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작가가 그래픽노블을 그린다는 것은_ 수신지의 <스트리트 페인터>

<그래픽 노블의 다채로운 세계 들여다보기>의 마지막 여정이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그래픽 노블을 소개했지만,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한국 그래픽노블을 소개하고자 한다. 보통 그래픽노블은 미국, 유럽 만화로 인식되기에, 한국 만화가 그래픽노블이라는 사실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그래픽노블이 주류 만화와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가지며, 또한 보다 자유로운 표현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래픽노블에 한국 만화가 포함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 소개할 ‘수신지’ 작가의 <스트리트 페인터> 역시 이러한 그래픽노블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전작 <3그램>은 작가의 일러스트 경력, 자전적 요소, 실험적 작화 등 그래픽노블의 일반적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 반면 <스트리트 페인터>의 경우 그래픽노블의 전형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이 작품은 2015년 올레마켓에서 연재된 웹툰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엄밀히 말하면 ‘그래픽노블’보다는 ‘웹툰’에 가까운 작품이다. 그럼에도 <스트리트 페인터>를 소개하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다. ‘웹툰’과 ‘그래픽노블’의 관계는 한국 그래픽노블의 독특한 특성이며, 이 또한 다양한 그래픽 노블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스트리트 페인터 클리어 하기

주인공 ‘아랑’은 대학 졸업을 앞둔 회화과 학생이다. 그녀는 4년 내내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이번에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다른 일이 하고 싶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우연히 인물화를 그리는 ‘거리의 화가’에 지원하여 합격한다. 이제 주인공은 ‘스트리트 파이터’ 아닌 ‘스트리트 페인터’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삶을 배워 나간다.

거리에서 낯선 타인을 그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인공 역시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녀는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그림을 무조건 실물보다 예쁘게 그려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기도 한다. 물론 그림만 잘 그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손님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인공은 처음과 달리, 사람들의 관심을 끌 그림을 전시하고, 주요 고객인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하며 손님 맞을 만반의 준비를 한다.

준비 3

이제 주인공은 사람을 모으는데도, 그림을 그리는데도 익숙해졌다. 최종 라운드가 남았다. 진상 손님과의 대결.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돈을 지불하지 않는 손님, 아이를 그리게 한 후 자기 볼일이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 손님 그리고 술에 취에 시비 거는 손님까지, 그들 모두를 주인공은 상대한다. 그녀는 어느새, 어엿한 거리의 화가로 성장해 있다.

진사 손님 1진상 손님 2

 

20대 여성의 사회 초년생 이야기

<스트리트 페인터>는 20대 사회 초년생 이야기다. 일이란 결국 인간관계다. 그 인간관계에는 단순히 손님뿐만 아니라 일을 함께 하는 동료까지 포함되어 있다. <스트리트 페인터>의 경우 여려 명의 중년 남성 화가가 주인공의 동료다. 그들은 주인공에게 적대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우호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그들은 주인공을 동등한 동료라기보다는 나이 어린 학생 정도로 생각한다. 첫 기념 식사 때, 화가 중 한 명이 “우리 막내가 메뉴를 고르면 어때요?”라고 묻자, 주인공은 조심스레 “패밀리 레스토랑은 어떨까요?”라고 답한다. 하지만 리더를 자처한 다른 화가가 ‘날도 추운데 뜨끈한거 먹으러 갑시다’라고 말하며 논의를 일방적으로 끝내버린다.
화가 동료이 같은 젊은 세대의 관한 시선, 특히 20대 여성에 관한 시선은,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공공장소가 거리화가의 영리 장소로 쓰인다고 항의하는 민원이 들어온다. 구청에서는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화가 1명을 줄이기로 결정한다. 화가들은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 그러던 중, 화가 한명이 갑자기 주인공에게 “아랑 씨야말로 딸린 가족도 없고 우리보다 낫지 않아?“라고 말한다. 이에 그녀는 ”아니요. 저도 학자금 대출 상환 시작돼서 매달 내야 할 돈이 얼마인데요. 저도 안 돼요….“라고 맞선다.

일단 여기까지는 젊은 세대의 어려움을 명확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후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의 단호한 대응이 무색할 정도로, 갈등은 허무하게 봉합된다. 화가들은 저녁까지 손님이 가장 적은 사람이 나가는 걸로 합의한다. 이때 실패를 거듭하다 이제 막 화가를 시작한, 그리고 주인공에게 친절한 화가에게 일이 생긴다. 그는 응급실에 실려 간 아들 때문에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 탈락자가 자연스레 결정될 상황이다. 주인공은 고민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나갈게요.” 이유가 어찌 되었든, 결국 20대 여성인 주인공은 그림 그리던 거리를 떠난다.
나가기

세계의 다양한 그래픽노블은 궁극적으로 보편적 삶을 이야기하지만, 세부적으로는 각 나라의 독특한 경험과 정서를 이야기한다. <스트리트 페인터>도 예외는 아니다. ‘거리의 화가’라는 특수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한국 젊은 세대의 한 단면이 반영되어 있다. 아르바이트가 삶의 일부분이 된 학생과 이들이 경험한 사회의 모습. 이런 점에서 <스트리트 페인터>의 낙관적 결말은 수긍하기 힘들 수 있다. 젊은 세대의 가장 첨예한 갈등이 가장 비현실적으로 해결됐기 때문이다. 결말이 아쉽다. 하지만 굳이 옹호하자면 모든 작품이 <송곳>일 수는 없다. 따뜻한 위안을 주는 작품이 필요할 때도 있다. <스트리트 페인터>는 그런 작품이다. 때론 힘들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잘해낼 수 있다며, 지친 마음을 토닥토닥 다독거린다.

마지막 2
마지막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