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연민과 여성 혐오 사이_ <리얼리스트>

 

<리얼리스트>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작가는 ‘로버트 크럼(Robert Crumb)’이다. 크럼은 197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대표 작가로, 그의 자기 고백적 요소나 전기적 요소는 작업 전체를 일관되고 설득력 있는 세계로 만들었다. <리얼리스트> 역시 이러한 ‘자전적 만화’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1960년대 말 히피 문화를 관통한 크럼의 작품과 2000년대라는 다른 세기를 펼쳐내는 <리얼리스트>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크럼’은 자신의 가장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라 변명했지만, 그의 만화는 여성 혐오 이미지가 가득했고, 종종 자극적 폭력까지 수반했다. 반면 <리얼리스트>의 경우 자전적 작품이라는 형식은 공유하지만, 크럼의 작품과 달리 돈, 가족, 직장 같은 보다 평범한 일상에 관심을 기울인다.

realist

현실로서의 전쟁, 삶으로서의 전쟁

<리얼리스트>는 이스라엘 작가 ‘아사프 하누카’가 이스라엘 도시 텔아비브에서의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텔아비브’는 비록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전한 도시지만, 그렇다고 전쟁과 테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도시는 아니다. 작가가 밝혔듯, 텔아비브 역시 집으로부터 불과 몇 km 떨어진 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만약 전쟁의 두려움에 어느 정도 무감각하지 못하다면, 정상적인 삶을 아이와 함께 이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리얼리스트>의 주인공은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참혹한 현실을 희석시킨다. TV 테러리스트는 배트맨의 친구며, 거리의 폭발은 근사한 파티라고.

<리얼리스트>는 일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정치 상황은 작품의 중심 소재가 아니다. 다만 시위 장면, 테러 뉴스 등이 작품 중간중간 삽입될 뿐이다. 그럼에도 ‘전쟁’은 <리얼리스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현 상황을 증언해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작품 주제인 ‘전쟁 같이 치열한 삶’이라는 은유와 정확히 포개지기 때문이다. 가령 주인공은 아내에게 “임대 계약과 주택자금 대출에 서명만 하면, 그걸로 끝이야.”라고 말하는데, 이때 TV에서는 이란 핵실험 장면이 방송된다. 또한 <리얼리스트>에서는 피와 내장이 자주 등장하는데, 자동차 벌금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관공서에서 자신의 심장과 내장을 다 꺼낸 후 패잔병처럼 돌아선다.

귀환 불능 지점

 

남성 이야기 = 여성 혐오?

<리얼리스트>는 한 남자의 자전적 이야기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직장인으로서. 자전적 작품은 남성의 애환을 진솔하게 그려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작품 속 주인공은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여성 혐오를 드러낸다. 즉, 자신을 가정에 희생당한 약자로 위치시킨 후, 현실의 어려움을 단순히 아내 즉 여성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남성 피해 서사가 작품 자체로 종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 역차별이 공공연히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현시점에서, 여성 혐오 작품은 독자의 댓글을 통해 더욱 증폭되고 확산된다. 바로 작품을 매개로, 여성 혐오에 관한 작가와 독자의 신성동맹이 가시적으로 확고해지는 것이다.

<리얼리스트>는 다행히 여성 혐오로 나아가지 않는다. 특별히 젠더 감수성을 가진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여성 혐오 작품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작품이다. <완벽한 한 쌍>에서는 쇼핑에 열광하는 아내와 쇼핑에 시달리다 잠이 든 남편이 대비된다. <우주정복>에서는 전세 문제로 신경이 날카로운 아내와 현실에 짓눌린 남편이 대비된다. 작가는 이렇게 전형적인 남성의 시각으로 아내의 부정적 모습을 그려졌지만, 한편으로 남성의 결점을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남녀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맞춘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는 한 가정의 운명을 좌우할 아내의 모든 질문에 “응, 그래.”라고 무관심하게 답하는 남편을 그리면서 아내와의 교감을 등한시하는 자신을 비꼬았다. <상자들의 나라>에서도 자기 비판적 태도는 유지된다. 이 에피소드는 먼저 방을 가득 채운 이삿짐 상자를 보여준 후, 다음으로 힘겹게 상자를 옮기는 아내의 모습과 안락하게 소파에서 잠든 남편의 모습을 아이의 눈을 통해 비춘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여성 혐오는 장르를 구분하진 않는다. 다만 젠더 문제에 특히 민감한 장르나 소재는 있기 마련이다. 남성의 자전적 이야기 역시 여성 혐오에 관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소재 중 하나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을 창작할 때, 특히 젠더에 민감한 소재를 다룰 때는 표현 윤리에 대해 보다 섬세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 <리얼리스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긴 했지만, 여성을 비판하고 이어 남성을 비판하는 중립적 태도는 사실 만족스러운 표현은 아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빈번하게 기계적 중립이라는 허망을 목격하며, 특히 남성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같은 논의에, 이야기 만드는 것만으로 벅찬데,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관한 부담까지 지어야 하냐고 푸념하는 작가가 있을지 모르겠다. 위근우 기자의 말을 빌리겠다.

마지막

“우리는 ‘갈수록 창작자의 젠더 감수성이 미덕이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젠더 감수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