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단과 편견의 오와라이 (1) 개그(ギャ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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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독단으로 분류한 개그망가에 영향을 준 오와라이 장르

오와라이를 포함해, 예능을 일본말로 재주(芸)를 선보인다(演)는 뜻을 취해 엔게(演芸)라고 부른다. 일본에는 다양한 전통 엔게나 새로 개발된 엔게가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다. 이를 모두 다루기에는 지면도 부족하고, 본래 테마인 ‘개그망가와 오와라이의 관계’와 벗어난다. 따라서 망가에 영향을 준 오와라이 장르를 골라 독단으로 체계를 잡아 분류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분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특정 오와라이 장르나 형태가 어떻게 개그망가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이야기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엔게: 개그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재주를 선보이는 게 가능한 경우, 대부분 맨몸이나 전문적인 특정한 도구 외에 상황이나 맥락에 관계없이 선보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다시 말해 스토리나 맥락 등 전체적인 흐름보다는 단발로 순간순간 비일상을 보여주어 재미를 주는 게 목적이다. (이를 나는 ‘전이’라고 부르는데, 자세한 논의는 졸저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에서 다루고 있다.) 전통 엔게 중에는 떠돌아다니다 길거리에서 좌판을 벌이고 마술이나 곡예, 차력 등 특정한 재주를 보여주는 다이도게(大道芸)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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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오와라이에서 대응하는 재주는 성대모사나 형태모사를 뜻하는 모노마네(物真似), 짧고 반복 가능한 개그(ギャグ)가 해당한다. 특히 개그는 개그망가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망가에 큰 영향을 준 오와라이다. 1960년대 망가가 월간지에서 주간지로 중심을 옮겨가 회 당 분량이 대폭 줄어든 사정이 배경에 깔려있으며 스토리 보다 개그가 짧은 분량 안에 관심과 재미를 끌고 기억에도 쉽게 남는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망가의 주 독자층인 어린이들이 따라 하기 쉽고 재미있다는 이유로 개그를 선호했다. (1970~80년대에는 마니아 독자가 스토리의 본선 보다 패러디를 즐기기 쉽다는 이유로 개그를 선호하게 된다.)

 

Gag, 개그, ギャグ의 차이

본래 개그는 영어로 숨이 막히다, 재갈 물리다 라는 뜻이나, 이름의 유래는 생각하다 숨이 막혀서가 아니다. 서양에서 대중연극 공연 중 주의가 산만해진 관객을 집중시키기 위해 ‘관객에게 재갈을 물리듯’ 스토리와 관계없이 짧고 단 번에 재미가 전달되는 재주, 유행어, 몸동작 등을 즉흥적으로 혹은 반복적으로 집어넣었던 데서 유래한다. 짧고 특정한 상황이나 연출도 개그라 부른다. 대표적인 예는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The Simpsons)>에서 매 화마다 등장하는 ‘카우치 개그(couch gag)’로, 소파(카우치)에서 보여줄 수 있는 우스꽝스러운 행동, 상황, 대사는 25년을 넘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행동이나 상황 등의 개그는 러닝 개그(running gag)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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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코미디의 대표적 개그인 맹구의 ‘배트맨’

일본에서 개그의 의미는 지역차가 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칸사이(関西) 지역에서는 짧고 우스꽝스러운 말이나 표정, 몸동작 등을 개그라 부른다. 한편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칸토(関東)에서는 조크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칸사이에서 말하는 짧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이나 몸동작은 따로 한방 개그(一発ギャ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이를 보통 유행어라 부르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과거 <봉숭아 학당>의 캐릭터 맹구가 선보인 유행어 “(손으로 마스크 모양을 흉내 내며) 배트맨!”이 한방 개그에 해당한다.

특히 한방 개그는 망가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과자, 장난감 회사가 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서 어린이용 개그망가를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바꾸면서 특히 어린아이가 따라 하기 좋은 개그를 넣어 수익을 올려왔다. 한방 개그를 주로 사용하는 게닌끼리는 서로 농담 삼아 ‘갸가(ギャガー, gag+er)’라고 부른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코미디언을 개그맨이라 부른다. 둘은 언뜻 보기에는 같은 말 같으나, 일본의 갸가와 우리나라의 개그맨과는 의미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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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개그가 2조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대표적인 ‘갸가’, 만자이 콤비 의 보케 담당 하라니시(原西). 애니메이션 [프리큐어] 시리즈의 열렬한 팬으로도 유명해 작품에도 본인 역으로 출연해 개그로 프리큐어를 위기에서 구한다.

