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청년, 비틀즈의 이야기_ <베이비스 인 블랙>

당신의 전성기는 언제였죠? 만약 비틀즈에게 묻는다면, 미국 JFK 공항에서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서막을 열었을 때일지 모른다. 아니면 최고의 앨범이라 평가받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발표했을 때 일수도 있겠다. 비틀즈가 20세기 대중문화에 각인시킨 절대적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들의 전성기가 언제인지 정확히 말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 막 10대를 넘긴 비틀즈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공연했을 때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의미 없던 시기는 아니었다. 수많은 공연을 통해 그들의 역량이 쌓여가던 때였다. 하지만 화장실 옆, 그것도 창문도 없는 좁은 방에 생활하고, 이후 석연찮은 이유로 추방당했던 이 시기가 전성기일 수는 없을 것이다. <베이비스 인 블랙>은 이렇게 일반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독일 함부르크 시절의 비틀즈를 이야기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비틀즈 이야기는 아니다. 탈퇴 멤버 ‘스튜어트 서클리프’와 그의 연인 ‘아스트리트 키르허’의 이야기다.

만남 1

 

비틀즈의 탈퇴 멤버 ‘스튜어트’와 그의 연인 ‘아스트리트’

리버풀의 다섯 청년은 독일 함부르크로 떠난다. 고향 리버풀보다는 급속도록 경제가 발전한 독일의 함부르크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비틀즈 멤버는 4명이 아닌 5명인데, 존 레논, 폴 메카트니, 조지 해리슨은 그대로지만 나머지 두 명이 지금과 달랐다. 그 중 한명이 바로 <베이비스 인 블랙>의 중심인물인 ‘스튜어트 서클리프’다. 스튜어트 서클리프는 검은 선글라스를 즐겨 끼며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남자다. 원래 그의 주요 관심사는 미술이었지만, 친구 존 레논의 권유로 비틀즈에 합류해 결국 먼 이국땅 독일에까지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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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스튜어트 서클리프와 아스트리트 키르허

‘아스트리트 키르허’는 노동자 도시 출신 비틀즈와는 여러모로 대조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의사 아버지를 둔 중산층 출신으로, 시, 음악, 미술에 조예가 깊으며 무엇보다 사진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비틀즈의 공연을 보자마자 그들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러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 사람들은 한마디로 내가 찾던 바로 그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 사진을 꼭 찍어야겠어.”라고 결심하며 비틀즈에게 다가간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비틀즈와 우정을 쌓으며, 무엇보다 예술적 감성을 공유하는 ‘스튜어트’와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이 후 스튜어트와 아스트리트 두 인물의 삶은 실화가 아니라면 거짓이라 할 만큼 극적으로 전개된다. 처음 그들은 서로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심지어 만나지 2개월 만에 약혼을 한다. 이어 스튜어트는 미련 없이 비틀즈를 탈퇴하고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 다음 해, 뇌출혈로 그는 사망한다. 너무나도 짧은 시기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것은 죽음을 맞이한 스튜어트 본인은 물론 그의 연인 아스트리트 그리고 아직은 그저 그런 밴드인 ‘비틀즈’의 나머지 동료까지.

비틀즈 사진
아스트리트가 찍은 비틀즈의 사진

 

흑백 영화처럼

<베이비스 인 블랙>은 ‘스튜어트’와 ‘아스트리트’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독자는 두 사람의 예정된 결말을 알고 있다. 스튜어트는 죽고, 그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그래서 <베이비스 인 블랙>은 흐린 하늘처럼 어둡고 무겁다. 인물과 배경의 선은 간결하고 정적이며, 또한 각 장면은 어둡게 채색되어 있다. 어떠한 격정적 감정도 없다. 심지어 스튜어트가 죽음을 맞이할 때조차도. 쓸쓸함만이 짙게 배어있다.

흑백 1

<베이비스 인 블랙>의 관조적 정서는 두 연인의 비극적 사랑을 담담히 그려 낸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같은 절제된 연출은 <베이비스 인 블랙>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주인공과 작가의 거리가 멀리 떨어질 경우, 보다 객관적인 작품이 될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다소 건조하고 딱딱한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베이비스 인 블랙>은 60년대 함부르크의 하위문화를 재현하는데 한계를 보인다. 비틀즈의 격동적인 무대도, 함부르크의 퇴폐적인 문화도, 단지 흑백의 배경으로만 처리되었을 뿐이다. 또한 스튜어트와 아스트리트 사이에서 오갔을 수많은 감정 역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섬세한 떨림, 격정적인 열정은 생략되고, 오랜 시간 흐른 후 남은 담담한 감정만이 머물러 있다. 흑백 영화처럼 <베이비스 인 블랙>은 생동감 넘치는 컬러, 즉 눈부신 청춘의 날은 담아내지 못하지만, 대신 두 연인의 아련한 추억을 조심스레 소중히 담아낸다.

한 인물의 인생을 온전히 조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가능할지라도 이야기로서는 의미가 없다. 만약 그러한 시도를 하다면, 이야기는 엉키고, 캐릭터는 일관되지 않으며 흐름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결국 실화를 다룬다는 것은 한 인물의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된 삶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지 결정하는 행위이며, 이것은 곧 이야기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다. 가령 또 다른 비틀즈 이야기인 <다섯 번째 비틀즈>의 경우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눈을 통해 매혹적인 비틀즈의 신화를 보여준다. 반면 <베이비스 인 블랙>의 경우 <다섯 번째 비틀즈>와는 또 다른 길을 걷는다. 아직 스타가 되기 전, 그래서 여느 청년처럼 불안하고 위태한 비틀즈와 그의 친구들 이야기. 작가 ‘아르네 벨스토르프’는 비극적 결말을 인지한 채, 스튜어트와 아스트리트 두 사람의 모습을 쓸쓸히 바라본다.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