드는 과정’으로 해석한 이유는 <예술 애호가들>의 주제가 ‘결과’가 아닌 ‘과정’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예술 애호가들>은 ’결과로서의 삶‘만이 모든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대신 화사하지 못할지라도, 결과에 이르는 과정 역시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을 주민 ‘크리스토프’는, 방송에서 ‘무엇을 준비하느냐’라는 앵커의 질문에 직접적인 답 대신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일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잠깐만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학작용이 일어나고, 그렇게 함께 일하다 보면, 단단한 결속이, 하나의 존재가 만들어지는 거죠. 만약 예술이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이라면, 그렇다면…이것이야말로 가장…그거야말로 정말 놀라운 일이구나.”

예술을 만들어 간다는 것, 더 나아가 삶을 살아간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과정들이 쌓여가는 여정이다. 순간순간 삶의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