개그맨/개그우먼(gagman/gagwoman)은 전유성이 만든 조어다. 우리나라의 개그맨은 코미디언이나 게닌과 동의어인 범주가 큰 말로, 개그만이 아니라 상황극 (일본에서는 쇼트-콩트, 미국에서는 즉흥극-improvisation) 등도 소화한다. 우리나라는 단순히 재미 혹은 재미있는 무언가를 도매금으로 부를 때 개그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냥 일본말의 ‘개그’를 한국말의 ‘개그’로 이해하면 오해가 생긴다.

개그망가 작가는 계속해서 새로운 개그를 고안하기 위해 고뇌해왔는데, 오와라이 게닌과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셈이다(1). (실제로 개그를 고민하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대표적인 개그만화는 <멋지다 마사루>나 <개그만화 보기 좋은 날>, <우당탕탕 괴짜 가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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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괴짜가족] 캐릭터 ‘진엄마(仁ママ)’. 일본의 전통요괴 귀녀(鬼女)를 패러디한 외모와 행동이 모두 ‘개그’다.

개그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은 개그망가를 이해가 어렵고 황당무계하며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비슷한 예로,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입소문(viral)을 탄 일본 광고가 있다. 개그망가와 마찬가지 이유로 일본 광고계는 개그망가나 오와라이를 답습한 개그-광고를 오랫동안 만들어 왔고, 개중에는 다른 나라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 오히려 주목을 끄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개그라는 장르의 인식 차이 때문이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도 비슷한 맥락에서 인기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짧고, 강하고, 부조리한 짓

다른 나라에 비해, 일본의 개그는 과격하고 부조리하다. 이유로는 이전 연재에서 이야기한 타자화 외에도, 폐쇄된 환경인 일본 텔레비전 업계 내에서 오와라이가 자체적으로 발전해온 것과 1970년대 카운터 컬처 운동으로 인해 언더그라운드 예술이나 전위 예술과 영향을 주고받은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일본은 부조리하고 특이한 행동을 전부 개그라 부르고, 조건반사적으로 웃는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다. 그래서 일본 개그는 이상해, 재미없어, 불쾌해 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우리나라에는 상당수 있다. 이러한 감상 자체는 문제 될 게 없으며, 오히려 나도 일정 부분 공감하는 바다.

그러나 이 글에서 문제 삼는 점은 본래 영어 개그(gag)의 의미와 가까운 것은 한국의 ‘개그’가 아니라 일본의 ‘개그(ギャグ)’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그=코미디=유머로 사용하고 있지만, 본래 의미대로라면 개그⊂코미디⊂유머다. 유머는 익살과 해학을 통칭하고, 코미디는 유머를 유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희극이며, 개그는 코미디의 방법론 중 하나다. 이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간혹 개그망가를 받아들일 때 당황하게 된다. 개연성이 없다, 황당하다, 부조리하다 등 반발도 나온다. 여기에 내가 개그망가를 위해 작은 변명을 하자면 원래 그걸 의도로 만든 것이 일본 개그라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양키 개그 센스’, ‘일본 개그 센스’라는 말로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의 웃음이 다른 가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 인식’의 차이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망가는 주간지로의 이행으로 인한 지면 제약과 오와라이의 사회적 인기를 반영해 적극적으로 개그를 받아들여 개그망가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여기서 개그란 우리나라의 ‘개그’보다 더 특수한 형태이며, 우스꽝스러운 표정, 몸동작, 대사, 행동을 짧고,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을 알고 있으면 개그망가에서 느끼는 생경함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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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닌의 경우 무명시절 개그나 오와라이에 대해 과도한 고민을 한 끝에 정신적 건강을 크게 해쳐 우울증이나 조현병이 발병하는 사례가 상당히 잦다. 이런 상황을 오와라이 게닌은 일본말로 병들었다는 뜻의 얀데루(病んでる) 라고 부르는데, 개그망가가 전성기를 이루던 1970년대 많은 개그망가 작가가 비슷한 상태가 되어 절필하거나 휴재하는 일이 많았다.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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