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개그망가’와 ‘오와라이(お笑い)’의 관계

 

마사루와 엽기 시대의 시작

크리틱엠) 연재기사 01ㅡ“원츄!”

‘N세대’라 불리던 ‘네티즌’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바야흐로 대한민국 인터넷 여명기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엽기’라는 말로 그들을 묘사했다. 이들이 모두 공유하던 만화가 바로 <멋지다 마사루>(1995~1997년 연재)다. “원츄!”는 <멋지다 마사루>의 주인공 마사루가 보인 ‘개그’이자 인사였고 자연스럽게 게시판이나 다음 카페에서 유행하였다. 당시 얼마나 인기였는가 하면 국내 번역본에서는 ‘애교 코만도’라고 번역된 작품 내 가상의 격투기 ‘섹시 코만도’의 기술인 ‘엘리제의 우울’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애니메이션 판 오프닝 노래 ‘로망스’를 부른 밴드 ‘페니실린’은 인기가 높아져 2000년에 내한공연을 했다. 이때 자신들의 노래인 ‘남자의 로망(男のロマン)’을 한국어로 개사한 ‘NAMZA E ROMAN’을 발표하기도 했다. 노래방 기계에도 실려있다. 바야흐로 ‘엽기’의 시대였다.

이렇게 <멋지다 마사루>가 유행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전국적으로 늘어난 만화 대여점도 이유 중 하나다. 만화가 일종의 ‘교양’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했고, 인터넷은 이들을 서로 연결해주었다. 또한 ‘노란 국물’, ‘엽기적인 그녀’, 플래시 애니메이션 ‘엽기토끼’, ‘연예인 지옥’ 등 ‘엽기’가 코드로 유행했었기에,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넌센스하고 초현실주의적인 <멋지다 마사루>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졌다. 내용이 원작 만화만큼이나 넌센스했던 애니메이션의 인기도 큰 몫을 담당했다. 또한 당시에는 ADSL이 보급되면서 ‘와레즈’나 ‘다음 카페’를 통해 동영상이 돌았는데, 길이가 10분 밖에 안 되는 <멋지다 마사루>는 WMV, RM 등 저화질 동영상 파일에 적합했다.

그러나 <멋지다 마사루>는 일본과 다른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에 형성된 <멋지다 마사루>로 인해 생긴 오해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멋지다 마사루>가 비록 패러디가 많은 만화기는 하지만 유머감각은 완전히 ‘오리지널’이고 독자적이라는 오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슈르(シュール)’라는 개념의 오해다.

먼저 <멋지다 마사루>의 유머감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멋지다 마사루>는 우리나라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온 UFO 같은 존재였고, 엽기코드를 공감하는 젊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멋지다 마사루>는 평소에는 연재 잡지인 <소년 점프(少年ジャンプ)>의 기대 독자층을 벗어나 폭넓게 인기를 얻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실은 <멋지다 마사루>에는 패러디 외에도 레퍼런스가 많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TV의 ‘오와라이(お笑い) 인기 방송이다. 일본은 코미디를 ‘오와라이’라고 부르는데, 오랫동안 일본의 코미디언은 존경을 받으며 일종의 ‘대중철학자’나 ‘유행선도자’, ‘예술가’ 역할을 해 왔다.

크리틱엠) 연재기사 02
(<멋지다 마사루> 애니메이션 35화의 한 장면)
크리틱엠) 연재기사 03
(<다운타운의 억수로 좋은 느낌(ダウンタウンのごっつええ感じ)>의 한 장면)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왼쪽은 애니메이션 <멋지다 마사루> 35화에 등장하는 고교 섹시 코만도 시합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넌센스한 규칙이나 행동이 재미를 만든다. 오른쪽은 <멋지다 마사루>와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오와라이 방송 <다운타운의 억수로 좋은 느낌(ダウンタウンのごっつええ感じ)>(1991~1997년 방영)에서 방영한 넌센스 콩트 ‘실업단 선수권 대회’의 한 장면이다. 보다시피 둘은 매우 유사한 아이디어를 보이고 있다.

물론 여기서 소개하는 예는 단순히 ‘베꼈다’라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괴함’이 일본의 경우에는 ‘익숙한 맥락의 패러디로서 기괴함’이었다는 맥락의 차이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만화가 다양한 레퍼런스를 인용하고 패러디하는 행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화는 현실의 다양한 맥락에서 비롯한 요소가 기호화하여 뒤섞인다. 어떠한 만화도 현실 반영 없이 독자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이 레퍼런스의 맥락이 빗나갈 때, 문제가 생긴다. 독자가 만화에서 재미를 느낄 때는 크게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개그와 기호가 암시하는 심층의 다양한 맥락을 재구성하는 유머, 두 가지 경우다. 만일 기호에서 맥락이 거세되어 단순히 모방하기만 하면, 유머의 효과는 반감된다.

