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사라진 사회의 종착지, 리셋(Reset)_ <피노키오>

 

“이 이야기는 동화 ’피노키오‘에서 매우 자유롭게 따왔다.”

안내 문구 같은 이 구절은 그래픽노블 <피노키오>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그렇다. 그래픽노블 <피노키오>는 동화 <피노키오>를 패러디 한 작품이다. 길쭉한 코를 가진 피노키오와 그를 애타게 찾는 제페토가 원작과 동일하게 작품 중심을 잡고 있다. 피노키오를 당나귀로 만든 놀이공원과 피노키오와 제페토의 상봉 장소인 고래 뱃속 역시 동일하게 재현된다. 패러디는 ‘반복’이다. 하지만 ‘반복’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패러디는 과거의 특정한 문학 작품이나 장르를 출발점으로 하여 그것의 각색을 현재적 문맥에 삽입시키는 문화적 전략(1)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래픽노블 <피노키오>의 본격적 여정에 앞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그래픽노블 <피노키오>가 과연 어떠한 반복과 차이를 만들어 낼까? 또한 이렇게 패러디를 통해 생성된 이야기는 현재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의미를 제공할까?

 

살인 기계와 그로테스크한 세계의 조우

그래픽노블 <피노키오>를 굳이 동화로 명명한다면, 잔혹동화라 부를 수 있겠다. 이 작품 안에는 서정적이고 사랑스러운 동화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어둠과 절망만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부랑자는 거리에서 장기밀매 희생자가 되고, 아이들은 공장에서 노동착취 대상이 된다. 이 세계는 즉, 기괴하고 끔찍한 ‘그로테스크’의 세계다. 악마적 범죄 행위를 통해 인간의 소외와 광기를 표현하고, 기괴하고 음울한 풍경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와 모순을 드러낸다(2). 게다가 주인공 피노키오는 무엇보다 그로테스크한 세계, 그 자체다. 저주받은 이 세계와 동등한, 아니 어쩌면 이를 넘어서는 괴물 같은 존재. 그래서 피노키오는 살인기계로 작동하며, 심지어 이 세계를 삭제할 수 있을 만큼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다. 살인기계와 그로테스크한 세계. 그리고 이 두 존재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원작과는 또 다른 <피노키오>가 이 지점에서 탄생한다.

그로테스크 4
살인 기계, 피노키오

 

세상을 리셋하다

<피노키오>의 세계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원작에도 등장했던 ‘놀이공원’을 보자. 놀이공원은 기아와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마지막 희망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놀이공원에 모여든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건 희망이 아니었다. 놀이공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놀이기구는 작동을 멈춘 지 오래고, 거리에 굴러다니는 과자들은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아이들은 모든 희망을 포기한다. 이때 ‘피에로’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피에로와 그의 부하들은 노래를 부르고 깃발을 흔들며 아이들을 현혹한다. 이에 아이들은 좌절된 희망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피에로의 선동에 열광한다. 놀이공원을 파괴하고 살육을 저지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 자신 또한 무참히 살해된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환멸에서 광기로 빠져드는 파시즘적 분노는 철저한 자기파괴다.

 

파시즘 2

 

희망이 부재한 사회가 당도한 자기파괴 세계. 이러한 허무주의 폭력은 최근 언급되는 ‘리셋(reset)’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세상을 리셋하다. 세계의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 세계 자체를 원점으로 날려버리려는 욕망이다. 그것은 그 사회의 다른 모든 가능성이 봉쇄되었을 때, 유일하게 가능한 상상이다(3). 즉, <피노키오>는 모든 가능성이 봉쇄된 사회가 다다르게 될 음울한 앞날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풍경은 ‘경제 모순으로 인한 계급투쟁’ 같은 진보적 예언보다는,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합의를 끊임없이 조롱하고, 하향평준화하는 한국의 퇴행적 흐름에 보다 가깝다.

마침내 리셋이 실행된다. 피노키오는 구원이 불가능한 공간-성적 학대, 아동 착취, 폭력 생산-을 가차 없이 파괴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도,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인도 모두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동시에 억압된 구조에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 심지어 어린아이마저 함께 스러진다. 이 절대적 힘은 선과 악을, 정의와 부정의를 분별하지 않는다. 어떠한 가치판단 없이 오로지 파괴할 뿐이다. ‘리셋’이 남긴 폐허의 흔적 속엔, 어떠한 변화도,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다.

 

리셋 1

 

모든 것이 파괴된다. 그리고 피노키오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어느 부부에게 입양되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가장 목가적이고 동화적인 풍경일지 모른다. 하지만 불길한 그림자는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노키오가 방에 홀로 남겨질 때다. 짙은 어둠 속 하얗게 빛나는 피노키오의 눈을 보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혹시라도 이 가족이, 이 세계가 또다시 파괴되는 것은 아닐까? 알 수 없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공동체에 편입되어 인간으로 거듭나는 피노키오의 마지막 모습에 희망을 기대는 수밖에 없다. 리셋이 아닌 상상 가능한 다른 길을.

 

마지막 1

 

============================================

(1) 이승준, 차혜영, <한국 현대소설의 패러디에 대한 고찰>

(2) 팀버튼 영화의 표현주의와 그로테스크 미장센에 관한 연구

(3) 엄기호, 시사IN, <저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