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뎅은 어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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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오뎅 (오른쪽) 카마포코

오뎅은 어묵이 아니다. 흔히 일본말 ‘오뎅(おでん)’ 대신 우리말 ‘어묵(魚묵)’으로 순화해 쓰자는 말이 많다. 실제로 오뎅은 비표준어이니 어묵을 쓰라고 맞춤법에서도 권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어묵은 이름대로 ‘생선 살을 으깨 소금 따위 부재료를 넣고 익혀 응고시킨 음식’, 다시 말해 생선으로 만든 묵이다. 일본어로 생선으로 만든 묵은 ‘오뎅’이 아니라 ‘카마포코(蒲鉾)’다. 오뎅은 본래 ‘산초의 순을 으깨어 섞은 된장을 두부에 발라 구운 음식, 꼬치 안주’다(1). 나중에 포장마차에서 술을 팔면서 안주로, 국물에 오뎅을 담궈 익힌 음식을 내놓게 되는데, 푹 끓였다는 뜻의 니코미(煮込み)를 붙여 니코미오뎅(にこみおでん)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값이 싸고 잘 상하지 않는 어묵(카마포코)를 주재료로 오뎅을 만들었고, 결국 오뎅=어묵이 됐다. 이와 마찬가지 오해가 야쿠자(やくざ)라는 말에 똑같이 생겼다.

 

야쿠자모노에게는 야쿠자모노만의 규칙이 있다

일본말로 야쿠자모노(やくざ者)는 야쿠자+모노(者, 사람) 이라는 뜻인데, 단순히 조직폭력배만이 아니라 수상하고 쓸모없는 사람을 통칭한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조직폭력배를 지칭한다.) 반대말은 카타기(堅気)로 ‘성실한 기질’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신분이 확실한 직업을 갖고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야쿠자모노에는 게이샤, 떠돌이 침술사, 폭력배, 예능인까지 포함된다. 일본에서는 인세 등 고정수입이 없는 자유기고가나 소설가가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야쿠자모노라고 부르기도 한다. 야쿠자모노는 무숙인(無宿人)이 되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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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일본인이 떠올리는 무숙인의 모습

무숙인은 호적 없이는 사람을 말하는데, 보통 떠돌이와 유의어로 사용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에도시대(1603~1868년) 당시 무숙인=범죄자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시마바라 반란(島原の乱)을 일으킨 기독교도를 완전히 근절하기 위해 단카(檀家)제도를 만들었는데, 백성에게 각 지역 절에 강제로 호적을 등록케 하고 지금의 동사무소처럼 절이 호구조사와 인구 관리를 담당하도록 한 제도다. 호적이 없거나, 범죄 등을 저질러 쫓겨나거나, 카타기에 맞지 않아, 소위 ‘팔자가 드세’ 쫓겨난 사람은 무숙인이 되지 않으려고 양자로 받아주는 곳에 가야만 했다. 당시는 연좌제가 있어 무숙인의 친지도 벌을 받게 되기에, 강제로 호적에 넣으려 들기도 했다. 이런 무숙인을 받아주는 호적이 야쿠자모노가 모인 조직이었다.

야쿠자모노 사회도 카타기 사회의 그림자나 다름없기에, 에도시대 일본 사회와 마찬가지로 유교를 기반으로 한 가부장제 유사가족 형태를 보이고, 서열은 나이로 결정된다. 이 때 나이는 태어난 나이와는 관계없이 야쿠자모노 사회에 ‘데뷔’를 기준으로 삼는다. 야쿠자모노 사회에 들어온 이상 과거의 자신은 죽고, 야쿠자모노로서 새롭게 태어나 가족 구성원이 된다. 그래서 일본의 조직폭력배 두목을 부모 역할이라는 뜻의 오야붕(親分, 오야분), 부하를 자식 역할이라는 뜻에 꼬붕(子分, 꼬분)이라고 부르고, 조직원끼리 형님 아우 한다. 스모, 가부키, 게이샤, 배우나 가수 혹은 오와라이 게닌(お笑い芸人, 코미디언) 같은 연예인도 모두 야쿠자모노에 해당한다.

 

야쿠자모노 = 신 혹은 물건

타자화란 물건 취급을 받거나 신으로 숭배 받거나 같이 서로 상반된 현상으로 나타나기 쉽다. 가수, 배우, 아이돌, 게닌 등 카타기 사회가 사랑하고 숭배하기까지 하는 직업군도 야쿠자모노 세계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타자화의 주체인 카타기 사회는 야쿠자모노를 자신과 다른 별종, 타자로 여기고 그들만의 다양한 관습과 규칙이 아무리 부조리해도 “그쪽 문제는 그쪽이 알아서”라는 태도를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2016년 1월 13일 있었던 SMAP 해체 소동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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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8일 SMAP 공개 사과 생방송 모습