 

오와라이 제 3세대와 ‘슈르’

<멋지다 마사루>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레퍼런스는 ‘오와라이 제 3세대’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한 젊은 코미디언으로, 기성 세대의 오와라이나 대중문화가 관성적으로 반복하는 문법을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것을 테마로 삼았다. 위의 <다운타운의 억수로 좋은 느낌>의 주요 멤버인 만담(漫才) 콤비 ‘다운타운’은 대표적인 오와라이 제 3세대다. 이들은 기존의 코미디 문법을 파괴하는 다양한 패러디와 당돌하고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넌센스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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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담 콤비 ‘다운타운’)

오와라이 제 3세대의 스타일, 태도, 작품을 ‘슈르’하다고 표현한다. 이 말은 1924년 시작된 전위예술운동인 ‘초현실주의’의 프랑스어 표현 ‘쉬르레알리슴(Surrealism)’에서 따온 말로, 보통 ‘비현실적’이고 기발하고 환상적이며 의외의 모습을 가리키는 단어다. 그러나 오와라이 제3세대의 ‘슈르’함을 단순히 ‘초현실주의’나 ‘비현실’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슈르’함은 본래 질서를 깨는 것이어야 할 오와라이 그 자체의 관성을 파괴하는 메타적인 시도였다. 본래의 초현실주의와는 다른 맥락이었다.

나는 재미(fun)를 표층과 심층으로 나뉜다. 전자는 개그(gag)라고 부른다. 표층에 드러난 비일상적인 기호에 연합된 조건화가 가져오는 즉각적인 반사작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개그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른 개념이다.) 유행어나 특정한 동작, 반복되는 상황 등이 예다. 한편 후자는 유머(humor)로, 표층의 기호가 암시하는 다양한 맥락이 심층에서 서로 뒤엉킬 때 혹은 관성적인 질서가 깨지거나 뒤틀릴 때 발생하는 경련과 마찰열로 은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넌센스나 블랙 유머는 현실의 질서를 깨거나, 뒤틀 때 발생한다. 본래 초현실주의는 ‘초현실’적인 것, 사회가 공유하는 실제 현실을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오와라이 제3세대의 ‘슈르’함은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오와라이나 대중문화가 축적하고 관성적으로 반복한 과거의 문법과 맥락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본래의 초현실주의와 다른 맥락에서 탄생한 ‘슈르’함은 우리나라에 번역되면서 ‘엽기’코드로 ‘격의(格義)’되어 들어왔다. 격의란 불교 용어로,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 경전에 기술되어 있는 사상이나 교리를 노장사상(老莊思想)이나 유교사상(儒敎思想) 등의 전통 중국 사상의 개념을 적용하여 비교하고 유추함으로써 이해하려고 하는 방법이다.’ (인용: 위키백과 ‘격의불교’ 항목)

요약하자면, <멋지다 마사루>는 오와라이 제3세대 붐과 같은 분위기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그래서 일본에서 <멋지다 마사루>는 기존 만화를 적극적으로 패러디하고, ‘슈르’함을 더욱 밀어붙인 ‘전위적’인 작품이면서도, 동시에 일본 대중에게는 친근하고 익숙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엽기 코드에 기반을 둔 전위적이고 취향의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마니아 취향의 작품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만화와 오와라이

한국 만화 독자의 경우, 일본에서 건너온 업계 용어인 만담(만자이), 보케, 츳코미, 캐릭터, 네타, 개그… 등등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오와라이 방송을 통해 축적되는 사회적 배경지식을 공유하지 않는다.

일본 개그 망가는 일본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해 개그와 유머를 만드는데, 번역되는 과정에서 맥락과 경험이 격의 되어 온전한 재미를 경험하기 어려워지거나 색다른 의미의 재미로 ‘격의’ 되기도 한다. 실은 <멋지다 마사루>가 마니아에게 인기를 얻은 배경에도 ‘슈르’가 ‘격의’의 맥락을 살리지 못해 임의적으로 선택한 번역어가 맥락을 크게 벗어나기에 작품의 ‘슈르’함을 더욱 강조한 탓도 있다.

심지어 나는 창작자나 독자가 일본 개그 망가의 문법을 관성적으로 반복해 이를 물신화(物神化)하여, 무조건적으로 이를 강요하거나 오용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고 한국의 독자적인 재미의 문법을 새로이 구축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하고자 한다. 굳이 이 레퍼런스를 밝혀야 하는가, 단순히 딜레탕트의 속물적인 지식 자랑이 아니냐, 라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작업이 중요하다고 항변하고자 한다. 왜냐면 본래 일본의 ‘망가’는 시작부터 오와라이와 강한 연관을 지으며 발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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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쿠로>의 한 장면)

과거에는 망가 = 코미디였다. 어린아이가 보는 것이자, 희극적이고, 코미디의 한 종류로 받아들여졌다. 대표적인 과거 작품이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타가와 스이호(田河水泡)의 <노라쿠로(のらくろ)>(1931~1981년 )다. <노라쿠로>는 의도적으로 당시 유행한 희극 연극 무대를 레퍼런스로 삼아 코미디를 구사했다. 지금처럼 영화나 소설 같은 스토리를 중시하는 ‘스토리 망가’는 <노라쿠로> 다음 세대인 테즈카 오사무가 기존 문법을 파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몽타주’라는 영화적 기법을 도입하면서 발전하였다. (자세한 논의는 오츠카 에이지의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럼에도 오와라이가 주는 영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와라이의 레퍼런스를 명확히 밝히는 작업은 지난하면서도 거대한 작업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은 고작 그 길잡이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재미의 문법을 새로이 구축하는 파괴와 재구축을 위한 기초작업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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