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와불로불사전설뱀파이어5a

 

박상준의 일본 SF 다이어리

─마사야 토쿠히로의 <쇼와 불로불사전설 뱀파이어>

 

영어에 ‘유니크(unique)’하다는 표현이 있다. 비슷한 것이 없을 정도로 매우 독특하다는 의미이다. 마사야 토쿠히로가 그렇다. 전 세계에 그와 같은 만화가는 없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그림체가 유니크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팬이라면 그림보다 스토리와 정서를 꼽을 사람이 꽤 있다. 사실은 그림체와 스토리, 정서가 하나로 합체되어 뿜어내는 그 강렬하고 순수한 시너지. 그게 마사야 토쿠히로 유니크함의 실체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쿄시로2030>(전20권) 대신 <쇼와 불로불사전설 뱀파이어>(전5권)를 소개하는 이유는 이렇다. 일단 장편이 아니라서 처음 이 작가를 접하는 독자라면 부담이 적다. 그리고 <쿄시로2030>은 3차 대전 이후 디스토피아적 전제국가가 된 근미래의 일본이 배경이지만, <쇼와 불로불사전설 뱀파이어>는 현재의 일본이 무대라서 현실 체감도가 훨씬 높다. 여기다 군산복합체가 배후에 있는 세계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플롯에 녹여 낸 솜씨가 훌륭하다. (물론 <쿄시로2030>에도 이런 예리한 통찰은 잘 담겨 있다.)

<쇼와 불로불사전설 뱀파이어>의 기본 설정은 남성 판타지이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고교생 소년에게 어느 날 낯선 미녀가 찾아와 다짜고짜 동정을 뺏는다. 그리고 하는 말, ‘나는 뱀파이어야.’ (그렇다. 이 뱀파이어는 사람의 피를 빨지 않는다.) 이 미녀는 자신이 늙지도 죽지도 않으며 무성생식으로 자가 복제를 계속하는 불사신이라고 밝힌다. (이름이 ‘마리아’라고 하는 게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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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사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인. 뱀파이어라는 별명과는 달리 피를 빨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으며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여신이자 천사. 마리아는 살아온 오랜 역사에서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을 이용해서 영생을 꿈꾸거나, 자신을 우상화하는 종교 광신도 집단이 나타난다. 결국 자신으로 인해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싹을 자르기 위해’ 원치 않는 살육을 하고는 몇 십 년씩 산 속에 숨어 살기를 반복하게 된다.

이제 21세기 일본에서 또 마리아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자신을 쫓는 집단이 나타난 것이다. 이럴 때면 마리아는 늘 자신을 지켜 줄 수호자를 먼저 찾아 나선다.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초능력자를 찾아내어 조력을 받는 것이다. 소년은 염동력의 소질이 있었지만 계발이 되지 않아 혼자서 지우개나 둥둥 띄우며 노는 수준이었는데, 마리아를 만나면서 일취월장한다. 비결은 훈련과 함께 수시로 맺는 육체관계.

마리아를 ‘뱀파이어’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었다. 서양의 ‘마녀’처럼 두려움과 증오, 금기의 대상으로 삼아 배척한 것이다. 마리아를 자기들 뜻대로 하지 못하자 그 비틀린 욕망과 질투를 투사하여 뱀파이어라 몰아세우며 없애려 한다. 마리아가 초능력자를 찾아내어 무한 신뢰와 애정을 주는 것도 사실은 자신이 생존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마리아 본인이 소년에게 얘기한다. ‘나는 이기적인 이유에서 너에게 잘 해 주는 거야.’)

마리아를 떠받드는 비밀 결사는 일본 자위대에 몇 만 명 단위로 침투해 있으며 이들은 모순과 부조리에 가득 찬 현재의 일본을 뒤엎으려는 군사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다. 모두들 여신이 통치하는 행복한 왕국을 건설할 꿈에 가슴이 벅차다. 마리아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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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연루되곤 하는 마리아의 운명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일본 현대 사회사를 비판적으로 회고하는 장면, 그리고 일본의 군사쿠데타 조짐을 알면서도 무기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 정부의 암묵적 승인을 보장해주는 거대 군산복합체의 설정 등은 이 작품의 격을 높이는 주요 요소들이다. 게다가 악역들도 단순한 흑백논리로만 그려지는 경우는 없다.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치밀한 캐릭터 묘사가 일품이다.

마사야 토쿠히로 작품을 하나라도 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그의 만화는 대부분 19금이며 <쇼와 불로불사전설 뱀파이어>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개그 장면에서는 남성 성기가 수시로 등장한다. 남녀가 관계를 맺을 때는 그야말로 욕망에 충실한, 격정적이고 질펀한 묘사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들은 늘 육체의 쾌락을 솔직하고 순수하게 즐기기에 보면 볼수록 위화감 대신 진정성이나 순정에 공감하게 된다. 이건 마사야 토쿠히로의 거의 모든 작품에 공통되는 점인데, 필자로서는 여성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긴 하다.

<쇼와 불로불사전설 뱀파이어>에서는 마리아가 비극적 최후를 맞는 대신 그의 아이가 소년의 보살핌 아래 자라나 다음 대의 마리아가 된다. 그녀가 활약하는 이야기는 속편인 <근미래 불로불사전설 뱀파이어>로 이어지는데 아쉽게도 아직 한국판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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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래 불로불사전설 뱀파이어>

마사야 토쿠히로는 호오가 꽤 분명하게 갈리는 작가이다. 사실 필자도 오래전 <쿄시로2030>을 처음 펼쳐보았을 때에는 뭔가 거부감이 일어서 곧 덮어버렸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읽기 시작하자 스토리의 엄청난 박력에 금세 빠져들었고, 그 뒤로 그의 작품이라면 무엇이든지 찾아 읽는 팬이 되었다. “이 작가, 대단하다!”

 

 

 

예고 : ‘일본 SF만화 다이어리’에서 앞으로 얘기할 작품들

야마구치 타카유키의 <만용인력>
오치아이 나오유키의 <철인>
니헤이 츠토무의 <아바라>
사무라 히로아키의 <할시온 런치>
콘 사토시의 <세라핌>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예전에 장르문학 전문잡지 [판타스틱]의 창간 편집장과 SF전문출판사 [오멜라스]의 대표를 맡은 적이 있다. SF전문가 코스프레로 살아가는 오덕이라는 의혹이 있다. 일본 SF만화의 꽤 열렬한 팬이며 그런 배경을 믿고 [critic M]의 편집위원단에 겁 없이 끼어들었다. 초등학생 딸에게 SF만화를 마구 권한 결과 순정만화를 보지 않으려는 부작용이 나타나 당황하는 중이다. 가급적 오래 살고 싶은데 그 이유는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이 과연 어디까지 SF스러워지나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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