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삶을 이어가야 하기에_ 파비앵 툴메의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냐>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냐. 조금은 잔인한 제목이다. 여기서 ‘나’는 ‘작가 자신’이며, ‘너’는 다운증후군인 ‘작가의 딸’이다. 이 제목에는 장애아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장애아 부모의 슬픔과 어려움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제목에는 미처 다 적지 못했지만, 작품 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이어져 있다. ‘하지만 네가 와줘서 좋아’라고.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냐>는 이렇게 장애아 부모의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이후 아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과정을 찬찬히 그려낸다.

 

거부하던 딸을 받아들이기 까지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냐>는 초반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중간중간 등장하며 주인공 ‘파비앵’이 앞으로 겪게 될 삶을 예감한다. 그리고 태아에 대한 몇몇 검사가 미묘하게 엇갈리면서, 주인공과 딸 ‘쥘리아’의 특별한 만남이 시작된다. 처음 파비앵은 쥘리아의 낯선 용모에 ‘온몸이 마비된 듯 얼어붙은’ 느낌을 받는다.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된다. ‘쥘리아’가 ‘다운증후군’으로 판정받은 것이다. 파비앵은 매일 울고 또 운다. 꿈에서도 울고, 잠에서 깰 때면 현실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또 운다. 그러다 모든 존재에 분노와 증오를 느낀다. 자신과 아내, 병원 관계자, 심지어 정상 아이를 가진 다른 부모에게까지….

충격 2

이후 파비앵은 쥘리아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적응한다. 하지만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파비앵은 여전히 딸에게 애정을 느끼지 못하며, 이 감정은 곧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그는 자신에게 묻는다. ‘언젠가 이 아이를 내 딸로서 사랑하게 될까? 이 아이를 다운증후군 말고 다르게 볼 수 있을까? 이 아이에게 최선을 다 할 수 있을까?’ 다행히 이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쥘리아가 심장 수술을 받을 때다. 파비앵은 또다시 눈물을 흘린다. 이번에는 절망의 눈물이 아니다. 딸을 걱정하는 부모의 눈물이다. 바로 그 순간 파비앵은 진심으로 쥘리아를 사랑한다는 걸 깨닫는다.

사랑 1

 

기다리지 않는 삶과 마주 할 때

<내가 기다리던 네가 아냐>는 특별한 개인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작품의 보편성을 정상 부모도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확률의 문제로 억지스레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진정 우리의 문제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인간 존재의 전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처음 파비앵의 경우 딸이 다운증후군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후 서서히 낯선 현실에 길들여져 가지만, “괴로움을 극복하는데 거의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다시 무너진다.” 하지만 종국에 가서 파비앵은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딸의 ‘장애’가 아닌 딸의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같이 삶이란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원치 않는 무대에 올라가 자신만의 삶을 연기한다. 주인공 파비앵이 단순히 연민의 대상을 머물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기대하지 않는 삶을 들여다보게 되고,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된다.

삶 1

현실은 이겨낼 수 있거나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 되돌릴 수 없거나 심지어 더 나아질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결정적 순간, 주인공 ‘파비앵’의 경우 ‘받아들임’을 택한다. 여기서 받아들임은 수동적 체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과 세상에 일어난 일들을 온전히 의식하는 능동적 행위다. 즉, 현실에 짓눌리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모색의 과정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어감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임’이야말로 어쩌면 팍팍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지금 현실에 필요한 삶의 태도일지 모르겠다. 냉철한 현실 인식을 유지하면서도, 그 현실에 결코 주눅 들지 않는 태도. 그리고 견뎌낸 삶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 물론 받아들임이 완벽한 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받아들임 역시 하나의 선택이며, 이 또한 개인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결을 지닌다. 그럼에도 이 작품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의미 있다. 주어진 삶을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삶은 이어가고 살아가야 하기에.기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