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단과 편견의 오와라이 (3) 와게(話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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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몸으로 행하는 엔게: 와게(話芸)

이전 연재에 이어, 망가에 영향을 준 오와라이 장르를 골라 독단으로 체계를 잡아 분류해 소개하고자 한다. 이 분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특정 오와라이 장르나 형태가 어떻게 개그 망가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이야기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무대에서 행하는 예능을 나는 크게 연극을 의미하는 시바이(芝居)와 말만 사용하는 와게(話芸)으로 나눈다고 했다. 시바이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와게를 다룬다.

와게는 시바이와 달리 기본적으로 연기를 사용하지 않고 말로만 재미를 끌어낸다. 크게 라쿠고(落語), 만담(漫談), 그리고 만자이(漫才) 혹은 샤베쿠리만자이(しゃべくり漫才)로 나눈다. 개그 망가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와게는 라쿠고와 만자이다.

 

개그 망가 구성의 기본이 된 라쿠고

라쿠고는 에도시대에 성립한 전통 엔게로, 간단한 몸짓을 곁들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며 현재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야기 결말에 뚝 떨어진다는 뜻의 사게(サゲ, 下げ) 혹은 오치(落ち)라는 엔딩이 붙는 특징 때문에 떨어뜨리는(落) 이야기(語)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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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일본문화 전파의 일환으로 때때로 라쿠고가 공연되고 있다.

라쿠고는 마쿠라(マクラ), 혼다이(本題), 오치(落ち) 혹은 사게(サゲ)의 순서로 구성된다. 마쿠라는 자기소개나 이야기의 흐름을 정하는 잡담을 의미한다. 혼다이는 본래 이야기다. 오치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특정한 양식이다. 마쿠라에서 관객의 긴장을 풀고 라쿠고카와 친근하게 만든 다음, 본론인 혼다이로 들어간다.

라쿠고는 개그 망가에 다양하게 영향을 주었다. 우선 길이가 비교적 짧고 압축적이어서 분량이 짧은 개그 망가에 적합하다. 내용도 다양하다. 사람 사이의 정을 다루는 닌죠바나시(人情噺) 외에도 현대의 장르 구분으로 보면 과학소설(SF)이나 공포에 해당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내용의 구성은 콩트와 마찬가지로 개그망가 플롯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오치는 망가에서 중요한 용어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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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고카 슌푸테이 류쇼(春風亭柳昇)는 친분이 있는 만화가 유우키 마사미의 <궁극초인 아~루>에 야나기쇼(柳昇) 교장선생님으로 패러디되어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판에서는 본인이 목소리를 담당.

라쿠고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대표적인 작가는 <패트레이버>의 유유키 마사미(ゆうき まさみ), <도라에몽>의 후지코 F. 후지오가 있다. 대부분 개그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체 구성을 갖추어 스토리로 부드러운 재미를 주는 작풍을 구사하는 작가가 많다. 또한 데뷔 초기에는 개그 망가를 그리다가, 스토리를 만드는 데 더 집중하게 되어 장편 연재로 넘어가면서 탄탄한 스토리 위에 일종의 문체와 같은 개성을 보이는 작풍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후지코 F. 후지오가 그러하다.

‘저는 라쿠고를 좋아합니다만, 같은 이야기라도, 소위 명인이라 불리는 분이 이야기하면 신인과는 달리 전해오는 재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즉 표현 기술에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후지코 F. 후지오. <후지코 F. 후지오 자선집 도라에몽 上>에서)

 

