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대의 대면, 새 시대의 대면_ 마누엘레 피오르의 <대면>

<대면>의 ‘마누엘레 피오르’는 나른하면서 몽환적인 색채가 돋보이는 작가다. 그는 전작 <엘제 양>과 <초속 5000킬로 미터>에서 작가 특유의 색채로 주인공의 실존적 위기와 각 유럽 도시의 독특한 분위기를 매혹적으로 그려낸다. 지금 소개할 SF 만화 <대면> 역시 비록 흑백으로 채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누엘레 피오르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각 장면은 안개처럼 엷게 펼쳐진 검은색과 이에 대비되는 선명한 흰색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흑백의 경계는 명확하기보다 흐릿한데, 이 같은 표현은 인간 심리의 미묘함, 인간관계의 모호함, 다가올 미래의 불안함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 <대면>은 이렇게 무채색의 세계에서 인간의 정신인 내(內)우주를 섬세히 탐구한다.

삼각형 1

 

인류의 새로운 도약

<대면>은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사회 진화’의 이야기다. 그래서 <대면>의 주인공 ‘도라’와 ‘라니에로’는 각각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를 상징한다. 도라는 ‘새로운 협약’의 젊은 여성멤버로서 기존 질서에 반하는 인물인 반면 라니에로는 정신과 의사인 중년 남성으로서 기존의 질서를 고수하는 인물로 설정된다.

도라와 라니에로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처음 만난다. 여기서 도라는 “<새로운 협약>은 감정적이고 성적인 비독점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에 라니에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은, 특히 우리 세대에게 그렇죠.”라고 답한다. 두 사람의 소통은 쉽지 않다. 하지만 상황이 반전된다. 상담 중 도라가 라니에로의 비밀을 정확히 말한 것이다. 그동안 라니에로는 자신이 목격한 정체불명의 삼각형 빛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 이어 도라는 자신과 라니에로가 외계 존재에 선택받은 사람이며, 빛의 신호는 텔레파시를 전하기 위한 메시지라 말한다. 라니에로는 혼란스럽다. 진실인 건 알지만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결국 라니에르는 도라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 두 사람 사이에는 강렬한 동일시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순간 삼각형 빛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도라 또한 세상을 변화시킬 텔레파시 능력을 각성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다. 어느새 130세의 노인이 된 도라가 사람들 앞에 선다. 그녀는 현대 텔레파시 사상의 창시자, 행성 간 통신 센터 소장으로 소개된다. 텔레파시의 발현과 외계 문명의 접촉. 마침내 인류는 새로운 세계로 도약한다.각성 1

 

한국 사회에 던지는 SF적 상상력

도라와 라니에로는 대립하고 화해하며 이어 세계는 고차적으로 발전한다. 이 같은 두 사람의 존재와 행위는 철학적 관점에서 변증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면>을 지금의 현실 속에 위치시킨다면 두 주인공의 대립은 한국의 극심한 세대갈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에는 거대한 단절이 존재한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마치 다른 시간대에 머물고 있는 듯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가령 다양한 스펙트럼을 고려하더라도,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두 세대의 시각은 너무나 상이하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특정 세대의 비난을 넘어, 우리 사회가 이 시대에 적합한 윤리와 규범을 도출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대면 2
그런 점에서 <대면>에서 보여준 두 세대의 교감과 이를 통한 새 시대의 도약은 현재 상황에서 의미 있는 주제다.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이상, 사회적 합의를 위한 소통을 배워나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같은 당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대면>의 미래가 도달 가능한 이상향이라기보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새로운 세계는 사람들이 서로 열려있고 신뢰할 때 가능하다고 도라는 말하지만, 과연 우리 사회가 세대 간의 갈등을 완화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특히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채로 누군가를 완전히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인간의 근원적 한계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대면>의 SF적 예언을 일방적으로 냉소할 필요는 없겠다. SF는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변화하는 사회의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상의 답을 제공하는 장르기 때문이다. 대신 보다 열린 마음으로 현재의 모순을 이해하고,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상상하면 어떨까.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