소위 갑질 논란으로 우리나라에서 보도된 이 사건은 예능계라는 야쿠자모노 세계의 관습과 규칙에 따라, 그동안 당한 부당한 계약조건이나 착취에 반발한 괘씸죄로 공개처형을 당한 사건이기도 하다. 분명히 헌법이나 노동법 위반과 관계된 문제이나, 공공기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입법부인 정치계에서 야쿠자모노의 관습과 규칙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는 “야쿠자모노는 카타기와는 다르다”는 타자화 된 인식이 무의식에 있기 때문이다. 남의 가족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식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가정폭력에 공권력이 개입하려 들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문제와 유사한 사고방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카타기와 야쿠자모노를 구분하고 게닌을 야쿠자모노에 집어넣는 인식이 일본 코미디 오와라이와 우리나라나 미국 등 다른 나라 코미디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인식 차이다. 일본의 카타기-대중은 게닌을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타자화하고, 일반상식과는 다른 행동이나 사고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게닌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게닌이면 게닌답게, 일부러라도 일반상식에 크게 어긋나더라도 게닌 세계만의 규칙과 관습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이라면 사회적, 윤리적 상식에 벗어나는 불쾌한 행동이나 발언도, 일본인은 야쿠자모노를 타자화해 자신과 분리시키기 때문에 마치 공포영화 스크린 위에서 벌어지는 살인을 즐기는 관객처럼 웃어넘기게 된다.

 

또 다른 야쿠자모노,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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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라이 게닌 텟켄은 치바테츠야상 수상경력이 있다. 스케치북으로 페이퍼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스타일의 코미디가 특기

안타깝게도 일본인 중에는 만화가 또한 야쿠자모노로 여긴다. 만화가는 독립적으로 일하기에, 다른 야쿠자모노처럼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바탕으로 특별히 누군가의 호적에 들어가는 식의 조직 논리나 상하서열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정기적인 수입이 없는 경우가 많고 사회에서 비껴 나온 사람들이 많이 도전하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야쿠자모노 취급을 받는다.

오히려 이런 면이 일본 망가(漫画)의 표현을 다양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도 가능하다. 망가에 등장하는 잔혹한 표현, 부조리한 넌센스, 폭력적인 슬랩스틱 개그 등 다른 나라 사람이 보기에 과격한 묘사가 허용되는 배경에는 야쿠자모노에 대한 타자화 된 인식이 한 몫 한다.

스스로 ‘아웃사이더’라고 자각한 청소년과 젊은이를 오와라이나 망가를 통해 위로받아, 오와라이 게닌이나 만화가를 지망하는 경우도 많다(3). 만화가는 자신이 재미있게 보고 영향 받은 오와라이 혹은 자신이 게닌이 됐다면 선보였을 오와라이를 그림 위에 선보인다(4).

일본의 개그망가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오와라이와 망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피드백 관계만이 아니라 배경에 깔린 사회의 무의식적인 인식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언더그라운드에 머무는 과격한 표현을 구사하는 개그망가가 유독 일본에서만은 일종의 전위예술로 발전한 데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회로부터 타자화를 당한 만큼 반대로 표현의 자유가 생긴 것이다. 다만 그 자유가 중세 유럽의 봉건제도에서 영주가 가장 신분이 천한 광대를 자기 곁에 두고 무슨 말이든 자유로이 하게 둔 것과 마찬가지의 자유라고 폄하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대중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이자 카타기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는 거울 역할도 담당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오와라이 게닌 텟켄의 단편 애니메이션 <시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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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에 농악처럼 일본에서도 농악이 있는데, 모내기할 때 노동요를 부르며 춤을 추는 덴가쿠(田楽)다. 점차 대중예술로 변해 잔치나 놀이로 변했고, 이때 먹는 새참으로 두부나 토란 따위를 먹기 좋도록 꼬챙이나 칼로 한가운데를 찔러 꿰는 꼬치를 먹었고, 찌른다는 뜻의 사시(刺し)를 붙여 음식 이름을 덴가쿠사시(田楽刺し)라고 불렀다. 한편 일본말 습관에는 존칭이나 물건, 사람 이름 등에 ‘오-(御)’를 붙이는 습관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일본말 속어로 돈을 오까네(お金)라 부르는 유래도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덴가쿠사시에 오가 붙어 오덴가쿠사시가 되고, 이 말이 줄어서 오뎅으로 변했다.

2. 일본의 인기 아이돌 SMAP 멤버 네 명이 소속 기획사 자니스(Johnny’s)에서 독립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5일만에 팬이나 연예계, 정치계에 이르는 다양한 압력으로 해산이 무산되었고, 멤버 다섯 명이 생방송으로 사과한 사건이다.

3. 물론 반대인 경우도 많다. 오와라이 게닌 텟켄(鉄拳)은 치바테츠야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으나, 만화에 좌절하고 방황하다 게닌이 되었고, 그림 실력을 살려 스케치북에 페이퍼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여주는 스타일의 코미디로 인기를 얻었다.

4. 여담이지만, 과거 일본 과학소설 작가 중에는 코마츠 사쿄나 츠츠이 야스타카처럼 만화가로 데뷔한 경력이 있거나, 스스로 그림을 못 그린다고 자각하여 과학소설 작가를 목표로 변경한 사람이 꽤 있다.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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