현대 오와라이를 대표하는 만자이

만자이 혹은 샤베쿠리만자이라 불리는 엔게는 한국에서는 만담이라고 불리는데, 따로 깊이 다룰 예정으로 이 글에서는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고전 예능 만자이(萬歳) (1)에서 유래한 현재의 샤베쿠리만자이는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가 이름을 붙이고 형식을 완성했는데, 무성영화 시절 변사가 사회자를 보며 입담으로 재미를 주던 ‘만단’에 만자이와 미국식 만자이인 ‘더블 액트(double act)’ (2)의 영향을 더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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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오와라이 제2세대를 이끌었던 만자이 콤비 [투 비트(ツービート)]. 보케 담당 비트 타케시(ビートたけし)는 후에 일본 오와라이의 거물이 되었다.
만자이는 기본적으로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보케(ボケ)와 이를 지적해 웃음을 유발하는 츳코미(ツッコミ)로 나뉘며, 두 사람이 박자 좋게 대화를 나누어 웃음을 준다. 라쿠고의 마쿠라처럼 처음 등장할 때는 개그나 특정한 대사를 이용해 웃음을 유발하고 관중의 긴장을 푼다. 이를 붙잡는다는 뜻인 츠카미(つかみ)라고 부르는 데, 본래 개그가 탄생한 이유와 목적과 유사하다. 츠카미 이후에는 츳코미가 후리를 넣고, 보케가 보케를 한 뒤, 츳코미가 이에 반응해 츳코미를 넣는다. 이후 보케와 츳코미가 서로 상호작용을 반복해 진행된다.

보케는 일본어로 치매, 멍한 상태를 뜻하나, 본래는 ‘딴청 부린다’는 뜻의 ‘토보케루(惚ける)가 줄은 말이다. 보케 역할뿐 만이 아니라, 보케가 하는 엉뚱한 소리나 행동도 보케라고 부른다. 이는 만자이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버라이어티 방송이나 콩트, 심지어는 일상생활에서도 모두 통용되는 표현이다.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빈칸을 채워 넣어 웃음을 유발하는 ‘열도의 제목학원’은 본래 일본의 SNS 유머 사이트 보케테(http://bokete.jp)를 번역한 것으로, 사이트 이름대로 특정한 만화나 사진을 보고 ‘보케’를 하는 게 목적이다.

츳코미는 일본말로 ‘푹 찌르다’는 뜻으로 ‘캐묻다, 지적하다’는 뜻도 있다. 상대방의 보케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사람 혹은 행동을 이르는데, 보케와 마찬가지로 널리 쓰이는 표현이다. 일본에서는 츳코미가 없으면 웃음이 완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다음 연재에서 자세히 다룰 ‘긴장과 완결’ 이론 때문이다. 보케가 만든 긴장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으면 관객이 혼란스러워 할 뿐 상황을 납득해서 웃음을 유발하지 못한다. 비트 타케시, 타모리(タモリ)와 함께 ‘오와라이 BIG 3’로 꼽히는 아카시아 산마(明石家さんま)는 ‘좋은 츳코미란 관객의 반응에 0.5초 빨리 반응해 더 쉽게 납득하게 하는 만드는 츳코미’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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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의 판소리와 유사한 형태의 노래나 타령을 하는 엔게로 악기와 함께 진행되었다. 타령을 하는 타유(太夫)와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추는 사이조(才蔵)로 구성된다. 이는 판소리의 소리꾼과 고수의 역할과 유사하다.

(2) 더블액트는 콩트의 후리와 코나시처럼 진지하고 상식적으로 보이는 ‘the straight man’과 우스꽝스럽고 엉뚱한 ‘the banana man’으로 역할이 나뉜다. 대표적인 더블액트 코미디언으로는 애벗과 코스텔로(Abbott and Costello)가 있다. 더블액트 코미디언은 보통 수트를 입고 무대를 서고 빠른 말로 진행한다. 비트 타케시는 만자이의 유래를 고전 만자이가 아니라 더블액트라고 보고 있다.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번역가.

주요 출간:
단편집 [당신의 苦를 삽니다], [데스매치로 속죄하라 - 국회의사당 학살사건], [스쿨 하프보일드], [일만킬로미터 너머 그대. 스토리 작법서 [스토리 트레이닝: 이론편], [스토리 트레이닝:실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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